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who got stronger through trading RAW - chapter (24)
024 이상남(2)
“배고파요. 아, 물론 비싼 걸 바라는 건 아니에요. 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나 힘든 하루여서 그런지 고기가 땡기지만. 꼭 고기를 바라는 건 아니니 부담 갖지 마시고요.”
말 많다.
“참고로 고기 뷔페 같은 데는 제 입맛에 안 맞더라고요. 아, 물론 부담을 느껴 고기 뷔페를 피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저 입, 맛, 에 안 맞는 거니까요.”
부담된다.
“……삼겹살.”
“국산? 외국산? 아, 물론…….”
또 나온다.
아, 물론.
“국산. 국산.”
“아자!”
삼겹살 먹는다는 소리에 만세삼창을 하는 여고생이라니…….
피식 실소를 터트린 한율은 바로 한유라를 돌아봤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지막 소녀, 이유리에게 물었다.
“유리도 갈래?”
“어, 저도요?”
옆에서 킥킥 웃고 있던 이유리가 한율의 식사 제안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응. 허락이 필요하겠지만.”
이유리가 고개를 날카롭게 돌렸다. 그러자 휠체어 뒤에 서서 핸드폰 액정을 두들기던 최일현이 그런 그녀의 시선에 잠시 고민하다 다시 액정을 두들겼다.
우우웅.
“으음. 아가씨.”
“안 된대요?”
“아뇨. 30분 내로 도착한다고 하십니다.”
“……누가요? 아빠가?”
“회장님이십니다.”
“…….”
이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세희, 한유라, 한율도 마찬가지였다.
최일현은 청일그룹에 소속된 경호원이다.
당연히 그런 그가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
자신들이 관리하는 게이트에서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했다.
브레이크 현상을 잘 막았다면 어느 정도 수습이 될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레온 길드원들보다 휴식을 취하던 헌터들이, 외출을 나가든 또는 퇴근을 하든 헌터들이 먼저 몬스터를 막기 위해 움직였다.
달칵, 치이익.
“환장하겠네.”
후문으로 이동한 레온 길드 1팀 팀장, 김건우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게이트를 바라봤다.
몬스터를 어느 정도 토벌하자 레온 길드는 바로 게이트 소멸 작업을 위해 움직였다.
아직 10일이나 남았는데도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한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누가 들어갔다고?”
“마스터께서 직접 1팀을 이끌고 움직였습니다.”
“중간 확인에서 나온 결론은?”
“…….”
인상을 찌푸린 김건우가 대답하지 못하는 길드원에게 다시 물었다.
“결론은?”
“사고가 났습니다.”
“무슨 사고. 말 잘해라. 저거 D급 게이트다. C급 게이트도, B급 게이트도 아닌 D급 게이트라고.”
“……변이 사냥입니다.”
“시발.”
인재(人災).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재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콰득 깨문 김건우가 새로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동종 포식을 하지 않는 다크 울프를 상대로 동족의 사체와 마석을 강제로 흡수시키는 변이 작업을 진행했다.
“후각과 청각이 뛰어난 다크 울프니까. 반복된 변이 작업으로 인해 게이트 내부에 동족의 피 냄새가 짙어지고, 동족의 비명 소리가 너무나 커져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다크 슬로프가 움직였다?”
“생존자가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길드원이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환장하겠네.”
바닥에 쪼그려 앉은 김건우가 멍하니 담배만 태우다 다시 길드원을 올려다봤다.
“야. 그럼 길드장은 왜 들어간 거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변이 작업에 의한 브레이크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딱딱하게 굳으시더니 하급 길드원들을 먼저 내보내셨습니다.”
“……?”
하급 길드원들을 먼저 내보냈다?
김건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레온 길드가 담당하는 다크 울프 게이트이자 지금 조사를 위해 마스터가 직접 걸음을 옮긴 다크 울프 게이트.
“쯧.”
게이트의 핵을 파괴해도 게이트는 닫히지 않는다.
최소 다섯 번.
게이트의 핵을 최소 다섯 번 파괴해야 게이트가 소멸한다.
하지만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한 게이트는 다르다.
딱 한 번.
게이트의 핵을 한 번만 파괴하면 게이트는 소멸한다.
“안 봐도 뻔하네.”
게이트를 소멸시켜 브레이크 발생 원인을 감춘다.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게 되고, 경찰서와 협회를 들락날락거려야 했지만, 사실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티, 팀장님!”
“……?”
게이트를 바라보던 김건우와 보고를 하던 길드원이 고개를 돌렸다.
인명 피해를 확인하던 인사팀 직원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티, 팀장님.”
“어, 왜?”
“무, 문제가 생겼습니다.”
“브레이크 현상보다 큰 문제냐?”
“네. 어떻게 보면.”
“……?”
허리를 구부린 채 숨을 고르던 인사팀 직원이 손에 들고 있던 명부를 내밀었다.
“……이유리?”
“미, 밑에. 가족사항. 가족사항을 보십쇼.”
“왜 대통령 따님이라도 되……!”
실소를 터트리며 질문하던 김건우가 ‘가족관계란’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씹. 얘가 왜 여길 다녀?!”
청일고.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현직 대통령 딸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여성이 다니고 있었다.
김건우는 마스터에게 보고하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안녕하십니까, 김건우 팀장님.”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게이트 바로 앞.
검은 양복을 착용한 미녀, 무의식적으로 이동을 멈추고 허리에 찬 검집에 손을 올리게 만드는 미녀.
청일그룹 소속 A급 헌터. 배희연.
김건우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배희연을 확인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
끼이익.
“우……와…….”
“허, 허허허.”
“대에박. 저거 드라마에서나 있는 줄 알았는데.”
검은 리무진.
전투용 차량 두 대가 전후방에서 보호하는 리무진.
전투용 바이크 네 대가 양옆에서 보호하는 리무진.
이유리의 친구들은 물론 운동장 곳곳에서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 심지어 입구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던 기자들까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70대 초반의 노인이 리무진에서 내렸다.
자기 관리를 잘했는지 50대 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건장한 체구의 노인이다.
헌터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한율은 보았다.
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건장한 체구의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유리야.”
“네. 오빠.”
“할아버지?”
“네…….”
청일그룹의 회장, 이상남.
“아무리 생각해도.”
“응?”
“TV에서의 모습이 더 젊은…….”
한유라가 손을 뻗어 유세희의 입을 막았다.
“풉. 푸풉.”
“크흠.”
어느 정도 공감을 했던 것일까.
이유리는 물론 최일현까지 안간힘을 다해 웃음을 참고 있을 때, 무슨 스킬이라도 사용하듯 주변을 스캔하던 이상남이 한율 일행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한 사람이 움직이는데 그런 그를 보호하기 위해 여덟 명의 경호원이 따라온다.
‘다 헌터네.’
마나를 풀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 내는 헌터가 여섯 명.
자연스럽게 경호원들을 살펴보던 한율의 시선이 다시 한번 이상남에게 향했다.
TV. 그것도 뉴스에서나 가끔 보던 사람이 화면에서 나오는 냉철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한율은 긴장하지 않았다.
‘손녀가 걱정돼서 찾아온 사람이 차가운 사람일 리가 없지…….’
TV에서 흔히 말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고.
그런데 그런 사업가가 손녀가 다니는 학교에 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발품을 팔았다.
가족이 위험에 처했다는 이유로.
저벅저벅.
타악.
이유리 앞에서 걸음을 멈춘 이상남이 고개를 쓰윽 돌려 최일현을 바라봤다.
“조용한 곳이 있나?”
“예. 안내하겠습니다.”
***
본관 1층, 3-3반
드르륵, 타악!
“유리야!”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냉철한 사업가는 사라지고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다가 오랜만에 손자 손녀를 만난 유쾌한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빠른 속도로 달려온 이상남이 이유리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양손을 뻗어 손녀의 손을 꼬옥 붙잡는 것은 덤.
“아이고, 우리 유리. 다친 데는 없고?”
“네. 친구들이 도와줘서 빨리 도망칠 수 있었어요.”
웃으며 대답하는 이유리의 모습이 참 예뻤는지 손을 토닥거린 이상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유라와 세희는?”
“…….”
유라와 세희?
친근하다.
한율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볼 때, 한유라와 유세희가 미소를 머금은 채로 대답했다.
“없어요.”
“저도요.”
“그래.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고개를 끄덕인 이상남이 다시 이유리를 돌아보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만 끔뻑이며 이상남과 한유라, 유세희를 번갈아 바라보던 한율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둘에게 물었다.
“뭐냐? 너희, 회장님하고 만난 적 있어?”
“응.”
“네.”
“……어떻게?”
“집에 계시던데요?”
한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유세희가 똑같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세대교체 중이시라던가? 대표직 물러날 준비를 끝내서 시간이 많으시대. 그래서 주말에 유리 집에 놀러 가면 할아버지랑 점심 같이 먹어. 저번에 말했잖아.”
한유라가 조용히 설명을 해줬다.
“아.”
그러고 보니 처음 이유리를 만났을 때, 그때 들었다. 그녀의 집에 놀러 갔다가 청일그룹 대표와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고.
“아, 인사가 늦었군. 유리 할애비 되는 사람일세.”
“아, 유라 오라비입……. 아, 죄송합니다. 한율입니다.”
말장난이 입에 붙어 버렸다. 정정하기는 했지만, 유라의 팔꿈치가 옆구리에 들어와 한율은 몸을 움찔 떨었다. 집에 가면 등짝 스매시각이다.
이상남은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는 친구군. 그럼 다시. 고맙네.”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요. 뭘.”
“…….”
빈말이 아니라는 것처럼 옆에 서 있는 한유라를 힐끔 훔쳐보는 한율을 보며 이상남이 묘한 시선을 보냈다.
‘아직 한 달도 안 된 헌터.’
한유라의 오빠 한율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를 했다. 그것이 청일그룹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중 능력자, 한율.
각성한 지 30일이 지나지 않은 헌터.
‘실력은 C급이라고 했던가.’
레온 길드의 움직임을 보고 받고 떠나기 전, 함께 방송을 보던 배희연에게 들은 평가는 그랬다.
가만히 한율을 바라보던 이상남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고는 휴식을 취하는 손녀와 손녀의 친구들을 돌아봤다.
“유리, 유라, 세희.”
“네?”
“율이하고 다녀올 데가 있으니까 잠깐 이곳에서 쉬고 있거라. 필요한 거 있으면 일현이에게 부탁하고.”
“네.”
아무런 질문 없이 대답하는 소녀들이 예뻤는지 흐뭇한 미소를 그린 이상남은 한율의 어깨를 두들긴 후, 경호원 세 명을 남기고 교실에서 나왔다.
저벅저벅.
“어, 음. 회장님?”
“할아버지.”
“……예?”
“유라도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유라 친오빠만 회장님이라 부르면 이상하지 않으냐.”
조사를 했기에 알고 있다.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친해지면 더 이득을 볼 수 있는 녀석이라는 것을.
“아, 옙. 할아버지.”
“그래. 어디 가는지 궁금해서 불렀느냐?”
“예.”
“일찍 소멸시켜 달라고 요청했더니 브레이크 일으킨 개씹…….”
“허험!”
한율이 헛기침을 뱉었다.
하지만 이상남은 머리와 입 사이에 필터가 없는 것처럼 온갖 욕설을 뱉은 후에 설명을 해줬다.
“……하여간 그 썩을 새끼들이 아주 못돼 처먹은 짓을 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다.”
“못돼 처먹은 짓?”
“브레이크 소멸 작업.”
턱짓으로 정면을 가리키는 이상남의 모습에 한율 또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통일성이라고는 왼쪽 가슴에 그려진 사자 문양이 전부인 헌터들과 함께 게이트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매우 이상한 광경이었지만, 한율의 고개는 다시 비스듬히 돌아가고 말았다.
‘배희연…….’
청일그룹 회장, 이상남과 함께 방송에 나오는 청일그릅 경호팀장이자 A급 헌터, 배희연.
‘그리고 백호준.’
동대문구 수호 길드인 레온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A급 헌터, 백호준.
‘허허.’
두 남녀가 입을 꾹 다문 채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광경이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살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