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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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혈로(血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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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이 일으킨 파장은 광장 밖의 전장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선두에서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던 임유진은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 휙휙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힌 채였다.
“소율아, 방금 뭐였지?”
“나도 모르겠어요. 뭔가 오싹한 게 스치긴 했는데…….”
진득한 혈향을 풀풀 풍기며 그녀의 옆에 내려서는 신소율의 표정도 심상치 않기는 마찬가지.
별다른 이상징후를 감지하지 못한 임유진과 신소율은 다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일분일초가 다르게 흘러가는 전황 속에서, 오래도록 딴 곳에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던 것이다.
“부사령관님! 전방입니다! 전위대의 대열이 무너졌습니다!”
“제가 가겠어요! 근위대장! 지원을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백색 불꽃을 갑주처럼 두른 임유진이 전방으로 질주하자, 그 앞에서 어기적거리던 카름들이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그리고 그 뒤를 수십의 병사들을 거느린 이두식이 뒤따랐다.
“죽이고 말거야! 죽이고 만다고!”
“크캬캬캬캬캬캬!”
한순간 백여 마리에 달하는 카름들이 산화했지만, 악다구니를 쓰는 카름들의 괴성은 여전했다. 심지어 임유진이 애써 뚫어 공백이 다시 우글거리는 카름들로 채워지는 데에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수만의 시민들이 변이한 카름들의 숫자는 백여 명 따위는 별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그 공백의 순간을 노려 이두식의 부대가 간신히 비좁은 길을 사수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임유진과 전방 부대는 꼼짝없이 고립되고 말았을 터였다.
“끼아아아!”
“윽!”
퍽! 손톱을 세우며 달려들던 카름의 머리가 기형적으로 돌아갔다. 핸드실드를 휘둘러 끈덕지게 달라붙던 카름을 떨쳐낸 이두식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의 팔뚝엔 좀 전의 여성 카름이 남긴 밭고랑 같은 자국이 나 있었다.
카름이라곤 하지만 그 모습은 생전 그대로인 인간의 형상이다. 거기에 신체능력이 다소 상승하고, 맹목적인 살기와 광기가 더해졌을 뿐이다. 그 수준은 높게 쳐봐야 좀비보다 조금 강한 정도.
그 정도 괴물의 손톱에 라이칸스로프의 강인한 피부가 이토록 깊은 상처를 입다니. 예전이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현재의 이두식이 약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건 비단 이두식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상비용 붕대로 대충 상처를 싸매려던 이두식은 근처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비명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가 대동한 근위대원 하나가 카름 세 마리의 합공에 몰려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석아!”
붕대를 내던지고 달려간 이두식은 그대로 육탄 돌격을 감행하여 부하를 둘러싼 세 마리의 카름을 벌렁 자빠지게 만들었다.
“괜찮으냐?”
“예, 예! 죄송합니다!”
괜찮지 않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부하의 얼굴은 언제 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안색이 거무스름했다. 헉헉 몰아쉬는 숨은 식도 밑까지 차올랐고,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나는 게 보일 정도다.
무리도 아니다. 근위대 최고의 체력을 지닌 이두식 자신마저도 눈앞이 아찔할 정도였으니, 다른 수하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이 전장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지속적으로 아군의 기력을 빼앗고 있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불사의 군대. 그에 비해 한시가 다르게 힘이 떨어져가는 동맹군.
승부의 저울이 서서히 전자로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절대 질 수는 없다.’
칼립스에 두고 온 소중한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스친다. 어린 자식들을 끌어안고 방 안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나타샤의 얼굴도 보였다.
‘누님은 무신론자라고 했었는데…… 거짓말이었나?’
힘없이 입매를 터뜨린 이두식은 뿌옇게 흐려진 눈가를 재빨리 훔쳐냈다. 이것이 단순한 환상인지, 아니면 죽을 때가 임박하여 나타난다는 주마등인지는 몰라도, 이 생사의 기로에서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을 다시 본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우아아아압–!”
천둥이 치는 듯한 기합성을 내지른 이두식은 등 뒤의 방패를 앞세워 무턱대고 달려드는 카름의 무리를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수십 마리가 넘게 몰린 카름 무리가 조금씩 조금씩 아우성치며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실로 중전차의 위력이요, 만부부당의 괴력이다. 한계를 초월한 힘을 내는 이두식의 선전은 힘겹게 싸우던 수하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대, 대장…?”
“공간을 확보한다! 처치하는 건 의미가 없다! 방패로 벽을 만들어서 밀어내라!”
“……!”
“훈련 때를 떠올려라! 하던 대로 하면 살 수 있어! 벌써들 지친 거냐!”
“아닙니다!”
다 죽어가던 근위대원들에게 악이 깃들었다. 등에 지고 있던 방패를 꺼내든 근위대는 좌우 양쪽으로 굳건한 방패벽을 만들었다. 아다만티움 합금으로 만들어진 방패를 내세운 병사들은 서로 어깨를 밀착한 채로 일제히 길을 열기 시작했다.
이두식과 근위대가 필사의 각오로 만들어낸 공간. 그건 최전방에 고립되어 있던 전위대에 한 줄기 빛이 되었다.
“고마워요! 어서 부상자들을 후송하세요! 나머지는 저와 함께 근위대를 엄호합니다!”
일단의 병사들을 붙여 중상자들을 후송시킨 임유진의 비취빛 동공이 매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마침, 동료들을 발판 삼아 올라온 카름들이 방패의 벽을 넘어서려던 참이었다.
화르르륵! 초열을 발하는 불꽃이 방패벽을 넘어오는 카름들을 불살랐다. 그녀의 뒤를 따라 무사히 퇴로로 진입한 전위대 병사들도 칼과 창을 휘둘러 위쪽으로 접근해 오는 카름들을 저지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힘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었고, 소모도 빨랐다. 반면 적들은 정말 끝이 없었다.
결국, 사단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었다.
“으아아악!”
비명이 울린 방향으로 홱 돌아간 임유진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근위대의 방패벽이 뚫린 게 아니었다. 복병은 땅 속에 숨어 있었다. 퇴로 안쪽의 지면에서 튀어나온 무수한 손이 바깥에만 신경을 쏟고 있던 근위대 병사의 발목을 잡아 넘어뜨린 것이다.
하필 방패를 배로 깔고 넘어졌으니, 뒤집혀 배를 노출한 거북이와 다를 게 없다. 사색이 된 병사는 급히 대열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흐아아…! 사, 살려줘어어어!”
미처 구할 새도 없었다. 뒤에서 밀려 방패를 깔고 넘어진 병사는 아귀처럼 달려든 카름들에게 덮쳐져 산 채로 잡아먹히고 말았다.
이두식의 근위대는 눈앞에서 동료가 처참한 최후를 맞았음에도 피눈물을 삼키며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밑바닥에서부터 갑작스레 출몰한 카름들이 방패벽의 배후를 노리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카름에게 끌려가는 병사를 뒤로 잡아끌어 구해낸 이두식은 피를 토하듯이 소리쳤다.
“길을 닫아라! 진형을 유지하면서 뒤로 물러나라!”
양 방향으로 늘어선 방패벽이 하나로 합쳐지며 썰물처럼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질서정연한 근위대의 군진도 땅 속에서 불쑥 불쑥 치솟는 손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카름들이 두더지처럼 지면을 뚫고 튀어나올 때면, 어김없이 근처의 병사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지면에서 출몰한 카름들이 병사들의 간격을 벌려놓고, 안에서 싸움을 유발하면서 전투는 자연스럽게 난전으로 치달았다.
곳곳에서 쓰러진 병사들의 비명이 울릴수록 임유진의 일그러진 표정은 초조함을 더해갔다. 개방된 시가지에서 죽지 않는 수만의 적병들과 치고받는 난전이라니. 이거야말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최전방을 사수하는 근위대 병력의 상당수가 보이지 않았다. 자칫하면 여기서 전멸을 당할 수도 있었다.
‘절대 그렇게 둘 순 없어.’
여기서 1군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게 되면 그 파장은 다른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레그나토르 군 전체로 번지게 된다. 그러면 신소율, 소냐 등이 이끄는 타 부대도 연달아 지리멸렬하게 될 터.
차라리 자신이 위험에 처했으면 처했지, 그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탈진을 각오한 임유진은 전신에 깃든 성화의 힘을 양 손에 응축시켰다. 일거에 후방을 날려버려 어떻게든 퇴로를 확보하겠단 생각이었다.
“원군이다!”
‘원군?’
힘을 모으는데 집중하던 임유진의 머리가 퍼뜩 위로 올라갔다.
후방에서부터 거센 함성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걸리적거리는 카름들을 해치우며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그들은 틀림없는 아군 부대였다.
위엄있게 펄럭이는 황금 사자의 군기를 앞세운 부대. 리베르타의 정예군이 나타난 것이다. 그 선두의 지휘관은 그녀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희지야!”
“길은 확보했어요! 서둘러 후퇴하세요!”
크게 외친 윤희지는 오른손에 쥔 신기, ‘대지의 분노’를 휘둘러 전방의 땅거죽을 통째로 뒤엎었다. 그 바람에 어기적어기적 다가오던 카름들이 대지의 너울에 휩쓸려 떼로 생매장을 당했다.
기사회생으로 구원받은 임유진은 이두식과 함께 남은 병력을 독려하여 윤희지의 부대와 합류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아뇨. 저희야말로… 더 빨리 도착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감사를 표하는 임유진의 태도가 부담스러워진 윤희지는 살짝 목례를 한 뒤 시선을 돌렸다. 고마워하는 임유진을 제대로 볼 면목이 서지 않았던 탓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였지만 리베르타를 비롯한 타 세력의 부대는 본의 아니게 늑장을 부리다 참전하게 된 셈이었으니… 오히려 고군분투하며 지금까지 광장 진입로를 지켜낸 레그나토르 측이 역정을 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퇴각하여 들어오는 레그나토르 군의 상태를 보니, 피해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윤희지는 그런 그들의 몰골을 감히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그들의 처참한 행색이 꼭 자기들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앞서 밖에 있던 레그나토르가 빠르게 대응에 나선 덕분에 각 방위의 진입로를 제대로 틀어막을 수 있었다. 만약 레그나토르가 군을 나누어 전 방위의 길목을 차단하지 않았다면, 사방으로 포위된 동맹군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을 것이다.
‘또… 빚을 지고 말았어.’
“리베르타를 대신해 감사드려요. 이쪽은 저희가 맡을 테니, 당분간은 군을 정비해 주시길 바라요.”
“응. 그래야겠지. 다른 곳은?”
“전 방향으로 원군을 보냈어요. 아마 이곳과 비슷한 상황일 테죠.”
“그래… 안쪽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니? 그이는?”
“그게…….”
이어진 윤희지의 설명은 갑작스레 들려온 굉음에 의해 흔적도 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쿠르르르릉—!
“무슨 소리지?”
“아…….”
“언니?”
고막이 찢길 듯한 굉음에 절로 이맛살을 찌푸린 윤희지는 비스듬히 머리를 기울였다. 어딘가 먼 곳을 멍하니 응시하는 임유진의 표정이 어쩐지 이상했다. 뭔가에 놀라 얼이 빠진 사람 같았다.
“왜 그러세…… 헉!”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자연히 고개를 돌린 윤희지의 얼굴이 뻣뻣해졌다. 찢어질 듯 부릅떠진 그녀의 동공 속엔 도저히 일어나선 아 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간신히 경악성을 억누른 윤희지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서, 성벽이 일어나고 있어…?”
비현실적인 말이지만, 그녀의 말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가감 없이 묘사한 그대로였다.
시온을 둘러싼 거대한 외성벽. 대륙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거대한 장벽이 천천히 기지개를 켜듯 일어나고 있었다. 외곽과는 거리도 있는 데다, 시온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먼지 구름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 갈래로 나뉘어 치켜 올라가는 그것은 마치…… 손바닥을 편 거대한 사람의 손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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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잠깐만 눈 붙이고 올린다는 게 조금 늦잠을 자버렸네요. 이따가 또 한 편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