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21
나는 작가다 121화
121화
또로롱.
글을 쓰던 도중 전화가 왔다.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니 철이다.
난 전화를 받았다.
“어, 철아.”
“이 자식아, 난 이제 오피스텔 겨우 샀더니 뭐? 60억 원짜리 아파트? 아니, 그것도 광해 부대표님이 할인해 준 거고 거의 100억이라며?”
아파트를 산다고 하니 대뜸 난리부터 치는 철이.
녀석에게 절대 내 개인적인 욕구의 구매가 아님을 밝혔다.
“내가 사고 싶다 한 거 아니다.”
“그래, 네가 나한테 말도 없이 저지를 리가 없지. 광해 부대표님이 먼저 전화하고 내용을 들어보니 그쪽에서 먼저 제안한 것 같더만.”
“잘 아네. 어쨌거나 살 수 있겠냐?”
사실 살 수 있냐고 물어보는 자체가 무의미하긴 했다.
법무법인 광해의 부대표인 설아네 어머님이 철이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철이 입장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일 터.
역시나 다를까.
철이는 어떻게 사야 할 지만 이야기했다.
“이 정도 고가의 아파트는 회사 자금으로 안 된다. 잘못하면 세무서가 털러 나올 거야. 게다가 이제 공개석상에 나서기 위해서 준비한 곳이라며? 보나마나 국가에선 네 세금을 뜯어가려고 난리일 거다. 군대 졸라게 돌린 것도 모자라서 예비군으로 굴리면서 해준 것도 좆도 없으면서 세금은 더럽게 떼어가요.”
세금 이야기만 할 때면 국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던 철이.
근데 나도 충분히 이해는 갔다.
도대체 뭘 해줬다고 그리 뜯어가기만 하는지.
어쨌거나 세금 이야기를 열심히 하는 철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개인 돈으로 사라고? 나 돈 없다. 알잖아, 수익 전부 회사에 묶어둔 거.”
“별수 있나, 계약금으로 장부 짜야지.”
“계약금?”
“그래, 성용 형님이 작가들한테 선인세 개념으로 계약금 어마어마하게 가져가셨었는데 너도 한 100억 가져가면 되겠지. 100억이면 60억 주고 아파트 사고, 각종 세금들 낼 비용으로는 충분할 테니까.”
“갑자기 100억을 계약금으로 줘도 되냐?”
“장부야 내가 알아서 합법적으로 잘 짤 거니 넌 걱정하지 말아라.”
“근데 그리 돈 받으면 내후년에 세금 엄청 두들겨 맞는 거 아니냐?”
이게 버는 수익이 적었다가 다음해에 갑자기 커지면 어느 정도 세금 감면되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 번 감면받고 난 뒤로는 세율이 팍 뛰어올라서 아주 골치가 아파졌다.
그걸로 골머리 싸는 작가들이 꽤 있었다.
특히 전자책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갑자기 일 년에 몇 백만 원도 못 벌던 작가들이 몇 천씩 벌었다가 된통 당한 경우가 꽤 됐다.
나 역시 모르지 않았기에 철이에게 물었는데, 녀석은 그럴 걱정일랑 일절 하지 말라더라.
“내가 알아서 한다.”
“알았다. 자식, 겁나 믿음직하네.”
“그럼 나도 거기 아파트 한 채 사주던가.”
은근히 틈나면 집 타령이다.
거기에 대해선 언제나 난 칼같이 대응했다.
“정 부장, 이 대표님께서 저번에도 이야기했지? 자기 집은 스스로 번 돈으로 사라고.”
“에라이, 치사한 놈. 나한테는 지 수익에서 나온 세금 감면시켜 주면 거기서 좀 떼어준다더니 얼마 떼어주지도 않고.”
“어쩌겠냐? 그게 내 주머니로 들어오지 않고 회사 돈이 되어서 그런 건데.”
덕분에 내가 내야 할 세금은 적었고, 거기서 인센티브를 떼어가던 철이 역시 조금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년이면 나 말고도 다른 작가들 세금으로도 꽤 떼어갈 테니 쏠쏠할 것이다.
하지만 철이는 다른 작가들 세금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당장 내 세금에만 충실했다.
“흐흐, 그래도 내후년엔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겠군.”
“뭐?”
“이번 건수로 나도 한몫 두둑이 챙겨야지.”
“이 자식, 왜 사지 말라며 안 말리나 했더니 네 아파트 살려고 그랬던 거냐?!”
어째서 너무 순순히 사도록 진행하나 싶었다.
거기에 대해서 철이는 아까 내가 했던 걸 그대로 돌려줬다.
“아이고, 대표님. 아까 저한테 분명히 자기 집은 스스로 번 돈으로 사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으이그, 됐다.”
말을 말아야지.
어차피 제 일하고 버는 돈인데.
철이 역시 슬슬 농담은 접고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그럼 준비해 둘 테니 이사 준비나 해라.”
“언제 하는데?”
“내일 당장 거래 끝내고, 부대표님은 이틀 뒤에 이사 가겠다고 하셨으니 한 사흘 뒤가 괜찮지 않을까?”
“알았다.”
“그래.”
그렇게 난 철이와의 통화를 마쳤다.
이후 청담동 오피스텔로 이사 올 때 맡겼던 이삿짐센터에다가 연락했다.
사흘 뒤 이사할 것 같은데 시간이 괜찮은지.
다행이 그때 스케줄이 비어 있단다.
정확한 주소를 알아보고 다시 전화 주겠다고 한 뒤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집필에 집중했다.
한바탕 일이 있고 나니 이사 가기 전날까지 별다른 일이 없었다.
덕분에 톱스타 원고도 많이 쌓았다.
이후 난 설아네 어머님이 30%나 할인해 준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깔끔하게 정리까지 한 뒤 다 가고 나자 혼자 거실에 서서 바깥을 쳐다봤다.
인근 아파트들 중에서도 고층에 해당하는데 로얄층.
덕분에 뷰는 참 좋았다.
넓게 펼쳐진 한강과 그 위로 차들이 거니는 대교.
그 주변에는 장난감으로 만든 것처럼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렇게 집에서 바깥을 한 번 본 뒤 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설아네 어머님에게.
“네, 작가님.”
“이사했습니다.”
“어머, 금방 하셨네요.”
조금 더 걸릴 거라 생각했던 건지 오늘 이사했단 사실에 놀라는 설아네 어머님.
그녀에게 난 피식 웃으며 답했다.
“어제 나가주신 덕분이죠.”
“그럼 인터뷰 날짜를 잡아야겠죠? 언제로 할까요?”
“뭐,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요? 후딱 끝내고 글이나 쓰게요.”
“내일 할까요?”
이야 빠르면 좋다고 했더니 바로 내일이라니.
딱히 별문제야 없긴 했다.
난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되고요.”
“제가 SBC 쪽에 문의해 볼게요.”
SBC, 우리나라 공영방송 중 한 곳이었다.
저번에도 각종 보도자료들을 설아네 어머님이 그쪽에다가 흘렸다.
덕분에 뉴스에 내 작품들이 등장하곤 했다.
근데 이번에도 거기에 맡긴다라.
“저 뉴스 타는 겁니까?”
“왜요? 뉴스로 나오고 싶으세요?”
“음? 뉴스가 아닌가요?”
“에이,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뉴스는 기사만 나가야죠. 인터뷰가 나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하긴 뉴스에 출연해서가 아니라 우리 집에서 인터뷰한 장면이 나가는데, 그런 식으로 뉴스로 방송되면 좀 보기 안 좋으려나?
“뉴스가 아니면 어디로 인터뷰를 방송하시게요?”
“당연히 야밤의 TV죠.”
“야밤의 TV요?”
KBC에 연예인들이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인 ‘연예중계’가 있다면 SBC에선 방금 설아네 어머님이 이야기한 ‘야밤의 TV’가 있었다.
“거기 연예인들이나 나가는 곳 아닌가요?”
“작가님도 연예인이잖아요?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배우.”
“아, 배우로 인터뷰하라는 건가요?”
“당연히 시작만 그렇죠.”
“시작만? 그럼 배우로 나갔다가 이준경 작가인 것도 밝히라는 거군요?”
“맞아요, 이미 대본은 그쪽에 우리 전문가들 시켜서 다 짜놨어요.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난 메일로 설아네 어머님이 보내준 대본을 봤다.
간단하게 인터뷰 나온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배우로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는지 물어봤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기야 했다.
당장 내가 다니는 곳들이나 밥 먹으러 가면 사인해 달란 사람들도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 약간 겸손을 보이는 대답을 하라고 적혀 있었다.
그냥 조금 알아보는 정도라고.
이후 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하다가 MC가 속보를 받았다고 하면서 몇 해 전 기부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있다고 대답하면 그게 정말로 태풍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기부가 맞냐고 묻고, 이후 그때부터 작가 이준경이라는 정체가 밝혀지는 내용이다.
대본을 본 난 고민에 잠겼다.
“이런 식으로 인터뷰하는 건가. 뭐, 대충 파악은 했으니 내일 가서 잘하면 되겠네.”
그리 말하고 다시 집필 시간을 가졌다.
신작인 배우물 ‘톱스타’, 벌써 15권에 다다랐다.
수십 권씩 쓰던 앞선 작품들과 다르게 이 정도가 되니 슬슬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분량을 늘리는 방법은 있긴 했다.
그냥 같은 진행들에다가 내가 아는 영화나 드라마들만 고대로 넣고 배우인 주인공의 일상을 쓰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하면 잘나가던 의사물처럼 3천 편에 완결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3천 편, 대개 보편적으로 25편당 한 권으로 쳤으니 100권이 훌쩍 넘는 분량이다.
수술 장면하고 일상 이야기로 마구 장면을 복제하면서 쓰던 것처럼 나 역시 작품만 바꿔가며 연기를 시키면 됐다.
하지만 이렇게 무의미한 복사, 붙여넣기 식으로 내용을 질질 끌고 싶진 않았다.
만약 내가 망한 작가라면 잘된 작품을 어떻게든 붙잡기 위해서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 되면서 썼겠지만, 굳이 난 그러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네임밸류를 지닌 작가였다.
이미 헐리우드에 진출하고 수많은 배우들과 어깨를 견주며 활동 중인 내용까지 진행된 상황.
“흐음, 어떻게 하지?”
슬슬 쓸 내용도 없었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작품을 계속 바꿔가며 연기시키는 걸 제외하면.
고민 끝에 난 결정을 내렸다.
“좋아, 딱 다섯 권만 더 쓰자.”
그렇게 결정을 내린 난 다섯 권치 시놉시스를 작성했다.
헐리우드에다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비고 있는 배우인 주인공 ‘유상준’.
“일단 찍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를 잘 마무리 짓는 걸로 15권을 끝내고…… 16권…… 아, 진짜 연기로는 더 이상 뭐 할 게 없는 것 같은데? 배우들 사이에서의 이슈가 될 게 뭐가 있지? 콜드 버킷 챌린지도 했고, 봉사활동도 했고, 기부천사도 됐고, 좋은 쪽 이야기는 다 쓴 것 같은데…… 좋은 쪽 이야기? 그래, 배우들과 관련된 나쁜 쪽 이야기는 거의 신경을 안 썼구나.”
항상 주인공의 이야기를 쓸 땐 좋은 쪽과 승승장구 그리고 성장만을 그렸다.
아주 간혹 허들이 높은 장애물과 같은 시련도 주긴 했지만, 그 또한 ‘고구마’ 전개가 될 수 있으니 금방 해결시켰다.
그리 생각하다 보니 내가 15권 분량을 쓰면서 안 쓴 게 있단 걸 떠올랐다.
배우들과 관련된 나쁜 쪽 이야기.
마약, 도박, 성추행 등등.
당연히 주인공 입장에선 이런 일을 저질러선 안 됐다.
저런 일들은 거의 평생 매장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
이따금씩 분량을 채우기 위한 뉴스 보도를 통해 저런 사건이 나오면서 주인공은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겠단 다짐하는 장면 정돈 넣긴 했으나 직접적으로 관련지어 쓴 적은 없었다.
그때 난 문득 이걸 이용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이런 이슈가 확산되면서 주인공과 함께 출연하던 배우 하나가 하차하게 되는 건데, 그 배우를 대체할 만한 이가 없는 거지. 그래!”
갑자기 술술 풀린다, 써야 할 내용이.
난 평소 시놉시스를 정리하는 공책에다가 쉬지 않고 연필을 끼적였다.
16권부터 17권까지 헐리우드 영화 한 편과 국내 드라마 한 편을 더 진행하다가 ‘마약 복용 및 성폭행 사건’에 휘말리도록 만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