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 모든 걸 다 이룬 이의 삶 [完]
달라진 건 많지만, 달라진 게 없는 이상야릇한 나날이 이어졌다.
세계 1위 조선사 타이틀을 거머쥔 Yuil Holdings! 그래, 유일조선과 순양중공업, 수많은 기자재업체들을 거느린 내 회사! 유일지주는 여전히 잘 나갔다.
유일조선을 제외하고는 전부 입양한 가족이었지만, 가족으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이라는 효과를 내는 중이다.
유일조선은 상선 분야 넘버원으로 밀려드는 주문에 연일 곡소리를 냈다.
가스추진선에 이어 암모니아추진선까지 터트렸으니, 발주가 몰리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다른 조선사들은 우리한테 퇴짜 맞은 선주들 상대로만 영업에 나설 정도다.
얼마나 잘 나가는지는 통계청이 인증해줬다.
통영의 1인당 GDP가 경상남도 탑을 찍었고, 전국적으로는 울산광역시에 버금갈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회사가 돈을 잘 버니 직원들 벌이가 쏠쏠해지고, 그 돈이 지역경제를 먹여살리는 선순환. 이게 다 내 덕이야.
순양중공업은? 우진조선의 몰락으로 걸레가 된 거제 경제를 하드캐리하는 중이시다.
순양중공업은 유일조선의 도움으로 해양플랜트 폭격을 신속하게 이겨내고 예전의 얄미울 정도로 잘 하는 그 모습으로 돌아갔다. 해양플랜트에도 재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로 폼이 제대로 올라왔다.
순양그룹은 1조8320억 원에 순양중공업을 팔았고, 페이백으로 1조2750억 원을 토해냈다. 페이백 토해내기 무섭게 순양중공업은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순양그룹의 복통을 야기했다. 인생의 쓴맛을 맛 봤으니 앞으로 내 앞에서 시건방 떨지 않으리라 본다.
유일지주의 또 다른 축인 기자재계열은? 조선소 2곳이 그리 잘 나가는데, 당연히 잘 나가지!
기자재계열 대표를 맡은 최석홍 사장. 유일조선에서 귀신 들린 자재관리 스킬을 보여준 사람이라 그 많은 기자재업체들 앞에서도 귀신 들린 모습은 여전하다.
그렇게 다들 잘 나간다.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리 팔자가 좋은 모양이지? 허허?”
툭하면 내 방에 찾아와서 노가리 삼매경에 빠지는 정한호 사장도 여전하다.
“사장님. 제발 일 좀 하세요.”
“허허. 난 말이야. 자네가 나한테 사장 자리 던져놓고 도망간 거라 생각했단 말이지? 이 나이 먹고 사장 자리 앉아서 개고생하겠구나 싶었다고. 근데 웬걸? 아, 물론 처음엔 엄청 바빴지. 그렇게 정신없더니 요샌 일이 없네……. 허허허.”
“사장이 놀고 직원들이 열일하면 회사가 잘 나간다는 소리라고 하던데요. 좋은 현상인 거 맞죠?”
“그럼, 그럼.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아귀가 짝짝 잘 맞아서 아주 잘 돌아가는 중이야.”
잘 나가는 우리 회사들 덕분에 내 방은 정 사장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로 가득하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자네, 그러고 보니까 요새 담배가 꽤나 줄어든 것 같어? 결혼하더니 꽉 잡혀 사는 거야? 허허.”
“베이비 준비도 해야 하고……. 몸에 좋지도 않은 거 달고 살아서 뭐하겠습니까? 맑은 공기 마시면서 살아야죠.”
“몸엔 안 좋아도 심신 안정에는 기가 막힌 약초 아닌가! 허허. 그래서 2세 소식은 있고?”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벌써부터 기대되는구만. 조선업 명문가끼리 만나서 나온 애는 태어나자마자 선박 박사가 되는 거 아니야? 허허.”
역시나 예상대로다. 결혼 전엔 대체 언제 결혼하느냐는 압박이 거세더니, 결혼하고 났더니 애를 언제 낳느냐는 압박으로 바뀐다.
애 낳고 나면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고 그러겠지. 그래서 스파이더그룹 비아 회장이 솔루션을 제시했었지. 한 방에 쌍둥이를 낳으라고…….
시답잖은 얘기로 한참을 보내고 나서야 대화가 일 얘기로 진입했다.
장안의 화제인 대흥중공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 일은 달라진 게 없지만, 대흥중공업은 아주 크게 달라졌으니까.
“그래서 대흥중공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거기가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우리 지주회사랑 합병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돌더라고.”
“별 얘기가 다 돌아다니나 보네요.”
“그렇지? 가능성 없는 얘기지?”
“그럼요. 서로 뜻이 맞아서 합병하겠다고 해도 안 될 겁니다. 우리랑 대흥이랑 합치면 벌크선 빼고 상선 점유율이 80%가 넘는데, 어느 나라가 좋아하겠습니까? 반독점규제 걸면서 합병승인 안 할 겁니다.”
“그놈의 규제가 무섭긴 무서워.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딴 살림 차리면서 지낸다 이 말이지?”
“서로 선의의 경쟁해야죠. 자극이 있어야 나태해지지 않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가만히 있으면 몸이 찌뿌둥해지고 살만 찌지. 옆에서 운동하라고 잔소리도 해주고 그래야 건강을 유지한다고. 허허. 그래도 대흥중공업이랑 한 식구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은 가시지가 않는구만.”
“따로 또 같이 움직인다고 보시면 되겠죠.”
그렇다. 대흥중공업은 이제 한 식구나 마찬가지이다.
대흥중공업 주인을 결정하는 주주총회가 끝난 이후, 이유선은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다시 주주총회를 열어 등기이사를 싹 갈아치우며 대흥중공업을 장악했고, 무산된 지주회사 전환을 다시 시도했다.
이유선이 추진한 지주회사 전환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그 막대한 자사주를 소각하며 주주 이익을 극대화했기에 반발하는 주주도 없었다. 노조의 힘이 약해진다며 반발하던 노조도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하며 설득했다.
모두의 축복 속에 여왕 즉위식이 치러졌다고 할까.
여왕은 여전히 바빴다. 약속대로 대흥중공업그룹의 비조선 계열사들을 분리해 오빠인 이형선에게 넘겨주는 작업에 들어갔고, 대수조선을 지배하는 이유인베스트먼트와 대흥중공업지주를 합병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세계 1위 유일지주와 세계 2위 대흥중공업지주가 전 세계 해운회사들을 유혹하며 배 짓는 일에 열중하게 될 것이다.
두 회사의 사장이 서로 부부라서 한 식구나 마찬가지라고 했을까? 아니다.
유일지주는 내 돈으로 만든 이스턴캐피탈이 굳건히 지배하고 있고, 대흥중공업지주의 지분 35%도 뿌리를 찾다보면 유연성이란 녀석이 나온다. 고로 둘 다 내 회사다.
이제 명함에 당당하게 ‘선박왕’이란 글자를 박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대인들과 훗날의 역사가들은 혜성처럼 등장한 선박왕 유연성을 기억하고, 때론 추앙하고, 때론 그리워할 것이다. 아니면 말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년 세월. 난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뛰었고, 그렇게 뛰어다니며 나와 내게 몸을 빌려준 그 녀석의 꿈을 이뤄냈다.
이제 좀 한가하게 살아도 되겠지?
***
“오빠!”
한가하게 살고 싶은 내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저 목소리. 괜히 심장박동수가 빨라진다.
“왜!”
“왜에?”
“왜!”
“지금 왜라는 소리가 나와!”
“그러니까 왜!”
“이거 봐! 이거 보라고!”
“뭔데?”
“나 두 줄 나왔다고!”
“두 줄? 그럼 확진인가…….”
이유선이 하얀 막대기를 들고 와서 잔뜩 흥분된 감정을 마구 쏟아냈다. 이런 경험을 나도 처음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두 줄이라고! 두 줄!”
그냥 감정이 이끄는 대로 반응하자.
“임신이야?”
“그래! 두 줄이라고!”
“우아아아아아!”
“워워. 흥분하지 마. 초기엔 굉장히 조심하라고 했어. 어쩐지 생리할 때가 지났는데 기미가 없더라고.”
“후우후우.”
“진정하라니깐.”
“오케이, 오케이. 일단 병원부터 가자.”
“어허.”
“왜?”
“이쪽으로는 아주 초짜네, 초짜야. 지금 가봐야 바로 확인 안 돼. 2주쯤 있다가 가면 되니까 진정하세요. 그리고 이제 아빠가 될 거니까 공부 좀 하세요.”
정신일도하사불성의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우리 부부도 드디어 애가 생겼다. 나이 많아서 힘이 없다는 구박을 받아가며 만든 결실이라 그런지 감동이 두 배, 별이 다섯 개.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네.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그럼 준비할 게 많지! 우리 애는 남에게 안 맡기고 우리 손으로 키울 거니까.”
자신감 빼면 시체인 이유선의 폭탄선언이다.
“회사는?”
“회사가 중요해? 당연히 우리 애가 중요하지! 어차피 지주회사는 가만있어도 잘 굴러가니까 내가 있으나 마나 달라질 건 없어. 애 키우는데 집중할 거야. 오빠도 그렇게 알고 있어.”
“베이비시터도 안 쓴다고?”
“남의 손에 안 맡길 거라니까.”
숭고한 의지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나도 육아휴직 준비나 해야겠네. 사장이 육아휴직을 쓰는 선진적인 기업문화, 얼씨구 좋다.
그렇게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어린이집 신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검색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다 산부인과 방문일을 맞이했다.
운전면허장 주행시험 보는 것처럼 FM대로 운전해 가며 병원을 찾아갔다.
“네, 축하드려요. 아기집도 잘 만들어졌고, 착상도 잘됐네요.”
봐도 뭔지 모르겠는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이것저것 설명하는 의사의 말이 당연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축하한다는 말만 귀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런데 왜? 축하한다면서? 왜 할 말이 더 남은 표정이지?
“여기 초음파상에서는 태아가 하나가 아닌 걸로 나오네요. 여기 보시면……, 그렇죠?”
“네? 그럼 쌍둥이란 말씀이세요?”
“아니요.”
“네?”
“다음번 진료 때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지금 소견으로는 세쌍둥이로 보이네요.”
“엄마야.”
나와 이유선이 동시에 엄마를 찾았다.
움베르토 비아, 그 새끼. 말이 씨가 된다더니, 정말 씨가 돼 버렸네.
“쌍태아도 그렇지만, 다태아는 더욱더 임신 이상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러니까 산모께서는 절대 안정을 취해 주시고, 남편분께서도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사랑의 결실이 셋이라니. 감동이 여섯 배. 별이 열다섯 개다.
기쁨도 기쁨이지만, 애와 놀면서 한가로운 삶을 보내겠다는 내 계획은 잠시 접어둬야 할 것 같다.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잠시 외출한 것 같은 이유선의 넋을 다시 돌려놓는 것이다.
“자기야. 괜찮아?”
“어? 어.”
“기쁘지? 우리 사랑의 결실이 세 배로 늘어난 거잖아.”
“하아. 기쁘긴 한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심정이 애매하네.”
“분윳값, 기저귓값은 걱정하지 마. 내가 투잡을 뛰어서라도 벌어올게.”
“지금 농담이 나와! 심란해 죽겠구만!”
그래, 심란한 마음을 나한테 다 퍼부어라. 세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데 다 받아줘야지.
한 달 뒤, 다시 찾은 병원에서 세쌍둥이를 확인했다. 초음파 사진, 누가 봐도 애가 셋이더라.
“하하. 난 뭐든 한 방이야! 내 파워가 이 정도라고!”
“세쌍둥이 아버지께서는 아주 좋으시겠어요. 난 지금 속도 메스껍고 난리도 아니구만.”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다 사다 줄게!”
“진짜지?”
“그럼!”
“지금 먹고 싶은 게 생겼는데 사다 줄 거야?”
“말만 하라니까.”
“신포닭강정이 먹고 싶어. 살짝 매콤하게 해서. 매콤한 걸 먹어야 메스꺼운 게 덜할 것 같아. 아, 거기 간 김에 냉면도!”
“거기 인천 아닌가…….”
“말만 하라면서.”
오냐. 세쌍둥이 아빠가 된다는데 고작 인천 따위야. 내가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순양중공업을 인수했다고. 거, 급한데 헬기 한 번 이용합시다.
***
한 번일 줄 알았던 헬기 이용이 좀 많아졌다.
통영에 살면서 왜 그리 먹고 싶은 건 다 북쪽에 있는지 원.
헬기 한 번 이용할 때마다 500만 원. 그것도 등기이사라고 할인해준 가격이다. 순양중공업, 이 얄짤 없는 놈들.
그래도 점점 남산처럼 불러오는 이유선의 배를 보니까 부모가 된다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한 번에 500만 원씩 날아가도 닭강정이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움직이게 되더라.
“많이 먹어. 부족하면 또 사 올 테니까 천천히 먹고.”
“애가 셋이라 그런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차네.”
“그거 한 상자에 500만 원짜리인 거 잊지 말고.”
“먹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많이 맛있게 먹으라고……. 근데, 남의 손에 안 맡기고 키우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는 거지?”
이유선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린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동요하는 것이 분명하다.
“어……. 일단 해보자고. 셋이라고 못하겠다고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
“육아휴직은 필히 내야겠네.”
그렇게 험난하면서도 성스러운 잉태 과정을 거친 끝에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다. 난 이제 아빠가 되는 거다.
그냥 아빠도 아닌, 세쌍둥이, 그것도 딸딸딸 아빠.
***
“오빠! 아니, 분유물을 이렇게 뜨겁게 하면 어떻게 해! 감으로 하지 말고 온도계로 체크해야 한다니까.”
분유 하나 타는 것도 초정밀 계측기들의 힘을 빌려야 했고.
“오빠! 기저귀 빨리! 물티슈도!”
배변의 기쁨을 누리는 새싹들에게 청결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했고. 그런데 좀 같은 시간에 싸면 안 되겠니?
“오빠가 목욕시킬래? 아니면 로션 바르고 옷 입힐래?”
어떤 걸 선택하든 똑같은 행위를 3번 반복해야 했다.
100일의 기적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너무 힘들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도 않았고, 머릿속엔 잠 좀 푹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먹는 건 어찌나 잘 먹는지, 허구한 날 젖병만 설거지하다가 손에 습진이 생길 정도였다.
“오빠. 근데 이때가 제일 좋을 때래.”
“앞으로 얼마나 더 험난해진단 소리야?”
“안 움직이고 먹고 자기만 할 때가 제일 예쁠 때라던데?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지옥문 열리는 거래. 그나마 아들 아니고 딸인 걸 다행으로 알라더라고.”
“단수가 아니라 복수야. 딸들.”
“우리 딸들. 그래도 너무 예쁘지 않아? 신기한 게 누가 봐도 오빠 닮았는데도 예쁘단 말이지.”
“날 닮아서 예쁜 게 아닐까?”
“슬슬 헛소리 나오기 시작하는 게 이제 좀 살만 한가 봐?”
“그러게. 100일의 기적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것 같아.”
“아, 진짜 힘들었다……. 맞다. 오빠한테 사과할 게 있어.”
“사과? 호르몬 변화 때문에 그렇다면서 나한테 무지막지하게 짜증냈던 거?”
“아, 진짜. 그건 진짜라고. 그건 오빠도 경험해 봐야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니까.”
“그래서 뭘 사과하겠다는 거야?”
“오빠 나이 많아서 힘없다고 한 거. 부실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최고였어.”
“후훗. 다음번엔 힘 조절해서 그냥 쌍둥이로 만들어줄게.”
분명 이유선의 구박이 쏟아질 타이밍인데, 구박 없이 지나갔다. 첫째가 울기 시작하면서 둘째와 셋째도 울음동맹에 참여했기 때문에. 아, 정신없다.
그래서 힘들기만 하냐고? 놉.
힘든 건 잠깐이지만, 행복이 주는 힘은 참 오래 가더라.
살아보니 행복이 여러 갈래라는 걸 알게 됐다.
회귀해서 목표한 바에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행복을 느꼈고, 회사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다 세계 1위로 올라섰을 때도 행복을 느꼈다.
그런 행복은 농도가 그리 짙지 않은 것 같다.
오지 말라고 밀어냈던 이유선이 어느새 마음속에 자리했을 때 느꼈던 행복은 조금 더 농도가 짙었다. 사랑의 감정이 더해져서 그런 것이겠지.
지금 느끼는 행복은 그 연장선이다. 사랑이란 감정에 부모가 됐다는 기쁨이 버무려지면서 며칠간 고아낸 육수처럼 진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선박왕이 기저귀 갈고 분유도 탈 수 있지!
아, 또 있다. 내가 이렇게 마음 편히 애들 목욕시키고 로션 발라줄 수 있게 된 건 많은 이들의 도움과 헌신 때문이었다. 통영의 중소조선사에 불과했던 우리 회사가 급성장한 건 나 혼자 잘 나서, 회귀했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회귀한 것도 좋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인복이 터진 것은 더 좋았다. 그 덕에 전생의 아픔들을 말끔하게 씻어낼 수 있었다.
이만하면 이번 생은 참 잘 살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지 않겠어? 다시 죽는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는 삶이었다고 말이다.
아 나. 이것들 또 우네. 이것들아, 분유 먹은 지 한 시간 밖에 안 지났어! 내가 저 녀석들 때문에 오래오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