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06
나는 작가다 106화
106화
“주연 자리요?”
비단 추만식의 입에서뿐만 아니라 내 입에서도 튀어나온 물음이었다.
갑자기 선아 누님은 웬 주연 타령이란 말인가?
당황하는 나나 추만식을 한 번씩 번갈아본 선아 누님이 피식 웃었다.
“그래, 주연. 내가 왜 여기 찾아왔겠어? 당연히 우리 준경이 주연 자리 주려고 찾아왔지.”
나한테 주연 자리를 제안하러 왔단 선아 누님의 말에 추만식이 황당해했다.
“아니, 이제 조연 두 번 해본 애한테 주연이라뇨? 심지어 배우로서는 공부 차원에서나 했고, 배우를 쭉 할 생각도 없는 애한테 너무 큰 자리 아닙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연예인 중에서도 가수나 배우하면서 다른 사업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 그런 연예인들은 어느 정도 성공가도에 오른 이들이지 않습니까?”
“준경이는 성공가도에 오르지 않았단 거야? 조연으로 영화 두 편이나 찍었고, 주연 제의까지 받을 정도로 연기를 잘하지. 그리고 본업인 작가로서의 성공은 말할 필요가 없을 텐데?”
“아니, 그리 이야기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됐고, 이제 빠져. 그리고 내가 제안하는 자리의 경우 준경이가 혹할 만할걸?”
“끙, 알았습니다.”
선아 누님이 일단 빠지라고 하니 추만식은 잠시 대화에서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선아 누님에게 물어봤다.
“무슨 자리인데 제가 혹합니까?”
“드라마 한 번 찍지 않을래?”
엥? 갑자기 웬 드라마?
“드라마요?”
“사실 오늘 여기 온 게 드라마 때문이었으니까.”
“저한테 드라마 제의하시려고요?”
검지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하지만 내게 제안하려던 게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
선아 누님이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된 주된 목적을 따로 존재했다.
“아니, 사실 준경이한테 주연 자리 물어보는 건 겸사겸사로 왔어.”
“예? 제가 겸사겸사라고요?”
“응, 사실은 은정이 꼬시러 왔거든.”
“김은정 씨요?”
“맞아, 드라마 감독님이 은정이 섭외를 부탁하더라고. 근데 때마침 딱 우리 고 감독네 영화에 출연 중이네?”
김은정.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의 히로인이자 내 친구 철이의 애인이 된 그녀.
설마 선아 누님이 그녀에게 같이 드라마를 하자고 온 거였을 줄이야.
“그럼 김은정 씨만 설득하고 가시면 되지, 갑자기 저는 왜…….”
“내 아들역이 주연 급인데. 전설이란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를 고민 중이라고 하길래 딱 여기 와서 널 보니 걔보단 우리 준경이가 나을 것 같아서?”
전설.
1998년 ‘처리사’라는 앨범으로 데뷔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중 하나였다.
나중에 가면 거의 1세대 아이돌 중 한 그룹으로 분류되는.
김은정이 나오고, 전설의 멤버 중 한 명이 나오는 이 시기의 드라마.
그게 뭔지 떠올랐다.
‘불꽃새!’
생각한 게 맞는지 선아 누님에게 물어봤다.
“혹시 드라마 제목이……?”
“‘불꽃새’야.”
예상이 딱 맞았다.
불꽃새라니.
꽤나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레전드 드라마 중 하나였다.
가장 큰 기여는 방금 선아 누님이 이야기한 전설의 멤버인 ‘타릭’이 해서 유명해진 대사 때문이었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당신을 사랑하는 내 정열이 불타오르잖아요?’
나중에야 다들 오글거린다고 했지만, 이 당시 그 타릭의 대사는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설마 그 드라마를 제안할 줄이야.
뿐만 아니라 타릭이 했던 역할이라니.
영화 두 편 만에 드라마 주연이 된다면 이건 정말 엄청난 기회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배우의 입장에선.
하필 딱 내가 출연한 영화 두 편이 이런 시너지를 만들 줄이야.
영화 ‘말죽거리 쌍절곤’에 나가면서 여배우 강선아를 알게 되고, 영화 ‘애국가를 흐르며’에서 여배우 김은정과 함께하니 이게 합쳐져서 드라마 ‘불꽃새’로 연결됐다.
슬슬 영화 두 편이면 톱스타에 쓸 만한 건 다 챙겼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상황 전개는 또 흥미롭기 그지없다.
‘충분히 독자들에게 개연성을 전달해 줄 수도 있어 보이는 사건이다. 설마 이런 소설 같은 사건이 내게 일어날 줄이야.’
“근데 저 좀 쉬면서 본업에 집중할 생각이었는데…….”
내 말에 선아 누님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단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고 감독한테 들어보니 본업 말고도 영화 시나리오도 써보고 있다며? 영화 대본 받아 가지고 공부하면서.”
“그렇긴 하죠?”
“그럼 당연히 드라마 시나리오도 써봐야 하지 않겠어?”
뭘로 날 꼬시려고 했나 했더니 드라마 시나리오였구만.
선아 누님의 노림수를 알게 된 내가 물었다.
“누님이랑 드라마 한 편 찍으면서 드라마 대본 보면서 공부하라고요?”
“그렇지. 그리고 네가 영화 시나리오 대본 쓴 거 여기 감독들하고 친해졌으니 봐줄 사람이 있는 거잖아? 드라마 시나리오 대본도 드라마 감독이랑 친해져야 하지 않겠어? 심지어 드라마 작가로서의 명성은 맨땅에 헤딩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고?”
나도 들은 바가 있긴 하다.
드라마 작가가 되려면 잘나가는 이의 밑에서 서브 작가로 몇 년을 기본으로 고생하며, 시나리오도 뺏기고 하면서 아득바득 이갈며 올라가야 하는 자리라고.
근데 만약 선아 누님을 통해서 드라마 감독이나 스탭들과 친해지고, K E&M으로 투자사 노릇까지 하며 일을 키운다면 드라마 작가로서의 명성을 단기간에 얻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흐음.”
나쁘지 않단 생각에 고민을 하게 됐다.
추만식의 요구를 바로 거절했던 것과 다르게.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기 무섭게 선아 누님이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같이하기로 한 분이 감독으로서 두 번째 작품이야. 이런 감독님들이랑 친해지면 평생 갈 수 있다, 준경아?”
어느 분야의 감독과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기엔 이만한 게 없다며 유혹하는 선아 누님.
뿐만 아니라 드라마 작가로서의 명성과 작품 톱스타의 주인공 배우가 드라마를 찍는 장면에 대한 자료조사 차원에서 한다고 생각하니 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넘어갔다.
“끙, 이제 연기는 좀 접어둘 생각이었건만.”
내 반응에 선아 누님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케이, 한다는 거지? 그럼 이제 은정이만 설득하면 되겠네.”
은정 씨라…….
“그러고 보니 아까 철이랑 있었던 것 같았는데…….”
문득 은정 씨랑 있던 철이에 대해 언급하자 선아 누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이? 그게 누구야?”
“제 친구인데, 은정 씨랑 사귀거든요.”
“뭐? 그 친구, 완전 계 탔네. 준경이 같은 친구에다가 은정 씨 같은 여자친구라니.”
“계 탔죠. 같이 가서 만나실까요?”
“그래, 만식아.”
“예, 강 선배님.”
“준경이 노리는 건 나중에 하려무나.”
마치 승자가 된 미소로 말하는 선아 누님.
추만식 역시 포기했단 표정으로 말했다.
“강 선배님께서 이렇게까지 나오시는데, 더 이상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잘 아네.”
그렇게 간단하게 선아 누님과 대화를 나눈 추만식이 날 쳐다봤다.
“내가 중간중간 너무하다 싶은 태도를 보이긴 했겠지만, 어디까지나 자네랑 같이 작품 한 번 해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니 너무 기분 나빠 하진 말아주게.”
내가 살짝 고개 숙이며 사과하는 추만식.
그에게 나 역시 고개를 맞숙였다.
“아닙니다. 절 위해서 제안해 주신 건데요.”
“그리 생각해 주면 고맙고. 어쨌거나 후배님, 번호 좀 주게. 아무리 봐도 강 선배님이 계속 끌고 다니실 생각인 것 같으니 내가 자리를 비워드려야지.”
내게 자기 휴대폰을 건네며 번호를 달라는 추만식.
그의 휴대폰을 받은 뒤 번호를 찍고 돌려줬다.
“아, 옙! 여기 찍었습니다.”
“그래, 나중에 소주나 한잔하자고.”
“옙!”
번호도 나누고 술 한잔하잔 약속까지 끝나자 선아 누님이 추만식에게 손을 휙휙 내저었다.
“가라.”
“안 그래도 갑니다, 가.”
“그래.”
그렇게 추만식이 자리를 떠나자 선아 누님은 나랑 감독님들과 함께 철이 커플이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철이와 있는 은정 씨를 만나기 위해서.
만나고 난 뒤 그 커플과 함께 이번에 촬영에 들어가게 될 드라마 ‘불꽃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철이가 소리를 빽 질렀다.
“이 자식아, 친구 여자친구랑 스킨십 하는 역할이라니.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잖아?!”
막상 철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생각해 보니 이거 완전 NTR이긴 하네…….”
흔히 소설에서 주인공 여자친구가 적이나 주인공 주변 인물들에게 빼앗기는 걸 NTR이라고 했다.
뭐라더라? 네토라레?
하여간 그걸 줄인 영어였는데, 절대 장르소설에선 쓰면 안 되는 시스템이었다.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충족하기 위해서 장르소설에 빠진다.
근데 주인공의 연인이거나 그런 관계로 발전한 히로인을 다른 인물에게 뺏긴다?
주인공이 강해지고, 그런 걸로 자신이 강해진다 생각하며 감정이입하다가 그런 사건이 벌어지면 아주 기분이 엿 같을 거다.
자기 애인이 뺏기는 격일 테니까.
때문에 절대 소설에선 NTR을 넣으면 안 됐다.
그리고 또 다른 게 있다면 TS였다.
Trans-Sexual의 준말로 번역하자면 ‘성전환’이다.
강력한 남자 주인공에게 만족하며 잘 보고 있던 작품이 있다.
근데 갑자기 이 주인공이 여자가 된다?
감정이입하던 남성 독자들은 자신이 강제로 여자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느끼게 된다.
아주 기분 나쁜 감정을.
보통 남성 독자들이 장르소설을 보면 강력한 남성으로서 주변 여성 캐릭터들에게 영향력이 있긴 바랐다.
한데 거기서 자신이 여자로 변한 뒤 다른 남자에게 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남자로서 게이에게 당하는 기분이니 싫을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내 상황이 꼭 NTR처럼 되긴 했다.
정확하게는 내가 아닌 철이 입장에서의 NTR이지만.
순간 다들 내 중얼거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NTR이 뭐야?”
“아,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그리고 인마, 연기잖아. 친구가 주연이 될 수 있는데, 굳이 그걸로 따져야겠냐?”
“어차피 너 배우 안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잖아.”
내가 은정 씨랑 커플 연기를 해야 한단 게 못마땅한지 극구 말리는 철이.
뭐, 나야 배우 안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긴 하다.
굳이 친구가 싫다면 안 해도 무방했다.
오히려 선아 누님에게 안 해도 된다는 핑계거리도 생기고 좋네.
한 번 더 선아 누님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철이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난 안 했으면 좋겠다.”
“흠, 꼭 네가 그리 말한다면야…….”
내가 자연스레 거절하는 쪽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선아 누님이 철이를 불렀다.
“준경이 친구.”
“예?”
“그나마 친구가 안전하지 않겠어?”
“그게 무슨…….”
선아 누님의 말에 당황해서 눈만 껌뻑거리는 철이.
녀석에게 선아 누님이 말했다.
“준경이가 안 하면 지금 잘나가는 남자 가수가 은정이랑 커플 연기를 하게 될 텐데, 그게 더 위험하지 않겠냐고?”
“그, 그건…….”
막상 또 그리 생각하면 그것대로 위험하다고 느꼈나 보다.
그때 은정 씨가 등판했다.
“뭐야, 철이 씨. 설마 나 못 믿는 거야?”
“응? 그건 또 무슨…….”
“마치 내가 연기하면 상대역 하고 바람날 것처럼 생각하고 있잖아.”
“아니, 그냥 애인으로서 내 기분이 그렇단 거지이.”
“그렇게 사귈 거였으면 이미 이 자리에는 철이 씨가 아니라 도빈 씨가 있었을걸?”
맞다.
이번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에서 은정 씨의 상대역은 도빈 형이었다.
말마따나 은정 씨가 상대역과 연기를 하다가 사랑이라도 빠진다면 이미 철이랑 헤어지고 도빈 형이랑 사귀고 있어야 하는 게 맞았다.
다들 그런 식으로 나오니 철이가 생각을 바꿨다.
“끙, 알았어. 막상 여기 계신 누님 이야기도 듣고 나니 차라리 준경이가 하는 게 낫겠네.”
철이의 태도가 바뀌자 선아 누님이 흡족하게 쳐다봤다.
“준경이 친구가 이제야 제대로 현실을 볼 줄 아네.”
결국 내가 하는 건가?
얼추 결정이 난 것 같다 느낄 때 철이가 날 불렀다.
“야, 준경아.”
“왜?”
“확씨, 우리 은정이한테 빠지기만 해봐라. 바로 사표 낼 줄 알아!”
사표로 직원이 대표를 협박하네.
그럼 대표가 직원을 협박하는 방법이 필요할 터.
“요새 누가 연애하시느라 바쁘셔서 지혜 씨가 혼자 일 다 하던데, 누가 사표 쓰면 지혜 씨 월급이나 올려줄까?”
대표로서 직원을 협박하는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순식간에 철이가 쭈그러들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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