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26
나는 작가다 126화
126화
“어, 준재야.”
준재가 날 알아보고 다가왔다. 그러자 같이 있던 다섯 명의 사내 역시 따랐다.
역시 리더인 용맹준재로구만.
막상 떠올리니 오글거렸다.
용맹준재라니.
다들 처음에 나랑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근데 이들이 곧 한류스타로 대박을 친 그룹이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요일 일요일은 가수다’라는 특집에 나오던 한참 인기를 끌었던 원로급 아이돌 이후 역대급 성적을 냈다.
‘그러고 보니 ‘도전 백서’가 하는 방송국이 여기 MBS였지?’
도전 백서.
국민 MC 유석진을 토대로 아주 오랫동안 사랑 받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첫 시작이 2006년이었던가?’
아마 팔도를 유람하며 복불복이란 도전을 하고서 그날 끼니를 챙겨 먹는 1박 2일로 여행 가던 예능 프로그램인 ‘먹자살자’랑 양대산맥으로 섰었다.
근데 아마 도전 백서가 일 년간 쫄쫄이 타이즈 입고 하다가 멀쩡하게 입고 어느 정도 입지에 오를 때 ‘먹자살자’가 시작하면서 MBS랑 KBC의 경쟁 예능 프로그램이 됐나 그랬을 거다.
그나저나 준재를 따라온 멤버 중 하나가 물었다.
“준재야, 누군데?”
아샤진수였나?
녀석이 나에 대해 묻자 준재가 답답하단 듯이 쳐다봤다.
“야, 넌 어떻게 준…….”
준재가 진수에게 어찌 날 모르냐며 답답해할 무렵.
비밀 유지가 기억났단 듯이 화들짝 놀라며 어버버거렸다.
“어, 엇! 맞죠?!”
유지의 말에 준재가 진수에게 말하려던 걸 멈췄고, 난 날 알아본 그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아마 맞는 것 같습니다.”
“와, 대박! 저 판타지스타 완전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유지가 내 작품을 보고 좋아한다 말하니 뒤늦게 진수 역시 깨달았다.
“헐, 그러네. 나 TV에서 봤어. 저분, 그분 맞지? 이준경 작가님?”
“맞으시네. 저도 팬입니다. 전 얘처럼 축구팬이 아니라서 처녀작인 황제 로키를 더 재밌어 합니다.”
다들 자기들도 팬이라고 하는 동양신화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더 감사해했다.
한류스타들이 내 작품을 좋아한다고 하니 고맙지.
“이거 영광이네요. 가수분들 이 제 작품도 좋아해 주시고.”
내가 멤버들에게 고마워하자 준재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에이, 형! 속지 마요.”
“응?”
“얘네 그냥 장식품으로 두고 있는 애들이에요.”
장식품이라, 그건 좀 아쉽긴 하다.
이왕이면 소설인데 읽어줘야 그 의미가 있는 거지 않던가?
누군가 꽃의 이름을 불러줘야 그 꽃에게 의미가 있듯이.
준재의 비밀 폭로에 멤버들이 발끈했다.
“야, 읽었거든?!”
“맞아! 축구팬이라면 이준경 작가님 판타지스타는 필독서라고!”
“웃기시네, 인터뷰에서 혹시나 취미가 뭐냐고 하면 독서랍시고 준경 형 작품 읽는다고 하려던 것들이!”
“아, 아니거든?! 아니에요, 작가님.”
다들 억울하단 듯이 쳐다봤다.
그들에게 내가 해줄 말이야 하나밖에 없었다.
“또 읽어주실 거죠?”
안 읽었으면 읽으면 되고, 읽었으면 정주행 한 번 더하면 될 일.
서로에게 기분이 상하지 않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물음이었다.
내 물음에 동양신화 멤버들은 전부 오케이했다.
“당연하죠! 또 읽고말고요!”
멤버들의 대답에 으이그, 소리와 함께 준재가 못 말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리고 다시 날 쳐다보며 방송국에 온 이유가 뭔지 물어봤다.
“그나저나 형은 방송국에 무슨 일이세요?”
“드라마 때문에 왔어.”
“에이, 난 또 내 데뷔 응원해 주려고 오신 줄 알았더니. 그나저나 드라마 때문이라고요? 설마 형 작품 드라마로 제작해요?”
오늘이 MBS 방송국 가요 프로그램에서 데뷔하는 날인가?
일단 드라마에 관해 물었으니 그것부터 정리하잔 생각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근데 왜 드라마 때문에 왔어요?”
“내 직업이 작가 말고 또 뭐더라?”
이렇게 말하니 준재가 바로 알아들었다.
“아! 설마 MBS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에 출연하세요?”
“응.”
“오! 대박! 이번에도 꽤 비중 있는 조연이에요?”
“아니, 주연.”
“헉! 주, 주연요?”
“어.”
내가 주연 배역 때문에 왔다고 하니 준재가 매우 놀라워했다.
“조연 두 번 만에 주연이라니……. 하긴, 형 연기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뒤늦게 납득은 간다는 표정.
녀석에게 난 피식 웃었다.
“비행기 태우지 말아라. 네 말마따나 이제 조연 두 번 해본 게 다인데.”
“에이, 어쨌거나 주연으로 발탁되는 거면 연기 실력은 입증된 거잖아요?”
내게 이런 재능이 있었나 싶긴 했다.
그런 준재의 말에 동양신화 멤버들도 반응을 보였다.
“와, 작가님! 드라마도 찍으세요?”
“예, 그럴 것 같습니다.”
“어떤 거 찍으시는 거예요?”
“불꽃새라고 곧 촬영 들어갈 겁니다.”
“에? 불꽃새요?”
“예.”
갑자기 동양신화 멤버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내가 불꽃새에 주연으로 들어갈 것 같다고 하니까.
그에 대해서 아샤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거 타릭 형이 들어갈 것 같다고 자랑했던 드라마 아니야?”
“그러게?”
“어떻게 된 거예요, 형?”
멤버들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준재가 내게 물었다.
그게 궁금하다면 알려주는 게 인지상정.
어찌 된 영문인지 밝혔다.
“감독님이 나한테 주연을 해달라고 하셨단다.”
물론, 그 뒷배경에는 선아 누님이 계셨지만 말이다.
“그럼 타릭 형이 떨어진 거네.”
“꽤 좋아했는데 아쉽겠다.”
“야, 그렇게 말하면 준경 형이 난처해지잖아.”
그래, 좀 난감하긴 하다.
타릭이란 연예인이 불꽃새 주연 자리에 그리 기대했다고 하는데, 내가 그 자리를 뺏은 격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러고 보니 현대 배경에서 회귀물인 작가들 작품을 보면 항상 나오던 갈등구조이기도 했다.
내가 회귀한 이후 주로 하던 갈등구조이기도 하다.
회귀하고 나서 내가 무언가를 함으로서 인해 누군가는 자기 것을 빼앗겨 버리는 바뀐 미래의 결과가.
근데 항상 생각했다.
결국 주인공이 잘되어야 하는 게 소설이다.
아주 가끔씩 위기가 있어줘야 하긴 했으니 잘 안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위기가 있어도 결국 잘 헤쳐 나가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리고 난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굳이 소설로 치자면 회귀물의 주인공인 셈.
당연히 누군가가 나로 인해 볼 손해보단 내가 볼 이득을, 그리고 내 이득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득을.
그게 맞았다.
나로 인해 기회를 박탈당해 버린 한 사람의 인생보다 더 많은 사람의 인생을 나아지도록 만들 수 있다면 주인공이나 내 입장에선 취할 수 있는 건 취하는 게 맞았다.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등구조에서 ‘포기’란 선택지를 해버린다면 그 작품은 망하니까.
독자들이 원하는 건 남을 배려하는 호구가 아니라 자기가 취할 것들은 다 취하면서 남들에겐 은혜를 베풀 줄 아는 주인공이었으니까.
날 배려하던 준재의 말에 잠시나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가 지웠다.
그리고 아주 뻔뻔하게 말했다.
“아쉽지만 작품에서의 배우를 결정하는 건 감독님이시니까요.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닌 건 같습니다. 꼭 하고 싶다면서 감독님에게 제가 말한 것도 아니고, 감독님 쪽에서 절 쓰고 싶다고 먼저 러브콜을 넣으셨거든요.”
내 말에 동양신화 멤버들은 잠시 멈칫하며 아무 말도 않다가 납득한 표정으로 맞장구쳤다.
“그야 작가님 말씀이 맞네요.”
“맞아, 타릭 형이 좀 아쉬워하긴 해도 감독님이 원하면 그렇게 해야지.”
“이해합니다, 작가님. 저희도 결국 음악방송 감독님들이 안 불러주면 데뷔가 미뤄지고, 불러주시면 데뷔가 당겨질 수 있는 입장이니까요.”
“그래, 원래 연예계가 그런 거지.”
연예계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똑같다.
작가들 역시 연재를 하다가 출판사나 매니지먼트에서 유료 작품으로 팔고 싶다며 컨택이 와야 기성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연재가 아니라 투고를 해서 자기가 직접 회사와 연결할 수도 있었지만, 그 또한 투고한 원고를 보고 회사가 계약하겠단 생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어딜 가든 똑같았다.
필요한 사람을 쓰는 건.
그나저나 이 이야기를 더 해봐야 서로 불편해질 것만 같으니 대화 주제나 바꿀까 싶었다.
“그나저나 준재야.”
“예?”
“오늘 데뷔라고?”
“예, 그래서 전 당연히 형이 축하해 주러 온 줄 알았죠!”
“나한테 데뷔 날짜 이야기도 안 해줬잖아.”
“그, 그거야……. 저 같은 거 신경 쓰기보다 형 일하시기도 바쁠 것 같아서 말씀드리지 않았죠.”
생각보다 준재가 날 많이 신경 썼구나, 하고 느꼈다.
가수물인 ‘싱어송라이터’ 때문에 항상 전화도 하고, 문자도 하면서 대화를 나누던 녀석이었으나 내게 데뷔 날짜를 이야기해 주질 않았다.
“그래도 좀 섭섭하다, 야. 친한 동생 데뷔면 당연히 형이 축하해 주러 가야 모양새가 좋지 않냐?”
“그게…….”
준재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데뷔 날짜는 이야기해 줘야 했던 게 맞다고 생각했는지 난감해했다.
그때 아샤진수가 끼어들었다.
“준재,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녀석도 작가님 배려해서 그런 거예요.”
“음?”
배려해서 데뷔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긴 했다.
방금 전에도 준재가 말하길 내가 바쁜 사람이란 걸 떠올리며 말하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섭섭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축구물 ‘판타지스타’를 통해서 나와 친해진 지훈 형만큼이나 가수물 ‘싱어송라이터’로 인해 친하다고 생각한 동생이 준재였으니까.
하지만 진수는 준재가 날 배려했단 개념이 단순히 그런 선이 아니란 걸 알려줬다.
“저번에 우리 회사 선배님들이 사고 친 게 있어서 요새 음악방송 PD님들이 보이콧했었거든요. 그래서 데뷔시켜 준다고 불러놓고 갑자기 까버린 다음에 안 내보내 줄 수도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요?”
“예.”
보이콧으로 PD들이 ZM엔터테인먼트를 까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기획사 중 한 곳이었건만.
“어쨌거나 그 문제가 이제 좀 풀린 건가요?”
“아직 몰라요. 저희도 이제 매니저 형이랑 가봐서 정말로 오늘 출연시켜 줄 건지 확답을 받아야만 알 수 있거든요.”
“자식아, 넌 그런 일이 있으면 알려줘야지. 형이 동생의 이런 어려운 사정도 몰라서야 되겠냐?”
“죄송해요.”
준재가 차마 데뷔 날짜를 이야기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데, 사정을 듣고 나니 뭐라고도 못하겠다.
그저 할 말이 있다면 이건 준재가 아니라 매니저에게 해야지.
“죄송은 무슨. 그럼 이쪽이 매니저분인가?”
“예, 맞습니다! 이준경 작가님, 팬입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지금 그것보다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릴까 싶은데요.”
“제안요?”
“예.”
“어떤……?”
갑자기 내가 제안할 게 있다고 하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매니저.
그에게 난 제안할 게 뭔지 알려줬다.
“어차피 드라마 감독님하고 미팅 금방 끝날 거거든요. 거의 확정이라서 대본 리딩하는 모습만 좀 보고 싶다 하셔서요.”
“그런데요……?”
“매니저분이 이 친구들하고 가서 음악방송 PD님하고 이야기할 때 선수 좀 쳐주시죠.”
“선수를 치라고요?”
“예, 제가 이번에 MBS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주연 배우로 발탁돼서 왔다가 준재랑 형동생하는 사이라 응원 차 구경 올 거라고요. 해주실 수 있죠?”
어쨌거나 내 입으로 금칠하는 것 같아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나름 잘나가는 국민 스타 작가인 나였다.
내가 응원하기 위해 들른다고 하면 음악방송 PD가 얘들을 까지 않을 터.
매니저 역시 내 제안의 의도가 뭔지 깨닫곤 마치 귀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깜짝 놀랐다.
“헉! 이, 이준경 작가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면 당연히 전달해야죠! 야, 준재야.”
“응?”
“넌 진짜 좋은 형 둔 줄 알아라. 덕분에 오늘 출연 절대 그 빌어먹을 윤 PD 새끼가 못 까겠다. 아차! 제가 작가님께서 계신데 이런 상스러운 말을…….”
이제 진짜 데뷔할 수 있단 사실에 기뻐함과 동시에 기획사에 보이콧하겠답시고 자기가 담당하는 가수들 엿 먹였던 윤 PD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단 걸 좋아하던 매니저.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너무 애들하고 평소 하던 대화마냥 이야기하곤 내 앞이란 걸 깨닫더니 사과했다.
매니저에게 난 씨익 웃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평소에 친한 사람들하고 있을 땐 가끔 쓰는걸요. 어째서 세상엔 그리 빌어먹을 인간들이 참 많은지 말이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