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2
나는 작가다 012화
12화
“시놉시스요?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작가 중 한 명이 했던 말이다.
수많은 작가들을 만났고, 그들마다 집필 성향이 다 달랐다.
뇌를 거치지 않고 손에서 나오는 대로 쓴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쭉 써버리는 이들이 있었다.
시놉시스 같은 걸 짜지 않는.
그렇다고 아예 없는 건 아니긴 했다.
단지 머리에 간략하게만 정해놓고 쓰기에 시놉시스가 필요없을 뿐.
내가 상상도 못한 집필 속도에 놀라 실험하겠다고 드래곤나이트를 쓸 때와 같았다.
반면 시놉시스를 탄탄하게 짜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딘가에 자신이 써야 할 이야기들의 중심을 잡고 쓰는 스타일.
하지만 이것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작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디테일하게 적는 경우도 있었고, 다른 경우에는 중심이 될 것들만 잡기도 했다. 또한 설정에 집착하는 시놉시스를 쓰던 작가들도 많았다.
내 집필 속도의 비밀은 그곳에 있다고 여겼다.
“황제 로키는 이미 내가 쭉 썼던 글이잖아?”
그랬다.
비록 속도위반 결혼으로 인해 중반이 무너지고, 후반은 아예 망가져 버렸던 원고라곤 하나 황제 로키는 이미 한 번 완결까지 썼던 작품이다.
“이미 한 번 썼던 황제 로키가 내게는 시놉시스였던 거네.”
모든 스토리가 정해진 시놉시스.
그게 있었기에 황제 로키 3권 원고가 그리 술술 써졌던 거다. 아직 확실하진 않았지만.
가능성은 농후했다.
이에 대한 확인 절차는 필요했지만, 그전에 지금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 황제 로키 10편부터 올리고 보자.”
오후 내내 썼던 원고를 저장한 뒤 껐다. 그리고 오늘 연재할 분량이 10편의 원고를 주르륵 열었다.
내 집필속도와 관련된 생각과 연재 준비를 하니 어느덧 시간은 11시 50분.
첫날은 5분을 남기고 올렸다.
12시에 10편을 모두 올리기 위해서.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늦게 올릴 생각이었다.
“59분에 올려도 알아서 독자들이 붙을 테니까.”
이미 북조아 사이트 모든 기록을 갈아엎은 황제 로키의 성적.
연독률도 좋았다.
즉, 독자들이 기다리지를 못하고 곧장 찾아본다는 소리.
어제 자정 5분 전에 올린 건 투데이 베스트 성적이 초기화되는 12시에 모든 편수를 올려 최대한 많은 조회수가 찍히도록 만들었다.
반면 이제 올리기만 해도 알아서 찾아보니 1분 전에 올릴 생각이었다.
늦게 올릴수록 다음 날 조회수가 높아졌으니까.
***
“올리자!”
두 번째 연재 시간이 다가왔다.
11시 59분.
그 시간에 맞춰 준비해 둔 원고 열 편을 또 싹 올렸다. 그러고 나니 12시가 지났고 투데이 베스트의 성적이 새로이 바뀌었다.
“어디 보자.”
투데이 베스트란을 봤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조회수 100만이란 경이로운 숫자.
회원, 비회원 조회수에다가 중복된 걸 합친 숫자였다.
피씨를 옮기면 같은 사람이 봐도 조회수가 늘어나는 오류. 때문에 보통 중복 조회수가 3분의 1에서 절반을 차지했다. 그럼 실질적으로 본 사람들의 수는 5만에서 7만 정도.
현재 북조아의 총독자수인 1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하차하지 않고 본 것이다.
그리고 현재 투데이 베스트가 초기화된 지금.
순위 / 작가명 / 작품명 / 선작 / 추천 / 조회수
1위 / 이준경 / 황제 로키 / 135 / 908 / 9,800
2위 / 헛바람 / 질풍의 마도사 / 230 / 42 / 910
3위 / 디즈니 / 토이 연대기 / 138 / 12 / 787
…….
선작수는 2, 3등보다 떨어졌다.
“별수 없지, 어제 선작 찍은 독자가 많으니.”
선작의 위세는 2, 3등보다 떨어졌지만, 다른 게 월등히 높았다.
저 경이적인 추천수와 조회수를 보라.
압도적이다.
“이 정도면 오늘도 1등은 당연히 내 자리겠네.”
연재를 마친 나는 다시 어떤 집필 방식이 내게 어울리는지 생각해 봤다.
“그럼 시놉시스를 정하고 쓰면 다른 글을 쓰더라도 시간당 7천 자가 뽑힐까?”
이에 대한 확인은 간단했다.
“그럼 시놉시스 좀 정리하고 원고는 내일 써볼까?”
아직 황제 로키의 원고는 비축분이 많았다.
현재 시장 기준으로 한 권에 16만 자가량의 글자가 들어갔다. 이걸 편당 5천 자로 나눈다고 치면 1권 32편, 2권 32편에다가 3권이 26편으로 총 90편이 있었다.
어제 오늘 연재한 부분을 제외하면 70편의 비축분이 쌓인 상태.
내일부터는 6편씩 연재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이틀 뒤에 깔끔하게 1권 마지막 부분에서 끝나는 연재. 2권이 궁금해서 다음 연재를 또 볼 것이고, 거기서 난 5일을 더 연재해서 2권 마지막 부분을 밝히지 않은 채 출판 공지를 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2권이 궁금해서 종이책으로 볼 거고, 2권을 보면 또 3권이 궁금해서 보게 될 테니까.
어쨌거나 이미 계획된 연재분의 비축은 해둔 상태이니 차기작 ‘드래곤 나이트’에 어느 정도 시간을 써도 괜찮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투데이 베스트 성적을 확인했다.
순위 / 작가명 / 작품명 / 선작 / 추천 / 조회수
1위 / 이준경 / 황제 로키 / 435 / 1,908 / 29,800
2위 / 헛바람 / 질풍의 마도사 / 730 / 642 / 4,910
3위 / 디즈니 / 토이 연대기 / 838 / 590 / 3,787
…….
그 짧은 순간에도 어마어마하게 성적이 늘어났다.
다른 작품을 압도적으로 짓누르며.
꽤나 흡족스러웠다.
“좋아, 이 기분 좋은 상태에서 드래곤 나이트 시놉을 정리해 보실까?”
곧장 써놨던 드래곤 나이트 원고의 뒷부분을 집필하기 위한 시놉시스를 준비했다.
두 시간 가까이 두 권 분량의 시놉시스를 작성한 후 잠을 청했다.
***
“으, 잘 잤다.”
드래곤 나이트의 시놉시스를 정리하고 잠들었던 새벽 두 시.
그로부터 네 시간이 지난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났다.
방에 걸린 시계를 본 나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엄청 일찍 일어났네.”
졸리면 한숨 더 잘 텐데, 희한하게도 정신이 말짱했다.
결국 내가 할 일은 하나뿐.
“일어났으니 일해야지.”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로 향했다.
컴퓨터를 켠 다음 가장 먼저 한 건 역시나 투데이 베스트 성적 확인.
순위 / 작가명 / 작품명 / 선작 / 추천 / 조회수
1위 / 이준경 / 황제 로키 / 735 / 3,908 / 79,800
2위 / 헛바람 / 질풍의 마도사 / 1430 / 942 / 24,910
3위 / 디즈니 / 토이 연대기 / 2139 / 890 / 19,787
…….
여전히 압도적.
거기서 난 북조아를 접속한 김에 로그인도 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추가로 온 쪽지들이었다.
하나 같이 푸른숲 출판사보다 높은 조건을 제시한 컨택 쪽지였다.
개중에는 푸른숲 출판사에서 성용 형님이 보낸 쪽지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준경 작가님.
푸른숲 출판사 홍성용 대리입니다.
오늘도 전화도 드렸는데 받질 않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조건을 문자로 보내드렸습니다.
“응?”
쪽지가 온 날짜는 어제였다.
휴대폰의 통화 내역을 봤다.
이번에도 역시나 부재 중 통화가 있었다.
그걸 확인한 나는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내가 원고에 집중을 엄청하긴 했나 보구나.”
하기사 그리 집중해서 쓰니 시간당 7천 자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물이 나왔겠지.
어쨌거나 이 새벽에 전화를 걸긴 미안하니 이따가 연락해 볼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문자로 새로운 조건을 보냈다고 했지?”
문자 내역도 확인해 봤다.
성용 형님으로부터 온 문자가 있었다.
내용을 확인한 난 깜짝 놀랐다.
“컥, 이거 진짜야?”
문자에 박힌 조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푸른숲 출판사에서 제시한 조건은 이랬다.
‘8천 부, 14%, 전권 보장.’
이 시기 S급 작가들 중에서도 정말 극소수만 받을 수 있던 조건이었다.
한데 그걸 나 같은 신인에게 주다니.
조건을 보니 어찌 된 영문인지는 대충 감이 잡혔다.
“김두식 사장이 움직였구나.”
그걸 말곤 설명이 되지 않았다.
신인에게 이런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현재 푸른숲 출판사 장도철 부장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김두식 사장을 떠올린 내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엿 먹여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었구나?”
과거로 돌아와서 그저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단 사실에 깜빡 잊고 있었다.
실제로 엮인 양경철하고 강소영, 두 사람 말고도 내가 엿먹여야 할 대상이 또 있었단 걸.
만년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시켜 줄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아들을 앉힌 김두식 사장.
그에게도 한 방 먹여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김두식 사장.
자신의 눈은 정확하다고 여기기에 한두 작품 말아먹어도 끝까지 밀어줬다.
꽂히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면서.
그렇게 성공시킨 작가가 수두룩했다.
“이미 난 성공했으니 최대한 자기 출판사에 묶어두려고 하겠지.”
대부분 작가들은 김두식의 그런 지원을 좋게 봤다. 그래서 유료연재 시장에서 출판사들이 매니지먼트보다 힘을 쓰지 못할 때도 꽤 티어가 높은 작가들은 푸른숲에 남아 있었다.
어쨌거나 당시 남아 있던 상위 티어의 작가들에게 김두식은 더욱 신경을 썼으니까.
그럴 수밖에.
“지금이 2002년도니까…… 이제 2년 사이에 장 부장하고 양 과장이 큰똥을 한 번 거하게 먹여서 작가들이 대거 이탈했지?”
장도철 부장하고 양경철 과장.
두 사람은 직원들 앞에서 깍듯한 상사와 부하 직원의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김두식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들 출판사를 차리려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
김두식 몰래 진행해서 2002년부터 2004년간 푸른숲 출판사의 작가들을 대거 빼갔다.
2004년에 그렇게 뒤통수를 크게 맞은 김두식은 당시 대리였던 성용 형님을 부장으로 고속 승진시키면서 자신도 업무 일선에 잠시나마 뛰어들었다. 그리고 총판에게 단단히 경고했다.
장도철과 양경철이 나가서 차린 출판사 책 받으면 그간 자신한테 받아먹었던 것들이나 같이 탈세 혐의로 다 같이 죽자며.
경고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2004년도에 장도철 하고 양경철이 차린 무한 출판사는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고, 마이너 출판사 중에서도 가장 평이 안 좋던 상상미디어로 들어갔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거기서 또 작가들을 빼돌려서 2008년 무렵 ‘어스름’이란 출판사를 차렸다.
각 출판사들이 공격할 수 있단 걸 감안해서 상상미디어 영업직 한 명을 대표로 앉히면서 말이다.
어쨌거나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두 사람 때문에 푸른숲 출판사가 2004년까지 매우 공격하기 쉬운 상태로 있단 거다.
특히 가장 노리기 쉬운 공격 수단이 확실하게 있었다.
“계약 조건은 김두식 사장이 시켜서 이렇게 하겠지만, 분명히 책은 계약부수대로 찍지 않을 거야. 두 놈이 작가들 빼가려고 일부러 푸른숲 출판사가 제대로 못 판 것처럼 보이게 할 생각으로 인쇄를 덜 찍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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