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30
나는 작가다 130화
130화
“옙! 제가 이때부터 작가님 팬이었습니다.”
학사궁전의 백일 작가가 푸른숲에서 찍은 황제 로키 1권을 더욱 들이밀면서 내 팬이었다고 사인해 달란다.
백일 작가에게 난감한 표정으로 반응했다.
“근데 어쩌죠?”
“예?”
갑자기 내가 난감해하자 당황하는 백일 작가.
아직 십 대의 순수함이 있는 작가들이다.
그에게 난 씨익 웃어줬다.
“전 이왕이면 K E&M에서 나온 책에 사인을 해드리고 싶은데……. 홍 대표님.”
K E&M에서 찍은 책에다가 사인해서 주고 싶다 대답한 난 성용 형님을 불렀다.
성용 형님은 내가 십 대 작가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자 직원들과 밥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부르자 입에 스테이크 한 조각을 문 채 쳐다봤다.
“응?”
“황제 로키 양장본 다섯 세트만 좀 챙겨주세요.”
다섯 세트를 챙겨 달라고 하자 성용 형님이 아주 찰떡같이 이해했다.
“우리 장르의 미래인 여기 작가님들에게 드리게?”
“예.”
내가 황제 로키 양장본을 챙겨주려고 할 때였다.
십 대 작가들이 다들 손사래 치며 사양했다.
“아, 아닙니다! 저희 다 양장본도 있어요!”
“아, 그래요?”
이미 있다고 하면 줄 필요야 없지.
거기서 내게 사인을 부탁했던 백일 작가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예! 작가님께서 양장본에 해주시고 싶으면 지금 가져올게요! 그것도 1권 챙겨왔어요!”
아마도 푸른숲 출판사에서 찍은 황제 로키가 더 이상 나올 일이 없으니 초판이란 희귀한 책에 내 사인을 받아두고 싶었으리라.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내 유명세가 높아지면 귀해질 물건이 될 테니까.
하지만 푸른숲 출판사한테 찍은 책에다가 사인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백일 작가가 양장본 1권을 가지고 오려면 다시 자리에 가야 할 테니 일단 난 십 대 작가들에게 식사부터 하라고 말했다.
그들의 적과도 같은 뒤에 선 작가와 대화하기 위해서.
“후후, 그럼 일단 식사부터 먼저들 하세요. 이따가 해드릴 테니까. 식사를 든든히 해야 좋은 생각도 하고, 좋은 작품도 나오는 거니까요.”
다들 식사부터 하고 오라니까 하나 같이 백일 작가를 나무랐다.
“하여간 넌 눈치가 없냐? 식사하시는데 사인이라니!”
“맞아, 백일.”
다들 백일 작가를 나무라자 내가 말렸다.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저도 제가 존경하는 작가님을 뵙게 된다면 사인이 받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를 거니까요.”
이렇게 백일 작가를 챙기자 십 대 작가들은 다시금 또 날 존경하듯 바라봤다.
“이해심이 엄청 넓으시구나. 과연 대박 작가님은 다르셔.”
“하하, 너무 비행기 띄워주지 마세요. 저도 여러분과 같은 한 명의 작가니까요. 자, 그럼 식사하고 봅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십 대 작가들에게 식사하라며 보내고 나자 뒤에 서있던 한 작가가 중얼거렸다.
“하여간 싸가지 없는 어린놈들…….”
대관절 누가 누구한테 싸가지가 없다고 하는지.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
난 그가 누구인지 잘 알았다.
현재 황궁책사라는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던 아더만 작가였는데, 부수가 좀 줄어든다는 시장에서 신작으로 2쇄까지 했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중간에 원고를 오랫동안 안 써서 부수가 꽤 떨어져서 20권은 쓸 수 있던 작품을 고작 8권으로 끝낸 이였다.
아마 지금 시기면 이제 막 3권 낸 뒤 몇 개월 쉬다가 막 4권이 나갈 무렵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 진형이가 꽤 골머리를 썩었지.’
이진형이라는 페이퍼 출판사 담당자가 그랬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데다가 동갑이었던 녀석이라 꽤 친했다.
당시 녀석은 나와 술을 마시면서 자기가 담당했던 작품 중 아까운 걸로 ‘황궁책사’를 자주 꺼냈다.
성실하게만 쓰면 진짜 지금 시장에서 역대급 작품이 하나 나올 수 있다고 여겼는데, 아더만 작가가 쓰질 않아서 완전 망해 버렸다면서.
담당 작가의 작품 성적은 담당 편집자의 커리어이기도 했다.
더욱이 그 담당 작가의 작품이 대박이라도 친다면?
보너스도 받을 수 있는 일이다.
근데 아더만 작가가 그런 기회를 날려 버렸으니 담당 편집자인 이진형의 입장에선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진형이도 데려온다면 우리 회사에 꽤 큰 도움이 될 텐데.’
날 포함해서 정말 10년 넘게 이 업계에서 버텨온 편집자는 스무 명도 안 됐다.
그중 하나인 진형이는 페이퍼 출판사에서 정말 아득바득 버티며 수많은 작가와 업체 간 연락망을 챙기고 인간 관계까지 완벽하게 해내며 전자책 시장에서 성용 형님 다음으로 잘나가는 매니지먼트를 차렸다.
그런 일 잘하는 녀석을 데려올 수 있다면야 회사 입장에선 좋지 않을 수가 없다.
굳이 자기가 매니지먼트를 차려서 잘하겠다면야 모르겠다만, 어차피 내가 시장을 집어삼킬 생각까지 한 걸 감안하면 나중에 스마트폰이 활성화되면서 커지는 전자책 시장에서 매니지먼트를 차려봐야 손해가 될 것이다.
모든 작가가 우리 K E&M에 들어오고 싶어 할 테니까.
어쨌거나 진형이를 떠올리게 만들어준 아더만 작가가 내게 물었다.
“자네가 이준경인가?”
“누구시죠?”
현재 난 누구인지 몰라야 정상인 상황.
때문에 아더만 작가에게 누구냐고 물었는데, 그런 내 옆에 있던 성용 형님이 알아보곤 먼저 그의 필명을 언급했다.
“아, 아더만 작가님.”
황궁책사 이전에도 중박을 쳤었고, 이후 황궁책사로 점점 평균 부수가 줄어드는 시장에서 2쇄까지 한 대박 작가.
그래 봐야 성실하지도 않은 데다가 인성이 쓰레기여서 망하게 될 작가였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아직 4권 부수가 어느 정도로 하락하는지 몰랐기에 3권 부수까지의 성적만 가지고 고개 한 번 겁나 뻣뻣하게 세우고 다녔다.
보통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썩어야 고개를 숙이는 인간이다.
4권 부수가 폭락한 뒤에 조금 이 고개를 조금 숙이고 다녔던 것처럼.
하지만 아직 그런 미래의 일은 나 말고 아무도 몰랐으니 적당한 대우는 해줬다.
그래 봐야 우리 장르시장의 미래인 십 대 작가들에게 갑질한 놈이기에 쪽을 제대로 줄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아아, 이분이 아더만 작가님이세요?”
“그래, 내가 황궁책사의 아더만 작가네.”
아주 당당하게 자기 작품명과 필명을 밝히며 초면에 반말을 일삼으며 손까지 내민다.
급으로 치면 나한테 비빌 수 없었지만, 자기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성적의 작가였는데다가 나이가 나보다 열 살은 많았으니 자신이 위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래, 나이가 나보다 위인 건 맞지.
하지만 나보다 위는 아니다.
경력도, 성적도.
그런 주제에 나이 하나 가지고 자기보다 어린 작가들을 짓누르는 작가.
이런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중에 유명해지는 인터넷 용어인 ‘고인물’이란 말이 제일 어울렸다.
그래, 고인물 시장이었다.
그 고인물 중 대표적인 한 명인 아더만 작가.
난 적당한 수위를 지키며 찔렀다.
“황궁책사, 괜찮은 작품이었죠. 중간에 쉬지만 않으셨어도 더 잘 팔렸을 텐데 아쉽기도 했고요.”
내 말에 갑자기 아더만 작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입술도 씰룩거리며 꽤나 기분 나쁜 기색을 내비췄다.
“마치 그 말대로면 내가 쉬어서 4권은 증쇄를 하지 못할 거란 것처럼 들리는군?”
자기보다 아래인 놈이 원고로 뭐라고 하니 기분은 안 좋은가 보다.
그럼 제대로 원고를 쓰던가?
여기서 난 아더만 작가의 양심을 찌를 방도가 있었다.
“그냥 아쉽다고요. 진형 씨가 정말 아쉬워했을 것 같아요.”
아더만 작가의 담당자인 이진형.
그를 언급하니 아더만 작가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크흠, 그건 그때 다 사정이 있어서 좀 다음 권 원고를 쓰는 기간이 길어졌을 뿐이네. 그나저나 진형이를 아나?”
“그냥 오다가다 이름만 들었습니다. 페이퍼 출판사에서 일 잘하는 분이 계시다고요.”
아더만 작가는 내가 이진형과 잘 아는 사이인 건 아니고 일 잘한다고만 들었다 하니 갑자기 안도감을 내비치더니 꽤나 자랑스레 떠들어댔다.
“암, 잘하지. 누가 키웠는데.”
“예?”
일순간 난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누가 누굴 키워?’
근데 이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이상한 일은 맞다.
단지 이 썩어빠진 고인물 시장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란 거다.
많았다.
나이 많은 작가들이나 편집자 경력 좀 된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자기가 키웠단다.
아주 누가 보면 정력왕인 줄 알겠다.
키운 자식만 수십은 될 거다.
이런 고인물들이 하는 말을 보면.
순간 진형이를 자기가 키웠단 말에 내가 놀라자 아더만 작가는 자랑스레 떠들어댔다.
“진형이가 그렇게 일을 잘할 수 있던 건 다 내가 담당으로 있으면서 잘해줬기 때문이니 내가 키웠지.”
담당으로 있던 이진형을 자기가 잘 키웠다.
개소리다.
오히려 진형이가 아더만 작가 황궁책사가 잘나가도록 도와준 은인이건만.
하여간 이놈의 고인물들은 뭐든 자기가 키웠단다.
나이 어린 작가들 중 누가 잘나간다 그러면 자기가 키웠다고.
작가고, 편집자고 할 거 없이 다들 그러더라.
거기에 대해서 난 찔리라고 한마디를 던졌다.
“와, 진형 씨랑 만나면 이야기해야겠네요. 아더만 작가님께서 키워주셔 가지고 그리 일을 하시게 된 거라고.”
“흠흠, 진형이는 나름대로 자기가 열심히 해서 컸다 생각할 텐데. 내가 도와준 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 정도니 이야기 안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막상 뒤에선 그렇게 떠들어대도 정작 진형이 앞에선 못하는구만.’
다들 그랬다.
정작 본인 앞에선 못 말하면서 뒤로는 뭐 그리 말이 많은지.
다들 주둥이가 입이 아니라 엉덩이에 달려서 더러운가 싶었다.
이걸로 고생한 작가들을 많이 봤고, 편집자들 많이 봤기에 아예 이런 썩어빠진 악습은 끊어버리고 싶었다.
일단 그 첫 번째 타자는 아더만 작가다.
난 계속해서 그를 쪼았다.
“왜요? 이렇게 일 잘한다고 자랑스럽게 키워주신 작가님이 계신데 진형 씨도 뿌듯하겠죠.”
진형이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꿋꿋이 이야기한다고 하자 슬슬 아더만 작가가 윽박을 지르는 걸로 태세를 바꿨다.
“아니, 자네는 작가란 사람이 말귀가 왜 이리 어두운가?”
“제가 무슨 말귀가 어둡습니까?”
“진형이 스스로 컸다고 자부심 느끼며 편집자 생활할 수 있게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방금 하지 않았는가?”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슬슬 이제 그딴 소리하지 못하도록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겠다.
“아니, 그럼 아더만 작가님은 자기가 키웠다느니 하는 소리를 저한테 하지 마셨어야죠.”
“뭐?”
설마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한 나한테 이런 소리를 들을 줄 몰랐는지 황당해하는 아더만 작가.
“그렇잖아요? 진형 씨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고 혼자 잘 키웠다 생각하면서 뿌듯해하실 거면 애초에 떠들지 마셨어야죠?”
“아니, 자네가 진형이 이야기를 꺼내서…….”
“네, 꺼냈죠. 진형 씨, 일 잘한다고요. 근데 자기가 키웠다고 이야기를 꺼낸 건 아더만 작가님이시잖아요? 작가란 분이 이야기 전개의 중심이 뭔지 파악도 못하시는 건 아니죠?”
방금 전 나한테 작가란 놈이 말귀가 어둡다고 떠든 것에 대해 제대로 복수하자 아더만 작가의 말문이 막혔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