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07
나는 작가다 107화
107화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의 뒤풀이가 끝난 다음 날.
드라마 나랑 은정 씨가 ‘불꽃새’의 주연 제안을 받아들이자 선아 누님이 마구 달렸다.
덕분에 속이 너무 더부룩하다.
“우욱, 해장해야겠는데?”
그때였다.
또로롱.
전화가 왔다.
“누구지?”
휴대폰 액정을 쳐다봤다.
-성용 형님.
“엥? 성용 형님이 왜 전화하셨지?”
난 전화를 받았다.
“예, 형님.”
“깼냐? 어제 엄청 달리더만.”
“어휴, 말도 말아요. 지금 속 다 꼬인 것 같아요.”
“해장해야지?”
“그래야겠죠?”
“회사로 와라. 해장하면서 할 이야기가 좀 있으니까.”
“할 이야기요?”
갑자기 무슨 할 이야기가 있길래 회사로 오라는 건가 싶었다.
그런 내 반응에 성용 형님이 말했다.
“왜? 오기 힘들 것 같아? 그럼 전화로 하고.”
“아니에요. 어차피 해장도 해야 했으니 지금 갈게요.”
“그래, 같이 해장하자.”
“예.”
그렇게 성용 형님과 통화를 마친 뒤 나는 샤워하고 밖으로 나섰다.
속이 좋지 않아 운전은 힘들 것 같아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하기 무섭게 직원들이 인사했다.
“대표 ‘작가’님, 오셨어요?”
“엥, 오늘 다들 오후 출근하라고 말씀드렸는데 왜 벌써 계신 겁니까?”
어제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의 뒤풀이이긴 했지만, 그걸 위해서 우리 K E&M 직원들이 고생한 바가 있으니 다들 같이 즐기라고 했다.
그러나 출근을 생각하면 제대로 즐기지 못하리라.
때문에 다들 오후 출근을 하라고 해뒀다.
근데 다들 이미 오전부터 출근한 상태였다.
내 물음에 곽 팀장이 말했다.
“이렇게라도 일하지 않으면 지금 해야 할 업무들이 밀려 버려서 저희 과로사할걸요?”
“에, 일이 그렇게 많나요?”
“많죠. 지금 작가들 분위기가 어떤지 너무 모르시는 거 아니에요, ‘대표’ 작가님?”
어째 곽 팀장의 날 부르는 악센트가 바뀐 것 같은데……, 어쨌거나 난 지금 이야기하는 게 뭔지 물었다.
“작가들 분위기요?”
“예.”
“어떤데요?”
“지금 장르판에 있는 작가들 전부 투고한다고 난리예요.”
“잉? 투고요?”
투고.
던질 ‘투’, 원고 ‘고’.
원고를 던지다.
의뢰 받지 않은 사람이 계약하기 위해 원고를 보내는 행위다.
흔히 작가들 사이에서나 편집자들이 조언할 때, 절대 하지 말라고 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일단 장르소설은 연재 사이트가 자리를 잡으면서 성적으로 자길 증명할 수 있었다.
당연히 성공적인 성적은 조건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반면에 투고는?
이건 시작부터 작가가 출판사한테 지고 들어가는 수단이라고 보면 됐다.
연재해서 성적 낼 자신은 없고, 자기 원고는 상태 좋으니 계약해 달라며 부탁하는 방법이란 것이다.
때문에 절대 투고는 하지 말란 게 조언으로 오르내렸다.
한데 작가들이 투고를 한다고?
“신인들이요?”
신인이라면 정보도 없거니와 연재는 모르고 글을 쓰고 싶어 그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니라며 곽 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금 이야기 드렸다시피 신인 기준이 아니라 장르판에 있는 작가들 전부요.”
작가들 전부라니.
이게 뭔 경우인가 싶었다.
한동안 배우물 공부를 위해서 촬영을 뛰어다녔더니 그 사이 나도 모르는 사단이 벌어졌다.
내가 알던 장르판에서 작가들이 전부 투고하겠다며 난리치는 경우가 없었으니까.
아, 계약해 달라고 한 업체에게 우르르 몰려간 적이 있긴 했다.
투고 개념은 아니다.
전자책 시장이 열리면서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계약한 작가들이 선인세와 높은 정산비를 위해서 처음 ‘매니지먼트’란 개념으로 나타난 업체에게 너도, 나도 자기 작품들 팔아 달라며 계약을 따로 한 사건이었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전자책 시장에 영업을 잘하는 곳들이 나오고, 더 좋은 조건을 준다는 곳들이 넘쳐나니 많이 약해지긴 했으나 당시 그 매니지먼트가 거느린 작가들 수가 500명에 이르렀다.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엄청난 수였다.
한데 그런 큰 사건도 ‘전자책 시장’이란 게 열렸으니 가능했던 일.
즉, 이번 사건도 분명히 무슨 작용이 있었으니 벌어졌으리라.
난 곽 팀장에게 어째서 작가들이 너도, 나도 우리 회사에 투고를 하는 건지 물었다.
“……왜요?”
“어휴, 왜겠어요? 우리 ‘대표’ 작가님께서 생각하신 방식으로 계약하고 책이 팔린 작가들 때문이죠.”
“그분들이 왜요?”
“점점 대여점은 줄어들고 있어서 판매부수가 줄어드는데, 우리랑 계약한 작가님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다들 어떻게든 우리랑 계약하려고 하죠.”
“아, 그런…….”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다 보니 그쪽으론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선별해서 계약한 작가들이 잘되니 이런 식으로 장르판의 판도가 바뀔 줄이야.
그때였다.
“이후 이야기는 나랑 해장하면서 하자.”
성용 형님이 곽 팀장과 이야기하는 도중 끼어들었다.
“아, 사장님.”
곽 팀장은 그런 성용 형님을 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후 이야기는 자기랑 하잔 성용 형님에게 나도 인사했다.
“오셨어요?”
“어, 나가서 해장하자.”
“예.”
내가 따라가려고 하자 성용 형님이 직원들에게 말했다.
“나 우리 대표 작가님하고 이야기 좀 하고 올 테니 일들 하고 있어요.”
“네!”
“가자.”
“예.”
직원들을 뒤로한 채 난 성용 형님과 함께 근처 해장국집으로 갔다. 거기서 성용 형님은 소주 한 병도 같이 시켰다.
“해장술 하시게요?”
“해야지. 그리고 좀 진지하게 할 이야기도 있고.”
소주를 간단하게 흔든 뒤 뚜껑을 땄다. 그리고 내게 소주를 건네는 걸 보곤 잔을 들었다.
근데 잔을 들긴 했는데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단 걸 떠올리곤 물었다.
“진지하게 할 이야기인데 술은 좀 그렇지 않아요?”
“그럼 나만 마실게.”
따르려던 병을 다시 기운 채 소주를 거두려는 성용 형님.
막상 또 혼자 마시면 정 없지.
“아니에요. 어차피 드신다면 같이 마셔야죠.”
“그래.”
또르르.
투명하곤 맑은 소주가 잔을 채울 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내 잔을 채우기 무섭게 성용 형님이 들고 있던 걸 뺏어서 따라줄 때 이야기하려던 게 뭔지 밝혔다.
“직원 좀 뽑자.”
“예?”
“직원 좀 뽑자고.”
“지금 계약한 작가나 작품들이면 지금 인원수로도 충분하지 않아요?”
솔직히 K E&M에 계약한 작가나 작품수는 아직 열 명도 안 됐거니와 다들 신작을 계약했다 보니 내 작품들만 제외하면 종수도 열이 채 안 됐다.
성용 형님은 잔이 차자 들어 올리며 말했다.
“계약한 것만 따지면 그렇지.”
계약한 것만 따지면 그렇다라, 문득 사무실에서 곽 팀장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아, 아까 투고 건 때문에 뽑아야 한다는 거예요?”
“맞아.”
“그렇게 많아요?”
“곽 팀장이 그랬지?”
곽 팀장이 한 말을 묻기에 난 그녀가 했던 걸 고대로 읊었다.
“장르판 작가들이 전부 투고하려고 한다고요?”
“그래, 그거 과장 같니?”
“음, 생각해 보니 그럴 만하다곤 생각했는데…….”
“일단 짠하자.”
“옙.”
짠!
성용 형님과 첫잔을 건배하고 마셨다.
“크으, 쓰다.”
오늘따라 소주가 쓰다.
첫 잔으로 인해 살짝 인상을 찌푸릴 때였다.
성용 형님이 갑자기 웬 수치를 내뱉었다.
“193개.”
“예?”
“저번 달 투고하겠다고 날아온 원고만 193개다. 그나마 저번 달은 덜한 거야. 이번 달은 아직 반도 안 됐는데 168개가 날아왔다. 그리고 답 좀 달라면서 메일 계속 보내는 것들이나 문의할 게 있다는 작가들 메일만 수천 개다. 아니, 이번 달은 만 개도 넘을걸?”
“……엄청나네요?”
엄청났다.
이 추세라면 이번 달에 넘어올 투고 작품들까지 합치면 한 사오백 개가 쌓일 기세.
내가 오랫동안 장르판에서 일했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고는 듣도 보도 못했다.
거기서 갑자기 성용 형님이 혼자 잔을 따랐다.
“아니, 형님. 왜 자작을 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성용 형님이 소주잔을 확 들이켰다.
“그런 엄청난 회사를 네가 차린 거야.”
“에이, 회사 운영은 형님이 다 하시는데요.”
“야, 준경아.”
“예?”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봐.”
“가슴에 손을요?”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해 달란 대로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분위기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성용 형님이 물었다.
“그래, 네가 생각할 때 정말 내가 운영을 해서 이렇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럼요.”
“자식아, 막 띄어주려고 그러지 마. 지금 회사 방침이나 모든 운영에 관련된 것들 그리고 계약한 작가와 작품들, 이게 전부 네 머리에서 나온 거야. 근데 운영은 무슨. 난 그냥 바지사장으로 네가 말한 운영대로 움직여주기만 할 뿐이지.”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된 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뭔가 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작용이 지금의 심리 상태를 만들었고.
이번엔 내가 술잔을 혼자 따랐다. 그리고 성용 형님의 잔을 따르며 말했다.
“형님.”
“응?”
“한잔하죠, 일단.”
잔을 들어서 한 잔 더 하자고 하니 갑자기 성용 형님이 뺐다.
“나 방금 마셨는데.”
“그럼 혼자 마실까요?”
“아니, 그럼 정 없지. 짠하자.”
“예.”
짠!
그렇게 한 번 더 건배한 뒤 둘 다 한 번에 소주를 입안에 털어냈다.
“캬아.”
“크으!”
각자 방식대로 소주의 맛에 대해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난 성용 형님에게 말했다.
“형님,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걸 물어보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지금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게 누구 덕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 네가 잘나서지.”
“아뇨, 형님 덕분입니다. 형님 없으면 전 지금처럼 활동 못해요.”
“비행기 그만 태워라.”
그래도 아예 듣기 싫은 소리까진 아니었는지 피식 웃는 성용 형님.
“비행기 태우는 게 아니라 사실인걸요. 근데 직원 뽑잔 이야기만 하려고 이러시는 건 아니죠, 지금?”
그랬다.
단순히 직원 뽑잔 이야기만 하려고 이러는 건 아닌 것 같았따.
성용 형님 역시 맞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사실 지금 겁이 좀 난다.”
“무슨 겁요?”
“생각보다 너무 단기간에 우리 회사도 커버렸고, 그로 인해서 지금 수많은 작가들과 업체들에게 이목을 집중 받고 있어.”
확실히 이렇게 컸으면 기존 출판사들이나 작가들에게 집중 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요?”
“사실 몇몇 출판사들은 우리가 너무 크려고 하니까 견제하더라.”
“어디서요?”
“전부 다.”
“그래서 막기 힘들어요?”
“아니, 막는 건 아주 쉽더라. 네가 있어서.”
“제가 있어서요?”
“출판사들이 우리를 견제하려고 총판에 압박을 넣었는데, 총판 입장에선 네 작품 끊기면 수익이 토막나니까 다른 출판사들의 견제구를 그쪽에서 막아줬지. 그리고 대여점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다 네가 있어서 막을 수 있었다. 사장이라고 명패만 있지, 회사를 위해서 내가 한 게 없더라고.”
또 내 존재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이 없다고 느낀 건가?
거기에 대해선 난 별소리를 다 한다고 나무랐다.
“형님, 그래서 그것들 막으려고 발로 뛴 사람은 누구입니까?”
“응?”
갑작스레 치고 들어온 내 말에 당황하는 성용 형님에게 난 방금 한 이야기에 대해 반박했다.
“형님은 저 때문에 막을 수 있었다고 했죠?”
“그렇지?”
“저 때문이 아니에요. 형님이 뛰어주시기에 절 가지고 막을 수 있었던 거죠. 만약 형님이 안 계셨으면 이 회사가 그런 공격들로부터 멀쩡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저는 작품 활동하느라 신경을 잘 쓰지 못했을 테니, 그대로 당해 버려서 제 작품은 멀쩡해도 다른 작품들이 견제를 받고 말아 먹었을걸요? 그럼요? 전 회사 문 닫고 글이나 쓰는 신세가 됐겠죠. 제가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는 회사를 잃은 채 말이죠.”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는 회사…….”
내가 한 말 중 와 닿은 이야기였는지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는 회사’란 말을 읊조리는 성용 형님.
“그래요.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는 회사요. 그리고 이게 가능한 건 제가 마음 편히 믿을 수 있는 형님이 있어서죠. 이래도 형님이 회사에 필요 없는 사람 같으세요?”
“……미안하다. 내가 요새 너무 잡생각이 많았던 것 같네.”
“아니에요. 형님이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신데, 전 맨날 싸돌아다니기나 하고 챙기질 못했으니 제 잘못이죠. 동생으로 죄송합니다, 형님.”
“아냐, 그래도 네가 그리 이야기해 주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한잔하고 털죠.”
“그러자.”
그렇게 성용 형님과 난 건배를 했다.
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