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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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혈로(血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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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악!”
가슴이 길게 갈라진 사내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죽음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사내의 얼굴엔 원망스런 빛이 가득했다.
“왜, 왜…….”
“…….”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한 사내가 풀썩 나자빠졌다. 숨이 끊어진 사내의 육신에서 흘러나온 뜨끈한 피가 차가운 흙바닥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이 구역의 마지막 생존자를 직접 베어버린 임유진의 표정은 착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생존자들로 보이는 시체들이 수십 구가 넘게 널려 잇었다. 모두 그녀의 손에 죽임을 당한 이들이었다.
“부사령관님, 이쪽 구역은 정리가 끝났습니다.”
“…좋아요. 본대로 돌아가죠.”
“예!”
짐짓 힘차게 군례를 취하는 부관의 표정도 썩 밝지 못하긴 매한가지.
잠시 후, 임유진의 주위로 사방에 흩어져 있던 부대원들이 모여들었다. 주변의 생존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그녀가 끌고 나온 백 명의 정찰 부대다.
이 남서쪽 시가지에서 임유진과 그녀의 부대가 직접 처단한 생존자들의 숫자는 정확히 327명. 지금쯤 다른 지휘관들이 끌고 나간 병력들도 비슷한 학살을 벌이는 중이란 걸 생각하면, 단시간에 수천에 이르는 시민들이 죽임을 당한 셈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기껏 시온에 진입한 동맹군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시민들을 색출하여 잡아 죽이는 것이라니.
천인공노(天人共怒). 전쟁이란 특수 상황을 감안해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명령을 내리는 자나 명령을 받는 자나 하나 같이 얼굴에 먹구름이 낀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지시대로 살육을 자행했다. 이건 노구덕이 직접 내린 명령이기도 하거니와, 그 지시에는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유지용 부관, 그쪽 생존자들도… 전부 같은 증상을 보이던가요?”
“예. 모두 조금씩이지만… 내부 장기에서 변이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임유진의 낯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설마 했던 노구덕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하아….”
“폐하께선 현명한 결단을 내리신 겁니다.”
“네, 최선의 판단이죠. 하지만…… 다른 지휘관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어요.”
노구덕은 분명 냉철한 결단을 내렸다. 레그나토르의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모두 그의 명령을 납득하고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동맹군의 지휘관들도 뜻을 같이 할까?
대전을 앞두고 싸우기도 전에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것. 임유진이 가장 염려하는 점은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노구덕은 이렇게까지 무리한 명령을 내린 것일까?
발단은 약 한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시온에 입성한 노구덕은 그간 단절되어 있던 시온의 내부사정을 청취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유라와 아가레스트, 퀸젤과 접선했다.
그중 가장 오랜 기간 시온에 머무르며 정보를 수집했던 하유라는 시온이 어떻게 망가져갔는지 최대한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었다. 진입 이전부터 발레기우스의 의도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던 노구덕은 그녀가 전하는 정보에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폭동에 무력탄압, 대혼란이 일어났다고… 그게 전부라면 아직까지 생존자들이 있겠군?’
‘그럴 거다. 시온은 대륙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니… 아직까지 살아남은 자들만 해도 수만 명은 될 테지.’
‘놈은 어째서 그들을 살려둔 거지? 굳이 손댈 필요를 못 느낀 건가?’
‘꼭 내가 죽길 바랐던 것처럼 들리는군.’
‘으음, 그건 아니지만…….’
‘네 말처럼 손댈 필요를 못 느낀 것일 수도 있겠지. 절대자가 된 놈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민들이나 헌터들이나 꿈틀대는 개미떼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건 제물이다. 마르타를 제물로 바쳐 융펠을 소환했던 것처럼, 같은 수법을 쓸 수도 있다. 우르슬라가 없더라도 놈에겐 아직 마녀가 하나 더 남아 있으니 가능성은 있다. 그도 아니면, 생존자들을 이용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일지도. …그러고 보니 최근 생존자들의 상태가 마음에 걸리는군.’
‘뭔가 이상한 거라도 발견한 거냐?’
‘글쎄.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생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 보이는 놈들은 전부 시체 같은 놈들뿐이다. 공포에 먹혀버린 건지, 자포자기한 건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만.’
‘시체? ……설마!’
하유라와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무슨 생각이 스쳤던 것인지, 바로 면담을 중단한 노구덕은 지휘관들을 소집하는 한편, 광장에 모여 있던 병력을 풀어 광장 인근의 생존자들을 색출했다.
그렇게 억지로 끌려 나온 생존자들이 삼십여 명. 시체를 보는 것 같다는 하유라의 말처럼 생존자들 대부분은 허수아비처럼 고분고분했다. 정상이라면 방벽이 깨진 그 순간 도시 밖으로 나가겠다고 아우성쳐야 할 판인데,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그들의 얼굴에선 그럴 의지도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중엔 억지로 끌려 나온 반발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동맹군을 향해 격렬한 적의를 드러내는 자들도 있었다. 다만 단지 반발심이라 보기엔 저항이 너무 심했다. 이빨로 병사들의 팔을 물어뜯고 게거품을 물었을 정도니까. 솔직히 말하면 사람이 아니라 미친개처럼 보였다.
그 남자 때문에 대열에서 소란이 일자, 노구덕이 직접 나섰다.
성큼성큼 단상에서 내려온 노구덕은 마구 고함치며 날뛰는 남자를 단숨에 두 동강 내버렸다. 미처 누군가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잠시 사내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노구덕은 이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그 옆에서 어물쩡대던 여자의 허리까지 반으로 토막을 냈다. 그녀는 지금껏 광견처럼 날뛰던 남자와는 다르게 지금껏 고분고분 병사들의 통제에 따르던 여인이었다.
노구덕의 그 잔인무도한 행동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하나 그것도 잠깐뿐.
급히 그를 만류하러 뛰어가던 임유진, 눈 뜬 장님처럼 멍해 있던 병사들…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모두의 머릿속은, 두 시체를 뒤적거리던 노구덕의 들어 보인 두 손을 보는 순간 그대로 정지해버렸다.
‘모두 이걸 봐라.’
노구덕이 머리 위로 쳐든 두 개의 손.
피에 절은 양손은 각기 남자와 여자의 시체에서 꺼낸 것으로 보이는 장기 쪼가리가 들려 있었다.
선홍색의 핏물은 머금은 그 살덩이들은 절대 정상이라 보기 어려웠다. 남자와 여자 모두 장기 일부가 검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심장일 것이라 짐작되는 남자의 장기는 그 정도가 심해서, 멀리서 보면 마치 반질반질한 흑요석 덩어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생존자들의 내부 장기가 보인 결정화(結晶化)……. 그건 마치 카름의 핵을 보는 듯했다. 그냥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그 형태와 모양, 윤기까지 아주 판에 박은 듯 흡사했던 것이다.
병사건 간부들이건 그들의 절대 다수는 본래 헌터 출신이다. 숱한 카름들을 사냥하는 걸 업으로 삼아왔던 그들이 그 부산물을 잘못 볼 리는 없다.
뜻밖의 사태에 모두가 얼이 빠져버린 현장.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생존자들의 장기를 높이 쳐든 노구덕은, 그 자리에서 완고하게 선언했다.
생존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카름이며, 이미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따라서, 지금부터 동맹군은 생존자들을 적으로 간주한다. 다른 부대가 집결하는 동안, 아군은 주변의 생존자들을 색출하여 제거하라.’
이것이 한 시간 동안 벌어진 학살극의 전모였다.
“…유 부관은 카름으로 변이한 인간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걸 본적이 있나요?”
“그야… 없습니다. 그런 전례는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요.”
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용의 말은 그야말로 상식이다. 카름으로 변한 인간이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면, 데모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가까운 사례가 있다면, 카름의 핵을 체내에 이식하여 후천적인 카름화를 이루는 노구덕 정도인데… 그를 애초에 일반인과 비교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일뿐더러, 그조차도 시술을 담당한 데모나가 여러 차례 경고를 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이 완전히 카름이 된 건 아냐. 발레기우스를 처치하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르고…. 그들 모두를 죽이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현재까지 완치된 전례가 없는 암세포가 있다고 하자. 그 암세포에 감염된 사람은 서서히 몸을 잠식당하다, 종래엔 이성이 없는 괴물로 변하고 만다. 그러나 완전히 괴물로 변하기 전까지는 이성도 있으며, 감정도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을 모조리 표적으로 삼아 사냥하는 건… 생각의 여지가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태평하게 고민을 할 만큼 시간이 많지가 않았다. 이 전쟁은 노구덕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뒤가 없는 싸움이고, 승부에서 지면 모든 걸 잃어버리는 최후의 도박이었다. 그런 만큼, 배후에 조금이라도 변수를 남겨두지 않으려는 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임유진은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이미 결정권을 전적으로 노구덕에게 맡겼다. 지금은 뭐가 됐든 남편을 믿고 따르는 게 맞았다.
“이건 성문 쪽에 있는 동료에게 들은 얘기입니다만, 생존자들은 모두 시온 밖으로 나가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세뇌라도 된 걸까요? 시온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그들은 정상이 아닙니다.”
‘서리여왕 일행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그쪽 일행엔 원주민인 아델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임무를 다한 하유라와 아델이 무사히 시온 밖으로 나갔다는 걸 들어보면, 그쪽은 ‘카름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추측되는 이유야 많았다. 신기를 가진 아가레스트나 퀸젤, 하유라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고, 늘 외곽 쪽에 머문 덕을 봤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무사하다면 그걸로 된 거긴 했지만.
“부사령관님, 다른 부대가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
슬슬 가까워지는 광장의 모습을 직시하며 천천히 대꾸하던 임유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본대가 있는 중앙 광장에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던 탓이다.
“폐하, 얘기 들었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지시엔 따를 수가 없겠네요.”
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는 북부연합 강옥교의 것이고,
“얼토당토않은 명령 아닌가! 수만이 넘는 시민들을 모두 죽이라니! 역사에 대체 얼마나 큰 오명을 남길 셈이오?”
끓는 기름처럼 펄펄 화를 내는 목소리는 청룡왕 이정의 것이다. 그리고….
“리베르타는 그 명령에 따르지 않겠습니다.”
맑은 찻물처럼 담백한 이 음성은 검신 김정인이었다. 동맹군의 주축을 이루는 오대 세력 가운데, 소드챈트리를 제외한 나머지 삼 세력이 모두 정면으로 불복의 뜻을 내비친 것이다. 그나마 소드챈트리도 찬성 쪽이 아니라 보류에 가까워 보였다.
‘역시…….’
결국 그녀가 염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다정다감한 강옥교의 성격상 학살을 벌이라는 명령을 걸고넘어지는 건 당연했고, 그건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김정인 쪽도 마찬가지다. 성정이 불 같은 청룡왕도 제대로 된 설득 없이는 따르지 않을 게 뻔했다.
마음이 급해진 임유진은 나란히 가던 부관에게 부대 통솔을 맡기고는 다급히 말을 몰아 광장 중앙으로 향했다.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노구덕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폭발을 일으킬 것처럼 무섭게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불안한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차가운 무쇠처럼 서늘한 표정을 한 노구덕은 잔뜩 비틀어진 입술을 열었다.
“애새끼 같은 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군. 너희들은 전쟁을 치르러 온 거냐, 아니면 전쟁놀이를 하러 온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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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걸 보니 제대로 가을 정취가 나네요.
새벽엔 비가 온다고 하던데…
너무 춥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