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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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내면의 그림자
그도 성욕 충만한 남자였다.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지구에 있었을 때는 회사 일을 핑계로 아가씨들을 불러 놀았던 적도 있었고, 가족들과 연이 끊어진 후에는 쌓인 물을 빼러 오피를 이용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노구덕은 절대 한 여자만 바라보는 로맨티스트가 아니었다.
솔직히 신소율의 애정을 받아들일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스퀘어에서 그런 일은 그냥 흔한 일상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 제도상으로도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러나 그를 망설이게 한 것은 임유진 모녀의 존재였다. 한 번 가정이 무너진 일을 겪은 만큼, 그 소중함이 더없이 절실하게 다가온 것이다.
결국 노구덕이 택한 것은 가정의 안정이었다. 신소율을 받아들여 괜한 불화의 씨앗을 틔우느니, 그녀의 마음을 밀어내기로 정한 것이다.
그는 가까스로 상념을 떨쳐내며 바짝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소율이는… 소중한 클럽 멤버로 여기고 있다. 그뿐이야.”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소피아는 요염하게 피어난 장미꽃 같은 미소를 내보였다.
“아하, 그러면 신소율 씨가 딴 남자와 침대에서 뒹굴어도 별 상관없다는 말이네요? 이성빈 씨는 좋겠네~. 걱정 하나 덜어서.”
난데없는 그녀의 말에, 노구덕의 눈매가 별안간 하늘 높이 치솟았다.
“뭐라고?”
“후후. 이성빈 씨가 올라간 시간… 지나도 한참 지나지 않았나요? 지금쯤 둘이 뭘 하고 있을까나~?”
“……!”
노구덕은 번개라도 맞은 듯 벌떡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테이블 구석에 걸쳐 있던 술병이 와르르 쏟아지며 요란하게 깨져나갔지만, 그는 그 따위 것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혀, 형님!”
소피아는 다급하게 위로 올라가는 노구덕과 그 뒤를 헐레벌떡 쫓는 권도현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작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거짓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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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등잔불이 어슴푸레하게 비치는 실내, 하얀 시트로 덮인 침대 위에서 두 남녀가 엉켜 있었다. 요소요소 적당히 근육이 잡힌 사내의 구릿빛 동체는 싱싱한 활어처럼 날렵해 보였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쪽… 쪼옥… 쪽…….”
“아응… 아앗…….”
알몸 사내, 이성빈은 걸친 옷이 반쯤 흘러내린 신소율의 몸 위에 올라타 적극적인 애무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일단 내 여자로 만들면, 소율이 누나도 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인사불성이 된 신소율을 방에 데려다 놓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럴 생각까진 없었다. 이왕 이렇게 둘이 된 거, 잠깐… 아주 잠깐 동안만 저번에 못 다했던 불장난을 이어 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가랑이 사이로 짓궂게 밀어 넣은 손가락 끝에 걸친 얇은 처녀성을 확인한 순간, 그 마음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그는 이래봬도 상당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남자였다. 그런 그의 눈으로 봤을 때, 신소율처럼 보수적이고 고루한 사고방식을 지닌 여자는 첫경험의 상대를 평생 잊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남은 일은 간단하지 않은가.
‘꾹 눌러주면 돼. 그럼 되는 거야.’
이성빈은 마치 최면을 거는 것처럼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뱀 같은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의 손길이 신체의 예민한 곳을 스칠 때마다, 신소율의 붉은 입술은 야릇한 교성을 발하며 꿈틀거렸다.
“아, 아으응…….”
만취하여 의식이 혼탁해진 신소율은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그녀는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로 우두커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안으려는 듯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응?”
그녀의 앙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이성빈은 힐끔 눈을 올려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졌을 뿐, 멍한 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단순한 술주정임을 깨달은 그는 경직시켰던 몸을 풀며 다시금 그녀의 육체를 녹이는데 몰두했다.
“하아아…….”
이성이 없는 와중에도 몸의 반응은 정직했다. 불판처럼 달궈진 육체는 가출했던 의식을 점차 또렷하게 만들고 있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의식이 점차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흐릿하게 단절되어 있던 오감이 제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으응… 여긴… 어디지?’
약간이나마 의식을 되찾은 신소율은 자신의 몸이 무척 뜨거워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깔고 누운 바닥이 무척 푹신푹신하고 익숙한 걸 보니 여긴 개인실에 있는 자신의 침대가 분명했다.
거기에 가슴팍을 짓누르는 이 무게감은…….
‘누가…… 있어?’
신소율은 몸 위에 누군가 올라가 있음을 깨달았다. 시야가 아직 흐리멍덩하여 그 사람이 누군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살에 와 닿는 까칠한 피부와 탄탄한 근육의 감촉은 건장한 남성의 것이었다.
가만, 그렇다면 지금 누군지도 모를 사내와 맨살을 맞대고 있단 소리? 황당한 결론을 도출한 신소율은 찬바람을 쐰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뭐야? 너 누구야? 아으읏……!“
기겁한 그녀는 몸에 올라타고 있는 사내를 멀리 밀쳐내려고 했지만, 또렷해진 의식과는 달리 그녀의 몸은 아직도 숙취에 푹 절어있었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건 고사하고 목소리조차 튀어나오지 않았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전전긍긍하던 그녀는 별안간 감전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봉긋한 젖가슴 꼭대기로부터 피어난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걸 느낀 때문이다. 지금 그녀의 앙증맞은 젖꼭지는 사내의 우악스런 입술로 세차게 빨리는 중이었다.
‘이… 이 개자식!’
속으로는 온갖 저주와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정작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사내의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애달픈 신음이었다.
“아으… 으아앙……!”
“후후. 누나도 별 수 없는 여자네. 귀여운 소리도 낼 줄 알고.”
그 득의양양한 음성을 들은 신소율은 심장이 덜컥 멎는 것만 같았다.
‘마, 맙소사… 설마… 성빈이?’
“…성빈이?”
그녀가 속으로 삼킨 마지막 말은, 얄궂은 타이밍에 선명한 육성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실실 쪼개던 그대로 석상이 되어버린 이성빈은 느릿하게 머리를 위로 들었다. 그리하여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와 눈을 마주치자, 여느 때와 같은 쾌활한 미소를 매단 채 히죽 웃어보였다.
그러나, 신소율의 눈에 비친 그 웃음은 먹이를 눈앞에 둔 살모사가 징그럽게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깼어?”
“너… 너……!”
이제는 제대로 육성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콱 막혀버린 목구멍에서는 어떤 음성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성빈은 목이 메어 말을 못하는 신소율의 눈앞에 얼굴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러자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떠오른 잿빛 감정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배신감, 의문, 분노, 치욕스러움……. 그녀의 칠흑색 눈동자에는 그 모든 마이너스적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채 부유하고 있었다.
“왜… 왜?”
“왜냐고?”
이성빈은 짜릿하게 차오르는 정복감에 그녀의 한쪽 젖가슴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신소율은 젖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격통을 견디지 못하고 뾰족한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이런 게 좋잖아. 이 암컷 소리가 날 흥분하게 한다구.”
“이, 이러지마……. 응?”
“에이, 여기까지 와서 뭔 내숭이야? 조금만 참아. 내가 아프지 않게 해줄게. 아다는 몇 번 먹어본 적 있으니까.”
“안 돼……. 우우웁! 웁!”
이성빈은 그녀의 양 팔목을 머리 위로 교차하여 한 손으로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양손이 결박당한 신소율은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술기운이 스며든 몸으로 사내가 내리누르는 힘을 이겨낼 순 없었다.
머리맡에 있던 얇은 수건을 그녀의 입에 구겨 넣은 이성빈은 잔뜩 흥분된 얼굴이었다. 그는 다리를 사용해 그녀의 무릎에 간신히 걸려 있던 하의마저 거칠게 벗겨낸 후, 본격적으로 그 위에 몸을 실었다.
사내의 그림자가 그녀의 몸을 덮어버리자, 매끄러운 아랫배에 뜨겁고 딱딱한 살덩이가 맞닿는 게 느껴졌다. 그것이 사내의 발기한 남근임을 직감한 신소율은 두 눈을 부릅뜨고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으으으읍–!”
“아, 되게 시끄럽네. 누나, 나잇값 좀 하면 안돼요? 진짜…….”
쾅! 덥석!
눈물을 줄줄 흘리는 신소율을 앞에 두고 이죽거리던 이성빈은 채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허공에 붕 떠올랐다. 문짝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위에서 불쑥 솟아난 거대한 손이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대로 들어 올린 것이다.
“으, 으아아… 허억!”
머리가죽이 통째로 뽑혀나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성빈은 감히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입을 뻐금거렸다. 지옥의 불길을 담은 양 이글거리는 한 쌍의 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짝을 날려버리고 난입한 노구덕은 한 눈에 사태를 파악했다. 천뭉치를 입에 문 채 오열하고 있는 신소율만 봐도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했다.
철썩!
노구덕은 주저하지 않고 이성빈의 뺨따귀를 후려쳤다. 건틀렛을 미착용한 탓에 자가수혈로 발동한 충왕각인이었으나, 그 손바닥의 위력은 이성빈의 낯짝을 허물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커어어억!”
이성빈의 엉망진창으로 터진 입술에서 걸쭉한 핏물과 뒤섞인 이빨조각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뿐 아니라 광대가 움푹 깨져버린 탓에 비교적 준수했던 외모가 걸레짝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 이게…….”
“우우우…….”
뒤늦게 노구덕을 뒤쫓아 달려온 나머지 멤버들은 방 안의 참상을 목도하자 모두 할 말을 잊은 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알몸의 이성빈과 억지로 당한 기색이 역력한 신소율. 눈이 달려 있는 이상 정황은 확실했다. 클럽 홀 내에서, 헌터가 헌터를 강간할 뻔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허어. 이게 대체 뭔 날벼락인지.”
“성빈이 너, 이 자식…….”
“…….”
짧은 패닉에서 깨어난 멤버들은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권도현은 긴 탄식을 내뱉으며 눈을 감아버렸고, 이두식은 분노에 찬 눈으로 이성빈을 노려봤다. 여차하면 웨어베어로 변해서 단변에 그를 때려죽일 기세였다. 그리고 김진솔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으으으…….”
노구덕은 입가에 피를 덕지덕지 묻힌 채 신음하는 이성빈의 앞에 성큼 다가가 섰다.
“이성빈.”
낮고 침착한 음성이었으나 그 차가움 아래 깊숙한 곳에 깔려 있는 것은 활화산처럼 맹렬하게 폭발하는 분노였다. 노구덕은 지금 한주먹에 이성빈의 머리통을 부서뜨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제하고 있었다.
“이성빈. 안 들리나?”
“으윽… 드, 들립니다.”
광대 골절에 이빨이 몇 개나 깨져나간 탓에 참을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러웠지만, 이성빈은 깨진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냈다. 여기서 노구덕을 더 자극해서 반대쪽 뺨이라도 맞는 날에는 정말로 끝장이었다.
노구덕은 무릎을 꿇고 앉은 이성빈을 타오르는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지금 뭘 하려고 했던 거지? 해명할 기회를 주마.”
“그… 그게.”
“얼버무리지 말고 요점만 간단히 말해라. 1분 주겠다.”
“…큿!”
노구덕이 말을 마치는 순간, 이성빈은 번개 같이 창문을 향해 내달렸다. 어차피 글러먹은 상황. 구질구질하게 선처를 바라느니, 차라리 미리 선수를 쳐서 도주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1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퀘어에서 구를 대로 구른 노구덕이 이런 얕은 수를 예상하지 못할 리 없었다.
“어딜!”
먼저 움직인 건 이성빈이었지만, 이미 그 도주로를 예상하여 대비하고 있던 노구덕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주먹을 날렸다. 목표는 이성빈의 허리 정중앙이었다.
콰득!
“끄아아아아아악—!”
묵직한 주먹이 등허리를 깊게 파고들자, 섬뜩한 골절음이 울리며 허리가 뒤틀렸다. 다리에 힘이 쭉 빠져버린 이성빈은 꽥꽥 시끄러운 비명을 질러대며 앞으로 나뒹굴었다. 척추가 뚝 부러졌으니, 당분간은 제대로 서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운이 나빠 척수까지 다쳤다면 하반신 마비나 그에 준하는 장애가 올지도 몰랐다.
“이성빈, 방금 행위가 네 유죄를 입증했다. 너희 셋, 똑똑히 봤겠지?”
“예에…….”
“네…….”
그래도 이성빈이란 인간에게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최후의 변론마저 자기 발로 차버린 그의 행동은 마지막까지 멤버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권도현, 이두식 등의 힘없는 대답을 들은 노구덕은 어쩐지 자신까지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구나.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클럽의 사기진작을 위해 모처럼 연회를 열었던 건데, 고르고 고른 멤버들 중에 악성종양 같은 놈이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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