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32
나는 작가다 132화
132화
“응?”
아더만 작가와 관련된 내막을 모두 알던 나와 다르게 성용 형님 입장에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나 보다.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2쇄까지 한 대박 작가가 증발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와닿기 어려운 이야기이긴 하지.
난 대충 둘러댔다.
“딱 봐도 최근에 연결권 늦게 나온 거 보면 각 나오잖아요. 불성실해서 스스로 고꾸라질 겁니다.”
“뭐, 네가 그렇다면야…….”
이미 몇몇 성용 형님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서 성공시켰던 나다.
그러니 이제 내 말이라면 다 믿을 수밖에 없던 성용 형님이었는데, 왠지 아더만 작가에 대한 미련이 남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리된 김에 난 아더만 작가를 쳐낸 걸로 어떤 이득을 보게 됐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깨달았다.
“안 되겠다.”
“응? 뭐가 안 돼?”
성용 형님은 뜬금없는 내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게 난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식사들 끝나면 걍 진행, 제가 할게요.”
“네가 한다고?”
본래 진행은 대표인 성용 형님이 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왠지 다들 아더만 작가 건으로 날 쳐다보고 있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선 내가 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예, 그냥 깔끔하게 싹 정리하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
“이번만 제가 대표처럼 행세할게요.”
작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K E&M에 대해 떳떳하게 이야기하려면 대표여야만 했다.
때문에 성용 형님에게 맡겼던 건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내가 하는 게 맞았다.
그렇다면 작가들에게 작가가 대표인 회사란 걸 알려줘도 괜찮다고 여겼다.
작가가 대표라고 다 믿을 만한 회사가 아닌 경우도 있긴 했다만, 내가 그런 회사들처럼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회사의 주인이 작가이기에 믿을 수 있는 곳.
그런 인식을 심어줘야겠다.
이런 식으로 나서기 위해서 지금만 대표 행세 좀 하겠다는데, 오히려 성용 형님을 그런 걸 뭐하러 부탁하냐고 했다.
“야, 말만 내가 대표지. 원래 네가 대표 맞지, 그걸 왜 나한테 부탁하냐?”
“형님한테 전권을 드렸잖아요.”
“에이, 그거야 회사 업무에 관해서잖아. 겉으로는 걍 네가 대표라 하고 막 떠들어도 된다.”
자신을 정말 믿는다면 대표로서의 달라던 전권.
어디까지나 그건 내가 회사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글만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성용 형님에게 대표로서의 체면을 세워줘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성용 형님은 그런 체면은 필요없단다.
자신에게 믿고 맡긴 회사를 잘 운영하는 것만 원했던 것이다.
따라서 대외적인 곳에서 K E&M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표로서 할 게 있으면 막 하란다.
그렇게 말하니 왠지 모르게 나도 두 눈을 빛냈다.
“진짜 막 떠들어도 돼요?”
“……수위 조절 조금만 하자. 방금 너 보니까 무섭더라.”
은근히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감당이 안 될까 봐 수위 조절을 부탁하는 성용 형님.
하기야 이런 모습들은 내가 정말 화가 날 때나 내비췄으니까.
지금의 성용 형님도 본 적이 없으려나?
“그러고 보니 형님은 제가 이런 모습 보인 적 없죠?”
“있지.”
“음?”
있었나?
내가 기억을 더듬어볼 무렵 성용 형님이 언제 봤는지 밝혔다.
“게일 작가나 푸른숲 사람들한테도 그런 모습들 보였었잖아.”
“아아, 그렇긴 하죠?”
“새삼 네가 적이 아니라 다행인 것 같아.”
“저도 형님이 같은 편이라 든든합니다.”
“말만이라도 고맙구만.”
“말만이라뇨. 참나, 가슴 열고 제 마음을 보여드릴 수도 없고.”
양손으로 가슴을 뚜껑마냥 잡고 여는 시늉까지 보였다.
그런 내 모습에 성용 형님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됐고, 그래서 뭐하려고?”
“어디 보자. 다들 방금 전 일 때문에 식사에 집중을 못하시네.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요.”
“지금 당장 진행하게?”
“예.”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기대하시죠.”
난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향했다.
거기서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K E&M 대표 작가 이준경입니다.
“와아아!”
짝짝짝!
방금 전 내게 왔었던 십 대 작가들이 스타라도 만난 것처럼 즐겁게 박수를 쳤다.
말고는 다들 조용히 침묵한 채 날 쳐다봤다.
작가들이 과묵한 편?堅?하지.
하지만 과묵한 걸 떠나서 불편한 표정인 작가들도 꽤 있었다.
아마도 어린 내가 나이 많은 아더만 작가한테 막 대한 것에 대해 불편한 작가들일 거다.
몇몇은 아더만 작가랑 친하거나 비슷한 작가일 거고, 몇몇은 정말 순수하게 좋은 취지로 모인 자리에서 싸웠으니 불편해했을 수도 있다.
이런 거야 차차 알아가면 되는 거고, 지금 중요한 건 진행이었다.
-다들 죄송합니다. 방금 전 아더만 작가님하고의 일 때문에 식사를 잘 못하셨죠? 그래서 마음 편히 식사하시면서 모임을 진행하고자 해서 제가 나왔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예!”
이번에도 역시나 십 대 작가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역시 젊음이 좋지.
-그럼 식사들 하시면서 저나 K E&M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을 물어보세요. 전 식사를 다 했으니 답변을 드리는 사회자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나랑 비슷한 또래의 작가 하나가 조심히 손을 들었다.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작가.
‘저게 누구더라……. 아, 제로 작가구나.’
상상미디어에서 게임 판타지 ‘사냥꾼’을 집필한 작가였다.
본래 무협을 쓰고 싶어 했는데, 자기랑 친한 형님이 무협보다 일단 돈부터 벌라고 해서 한동안 게임 판타지만 쓸 거다.
정말 안타까운 친구다.
전자책 시장이 오고 ‘광룡제’를 써서 대박친 작가다.
하지만 전자책 시장이 오기 전까지 처녀작인 무협 조기종결 이후 자기랑 어울리지 않는 게임 판타지로 입에 풀칠만 하고 살았다.
무협을 꽤 잘 쓰는 친구인데 말이다.
진작 자기가 쓰고 싶던 무협만 써서 커리어를 쌓았으면 나랑 친한 장백 작가와 비슷한 등급에 놓여도 손색이 없는 작가였다.
그래도 나중에 ‘광룡제’로 대박쳐서 삶이 윤택해지긴 했다만, 이왕이면 지금부터 무협을 쓰는 게 어떨까 싶었다.
‘아마 무협을 쓴다 그러면 주변에서 말려서 못 쓰겠지만, 우리 회사로 오면 그런 어려움 없이 쓸 수 있을 텐데…….’
내가 회사에 만든 작가 복지 시스템 중에선 작가 생계를 위한 지원 시스템이 있었다.
매달 200만 원을 지원해 주는데 만약 살 곳이 없다면 우리가 산 건물 중에 있는 원룸을 내어주고 개중에 30만 원은 깎아서 170만 원만 주는 시스템이었다.
당연히 그냥 주는 건 아니다.
일단 선인세다.
잘 벌면 나중에 인세에서 까야 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거치는 심사 기준을 넘긴 원고를 쓴다면 추가로 100만 원 이상의 고정금이 있으니 거기서 깐다고 봤을 때 작가가 벌어들이는 수익엔 큰 타격이 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3년 전속을 해야만 한다.
받아먹기만 하고 딴 출판사로 도망치는 건 막아야지.
열심히 생계에 도움을 주고 작품 활동까지 했는데, 3년 정돈 우리 회사를 위해서 일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우리 회사랑 계약한 작가들은 딴 출판사 가라고 해도 안 가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원고가 매달 한 권씩은 꾸준히 나와야 한다.
원고도 안 쓰는 작가를 지원해 줄 수는 없으니까.
만약 성실하게 매달 한 권씩 써내는데 망해서 생계가 어렵다면 그건 충분히 지원해 줄 가치가 있었다.
이 시장에서 제일 좋은 작가는…… 물론, 대박 작가긴 했으나 내가 볼 땐 가장 중요한 건 ‘성실한 작가’였으니까.
내 인세를 털어서 하는 지원 시스템이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회사와 작가 모두 윈윈할 수 있다고 봤다.
‘관심이 있으니 정모에 나왔을 테니 한 번 기회를 봐서 컨택해 봐야겠네.’
그리 생각한 난 제로 작가에게 물었다.
-예, 작가님. 간단하게 자기 필명만 알려주시고 질문할 게 뭔지 알려주세요. 지인 씨, 마이크 좀 부탁드릴게요.
“네!”
우리 출판사 로맨스 대리가 된 최지인이 제로 작가에게 들고 있던 마이크를 건네줬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제로란 필명을 쓰는 작가입니다.
-아, 사냥꾼을 쓰시는 분이시죠?
-헉! 그걸 어떻게…….
어떻게긴, 편집자는 작가들 필명과 작품을 외워두는 건 물론이거니와 연락처도 최대한 지녀야만 했다.
그게 편집자의 가장 중요한 무기였으니까.
어쨌거나 놀라는 제로에게 난 싱긋 웃으며 질문이 뭔지 물었다.
-뭘 물어보실 생각이시죠?
-혹시 아까 아더만 작가님하고 이야기하실 때 매달 수십억을 버신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럴 수 있을까요?
-어, 못하실 건 없죠?
-저, 정말인가요?
-자기가 쓰고픈 글을 쓰면서 독자도 재밌어 할 글을 쓴다면 누구든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
난 또 아더만 작가하고 매달 수십억 이야기해서 수익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말이다.
비슷한 또래인 내가 얼마나 버는지 궁금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제로 작가는 순수했다.
자신도 그럴 수 있을 거란 응원을 받고 싶었나 보다.
그런 응원이라면 몇 번이라도 해줄 수 있다.
내 작가들이 잘된다면야.
아직 내 작가는 아니니 좀 그런가?
그럼 만들면 되지, 뭐.
어쨌거나 제로 작가의 질문이 끝나서 난 다음 질문이 없나 봤는데, 삼십 대로 보이는 작가 한 명이 손을 들어올렸다.
-제로 작가님, 저분에게 마이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힘차게 마이크로 대답하는 제로 작가.
그를 보며 난 재밌단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후후, 이제 마이크로 대답 안 하셔도 되는데 말이죠.
-아차!
내 말에 제로 작가가 머쓱한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로 인해 다들 박장대소했다.
“와하하!”
덕분에 아더만 작가로 인해 무거워졌던 분위기가 한결 풀렸다.
반면 그 대상이 제로 작가는 수줍은 기색으로 방금 손든 삼십 대 작가에게 들고 있던 마이크를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한 손으로 건네면서 다른 손도 나름 예의를 차린다 생각하고 같이 내밀며 건넨 제로 작가.
근데 갑자기 삼십 대 작가가 마이크를 휙 낚아채더니 불편한 기색을 내비췄다.
“싸가지가 없네.”
“예?”
그 한마디에 방금 전 제로 작가 덕분에 풀어졌던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졌다.
서로 초면인 것 같았는데 싸가지가 없다니.
누가 더 싸가지가 없는지 모르겠다.
반면 제로 작가는 순한 성격이라 그런지 나였다면 화가 나서 지랄할 상황인데, 오히려 더 당황하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췄다.
제로 작가가 당황해서 그럴까?
마치 약자 앞에 섰다고 생각한 것처럼 여기며 삼십 대 작가가 어처구니없단 목소리로 따졌다.
“누가 봐도 내가 선배고, 윗사람인데 물건을 한 손으로 주나?”
하는 짓거리가 아더만 작가란 똑 닮았다.
“아!”
아더만 작가랑 똑 닮았다고 생각하니 떠올랐다.
저 삼십 대 작가가 누구인지.
유유상종이라고 둘이 친하게 지내던 무개념 삼십 대 작가 중 하나였는데, 필명이 ‘헤카림’이었다.
비주류 SF를 써서 수익이 막 높진 않으면서 아더만처럼 나이로 자기보다 잘나가던 작가들 짓누르고, 자기랑 수익이 비슷하다 싶은 후배면 글은 본인처럼 쓰라던 꼰대 중 하나다.
그렇게 수익이 크진 않은데 여기저기 입 털면서 출판사 직원들하고 인맥을 잘 터서 후배들 등골 빼먹던 작가이기도 했다.
근데 문득 난 그가 한 이야기를 들으니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방금 헤카림 작가가 말하길 분명 그랬다
‘누가 봐도 자기가 선배인데 한 손으로 주냐고?’
거기서 난 마이크에 대고 제로 작가를 불렀다.
-제로 작가님.
헤카림 작가 때문에 당황하던 제로 작가가 날 쳐다봤다.
“예?”
-혹시 제가 작가님 책임질 테니 전작 까도 됩니까?
“제 저, 전작요?”
설마 내가 자신의 전작을 알고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는지 당황한 제로 작가.
제로란 필명으로 출간된 책은 사냥꾼이 처음이었다.
때문에 정말 친한 작가들 말곤 제로 작가가 누구인지 몰랐다.
조기종결쳤으나 이미 3년 전에 무협 작품 ‘박도무사’를 쓴 ‘백정’ 작가란 걸.
그리고 현재 그에게 선배랍시고 깔봤던 헤카림 작가의 처녀작은 SF 비주류 소설인 ‘드래곤 함장님’으로 고작 2년밖에 안됐었다.
그랬다.
진짜 선배는 헤카림 작가가 아니라 제로 작가였던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