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02
나는 작가다 102화
102화
“다들 고생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떨결에 배우물 ‘톱스타’를 준비하면서 경험이나 키우자고 생각했던 게 주연급 조연으로 들어가게 된 두 작품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그중 하나인 말죽거리 쌍절곤의 촬영은 내가 투입되면서 수정된 게 많아서 조금 지연되긴 했으나 그래도 지금 촬영보단 일찍 마쳤다.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애국가를 부르며’ 역시 방금 끝나서 다들 수고했다며 인사를 나눴다.
스탭들은 장비도 치우고, 쓰레기도 치우고 정리하느라 바빴다. 물론, 스탭 말고도 다른 이들 역시 정리하느라 바쁘긴 했다.
자기들 짐을.
‘이제 촬영이 모두 끝났으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지’라고 생각할 무렵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란 걸 알게 됐다.
“자자, 준경 씨도 같이 가시죠.”
집이나 가려고 날 기다리던 애마 쪽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고진규 감독이 다가와서 팔짱을 끼더니 한 말이다.
촬영이 끝났으니 집에 가려는데, 왜 나한테 어딘가 같이 가자는 건지 모르겠다.
“어딜요?”
“주연급, 조연급 배우들하고 스탭들까지 해서 뒤풀이해야죠? 게다가 까메오로 출연해 주셨던 분들도 다 참석하시기로 했거든요.”
“뒤풀이요?”
“예.”
까메오 출연자들도 다 참석하는 뒤풀이라니.
난 잘 몰랐는데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에 나온 배우들이 꽤나 엄청났다.
‘올드자일’로 유명세를 타고, 이순신 장군을 연기해서 부동의 1위인 천만 관객 영화 ‘명량해전’을 찍은 ‘추만식’부터 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헐리우드 스타인 ‘고병훈’ 그리고 미성으로 유명한 가수인 ‘최상모’까지.
말고도 대한민국 최고의 액션스쿨 원장부터 엄청난 이들이 까메오로 출연했었다.
하기사 그 정도 급들이면 까메오로 잠깐 촬영했어도 챙겨야지.
그나저나 조연, 주연, 스탭 거기다가 까메오 출연 배우들까지 챙긴다고 하니 난 혹시나 다른 이들은 안 챙기나 싶었다.
“엑스트라분들은요?”
비록 비중은 적고, 영향도 적지만 없어서 안 될 사람들이다.
어쨌거나 엑스트라도 챙기려는 낌새를 내비치자 고진규 감독이 난처해했다.
“제가 촬영해 본 경험상 이번 작품이 엑스트라 수가 제일 많은데, 저 친구들 다 챙기려면 영화 개봉하기도 전에 저희 망합니다. 그리고 엑스트라들은 임금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인데,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끼리 뒤풀이할 때 참여시키기 좀 그렇죠?”
너무 수가 많아서 뒤풀이로 엑스트라들은 데려가기가 힘들다.
기본적으로 돈 문제인 것 같았다.
그런 걱정이라면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지.
“결론은 돈만 있으면 된다는 거 아닙니까? 뒤풀이는 어디서 할 건데요?”
고진규 감독에게 돈 걱정 말고, 뒤풀이 예약한 장소나 알려 달라고 했다.
“일단 서울 가서 저희가 잡아놓은 수제맥주집에서 할 생각입니다. 근데 왜 이런 걸 자꾸 물어보시는 겁니까? 설마 엑스트라들도 다 같이 뒤풀이하시길 바라는 겁니까?”
어디로 예약했는지 말함과 동시에 우려를 드러내는 고진규 감독.
그 우려가 맞았다.
이왕지사 다 같이 고생?는데 엑스트라들도 같이 뒤풀이를 했으면 했다.
이건 내가 말죽거리 쌍절곤을 촬영할 때 엑스트라로 시작하고 그들과 친해지면서 생긴 감정이었다.
엑스트라도 사람인데.
그들 역시 데리고서 뒤풀이를 하고 싶다 답했다.
“뭐, 그럴까 생각 중인데요?”
내 대답에 고진규 감독이 난감해하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준경 씨! 방금 내가 돈 이야기를 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장소가 섭외하기 어려워요. 우리 엑스트라 수는 정말 역대급이라고요?”
엑스트라 수가 역대급이라는 고진규 감독.
하긴 전쟁할 때 보니 꽤 많은 것 같긴 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수만 얼추 헤아리면 100명 좀 넘을 것 같은데?
“한 5만 원어치 먹여봐야 500만 원밖에 안 들겠네요. 장소는 좀 더 알아보긴 해야겠지만.”
“5만 원어치를 먹이는 데 500만 원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저기 엑스트라 분들 다 해봐야 백 명 좀 넘는 거 아니에요?”
“아, 이 자리만 계시니까 못 보셨구나. 저기 능선 뒤에 엑스트라들 엄청 대기하고 있어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엑스트라가 더 있다라……. 하긴 좀 인원이 많다곤 했다. 그래서 막 전쟁터씬 찍을 땐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군데서 촬영을 기하기도 했단다.
한데 엑스트라가 저것보다도 더 많다니.
의외로 뒤늦게 엑스트라들을 챙겼단 사실에 괜스레 미안해졌다.
나 역시 아주 잠깐이긴 했으나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엑스트라로 있으면서 깨달았다.
엑스트라들이 정말 힘들다는 걸.
심지어 그들의 고생은 주연, 조연들을 빛내주기 위한 밑거름만 될 뿐이었다.
나처럼 운 좋게 얻어걸리면 배우 인생이 펼지 몰랐으나 당시 같이 엑스트라였던 형님들에게 들어보니 그런 기회는 복권 1등 수준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때문에 더더욱 난 말죽거리 쌍절곤에서의 연기를 대충 할 수가 없었다.
그 복권 1등과도 같은 기회를 얻고 난 날 많은 엑스트라들이 부러워했으며, 마치 오디션 경연에서 떨어진 탈락자들이 합격자에게 자기 몫까지 뛰어서 우승해 달라고 하는 것처럼 내게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아 달라더라. 그리고 잘되면 나중에 자기들 소주나 한잔 사달라며.
어쨌거나 그렇게 엑스트라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기에 촬영 마지막날에는 그들도 회식 시간을 같이 가졌으면 했다.
고진규 감독에게 역대급이란 표현까지 쓰면서 말했던 엑스트라의 인원수가 얼마인지 물었다.
“몇 명인데요?”
“방금 준경 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두당 5만 원씩 하면 2억은 들걸요?”
일순간 난 고진규 감독의 입에서 튀어나온 금액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예?”
당황해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물음.
거기에 대해서 고진규 감독이 방금 했던 말을 간소하게 전달했다.
“두당 5만 원짜리 회식하면 2억이라고요.”
2억이라니.
당황한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자, 잠깐만요!”
고진규 감독을 잠시 멈춰둔 난 속으로 계산해 봤다.
‘2억을 5만으로 나누면…….’
계산이 끝나기 무섭게 두눈을 크게 떴다.
“엑스트라가 4천 명이나 된다고요?”
맞다.
두당 5만 원어치 회식을 해줄 경우 2억이 빠져나가려면 4천 명이 있어야만 했다.
4천 명이라니.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의 엑스트라 수에 놀란 날 본 고진규 감독이 피식 웃었다.
“설마 전쟁을 저 100명 좀 넘는 인원으로 찍었겠습니까?”
“4천 명…….”
“준경 씨가 생각하기에도 무리죠?”
“돈은 무리가 아닌데 장소가 무리긴 하네요.”
솔직히 2억? 이제 껌값이다.
쓰고자 하면 못 쓸 게 없었다.
대신 철이가 난리를 좀 치기야 하겠지.
확실히 문제는 고진규 감독이 말한 것처럼 장소다.
“4천 명을 넣은 공간이라……. 아!”
고민하던 난 문득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고진규 감독이 무리라고 여겼던 4천 명 회식을 벌일 공간이.
“음?”
“제가 최근에 정리가 돼서 텅 빈 건물이 하나 있는데요. 거기서 하시죠. 뒤풀이 안 하신다는 엑스트라분들은 어쩔 수 없지만, 하신다고 하면 다들 오시는 걸로 해서요. 비용은 제가 전부 부담하겠습니다.”
청담동에 매입한 건물이 두 채가 있었다.
KN타워로 이름을 바꾼 청담동 건물 두 채.
1차의 경우 최상위 3층까지를 K E&M과 관련된 공간으로 남겨 놨다. 그리고 나머지는 원래 일하던 사람들이 쓰던 상가로 쓰도록 만들었다.
직원들 식사, 회식, 휴식, 여가 모든 걸 건물에서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건물인 KN타워 2차.
이건 지금 텅 빈 건물이었다.
어떻게 때마침 전 주인이 건물 내에 있던 상가들을 내게 팔 무렵에 계약이 끝나도록 처리해 둔 덕분에 아무것도 없는 건물이 됐다.
몇 번 인터넷이나 뉴스에 뜨기도 했다.
청담동 시내에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보면 뭔가 있을 법한 커다란 건물이 아무것도 없이 우뚝이 서 있기만 하다고.
아직 내가 KN타워 2차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작가 통조림 건물로 만들까 싶었다.
편집자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그런 작가들을 많이 봤다.
집안이 불우해서 제대로 된 작품을 쓰지 못하던 작가들.
분명 능력이 있는데, 그런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작품이 제대로 나오지가 않았다.
그런 작가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제대로 된 환경만 마련되면 분명 성공해서 누구보다도 잘살 수 있는 작가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숙식만 해결해 주면 충분히 몇몇 작가들은 회사 이익을 위해 정말 열심히 집필할 수 있단 걸 감안했다.
숙소용 건물의 필요성을 떠올리며.
하지만 철이가 극구 반대하더라.
“아니, 미친 놈아! 청담동 시내에 있는 이 큰 건물을 제대로 돈 벌어다줄지 모를 작가들 숙소로 쓴다고? 그딴 돈 지랄은 제발 기부에서 멈춰라, 어? 아니, 차라리 기부면 세금이라도 아끼지. 세금 왕창 깨져야 할 건물로 돈 안 되는 숙소할 거면 난 일 안 해! 아니, 못해!”
내 돈 가지고 한다는 걸 저러는 게 발암 캐릭터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나와 회사에 불필요한 걸 걷어내 주려고 저러는 걸 잘 알았다.
덕분에 난 아직 KN타워 2차를 어찌할지 고민에 고민만 거듭하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그 건물을 쓰게 될 기회가 온 것이다.
4천 명이 넘는 인원의 회식을 굳이 밀어붙이려고 하니 고진규 감독은 부담스러워하며 여전히 말리려고 했다.
“허어, 굳이 그리 번거롭게 하실 필요까진…….”
난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같이 고생했던 분들인데 뒤풀이도 함께해야죠.”
결국 내가 그 대인원 회식을 밀어붙인다고 하자 고진규 감독이 어이가 없단 듯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것 참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의 배우 뒤풀이가 되겠네요. 콘서트나 시사회도 아니고 뒤풀이를 배우 4천 명이라니.”
“그래도 엑스트라분들도 배우라고 불러주시긴 하네요? 아깐 아르바이트생처럼 이야기하시더니.”
“에이, 그냥 준경 씨 부담될까 봐 빼려고 그리 말했던 거죠. 엑스트라가 없으면 영화를 어떻게 찍어요?”
“확실히 엑스트라 없는 영화란 말도 안 되죠?”
흔히 판타지 소설에서도 자주 쓰이는 표현이랑 비슷한 것 같았다.
국민 없이 국왕만 있는 국가가 어찌 국가일 수 있겠냐는 표현.
은근히 내가 자주 썼다.
어쨌거나 고진규 감독은 내가 회식을 밀어붙이자 감당하기 어려운 기색과 함께 물었다.
“그렇죠. 후우, 좋습니다. 그럼 준경 씨만 믿고 전 진짜 배우들에게 그런 식으로 전달합니다?”
“예, 청담동 KN타워 2차로 모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주소는 제가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준경 씨가 이야기한 장소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신다니 수제맥주집 예약금은 포기해야겠네요.”
처음 뒤풀이 가게로 잡았다는 수제맥주집.
뒤풀이 인원들이 조용히 먹어야 하니 가게를 통째로 빌렸을 터.
예약금 자체도 꽤 세지 않을까 싶었다.
뭐, 4천 명 넘는 인원 회식하는 비용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겠지.
난 고진규 감독에게 그 예약금이 아까우면 주겠단 듯이 이야기했다.
“얼만데요? 드릴게요.”
“아닙니다. 방금 이야기했다시피 이렇게 부담을 지고서 우리 영화 촬영했던 배우들까지 신경 써주시는데, 그 정도 금액은 제가 받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전 회사 쪽에 말해서 준비해 두라고 할게요. 어차피 대관령에서 서울까지 갈려면 시간이 좀 있으니 준비하는 덴 큰 무리가 없겠죠.”
“예.”
고진규 감독은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에서 촬영했던 배우들에게 가서 내가 변경시킨 회식 정보를 뿌리러 갔다. 그러기 무섭게 난 성용 형님과 철이에게 전화했다.
KN타워 2차에서 4천 명이 넘는 인원을 데리고 회식할 거라고.
갑작스레 벌린 일에 성용 형님이나 철이 모두 뒤로 나자빠지려고 했다.
규모가 엔간히 크게 일을 벌려야지, 하면서 다들 투덜거리면서도 대관령에서 출발하여 도착할 시간 안에 준비해 두겠다고 해줬다.
참 유능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성용 형님과 철이에게 부탁해서 뒤풀이 준비가 끝난 KN타워 2차에 도착했다.
각 층에는 엑스트라 배우들을 두고 주연, 조연, 까메오 배우들과 함께 옥상에서 자리하기로 하며.
그때였다.
난 옥상으로 가던 중 엑스트라 배우 한 명의 얼굴이 익숙해서 관심을 보였다.
“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