Hunter Club RAW - chapter (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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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혈로(血路)
“안 돼!”
발레기우스의 교활한 속내를 간파한 노구덕은 이를 악물고 놈의 뒤를 쫓으려 했다.
하지만 노구덕은 얼마 나아가지 못하고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지금껏 하이에나처럼 그의 주위를 맴돌던 드래곤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쿠우우우우우—!
-퀴이이잇!
겁도 없이 달려드는 도마뱀들의 눈알은 하나 같이 마룡과 같은 황혼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놈들은 마룡을 통해 현신한 발레기우스의 지배를 받는 게 분명했다.
“저리 비키지 못해!”
억센 눈자위에서 새빨간 불똥이 튀며, 노구덕의 덩치가 두 배는 가깝게 부풀었다. 통나무보다 더 굵어진 그의 팔뚝에선 가지런히 정렬된 여섯 개의 반점이 찰랑거리는 피눈물을 머금었다. 여섯 개의 충왕각인이 일시에 전력으로 가동된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힘.
개미의 근력.
벼룩의 도약력.
파리의 초감각.
바퀴의 적응력.
그리고 이 모든 능력을 배가시키는 교황각인.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이다. 풀파워의 충왕각인은 인간을 초월한지 한참인 노구덕의 육체로도 그리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육체의 그릇이 아무리 크다한들, 엄연히 한계라는 게 있었으니까.
바꿔 말하면, 그만큼 무시무시한 힘이란 소리다.
자연의 이치를 벗어난 힘. 법칙의 구속에서 벗어난 물리력.
지금 이 순간, 노구덕에게 깃든 무력은 정말로 ‘무신(武神)’의 현현이었다.
“꺼져라!”
아예 몸통째 들이받을 작정이었던 듯, 수직으로 내리꽂히던 드래곤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머리를 내뿜은 거체는 그대로 지면과 충돌하며 어마어마한 땅울림을 만들어냈다. 가장 작은 개체라고는 하나, 몸 길이 이십 미터가 넘어가는 괴물이 주먹질 한 방에 머리가 날아간 것이다.
그러나 신위를 보인 노구덕은 정작 그쪽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급함으로 물든 그의 눈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드랙노이 아니라 저 멀리 상공에서 숨을 들이켜는 마룡의 거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쩌억 아가리를 벌린 마룡의 목구멍에서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이 느껴진다. 먼젓번의 레드드래곤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할 만큼 엄청난 마력의 소용돌이였다.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저것만은 막아야 했다.
“발레기우스—!”
또다시 한 마리. 육탄공세를 펼치는 드래곤의 몸통을 폭죽처럼 터뜨려버린 그가 비산하는 혈육의 소나기를 헤치며 크게 부르짖었을 때, 냉기와 뇌전의 브레스가 그의 전면을 뒤덮었다.
-콰우우우우우—!
시린 빛을 품고 쏟아지는 냉기와 폭풍처럼 빗발치는 뇌전에 파묻힌 노구덕의 모습이 일순 흐릿해졌다. 그의 앞을 막아선 두 마리의 드래곤은 그 흐릿한 인영마저도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듯, 더더욱 강한 숨결을 뿜어냈다.
두 갈래로 뒤엉킨 브레스는 협곡의 뒤편 지형을 완전히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아마 두 줄기의 숨결이 몇 초만 더 지속되었더라면, 일대의 지형을 완전히 뒤바꾸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가정이었다. 방금 전까지 있는 힘껏 브레스를 뿜어대던 두 마리 드래곤은 이미 목 없는 시체로 변해버렸으니까.
물론 두 마리의 머리를 날려버린 것은 순식간에 브레스 속을 뚫고 뛰쳐나온 노구덕이었다. 휘몰아치는 피보라를 뚫고 나온 노구덕은 형형한 눈에 시뻘건 핏발을 세우고 있어,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가 따로 없는 모습이었다.
-호오, 생각보다 훨씬 강하군요.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너…!”
지독한 꼴을 한 노구덕의 얼굴이 더욱 흉악하게 찌그러졌다. 곁눈질하는 마룡의 눈자위에 어린 비웃음, 그 날 선 조소만으로도 이미 사태를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늦었다. 늦고 말았다.
놈의 목구멍에 머물러 있는 황혼빛 마력의 응집체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저건 이미… 한계까지 당겨진 시위에 걸려버린 화살이었다.
애초부터 헛된 희망이었다. 교활한 발레기우스는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마치고, 노구덕이 저지선을 뚫고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오로지 그에게 직접 파멸의 순간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간신히 잡은 희망의 끈을 싹둑 잘라내는 즐거움을 맛 보기 위해서.
-자, 여흥의 시간이군요. 후후후.
“그만두란 말이다!”
목울대를 크게 꿈틀거린 마룡이 파멸의 빛줄기를 발산하고, 동시에 노구덕이 피맺힌 외침을 토해냈다. 하지만 공기를 떨어 울리는 그의 외침엔 마룡의 브레스를 막아낼 어떤 힘도, 실체도 없었다.
정확히 군단 중심부를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진 황혼빛 광선은 지면에 거대한 고랑을 만들며 그 범위 안의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시, 신이시여!”
“만신전에 영광 있으라!”
죽음을 앞에서 신을 부르짖던 론다리온의 사제들이 황혼 속으로 사라졌고, 이어서 어지럽게 뒤엉킨 악마들과 군단병들이 광선에 휘말려 소멸했다. 하늘과 땅을 불태우며 가로지르는 광선은 그 지나간 경로에 미세한 잔재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삽시간에 방진의 일각을 무너뜨리며 가운데로 나아가던 광선의 경로에 웬 시커멓고 길쭉한 그림자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끔찍한 비명.
-케엥!
-응?
이 갑작스런 사태에, 느긋하게 웃음 짓던 마룡의 눈이 어처구니없는 빛을 띠었다. 무식해도 정도가 있지, 소멸의 권능이나 다름없는 마룡의 브레스에 정면으로 뛰어드는 머저리가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탓이었다.
그러나 그 머저리 같은 행동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던 브레스의 방향을 급격히 틀어버린 것이다.
콰앙!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엉뚱한 지점으로 꺾여나간 마룡의 브레스는 협곡의 한쪽 절벽 수백 미터에 이르는 공간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매우 떨떠름한 얼굴이 된 발레기우스는 사나워진 눈알을 굴리며 자신을 방해한 훼방꾼을 찾았다.
천하의 발레기우스를 당혹스럽게 만든 건 어두운 그림자를 비늘처럼 두른 거대한 뱀이었다.
말 그대로 온몸을 내던져 마룡의 브레스를 막아낸 왕뱀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심한 상처를 입고 널브러져 있었다. 끙끙거리며 길게 빼문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걸로 봐선 당장 숨이 끊어지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거대한 몸뚱이를 감싼 그림자는 절반 이상이 뜯겨나가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상태였다.
훼방꾼의 정체를 알아낸 발레기우스는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로 강력한 기운을 품은 뱀이 몸을 내던졌으니, 마룡의 브레스가 꺾여버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뱀…? 흠… 그렇군요. 지능이 모자란 미물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지금은 네 걱정부터 하는 게 좋을 거다.”
어느새 마룡의 날갯죽지까지 쇄도한 노구덕은 그 두꺼운 팔을 마룡의 살점 속으로 쑤셔 박았다. 중간에 보호막처럼 느껴지는 반발력이 있긴 했으나 그의 완력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놈의 날갯죽지에 팔 하나를 쑤셔 넣은 노구덕은 그대로 레펠을 타듯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러자 마룡의 한쪽 날개가 칼에 베인 것처럼 길게 찢어지며 하늘에 떠오른 거체가 급격히 아래로 기울었다.
마룡의 날개쪽 살가죽을 길게 찢어버린 노구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한 번 너덜거리는 놈의 살점을 발판 삼아 훌쩍 위로 박차 올랐다.
날아오른 그가 향한 곳은 브레스의 잔열(殘熱)이 풍겨오는 놈의 머리였다. 다른 드래곤들에게 행한 것처럼, 노구덕은 속전속결로 놈의 두개골을 부서뜨릴 작정이었다.
그 한순간, 어둡게 그늘이 진 마룡의 눈과 노구덕의 혈안이 빠르게 교차했다.
-직접 대면할 날이 기다려지는군요. 직접 찾아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속이 뒤집히는 기분 나쁜 웃음도 이젠 끝이다. 마룡의 목덜미 바로 아래까지 짓쳐든 노구덕은 검붉은 투기를 발하는 주먹을 치켜들었다.
“개자식. 이만 뒈지기나 해라.”
-후후. 너무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 몸, 꽤 공들인 작품이거든요.
“닥쳐!”
이상할 정도로 여유로운 그 말투에서 묘한 불안감을 느낀 노구덕은 급히 마룡의 목줄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암만 괴물이라도 목줄이 통째로 뜯어지면 절대 살 수 없을 테니까. 그의 주먹엔 둘레 수십 미터가 넘는 드래곤의 목줄을 한번에 날려버릴 만한 거력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가 얌전히 맞아주었을 때나 가능한 일. 노구덕의 주먹이 번쩍이며 공기를 갈랐을 때, 마룡의 거체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아니?”
부지불식간에 목표를 잃어버린 노구덕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놓쳐버린 마룡의 기운이 서쪽에서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사라졌던 마룡은 그로부터 다시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심해의 색을 띤 마룡은 어느새 다시 회복된 날개를 펄럭이며 그를 비웃고 있었다.
저 거대한 몸뚱이로 블링크라니. 직접 보지 못했다면 도저히 믿지 못할 일이다. 뇌리를 강타하는 충격에 잠시 얼이 빠진 노구덕은 놈의 주위에 몰려드는 마력의 구체를 보고 황급히 정신을 일깨웠다.
‘아차!’
“크으윽!”
짧게나마 틈을 보인 대가는 컸다. 찰나지간 시야를 뒤덮은 마력의 구체는 노구덕의 육신이 잘게 다진 고깃덩이가 되도록 무자비한 폭격을 퍼부었다. 사방이 가로막힌 압착기에서 기름 한 방울까지 쥐어짜지는 듯한 맹공이었다.
마룡의 마력은 노구덕이 내심 정한 상한선을 훨씬 웃돌았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그가 상대한 어떤 카름보다도 강했다. 아트로포스, 그림리퍼, 레드테러… 그 어떤 괴물도 이 이름 모를 마룡의 상대는 되지 못할 것 같았다.
‘망할…! 또 신의 조각이냐!’
뿌득! 노구덕의 어금니가 강하게 맞물렸다. 그렇잖아도 약한 공중전을 치르느라 밸런스가 무너진 마당인데, 놈이 거리까지 벌려 놓자 더욱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졌다. 발레기우스가 저런 식으로 치고 빠진다면 그로서도 상대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여기서 가장 최선은 외부의 지원을 받는 것이지만… 지금 지상의 아군은 마룡이 날린 브레스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게다가 재차 몰려온 아바돈의 악마들과 악전고투까지 치르는 중이니 사실상 도움을 바라기란 불가능했다.
‘어떻게 하지? 만약 저놈이 또다시 대열 중앙을 노린다면 난……. 엇?’
마룡이 쏘아대는 마력포를 힘겹게 받아내던 노구덕의 눈이 별안간 휘둥그레졌다. 시야를 물샐틈없는 빛으로 물들였던 마룡의 포화에 조금씩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것이다.
발레기우스가 일부러 힘을 느슨하게 줄였을 리는 없다. 자세히 보니, 빗발치는 포격의 중간중간에 박쥐떼처럼 몰려온 무엇인가가 계속 끼어들며 펑펑 터져나가고 있었다.
-끼에엑!
-께게게겍!
펑! 펑! 펑!
‘악마?’
노구덕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포화 속으로 뛰어들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산화하는 그것들은 아바돈의 비행형 악마들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비단 악마들뿐만이 아니었다. 꽈배기처럼 뒤엉킨 덩굴줄기가 지상으로부터 솟아나 마룡을 에워싸고, 새까맣게 몰려든 먹구름이 마룡의 머리 위에서 천둥벼락을 내리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돌린 노구덕.
아래로 향한 그의 시야에 펼쳐진 것은 도무지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어느새 지상의 싸움은 멈춰 있었다. 피와 살점이 튀기도록 싸우던 병사들은 그를 향해 무기를 들어 보이며 요란한 함성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정신이 없어 잘 들리진 않았으나, 그들이 열성적인 응원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챌 수 있었다.
문제는, 위를 향해 소리치는 병사들 주위로 버젓이 악마들의 무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검은 마기를 스멀스멀 피워 올리는 그 괴물들은 틀림없이 아바돈의 악마들이었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악마들과 병사들이 평화협정이라도 맺은 것일까? 지상에 펼쳐진 그림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기가 막힌 눈으로 아래를 응시하던 노구덕은 곧 의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무리를 지은 악마들의 한 가운데, 황소악마 바포메트의 머리 위에 올라 번쩍 든 팔을 흔들고 있는 여인. 등 뒤에 전에 보지 못했던 묵색의 후광을 두른 그 여인은 바로 신소율이었다.
‘소율이, 이 녀석!’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주변의 분위기로 보아 그녀가 이 별난 광경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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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충견 브리트라에게 애도를.
날이 상당히 풀린 것 같습니다. 옷을 두껍게 입으니 실내에서 땀이 조금 차는군요..
이맘때쯤 되면 왠지 몰라도 철원에서 군생활 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돌이켜보니 꽤 오래 되었는데.. 처음 갔을 때 거긴 진짜 우리나라가 아닌 줄 알았더랬죠.
월말까지는 가급적 휴재없이 계속 달릴 생각입니다. 스토리 진도도 빼야하고, 전자책도 수정해야 하고, 가게도 봐야 되고,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쉴 생각도 못하겠네요. ㅠㅠ
독자님들도 남은 두 달 한 해 마무리 잘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작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