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29
나는 작가다 129화
129화
불꽃새의 미팅이 끝난 이후 난 집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원고를 쌓았다.
흔히 ‘비축분을 쌓는다’라고 표현하는 행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본래 불꽃새의 첫 촬영날인 다음 주 금요일에는 KN월드 정모가 있었으며, 그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촬영에 임해야 했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작품 ‘싱어송라이터’의 원고를 쌓으며 지내다 보니 KN월드 정모 날짜는 금방 다가왔다.
정모의 장소는 KN타워 옥상에서 하기로 했다.
혹여나 비가 온다면 근처 술집을 빌릴까 했는데, 다행히도 하늘이 날 도와주는지 날씨가 좋았다.
옥상에서 KN월드에 가입한 작가들과 정모를 열었다.
100명도 넘게 모였다.
기성 작가만으로 이랬다면 엄청났겠으나 당연히 이 수는 KN월드에 일정 분량 이상 성실하게 연재한 사람들도 포함시킨 수다.
처음에 성용 형님이나 철이는 반대했다.
그냥 회사에 도움이 될 안정적인 기성 작가들만 불러도 충분할 텐데, 굳이 아직 책도 내본 적 없는 신인들마저 불러서 회사 자금을 써야겠냐며.
모르는 소리다.
유료 연재를 시작한 지금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건 성실한 신인들이었으니까.
아직 전자책 시장의 섭리를 모르니 그러는 것도 이해 못할 바까진 아니다만.
나중에 돈이 벌리면 이런 내 원대한 계획을 이해하겠지.
어쨌거나 괜히 취해서 누군가 이 뜻깊은 첫 모임을 난장판으로 만들면 안 됐으니 술은 샴페인으로 통일했다.
입에 안 맞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그건 준비한 샴페인 가격을 이야기하면서 아무 말도 못 나오게 만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입맛에 맞지 않아도 비싼 거라고 하면 일단 먹고 봤으니까.
마치 카지노와 같은 분위기로 서빙 아르바이트생들을 섭외한 뒤 자유롭게 지나가면서 한 잔씩 들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오기로 한 인원들이 얼추 다 모이자 대외적인 대표인 성용 형님이 앞에 깔아놓은 무대에 올라섰다.
그곳에 있는 마이크를 잡았다.
-퉁퉁!
마이크가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몇 번 툭툭 건드리는 성용 형님.
-아아, 마이크 테스트. 원투쓰리.
단순히 마이크 테스트뿐만 아니라 KN월드 정모에 도착한 작가들이 모두 쳐다보는 효과도 만들어냈다.
다들 자신을 쳐다보고, 마이크 테스트도 끝난 성용 형님이 말했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K E&M의 대표 ‘홍성용’이라고 합니 다. 급하게 꾸린 모임이라 부족한 점이 많으나 다들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다들 모이시느라 시간이 늦었으니 저녁 식사부터들 하시고 이후 일정으로 저희 K E&M에 대해 궁금한 분들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그렇게 성용 형님은 간단하게 K E&M 정모를 시작했고, 저녁 식사부터 하자고 했다.
나와 성용 형님과 직원들 그리고 초창기 K E&M와 계약한 작가들과 한 테이블에 있었는데, 몇몇 작가들이 날 보기 위해서 저녁도 거르고 다가왔다.
그중 인상 깊었던 건 십 대로 보이던 소년 작가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준경 작가님!”
“반가워요.”
“존경합니다!”
“황제 로키 팬입니다!”
“전 작가님 모든 작품 팬입니다!”
십 대 작가들이 하나같이 몰려와서 내게 적극적으로 팬심을 드러내자 난처하게 웃었다.
“하하…….”
배우 이준경이 작가 이준경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가다 보면 팬이란 사람들과 마주하곤 했다.
특히 독자들이.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일반인 독자였고, 이들은 작가였으면서 내 팬이라고 다가왔다.
게다가 하나같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 이십 대에서 삼십 대가 된 후 전자책 시장 순위권을 휩쓸던 이들이다.
이들은 지금이야 모르겠지.
생각해보니 저 중 테이밍 나이트가 처녀작인 영찬 작가의 경우 나랑 작업했던 이기도 했다.
꽤나 손도 빠르고 성실하다 보니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여섯 질이나 갖게 됐는데, 그중 세 번째 작품을 나와 함께 작업했었다.
‘그때 많이 힘들어했지.’
시장이 좋지 않아 돈을 벌지 못해서?
천만에.
영찬이란 작가는 오히려 중박 이상만 내던 작가다.
종이책 시장에서 나이가 어리단 것만 아니었으면 S급으로 분류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하지만 이 시장이 워낙 좁고 폐쇄적이다 보니 종이책 시장에선 A급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미 S급 위치에 오른 나이 많은 작가들이 어리다고 깔보고, 자신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기어오를 수 있단 생각으로 각 출판사들에게 압박을 줘서였다.
영찬이란 작가가 어린 주제에 돈만 밝히고 싸가지도 없으니 나랑 작품 할 생각이 있으면 대우를 좋게 해주지 말라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시장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싹을 잘라 버리다니.
고인물의 썩은 내가 진동해도 엄청나게 진동한 일이었다.
덕분에 영찬 작가는 잘 챙겨주던 내겐 고마워했지만, 당시 푸른숲 출판사에서 그를 견제하던 나이 많은 작가들과의 친분 때문에 홀대하여 좋아하질 않았다.
오죽하면 나한테 이리 말하기까지 했다.
“준경 형님, 전 형님이 좋습니다. 하지만 푸른숲은 아닙니다.”
그리 말하면서 다음 작품은 새로 시장에 뛰어든 출판사와 해야 될 것 같다 했다.
여기서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뻔히 능력 있는 친구인 걸 알면서 난 힘이 없어서 챙겨줄 수 없으니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네게 더 잘해주는 회사가 있으면 가도 된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너만 생각하고 움직여라’ 등 이야기하며.
영찬 작가는 이리 말해준 내게 고마워했다.
자기도 모르지 않았다.
담당하는 작가가 다른 출판사로 가도록 놓친다?
편집자 입장에선 상사에게 대차게 까여도 할 말이 없는 소리였다.
비록 그게 출판사가 잘못했던 일이더라도 작가를 제대로 구슬려서 붙잡지 못한 편집자 잘못이었으니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딱 나와 작업하던 작품을 끝낸 영찬 작가가 다른 출판사로 옮기기 무섭게 난 사장인 김두식과 장도철 부장에다가 양경철 과장에게 쉬지 않고 욕을 먹었다.
이런 걸 영찬 작가 역시 잘 알았다.
나름 이 출판사, 저 출판사에 있던 고인물인 작가들에게 호되게 당하면서 여기저기 옮기며 출간하며 편집자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던 녀석이니까.
때문에 자신이 다른 출판사로 옮기면 담당자인 내가 어떻게 될지 아는데, 그 모든 걸 감수하고도 자신이 나은 쪽으로 가라고 말해준 내게 매우 고마워했다.
하기야 지금 영찬 작가는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성용 형님은 영찬 작가를 필두로 내 팬이라고 다가온 십 대 작가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좋겠다. 작가와 독자의 모임도 아니고 작가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다 네 팬이라고 하니까?”
내 팬이라고 한 십 대 작가들을 보면서 난 내 기억력 테스트를 해봤다.
이 십 대 작가 무리는 내가 알기로 가장 잘 똘똘 뭉치며 각종 출판사와 나이 많은 작가들 속에서 갑질을 이겨내고 전자책 시장에서 탑티어로 분류되던 이들이다.
기억을 조금만 더듬으면 다 알 수 있는 작가들이란 소리.
영찬 작가를 필두로 다른 십 대 작가들의 필명마저 떠올린 뒤 난 한 명씩 호명하며 내가 그들에게 관심이 있음을 밝혔다.
“좋죠. 저도 이 친구들 팬이거든요. 거긴 테이밍 나이트 쓰시는 영찬 작가님이고, 그쪽은 피닉스 마스터의 재민 작가님이시죠? 그리고 나머지 세 분은 각각 골든스미스랑 묵환도 그리고 학사궁전을 쓰셨고요.”
내가 정확하게 다섯 명의 십 대 작가들이 뭐하는지 알아내자 다들 화들짝 놀랐다.
감탄과 경악에 찬 표정으로.
“헉! 어떻게 저희 작품을!”
알 수밖에 없다.
내 편집자 짬밥이 몇 년인데.
더욱이 한참 시장이 호황기일 때 잘 나가던 작가들인데 까먹으면 안 됐지.
“전 다른 분들하고 다르게 십 대 작가님들을 높게 평가합니다. 이삼십 대가 넘어서도 하기 힘든 일인데 그 나이에 벌써부터 한 명의 작가로서 떳떳하게 자기 작품을 구축하고 쓴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니까요.”
어쨌거나 매우 놀라워하는 십 대 작가들에게 난 현재 그들을 괴롭히는 나이 많은 작가들과 다른 사람이란 걸 어필했다.
지금은 우리 회사와 계약하지 않은 작가들이었으니까.
자신들에게 관심도 있고 호의적인 내가 다음 작품을 우리랑 계약하자고 하려면 이보다도 더욱 그들이 좋아할 것들도 해줄 수 있었다.
아직 미성년자라 유흥에 찌든 성인 작가들보다 더 순수하게 보듬어줄 수도 있었고 말이다.
끽해야 십 대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거나 좋아할 만한 게임에 관해서라던가.
아니면 내 블로그에다가 추천글만 써줘도 이들은 정말 날 호의적으로 여기리라.
하지만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어보였다.
이미 내가 자신들에 대해 잘 알고, 다른 어른 작가들처럼 여기지 않는다고 하니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저, 정말 그리 생각하시나요?”
“그리 생각합니다.”
“역시 준경 작가님께선 대단한 작가님답게 편견이 없으시군요!”
피닉스 마스터의 재민 작가가 큰 키만큼이나 기다란 양쪽 엄지를 척 세우며 내게 감탄했다.
편견이 없다.
아마도 현재 자신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선배 작가들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리라.
당연히 난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미 안다는 듯이 이야기하기보단 십 대 작가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공감해 주기가 더 나은 선택지일 터.
난 모른 척하며 재민 작가를 쳐다봤다.
“편견요?”
“막 나이 많은 선배님들께서 만나면 고작 십 대가 써봐야 뭘 하겠느냐든지, 아니면 돈이나 밝힐 줄 알고 어리다면서 뭐라 하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역시나 다를까.
지금 시기의 십 대 작가들에겐 가장 큰 난관이었다.
나중에 전자책 시장이 열리면 출판을 하는데 출판사의 힘보단 작가 본인이 연재만 잘하면 되니 이런 갑질은 줄어들었지만, 지금 종이책 시장에선 이런 말도 안 되는 갑질들을 당해야만 했다.
어리단 이유로.
생각해 보면 참 나이가 벼슬인가 싶기도 했다.
재민 작가가 한 말에 다른 십 대 작가들은 눈치를 봤다.
자신들을 그리 한 작가들도 이 정모에 참여했기 때문이리라.
그걸 재민 작가 역시 뒤늦게 깨달았는지 눈치를 살살 봤다.
이 십 대 작가들에게 난 힘이 되어주고, 나중에 그들은 우리 K E&M의 힘이 되어주길 바라며 물었다.
“이 자리에도 있나요?”
“그게…….”
방금 이야기를 했던 재민 작가 포함 십 대 작가들의 시선이 여기저기 돌아갔다.
한둘이 아니라 꽤 있는 것 같다.
특히 그들의 고개는 살짝 뒤로 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뒤에 한 작가가 서 있었기에.
어쨌거나 난감해하는 십 대 작가들에게 난 잘 알겠단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있군요.”
“아, 아닙니다.”
내가 좋다고 찾아와 이야기했다가 막상 자기들이 언급한 작가가 바로 뒤에 있단 걸 깨닫고선 다급하게 부정하는 십 대 작가들.
귀엽다.
그들에게 난 피식 웃으며 일단 밥부터 먹으라고 했다.
배가 든든해야 일도 열심히 하지.
“아니긴, 무슨. 일단 식사들부터 하세요. 제 인세 털어서 준비한 자리인데 우리 장르시장의 미래인 여러분이 굶으면 제가 안타깝거든요.”
“넵!”
그때 학사궁전을 쓴 작가가 내 황제 로키를 챙겨왔는지 1권을 들이밀며 부탁했다.
“혹시 작가님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근데 K E&M에서 재판한 게 아닌 푸른숲 출판사에서 찍어낸 초판이었다.
“이거 푸른숲 출판사에서 찍었던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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