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91)
0091 / 0777 ———————————————-
21# 내면의 그림자
이번 화는 작품 후기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1# 내면의 그림자
아이리스에 김진솔이 합류한지도 한 달이 지났다. 당초 그 내성적인 성격 탓에 클럽 멤버들과 거리감을 두지 않을까 염려를 자아내던 김진솔이었으나, 그는 비교적 이른 시간 내에 대부분의 멤버들과 친분을 쌓으며 클럽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멤버뿐 아니라 새로운 ‘분대’, 즉 전 벤젼스 소속 노예들로 구성된 2군도 제 역할을 잘 수행하는 중이었다. 현재 아이리스의 리그 순위는 8위였지만, 일각에서는 시즌 말미가 되면 아이리스가 현재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는 클럽들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설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상도 나오고 있었다.
-아이리스, 크래들타운의 패자(霸者)로 올라서다.
-……그간 클럽 아이리스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되던 것은 빈약한 스쿼드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다. 아이리스는 벤젼스와의 합병이라는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그 약점마저 극복해냈다. 그리고 현재, 든든한 2군과 3군 백업멤버들을 확보한 아이리스에 맞설만한 대항마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리스의 1군은 이번 탐사지인 S등급 유바투스의 성지를 92%의 달성률로 클리어함으로써, 사실상 탈(脫) 스몰리그의 전력임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유바투스의 성지는 현 리그에서 선두권을 수성하고 있는 네 개의 클럽들도 고전을 면치 못한 고난이도의 레귤러다. 기존에 가장 높은 달성률을 기록한 건 아머 타이탄즈의 28%였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벤젼스의 달성률은 35%. 이번 아이리스의 탐사대가 기존 1군인 신소율 헌터가 부상으로 빠지고 3군 보결 멤버가 참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성과는 더욱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탄탄하고 풍족한 재정, 노련한 2군과 3군, 무엇보다 리그 최강을 자랑하는 1군이 조화된 아이리스에게 있어 현재 8위라는 리그 순위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아마도 시즌이 끝날 즈음에는 확실하게 리그 1위에 등극하여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이다. 만약 아이리스가 미들리그 승격을 위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면, 타 소도시의 1위 클럽들과 치열한 티켓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
-지금 플레이오프에 대한 말을 꺼내는 건 한창 순위경쟁을 하고 있는 클럽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아이리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것이 클럽들이나 도시 차원에서 여러모로 이상적인 상황이라 생각한다. 크래들타운의 시민으로서 아이리스의 선전을 기원하는 바다.
탁.
노구덕은 읽고 있던 신문을 접어 업무용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에 탐사를 다녀온 곳이 ‘고블린의 네 번째 부락’이었지? 달성률이 99%라고?”
“예, 예. 그렇습니다.”
십 분 전부터 그 앞에 서서 눈치를 보고 있던 장정민은 황망하게 대답했다. 노구덕은 그가 제출한 탐사 보고서를 눈여겨보다가 무언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지 까칠까칠한 턱을 긁적였다.
“고블린 부락은 C등급의 레귤러지. 어디 보자, 너희들이 벤젼스 소속으로 이곳을 탐사했을 때의 달성률이 98%였지?”
“그… 그랬지요.”
레드 고르곤이 벤젼스로 바뀌며 부침을 거듭하는 와중에서도 1군 리더 자리를 한시도 놓친 적이 없던, 아이리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명실공히 크래들타운 최고의 헌터로 평가받던 장정민이다. 그런 그가 주스트에서 꼴사납게 고춧가루나 뿌려대던 노구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분명 주스트 당시만 해도 노구덕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차이는 돌멩이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 두 사람의 입장은 완전히 뒤바뀐 상태였다.
이제는 장정민도 안다. 지금의 노구덕은 그가 전력을 다하더라도 필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무지막지한 힘을 자랑하던 해럴드를 완력으로 눌러버렸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니들 지금 태업하는 거냐?”
질책이 섞인 날카로운 음성에, 퍼뜩 정신을 차린 장정민은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태, 태업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내가 98%보다 적게 나오면 가만 놔두지 않는다고 했지?”
“예에. 분명…….”
뒷말을 삼킨 장정민은 억울한 심정이었다. 그들의 탐사 달성률은 99%. 지시대로 98%보다 높은 달성률을 받아왔건만, 뭐가 저리도 마뜩찮다는 말인가.
“염병. 99%를 받아 올 거면 차라리 원래대로 98%를 받던가. 100%도 아니고 애매하게 99%가 뭐냐? 이거, 고블린 한 마리 차이 아니야?”
“두세 마리 정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잘 알고 있군. 그러니까 태업한 거잖아. 이번에 100% 찍으면 다음에도 100% 찍어 오라고 할까봐, 일부러 98%~99% 선에서 적절하게 멈춘 것 아니냐고.”
찔끔! 장정민의 사내다운 굵은 눈썹이 확연하게 흔들렸다.
“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아니면 아닌 거지, 시끄럽게 소리는 왜 질러? 뭐 찔리는 거라도 있나?”
“아닙니다!”
여전히 뻣뻣한 화답. 노구덕은 피식 웃으며 문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알았으니까 나가봐. 수고했고, 장비 수리비나 부상 치료로 빠진 돈은 따로 영수증 떼서 유진이에게 가지고 가.”
“예! 알겠습니다!”
이등병처럼 빠릿빠릿하게 외친 장정민은 방을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각이 잡혀 있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자신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상대의 면전이라면, 누구라도 저런 태도를 보일 터였다.
보고를 마친 장정민이 나간 뒤, 찌뿌드드한 몸을 깨우기 위해 앉은 채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던 노구덕의 머리에 갑자기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쯧. 2군 녀석들도 파티에 오라고 할 걸 그랬나. …아니, 아니야. 아직은 풀어줄 수 없지.”
노구덕은 금방 마음을 바꿨다. 지금은 장정민 예하 2군, 3군 노예들에게 채찍질을 가할 때지, 아직 당근을 주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좋게 대해주다 보면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지고, 나중에는 기어오르는 게 사람이었다. 아직은 그 목줄을 단단히 붙잡아 둘 필요가 있었다.
2, 3군 멤버들은 아이리스 라인에 머물지 않고, 벤젼스의 클럽 홀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위화감이 조성되리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음. 이만 나도 내려가 볼까.”
노구덕은 잡다한 서류를 테이블 한 구석으로 몰아놓고 일어섰다. 간간이 깔깔대는 말소리와 어수선한 소음이 들리는 걸 보니, 아래층은 파티 준비에 한창인 모양이었다.
새로운 멤버도 들어왔겠다, S등급 레귤러인 유바투스의 성지를 높은 달성률로 공략했겠다, 한창 상승세를 탄 아이리스 내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성대한 파티를 열어 사기를 진작시키자는 의견이 많았다. 즉, 지금의 부산스러운 소음은 노구덕이 내부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러고 보면 김정인과 윤희지가 아이리스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파티였다.
++++++++++++++++++++++++++++++
아이리스 라인의 널따란 로비는 줄지어 늘어서 있는 테이블과, 그 위에 얹힌 다양하고 맛깔나 보이는 만찬이 가미되어 뷔페식 레스토랑 같은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각 라인마다 각종 고기류, 과일과 채소 샐러드, 디저트, 쿠키를 포함한 다과류 등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종류별로 나뉘어져 있었다. 특히 육류 코너에는 매콤한 양념에 재운 불고기부터 시작해서 훈제 삼겹살, 갈비탕 등 한국적인 향수가 물씬 풍기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한쪽에는 정갈한 제복을 차려입은 요리사들이 멋들어진 라이브 쿠킹을 선보이는 중이었는데, 요리사의 손에 들린 식칼이 화려하게 춤을 출 때마다 임유진의 손을 꼭 붙잡고 선 가희가 손뼉을 치며 감탄하는 것이 보였다.
아빠 미소를 지은 노구덕은 내심 흐뭇한 기분이었다. 가희가 저리도 신나하는 걸 보니 역시 외주를 맡긴 보람이 있었다.
“한울이라고 했나? 다음에도 또 불러야겠어.”
크래들타운을 비롯한 스퀘어 서부 지구에는 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발탁된 헌터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출신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런 출장뷔페를 제공하는 외주업체들은 필히 한식전문 요리사를 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아이리스가 부른 ‘한울’이라는 업체는 아예 사장부터가 한국 출신의 헌터였다.
노구덕이 만족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사이, 지금껏 그가 오기만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은 크게 반색했다.
“어? 형님 오셨습니까!”
“아저씨!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아빠! 빨리 와요!”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게, 어째 자신을 기다렸다기보다는 빨리 파티를 시작해 뷔페 만찬을 즐기고 싶은 것 같았다.
신소율과 가희의 귀여운 안달에, 노구덕은 걸음을 재촉하여 단상에 올랐다. 단상에 서니 그의 입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멤버들의 표정이 더욱 생생하게 보였다. 특히 신소율의 옆에 서 있는 이두식의 입에서는 벌써부터 군침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는 게, 아주 가관이었다.
어서 빨리 음식을 먹게 해달라는 무언의 성화에, 노구덕은 어색한 헛기침으로 말문을 열었다.
“크흐흠! 이거야 원. 이렇게 티를 낼 거면 뭣 하러 날 기다린 거야? 그냥 먼저들 먹을 것이지.”
“우우우! 본론만 간단히 해주세요! 배고파 죽겠다고요!”
“서론이 너무 깁니다!”
서론이 길기는. 얘기한 지 몇 초나 됐다고. 속으로 투덜거린 노구덕은 머리를 절레절레 좌우로 흔들었다.
“아주 나가라고 굿을 해라, 굿을 해. 아무튼… 다들 탐사 다녀오느라 수고했고, 소율이도 재활 열심히 해서 빠른 시간에 컨디션 회복한 거 축하한다. 그리고 우리 뉴페이스 진솔이는 다시 한 번 환영하고! 오늘 이 자리를 기해서 서로 묵은 감정이 있다면 깨끗이 털어 버리고, 아직 사이가 어색한 친구들은 보다 가까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즐기도록 해라. 이상 끝.”
“우오오오옷!”
“사랑해요!”
“먹자아!”
옹기종기 모여 있던 사람들은 노구덕의 말이 끝나자마자 미리 봐둔 음식이 있는 테이블로 제각기 물 만난 물고기처럼 흩어졌다. 홀로 남아 쓸쓸하게 단상에서 내려오던 노구덕은, 가희의 손을 맞잡은 임유진이 다가오는 걸 보고는 시무룩한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구덕 씨.”
“아빠!”
“오오! 그래. 우리 가족들, 뭐부터 먹을까?”
“나, 떡갈비 먹고 싶어!”
노구덕이 가족들과 행복한 식사 시간을 갖는 동안, 다른 멤버들도 저마다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테이블에 앉았다. 허문수, 권도현, 장상기는 그들끼리 앉아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였고, 신소율, 이성빈, 이두식, 김진솔은 젊은 또래끼리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개중에는 정말 의외의 조합도 보였다. 바로 소피아와 데모나였다.
견원지간처럼 서로 앙숙인 두 사람은 뜻밖에도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이 노구덕의 개회사에 깊은 감명을 받아 오늘을 기해 친교를 나눠보려고 붙어 앉은 것은 아니었다.
“하아……. 입맛 떨어지게 여긴 왜 온 거지? 저리 꺼져주면 고맙겠는데.”
“흥. 나라고 여기 있고 싶어서 온 줄 알아요? 혼자 깨작이면서 먹는 게 불쌍해서 와줬더니만.”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난 혼자가 편해. 되도 않는 오지랖은 그만 떨고 꺼져.”
“흐응. 그래요? 그러면 말을 바꾸죠. 난 혼자가 싫거든요. 그러니까 난 여기 있어야겠어요.”
“그럼 다른 테이블을 알아보지 그래? 난 네가 정말 거슬리거든.”
“미안하지만 다른 테이블도 절 거슬려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왕 거슬릴 거면 여럿보다는 한 명한테 민폐 끼치는 게 낫잖아요? 안 그래요?”
그 독설과 오만한 성격으로 사람들을 기피하게 만드는 데모나와, 뱃속에 구렁이 여덟 마리를 담아 놓은 것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소피아는 같은 멤버들조차 은연중 가까이하길 꺼려하는 존재들이었다. 데모나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소피아의 경우에는 아직도 신소율, 임유진 같은 멤버들과 찬바람이 쌩쌩 날리는 사이. 말하자면 두 사람은 아이리스 최악의 아웃사이더들인 셈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모아 놓았으니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간혹 소피아가 말을 걸긴 했지만, 그때마다 데모나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철저한 무시였다.
결국 소피아와 데모나가 앉은 테이블은 무려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말 한마디도 오가지 않는, 화기애애한 회장의 유일한 사막지대가 되었다. 그 시궁창 같은 분위기에서 풍기는 검은 오오라는 바쁘게 홀을 오가던 웨이터들마저 흠칫 돌아서게 만들 정도였다.
“후와. 잘 먹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끝끝내 배를 채운 소피아는 빵빵한 배를 두드리며 주위를 살폈다. 어느새 홀의 자리배치는 처음과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저쪽에는 노구덕, 허문수, 권도현, 장상기 등이 모여 중장년층 남성들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고, 젊은 층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는 임유진과 임가희가 가세해 있었다.
몇몇 멤버들은 꽤나 취기가 올랐는지 양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것을 본 소피아는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이번 파트는 주인공에게 있어 상당히, 아주, 많이 중요한 파트가 될 것 같습니다. 한 화 씩 올리다보면 일희일비하실 일이 많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잠깐 간이 설문조사를 하겠습니다.
하루에 한편씩 24시간 텀으로 보는 게 좋으신가요, 아니면 11시 50분, 12시 정각의 10분 간격으로 두편을 연달아 보는게 좋으신가요?(이 경우 2편이 연달아 올라가는 대신 다음 텀은 48시간이 되겠죠)
물론 이번 파트에 한해서입니다. 선택지를 드리겠습니다.
1. 지금 같은 페이스로 하루에 한편
2. 하루가 끝나기 전, 정각 이후에 2편 연달아.
중간에 분량 쌓이면 당연히 연참식으로 올라갑니다. 이 설문은 연참분량은 제외하고 여쭤보는 겁니다.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