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17
나는 작가다 117화
117화
-응? 고구마?
아, 아직 인터넷 용어가 그 수준이 아닌가?
고구마.
흔히 고구마만 먹으면 목이 답답해지는 걸 소설에 빗댄 것이다.
전개나 캐릭터 때문에 답답해 죽을 것만 같다고.
독자들이 원하는 건 현실에서 고구마를 먹을 때와 같았다.
목이 답답해지는 걸 시원한 탄산인 사이다로 풀어주는 것.
소설도 똑같다.
사이다 전개나 사이다 캐릭터를 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설명할 순 없었다.
어차피 나중되면 다 알게 될 이야기.
성용 형님에게 그냥 간단히 이야기해 줬다.
-답답하다고요.
-뭐, 인마?!
-아니, 형님 말고요. 아니다, 형님 맞구나. 적이 될 게 뻔한 사람들은 미연에 방지하잔 거예요.
-흠, 하긴 나도 좋은 감정은 없으니……. 알았다. 그렇게 시켜두마.
-예.
그렇게 성용 형님하고 난 간단하게 문자를 조금 더 나누곤 연락을 마쳤다.
당장 처리해야 할 사람들도 처리했으니 이제 오전 시간에는 일 좀 해볼까 싶었다.
“자, 그럼 오늘도 열심히 글을 써볼까?”
손가락을 풀면서 말한 나는 톱스타의 이어질 원고를 써나갔다.
깔끔하게 점심 먹기 전까지.
* * *
또로롱.
“으, 벌써 2시인가?”
글 쓰는 미식가를 하면서 주변에 나가 점심을 먹자 깨달은 점이 있었다.
12시나 1시에 맞춰서 나가 점심식사를 먹으면 안 되겠단 걸.
의외로 청담동 주변에 일하는 데가 많아서 그런지, 점심만 됐다 하면 가게들에는 직장인들이 득실거렸다.
꽤나 북적북적하며.
청담동 맛집들도 어떻게든 자기들 쪽으로 손님을 끌어모으려고 런치 메뉴를 개발하다 보니 그 시간에 들르는 손님도 참 많았다.
때문에 2시까지 일하고 그 때 점심식사를 했다.
여유롭게 먹기 위해서.
2시의 알람을 들은 난 집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이 집이구나.”
집에서 가까운 상권에서 한 끼에 한 칸씩 이동하며 식사를 했는데, 오늘은 한참 집에서 걸어 나온 뒤에야 도착할 수 있던 라멘집으로 정했다.
라멘.
사실 그냥 라면을 일본어로 표기하면 라멘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라면과 라멘이 구분됐다.
라면은 우리가 흔히 인스턴트로 끓이거나 물을 부어서 먹는 거고, 라멘은 일본에서 중화풍의 일본 면 요리로 들어온 것들을 그리 불렀다.
그곳으로 들어가니 우렁찬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이랏샤이마세에!”
쩌렁쩌렁 퍼지는 인사 소리에 난 말했다.
‘일본식 라면인 라멘을 하는 곳답게 일본어로 인사하네.’
일본식 인사를 받은 난 구석에 자리 잡았다.
직원이 메뉴판을 갖다 줬고, 그 중 뭘 시켜먹을 지 봤다.
“가장 대표적인 건 역시 돈코츠 라멘인데…….”
돈코츠 라멘.
우리나라에서 라멘의 대표 메뉴로 알려진 녀석이다.
정말 기본적인 라멘이랄까?
돼지뼈를 우러낸 라면이란 뜻으로 확실히 보통 먹던 인스턴트 라면이나 분식집 라면과는 그 맛이 달랐다.
일반 라면은 매콤하고 자극적인 맛이라면 이건 비교적 돼지 기름의 누린내를 사골로 먹는 느낌이랄까?
사실 이 맛집 탐방을 하면서 느낀 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일단 가면 나오는 밑반찬을 맛봐라.
밑반찬을 먹어보고 맛있으면 엔간치 요리도 맛있었다.
둘째, 기본적인 메뉴를 시켜봐라.
가장 기본적이고 대중화된 그 가게만의 메뉴를 먹어보면 딱 사이즈가 나왔다.
기본이 잘 되어있다면 그 이외의 것들도 평타는 치리라.
이 조건대로라면 당연히 아주 기본적인 라멘이라고 할 수 있는 돈코츠 라멘을 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난 다른 걸 시켜볼까 싶었다.
바로 며칠 전에 다른 라멘집에서 돈코츠 라멘을 먹어봤기 때문이다.
그 때 내 눈에 한 가지 메뉴가 들어왔다.
‘교카이 돈코츠 라멘’.
돼지 뼈를 진하게 우려낸 돈코츠 라멘에다가 어패류의 감칠맛까지 더해낸 라멘으로 생각 외로 추가 조리는 간단하나 그 비린내를 잡아내느냐, 못 잡아내느냐가 관건인 라멘이라고 들었다.
“오늘은 이거다. 저기요.”
주문하려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방금 전 내게 메뉴판을 갖다줬던 직원이 다시 왔다.
“예, 뭘로 드릴까요?”
“쿄가이 돈코츠 라멘 한 그릇 주세요.”
“알겠습니다.”
직원은 주문받기 무섭게 메뉴판도 회수해갔다. 그리고 잠깐 기다리니 금방 교카이 돈코츠 라멘을 들고 왔다.
직장인들 점심식사 시간이 끝나서 나를 제외하곤 테이블이 한두 곳 빼곤 텅텅 비어있었기에 빨리 나온 것 같았다.
검은색에 금색 실선 무늬가 그려진 그릇.
그 안에는 누런 돼지뼈를 우려낸 국물이 담겨져 있었고, 그 위로 면이 있었으나 잘 보이진 않았다.
위에 올라간 차슈가 두껍고 커다랬으며, 고사리와 숙주나물 그리고 계란이 그걸 가리고 있었다.
방금 막 만든 라멘답게 뜨거운 기운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이 모든 내용은 글 쓰는 미식가에 적혀질 것이고, 난 거기서 더 나아가 먹는 장면 역시 적어야 하니 맛을 느꼈다.
“일단 국물부터…….”
우동을 시킬 때 나오던 수저, 흔히 중국식 음식들을 먹을 때 딘섬을 올려 반으로 가르고 육수를 빼낸 다음 호호 불어 먹으며 쓸 때 그 수저다.
그걸로 난 국물을 한 수저 떴다.
호호, 불며 국물을 마셨다.
후루룩.
안 그래도 농후하기 그지없는 돈코츠 라멘인데 어패류의 감칠맛까지 더해지니 그 육중함이 실로 감탄스럽다.
“괜찮네. 여긴 면도 괜찮으려나?”
흔히 먹는 인스턴트 라면보다 얇고 단단한 라멘의 면.
젓가락으로 집은 뒤 또 호호, 불었다.
국물의 뜨거움이 스며든 면발 역시 뜨겁기 그지 없었다.
다만, 국물에 비해 면만 들었을 땐 조금만 불어도 입안에 넣을만하다.
호로록.
안에서 면이 치아가 닿을 땐 단단하다가도 툭 건드리면 끊어져서 부드럽게 풀어졌다.
“잘 하네. 오늘 글 쓰는 미식가의 별점은 다섯 개 중 네 개나 네 개 반을 줄 만하겠네.”
그렇게 평가를 마친 뒤 난 식사에 집중했다.
언제나 맛있는 음식은 말없이 집중한 채 쉬지 않고 흡입하게 된다.
한 번도 일본을 가본 적이 없어서 현지 라멘은 어떨 지 몰라도 이것 참 내 입맛에 맞다.
문득 그걸 떠올린 난 새삼 인생을 돌아봤다.
“그러고 보니 남들 캐나다에 보내기나 하고, 난 제대로 된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봤구나.”
해외여행.
여행의 꽃이 아닐까 싶었다.
비록 이탈리아를 가보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업무였다.
여행이라곤 볼 수 없었다.
문득 그리 생각하니 난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좋아, 이번에 톱스타를 완결까지 쓰고 나면 일본으로 가자. 글 쓰는 미식가, 일본 특집이다!”
교카이 돈코츠 라멘을 통해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난 일본에 갈 생각으로 가득 차서 귀가했다.
왠지 목표가 생겨서일까?
평소보다도 더욱 집중하며 톱스타 원고를 써내려갔다.
그 때 알람이 울렸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집필을 하고, 6시쯤에 난 알람이 울리면 원고를 잠시 접었다.
그때 일정은 두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글 쓰는 미식가에 점심에 먹었던 걸 올린다.
본래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바로 적었는데, 글 쓰는 미식가를 보던 팬들이 댓글로 그런 소리를 하더라.
아무래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점심 식사 시간이 늦다 보니 바로 올려봐야 이미 점심을 먹은 이들에겐 자극적이지 않다고.
맛있어보여서 당기긴 하나 그 효과가 좀 떨어진달까?
때문에 글 쓰는 미식가의 기록은 저녁에 아침, 점심을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저녁을 적는 걸로 바꿨다.
그렇게 당일 이 시간에 아침과 점심에 먹은 식사를 올리면 됐다.
둘째, 무얼 말하겠는가?
당연히 저녁식사지.
예전에 그 찌든 육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언제나 저녁은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으면 여섯 시에 먹고 일곱 시 이후로는 끽해야 샐러드나 고구마 정도만 먹었다.
어쨌거나 난 지금 시간에 해야 할 일정을 해볼까 싶었다.
“어디 보자, 아침이랑 점심에 먹었던 사진이랑 써놓은 글이…… 여기 있구나. 그럼 네버에 접속해야지.”
네버와의 계약이 체결되고 난 후 난 사이월드 미니홈피를 접고 블로그로 모든 걸 옮겨왔다.
오늘도 역시나 글 쓰는 미식가 게시판에 당일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에 관한 걸 올리려고 했는데, 그전에 항상 하는 게 하나 있었다.
아무래도 네버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위해 로그인부터 하다 보니 메일 확인이 우선시 됐다.
그렇게 메일을 본 난 지금 내가 하는 일들과 관련이 없는 새로운 곳들로부터 온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준경 작가님? 서울문화창조 출판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준경 작가님. 서울외식정보 문화사입니다.
-만음사 출판사입니다. 메일 보고 연락 부탁드립니다.
…….
갑자기 웬 일반서부터 해서 음식과 관련된 출판사들의 우후죽순 쏟아진 메일들.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다.
하나, 하나 다 열어봤다.
이야기는 일맥상통했다.
“허, 하나같이 다 글 쓰는 미식가를 탐내다니.”
사이월드 미니홈피에 오를 땐 연락할 방도가 딱히 없었는데, 네버 블로그로 옮기니 내 메일 주소를 찾아내서 다들 ‘글 쓰는 미식가’와 계약하고 싶단 이야기였다.
난 내게 메일을 보낸 출판사들에게 전부 사과 답장을 보냈다.
“죄송합니다만, 이미 ‘글 쓰는 미식가’는 계약이 완료된 상황입니다. ‘서울문화창조 출판사’와 일할 수 없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혹여나 나중에라도 좋은 인연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이후 메일 보낸 출판사 이름들만 싹 바꿔서 복사, 붙여넣기를 했다.
‘Ctrl+C, Ctrl+v.’
흔히 ‘복붙’이라고 말하는 그걸로다가 전부 싹 다 아주 깔끔하게 거절했다.
내용을 생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왜 어렵지 않냐고?
이 내용이 내가 열심히 편집자로 구를 때 작가들한테 받았던 답장이기 때문이다.
이미 계약했다.
나중에 좋은 인연이 닿았으면 좋겠다.
개뿔, 결국 다 조건 따라갈 뿐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하던 답을 했으니 나 또한 좋은 조건 따라가야지.
답장에 적은 ‘계약이 완료된 글 쓰는 미식가’?
당근, 구라다.
계약은 무슨.
그냥 내 취미 생활과 팬덤 생성을 위해 쓰던 글이다.
계약 따위 되어 있지 않았다.
한데 왜 난 그들에게 계약했냐고 보냈을까?
“이렇게 탐내면 당연히 내가 직접 해야지, 왜 남을 줘?”
그랬다.
내가 출판할 능력이 없다면 그들을 통했으리라.
하지만 이미 수만 부에서 수십만 부를 찍어서 유통 가능한 라인이 있는 내 회사가 있다.
그렇다면 다들 돈이 될 거라고 여겨서 계약하고 싶다니, 이 물건을 남한테 안 주고 내가 꿀꺽해야지.
난 오늘 치 아침 식사랑 점심 식사의 내용을 적는 걸 뒤로 미루고 휴대폰부터 들었다.
성용 형님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
내가 전화하니 성용 형님은 전화를 금방 받았다.
“어, 준경아.”
“형님, 계약 하나 합시다.”
“응? 웬 계약? 어디서 괜찮은 작가라도 구한 거야?”
갑자기 계약 하나 하자고 하니 내가 아닌 다른 작가라고 생각했나 보다.
난 성용 형님의 물음에 맞다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아무렴요. 괜찮은 작가고말고요.”
“오, 그래? 누군데?”
“저요.”
“……뭐?”
순간 자기가 잘못 들었냐는 듯한 반응.
아주 제대로 들으셨네, 반응을 보니.
다시 한 번 더 방금 이야기한 괜찮은 작가가 누구인지 밝혔다.
“저요.”
“혹시 그 작가 필명이 ‘저요’니?”
“아니, 나라니까요.”
“아! 필명이 ‘나라니까’야?”
이거 지금 말귀를 알아들었으면서 농담을 던지는 거다.
난 한 번 쏘아붙였다.
“형님, 아저씨처럼 굴래요?”
“알았다, 고만하마. 그래서 뭘 계약하잔 거야? 그냥 내라고 하면 되지.”
“에이, 그래도 계약하고 보도 자료도 뿌리고 해야죠.”
설아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인도해준 뒤로 녀석의 부모님들은 내게 무진장 호의적이었다.
법무법인 광해와 K E&M과의 계약에서도 우리에게 많이 유리한 쪽으로 해줬던 데다가 그쪽이 갖고 있는 보도 라인까지 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도와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계약하자더니 보도 자료를 뿌리잔 내 말에 성용 형님이 의아해했다.
“뭔 보도 자료?”
그 물음에 난 씨익 웃었다.
“안 그래도 요새 한동안 여기저기 보도 자료에 이름 올릴 일이 없었는데, 내일 한 번 내 이름 좀 보도 자료로 뿌려봅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