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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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혈로(血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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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궁–!
비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마룡의 사체가 먹먹한 굉음을 울리며 나가떨어졌다. 어느새 본드래곤의 머리 위로 올라탄 노구덕은 산등성이를 허물어뜨리며 가라앉는 마룡의 사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느닷없이 출현한 본드래곤에 의해 최후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뒤, 그를 조롱하던 발레기우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분통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말을 잊었거나, 실패를 직감하고 마룡의 몸에서 물러간 것일 터.
마룡이 추락한 지점에서 눈을 뗀 노구덕은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두 여인을 한번에 부둥켜안았다.
“정말 고맙다. 제때 와 줘서.”
“…….”
“흥….”
조금 더 빨리 도착하지 못했다는 자책일까? 깊이 머리를 숙인 소냐의 낯빛은 조금 괴로워보였다.
슬쩍 그의 품 안에서 몸을 빼내는 데모나도 표정이 좋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무리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따른 피로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건 점차 가까워지는 아군의 상태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나빴기 때문이다.
어쨌든 발레기우스의 음모를 분쇄하고, 도리어 통렬한 일격을 먹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의 승리는 그만큼의 희생이 동반된 결과였다.
중상을 입은 브리트라와 임유진은 말할 것도 없고, 최선봉에서 악마들과 혈전을 벌였던 이두식도 여기저기 잔부상을 입었다.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건 신소율 정도였다.
그러나 지휘관들의 상태는 일반 병사들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역시 개개인의 전투력이 뒤떨어지는 일반 병사들이었으니까.
노구덕 군단의 총병력은 근위대와 신왕병을 포함한 7천에 론다리온의 정예 신도들 5천을 더한 도합 1만 2천이다. 그런데 이 레귤러에 진입한 이후에만 거의 4천에 달하는 전사자가 발생했다. 순수하게 사망자만 따져서 삼 할에 가까운 전력이 소실된 것이다.
거동이 힘들거나 전투불능인 중상자들까지 합치면 그 피해는 더욱 늘어날 터. 순수한 기쁨에 취하기엔 남은 상처가 너무 컸다. 노구덕과 소냐, 데모나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본드래곤의 머리 위에 올라탄 노구덕을 맞이하는 병사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둥! 둥! 둥!
“노구덕 폐하 만세!”
“만세-!”
“레그나토르 만세!”
“오오오오오오오!”
따로 명령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고수가 전고(戰鼓)를 울려대고, 사지가 멀쩡한 병사들은 저마다 무기와 팔을 들어 함성을 내지른다. 일어서지 못하는 부상병들조차 바닥에 누운 채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치는 중이었다.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수천의 병장기가 절도 있게 파도치는 광경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일만에 가까운 군중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발산하는 열기는 본드래곤 위에 올라탄 세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기가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꼬맹이, 너만 그런 게 아냐. 이쪽의 바보도 죽을상을 하고 있었으니까.”
멍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노구덕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못난 꼴을 보이고 말았군.”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그래. 네 말이 맞다.”
시온을 향한 험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두를 다독이고 사기를 북돋워도 모자랄 마당에 실의에 잠길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말단 병사들조차 그걸 알고 있는데, 최고 지휘관인 자신부터가 우중충한 감상에 젖어 있었다니. 참으로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를 책망한 노구덕은 성큼성큼 걸어 나와 본드래곤의 미간 중앙에 섰다. 배로 치자면 뱃머리, 열광하는 병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고도가 거의 땅에 닿을 만큼 낮아졌기 때문인지, 크게 연호하는 병사들의 면면이 더욱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수많은 시선들이 한 몸으로 모여드는 게 느껴진다. 이제, 그가 이 과분한 열기에 화답해야 할 순간이었다.
번쩍! 한 팔을 치켜든 노구덕은 하늘과 땅이 떨어 울리도록 크게 소리쳤다.
“이겼다! 우리의 승리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우렁찬 승리선언과 함께 이어진 활화산 같은 사기의 폭발.
잔열이 가라앉기도 전에 끼얹어진 기름은 병사들의 전의를 하늘 끝까지 충천하게 만들었다. 사방이 쩌렁쩌렁하도록 울리는 함성은 작게 무리지어 있던 악마들의 잔당조차 움츠러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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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율과 이두식이 지친 몸을 이끌고 부대를 수습하는 동안, 노구덕은 데모나에게 본드래곤의 지배권을 인계받았다.
“정말 수고 많았어.”
“…….”
의식을 치른 뒤, 그대로 노구덕을 향해 쓰러진 데모나는 아무 말 없이 색색 숨만 내쉬었다. 작게 열린 꽃봉오리 같은 그녀의 입술은 본드래곤의 외골격처럼 연한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기실 티를 내지 않았다 뿐이지, 본드래곤을 끌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데모나는 굉장히 지친 상태였다. 그 자존심 강한 그녀가 허물어지듯 쓰러진 채 대꾸 한마디도 못하고 숨만 몰아쉬고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최강 최악의 언데드, 본드래곤.
브레스를 뿜은 것도 아니고, 그저 움직이는데 필요한 동력만을 제공했을 뿐인데, 몸도 가누기 힘들 만큼 녹초가 되었다. 그마저도 옆에서 소냐가 증폭 마법진으로 보조해주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령술, 주술 방면에서 극에 다다른 마녀 데모나조차 다루기 버거운 괴물. 수년의 시간과 마녀회의 비전, 천문학적인 자원을 잡아먹은 놈은 그 이름값에 걸맞은 최종병기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본드래곤을 다룰 수 있는 술사라고 한다면, 역시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영력을 지닌 노구덕 외엔 없다. 애초에 본드래곤은 노구덕의 넘치는 영력을 소모할 목적으로 제작된 괴물이었으니.
“으음….”
지배권을 인계받은 순간 엄청난 양의 영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본드래곤에게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은 수만 명 분의 영혼을 홀에 집어넣어 대해와 같은 영력을 자랑하는 노구덕마저 한순간 허전함을 느낄 정도였다.
‘데모나가 정말 용한 거였군. 브리트라보다 더한 먹보가 여기 있었어.’
그래도 본드래곤의 활약 덕분에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으니 일단 본전은 건진 셈이다. 늠름한 수호신처럼 턱을 치켜든 본드래곤을 일별한 노구덕은 이내 눈을 돌려 소냐를 바라보았다.
“소냐, 너도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작은 어머님에 비하면 고생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녀석, 겸손하기는.”
그의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자, 곧게 뻗은 귀 끝이 놀란 토끼처럼 쫑긋거렸다. 최근 있었던 모종의 일 때문에 일부러 그와 거리를 두는 줄 알았더니, 막상 또 이렇게 수줍어하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그때, 후방에서 부대 정비에 들어갔던 이두식과 신소율이 나타났다.
“폐하! 중앙군과 근위대! 출진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좌군, 우군도 다시 재편했어요.”
이두식과 함께 보고를 올리는 신소율의 등 뒤엔 아직까지 그 묵색 후광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앙가슴 쪽에서 새어나오고 있는 검은 마기도 신경이 쓰였다.
“아까는 경황중이라 물어보지 못했는데, 그건 뭐냐?”
“아, 이거요? 어쩌다가 이렇게 되긴 했는데…….”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며 일어난 신소율은 자기 손등을 톡톡 치며 말했다.
“여기 있던 무릴로 아저씨 말이에요. 아무래도 자기 악마를 나한테 준 것 같아요.”
“나도 정황상 그럴 거라 짐작하긴 했다만… 어비스의 악마를 두 마리나 거느리는 게 가능하다고?”
“그게 마스테마의 완전체가 아니라 잔재에 가까운 힘이라서요. 어찌어찌 내 위리놈이 흡수한 모양이에요.”
자세히 얘기하자면 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었지만, 신소율은 대강 뭉뚱그리는 식으로 설명을 마무리했다. 안 그래도 피곤해 보이는 노구덕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기 싫었던 탓이다. 모든 일이 좋게 마무리된 마당에 괜히 천인혈을 꺼내느라 자기 손으로 가슴팍을 찔렀다는 살벌한 얘기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휴… 내가 생각해도 무식한 방법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통해서 다행이었어.’
눈앞이 아찔했던 당시를 떠올린 신소율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냐?”
“그럼요. 헤헤.”
입매를 씰룩거리며 수상한 웃음을 내보이는 꼴이 뭔가 숨기는 것 같은 눈치였으나, 노구덕은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지금은 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좋아. 이제부터 시온까지 전속력으로 진군한다. 소율이 네가 부리는 악마들을 선봉으로 세워라.”
“음, 총알받이로 세우는 건 나쁘지 않지만요. 체계적인 전투까지 시키는 건 무리예요. 이게 진짜배기 능력이 아니다보니 한계가 좀 있어서요….”
“그거면 된다. 길은 내가…… 아니지, 저놈이 뚫어줄 테니까.”
본드래곤. 길게 뻗어진 노구덕의 손끝은 위풍당당히 머리를 끄덕이는 백색의 거룡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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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래곤을 앞세운 노구덕 군단은 무사히 레귤러 지역을 돌파했다. 협곡을 빠져나오는 동안 전투다운 전투 한번 치르지 않은 덕분에, 이전의 배가 넘는 속도로 행군하면서도 사상자는 겨우 수십에 불과했다.
물론 도중에 몇 번이나 무리를 지은 카름들의 습격이 있었다. 대개는 협곡에 서식하는 용종 카름과, 혼돈의 늪에서 몰려온 것으로 보이는 부정형의 괴물들이었다.
그러나 프라임리그 레벨을 상회하는 그 막강한 카름들도, 노구덕의 영력을 잡아먹고 진면목을 드러낸 본드래곤 앞에선 피라미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저승의 냉기를 머금은 본드래곤의 브레스에 떼로 몰살당하는 카름들의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동정심이 절로 일 정도였다.
대신, 반나절 내내 쉬지 않고 본드래곤을 사용한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절대로 마르지 않을 것만 같았던 노구덕의 영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그 여파로 극심한 정신적 피로감에 휩싸인 노구덕은 결국 본드래곤의 소환을 해제해야만 했다.
그의 분투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험지로 둘러싸인 레귤러 지역을 벗어나, 끊어진 대로의 흔적을 발견한 노구덕 군단은 부상에서 회복한 임유진과 신소율, 이두식의 지휘를 받아 그 뒤로 별다른 피해 없이 목적지에 도달했다.
현신한 마왕이 웅크리고 있는 마도(魔都), 시온에.
“아저씨! 시온이에요!”
“드디어 도착했구나.”
“생각보다는 멀쩡한 모습이군요.”
“네. 발레기우스가 옥좌에 앉은 도시치고는요. 그런데…….”
돌연 임유진의 말끝이 흐려졌다.
“…시온에 도착한 건, 저희가 가장 마지막인 것 같네요.”
과거에는 중부 왕국 시온의 수도로서 모진 풍파를 견뎌냈고, 가까운 수백 년 동안에는 반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위원회의 심장으로서 기능했던 시온.
천년의 관록이 담긴 장엄한 방벽을 내세운 대도시 시온은 갖가지 군기를 내건 군대에 의해 사방이 포위된 상태였다.
“푸른 바탕에 승천하는 용의 깃발… 북부동맹의 청룡왕이 온 것 같습니다.”
“저 녹색 군기는 북부연합이네요.”
“저 황금 사자 문양… 리베르타 녀석들도 도착한 모양이네.”
소냐와 임유진, 데모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신소율은 가당찮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잠깐만! 말이 안 되잖아! 우리가 그 죽을 고생을 하면서 겨우 도착했는데, 리베르타는 몰라도 북부의 군대가 어떻게 여기까지 와?”
“그쪽 방향은 길이 뚫려 있었을 수도 있지. 저들은 얼마가 모이든 발레기우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할 테니까.”
확실히 북부지역의 군대는 그 규모가 상당히 적어보였다. 최대한 많이 잡아봐야 양 군을 합해서 2, 3천 정도. 오리지널을 익혔거나 괴질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들을 선별하다보니 필연적으로 소규모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우선은 진을 치도록 하자.”
“그래요. 당신도 조금쯤 쉬셔야 할 것 같으니…….”
“쉬는 건 나중에. 지금은 날 보고 싶어 하는 녀석이 있는 것 같아.”
저 멀리 반대편에 포진한 리베르타의 진영에서, 사자의 깃발을 멘 전령 한 기가 바쁘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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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이제 라스트 보스와 히든 보스, 그리고 이런 저런 보스들이 남았군요.
다음화는 12시 즈음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왜이리들다재밌지 / 제가 악마라니요.. ㅠㅠ
에소르딘 / 다른 대륙으로 가려면 시스템이 작살나야 하는데, 정작 주인공은 시스템을 존속시키길 원해서..
은신설야 / 제가 항상 감사하는거 아시죠? 감기 조심하세요!
MokuMoku / 잘 봐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Guaaaaak / 오래 준비한 만큼 보람이 있네요 ㅎㅎ
알테가르 / 자주 연참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ㅠㅠ
못난리자 / 몸 챙기세요. 저도 요즘 수면이 부족하네요.. 다음화는 저녁에 올라갈 예정입니다!
무협소설광 / 명색이 라스트보스인데 이 정도는 해 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