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28
나는 작가다 128화
128화
눈을 감았던 난 코를 조심스레 킁킁거렸다.
거울을 바라보며 준비를 끝내기 무섭게 실제로 행한 연기의 시작이었다.
그러고서 난 천천히 눈을 뜨며 허공의 상대에게 물었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완전히 대사를 전부 치고 상대의 손을 가져왔던 타릭과 다르게 난 그 대사 후 움직였다.
상대의 손을 자연스럽게 가슴 쪽으로 가져오며 대사를 이어서 내뱉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내 정열이 불타오르잖아요?”
그리고 좀 더 상대의 손이 들렸다고 생각한 손을 움켜쥐었다.
딱 여기까지였다.
방금 전 내가 되뇌며 연습한 연기는.
거기서 연기가 끝나기 무섭게 난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
불꽃새의 주인공이 아닌 작가 이준경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됐나요?”
“예, 됐습니다. 앉아주세요.”
이경환 감독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 말이다.
그에게 대답한 뒤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알겠습니다.”
내 연기까지 끝나고 나자 노서준이 타릭에게 물었다.
“어떠냐? 굳이 이야기해야 하냐?”
“저 작가님이 나보다 낫단 거지, 형 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단 듯한 반응.
하지만 노서준은 굳이 타릭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한 답보다 타릭 스스로가 답하길 바랐다.
“아직 그런 말은 안 했다. 그냥 방금 준경 씨 연기를 본 네 감상이 듣고 싶은 거다.”
“정말 잔인하네, 형. 그냥 나보다 더 낫다고 직접 말해주지, 내 입으로 말하게 해서 포기하도록 만들려고 하네.”
“그 말은 너 역시 준경 씨 연기를 인정한다는 거지?”
“으휴, 이렇게 보고 느꼈는데 어떻게 부정하겠어? 작가님의 연기력은 인정하겠어.”
내 연기를 인정한단다.
그 말은 자신의 패배를 시인한다는 걸까?
노서준 역시 타릭이 그런 생각인지 확인했다.
“인정한다?”
“어쨌거나 연기를 잘했단 거지, 나보다 더 잘했다고는 여기 계신 분들이 평가하셔야 하지 않겠어?”
내 연기력에 대해서 인정은 하나 아직 패배하진 않았단 어투.
그에 대해서 노서준은 방금 전 타릭이 스스로 한 말을 되짚도록 만들었다.
“너 방금 한 말 기억 못하냐?”
“무슨 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냐며 쳐다보는 타릭.
그에게 노서준이 갑자기 연기를 했다.
“정말 잔인하네, 형. 그냥 나보다 더 낫다고 직접 말해주지, 내 입으로 말하게 해서 포기하도록 만들려고 하네.”
성대모사처럼 목소리까지 따라한 건 아니었으나 딱 봐도 방금 전 타릭을 그대로 캐릭터화시켜서 연기하며 따라한 노서준.
덕분에 타릭이 양손을 다 들었다.
“에혀, 하여간 이놈의 주둥이. 알았다고. 제가 졌습니다. 됐지?”
“그럼 굳이 다들 누가 더 낫다고 이야기하실 필요는 없겠네요. 경쟁자인 타릭이 먼저 백기를 들었으니까요.”
결국 타릭이 스스로 패배를 시인하자 노서준은 결과에 대해 언급했다.
그에 대해서 선아 누님이 탄성을 자아냈다.
“와, 서준이가 동생 사랑이 가득하네.”
선아 누님의 말에 타릭은 살짝 째려봤다.
차마 대놓고 한참 선배를 노려볼 순 없으니 다소 불만에 찬 눈빛이랄까?
타릭은 선아 누님이 자신에게 한 말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그게 사랑이 가득한 겁니까?”
“이봐, 후배야.”
“예, 선배님.”
“이제 네가 준경이 연기를 보고 인정해서 물러났으니 미안한 마음 없이 좀 쏘아붙여도 되겠니?”
여태까지 자신 때문에 배역에서 밀려났다고 여기는 타릭이었기에 미안해하던 선아 누님이었다.
딱 봐도 그 모습이 보이긴 했다.
내가 아는 선아 누님은 센 언니 스타일 그 자체였다.
한데 타릭에게 꽤나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도 나 때문에 타릭이 배역을 잃었으니 미안한 감정이 앞섰으리라.
하지만 이제 타릭이 내 연기력을 인정하고 밀려날 수밖에 없단 걸 납득했으니 좀 당당해져도 된다 여겼는지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내 연기력이 자신보다 뛰어나서 주연 배역에서 밀려났다고 하나 그 원인 제공을 한 건 선아 누님이 맞다보니 여전히 타릭은 까탈스러웠다.
“선배님께서 이야기하시면 경청해야죠.”
말로는 선배님 말씀을 듣겠다곤 하나 못마땅한 표정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자기가 하는 말을 듣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선아 누님은 타릭에 대해 완전히 나쁜 감정만 품진 않았다.
평소 자신의 스타일대로 꽤나 강렬한 이미지를 드러내며 선아 누님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래도 아예 사람이 안 된 놈은 아니네.”
“예?”
계속 자신에게 조심스러웠던 모습과 달리 다소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듯 보는 선아 누님의 태도에 당황하는 타릭.
그에게 노서준이 피식 웃었다.
“원래 저런 스타일이시다. 괜히 자기 때문에 네가 자기 역할 뺏기도록 만든 것처럼 느껴서 미안하다 보니 조용히 있어주신 거지.”
“서준이가 잘 아네.”
맞다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선아 누님.
그녀에게 노서준이 자기가 모르면 누가 알겠냐는 듯이 답했다.
“저야 단역할 때 선배님을 자주 뵈었으니까요.”
“그랬니?”
“예.”
“어쨌거나 나 이 후배랑 이야기 좀 하마?”
“하시죠. 연기로서도, 인생으로서도 선배로서 가르침을 주는 건 주옥같으니까요. 타릭, 너도 경청해라.”
노서준은 동생처럼 여기는 후배 타릭이 잘되길 빌며 선아 누님의 말을 잘 들으라고 했다.
그의 말이라면 끔뻑 죽는 타릭이었는지 결국 선아 누님의 말을 조용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겠다고. 말씀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그래, 방금 서준이가 한 행동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찌질한 널 그나마 더 나은 배우로서 한층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해준 거란다. 상대의 연기도 알아보지 못해서야 제대로 된 배우일 수 있겠니?”
“그건…….”
정곡을 찔린 것처럼 움찔하는 타릭.
설마 선아 누님이 그런 식으로 훅 들어올지 몰랐다는 반응이다.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는 타릭에게 선아 누님이 되물었다.
“왜? 내 말이 틀렸니?”
“……맞습니다.”
그래, 배우라면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다른 이의 연기도 볼 줄 알아야지.
그건 장르소설 작가들도 같았다.
우리처럼 장르소설 혹 상업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예술직종이라기보단 서비스직종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독자가 원하는 니즈를 맞춰야만 수익을 얻는 게 가능했고, 수익이 있어야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으며 꾸준히 작품 활동이 가능했기에.
그래서 트렌드에 민감하기도 했다.
일단 독자들이 주로 원하는 트렌드를 알아가고, 거기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야말로 대박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으니까.
물론, 이따금씩 이 지름길을 잘못된 길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트렌드를 익히고 자신의 상상력을 펼쳐야 하는데, 그저 대박난 작품을 따라하기만 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제목을 살짝만 바꾼다던가, 아니면 이름과 설정만 조금 건드려서 따라하는 이들이.
비록 장르소설 작가가 독자의 니즈를 맞춰야만 먹고살 수 있다곤 하나 작가다.
그래, 작가다.
자신의 상상력조차 결핍되어선 어떻게 그를 작가라 부르고, 또한 그가 쓴 글을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때문에 정확하게 상대가 쓴 작품을 알아보고, 자신은 어떻게 자기만의 작품을 써낼지 고민해야만 했다.
방금 선아 누님이 타릭에게 한 소리도 같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보다 뛰어난 배우의 연기를 봤으면 거기서 깨달음을 얻고, 좀 더 자기가 하는 연기를 발전시킬 수 있어야만 배우라고.
또한 그걸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해준 게 노서준이었다.
만약 노서준은 타릭 스스로가 깨우치도록 하지 않고, 단순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연기력에서 졌단 이야기만 들으면 인정하지 못하면서 물러날 수도 있을까 우려했으리라.
그러니 선아 누님은 타릭에게 노서준 같은 형을 둬서 정말 운 좋은 줄 알란 듯 이야기한 것이다.
이어서 선아 누님은 정식적으로 타릭에게 사과도 덧붙였다.
“그리고 미안하긴 해. 확실히 내가 이 감독님에게 우리 준경이를 추천해서 주연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네가 밀린 건 맞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너 역시 방금 준경이 연기를 봤으니 알겠지? 쟨 천상 배우야.”
추가로 내 칭찬까지 하는 선아 누님.
그녀에게 난 괜히 멋쩍어서 검지로 턱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저 천상 작간데.”
내 본업은 작가다.
그래서 한 소리인데 선아 누님이 아주 살벌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며 말하길,
“여기선 배우야.”
“……네, 그렇죠.”
뭐라 대꾸할 수가 없다.
센 언니의 살벌한 눈빛에 어찌 대들겠는가?
그렇게 나와 타릭을 정리한 선아 누님은 이경환 감독에게 말했다.
“자, 감독님.”
“예?”
“정리됐으니 마무리지어 주시죠.”
“아, 예! 그럼 타릭 씨도 이제 준경 씨가 주연으로 발탁되는 데 반대가 아닌 걸로 알아도 되겠습니까?”
“예, 납득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앞으로의 촬영 일정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경환 감독은 그 말을 끝으로 나와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불꽃새 촬영 일정이 어떤지 알려줬다.
첫 촬영은 다음 주 금요일부터라고 했다.
‘그 사이에 최대한 원고를 써둬야겠구만. 그나저나 다음 주 금요일이면 정모날 아닌가?’
정모.
정식 모임의 준말로 흔히 인터넷을 통한 단체의 사람들과 모일 때 쓰는 용어였다.
내가 말한 정모는 KN월드에 있는 작가 커뮤니티 정모를 일컬었다.
인터넷으로만 작가들 그리고 독자들과 소통하던 난 슬슬 현실에서도 한 번 모여서 만날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다고 독자들까지 모으면 복잡하니 작가들만 해가지고 정모를 잡아뒀었다.
정모는 너무나도 성황을 이뤘다.
오겠다는 작가만 쉰 명이 훌쩍 넘어갔다.
한데 너무 많은 인원이 모인다고 하면 꽤나 난감했기에 딱 쉰 명까지만 잘랐다.
선착순 순으로.
사실상 쉰 명도 많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해야 우리 K E&M의 위대함이 알려지리라.
50명까지 받은 뒤 5성급 호텔을 빌렸다.
당연히 뷔페도 추가했으며 이번엔 첫 정모니 회비 없이 무료로 진행한다고 했다.
당연히 한두 푼이 아니니 난 커뮤니티에서 내게 쪽지로 자기 인적사항을 보내도록 시켰다.
그걸 제대로 작가들에게만 초대장을 보냈다.
한두 푼짜리 정모도 아닌데 자기 자신도 제대로 못 밝히는 작가들은 참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연재사이트인 ‘KN월드’가 우리 것이기 때문에 굳이 일일이 회원 정보를 뒤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괜한 인력이나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떳떳하지 못한 작가라면 내 쪽에서 사양이었다.
불꽃새의 첫 촬영 날짜와 우리 KN월드의 작가 커뮤니티 첫 정모 날짜가 겹친다는 걸 알게 된 난 이경환 감독에게 물었다.
“저, 감독님.”
“예?”
“제가 그날 저녁에 약속이 있는데요.”
“그러십니까?”
“예. 제가 미루고 싶어도 꽤 중요한 약속이라서 말이죠.”
내가 첫 촬영날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하니 이경환 감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준경 씨 첫 촬영은 일요일로 미루죠.”
원래 이렇게 배우가 미루자고 하면 미뤄주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될까요?”
이런 내 물음에 선아 누님이 쏘아붙였다.
“그래도 되긴, 뭐가 그래도 돼? 그나마 너니까 밀어주는 거지, 만약에 다른 배우였으면 너 자르고 다시 타릭 저 아이한테 배역을 넘겨줬을걸?”
평범한 배우였더라면 어림없단 소리다.
나니까 가능한 일이란 말에 괜히 미안하면서도 뿌듯하다.
작가 이준경, 너란 놈의 위치가 이렇구나.
하지만 겸손은 잃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정말 중요한 약속이라서요.”
이런 내 겸손에 오히려 이경환 감독이 손사래 쳤다.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대신 미루신 만큼 연기는 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히려 날 배려함과 동시에 부탁하는 이경환 감독에게 난 싱긋 웃으며 화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첫 촬영날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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