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39
나는 작가다 139화
139화
“예?”
뜬금없이 전화해서 뭔 소린가 싶었다.
내가 바로 알아먹질 못하자 성용 형님이 말했다.
“10억 뱉으라고.”
뒤늦게 깨달았다.
나한테 갑자기 10억을 뱉으라고 한다면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10억이란 돈을 뱉어야 한다는 건 안타까웠으나 그보단 흥분감이 일었다.
어차피 내 돈이긴 해도 회사에 묶인 돈.
10억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돈을 줄 가치가 있는 작가가 탄생했단 사실이 더 기뻤다.
아마 성용 형님도 나만큼 기쁘지 않을까?
누구보다도 이 시장의 미래를 걱정하던 업체 관계자였으니까.
단지 주변에서 자꾸 건드리니 싸울 수밖에 없는 포지션을 취하긴 했었다만.
‘이젠 없지.’
아무도 싸움을 걸 수 없는 회사의 대표니까.
‘그리고 그 회사는 내 거고.’
또한 회사뿐만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작가.
‘그게 나지.’
어쨌거나 10억을 뱉으란 말이 의미하는 바를 떠올린 난 성용 형님에게 물었다.
“뭐에요? 우리 회사 기준에 부합되는 인재들이 나왔단 말입니까?”
이런 내 질문에 성용 형님은 선문답이라도 하잔 것 마냥 반문으로 나왔다.
“중국이 왜 요새 강대국으로 성장하는지 아냐?”
“인구수가 많아서?”
“그래.”
이 질문의 의도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저희도 독자가 많다 보니 꽤 원석이 있었단 소리군요?”
“그냥 보석 두 개나 있던데?”
원석, 정도만 있어도 괜찮다고 여겼다.
근데 성용 형님의 입에서 ‘보석’이란 단어가 나왔다.
즉, 우리가 다듬어주지 않아도 될 신인 작가가 두 명이나 된다는 소리.
“보석요? 우리가 터치하지 않아도 기깔나게 글 뽑는 독자가 있었다고요?”
“그렇더라. 근데 둘이 나이는 같은데, 스타일이 완전 다르더라.”
둘 다 십 대라니, 놀라울 일이다.
나중에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 우리 회사에 기둥 몇 개 세우도록 해줄 작가를 둘이나 얻게 될 줄이야.
그나저나 스타일이 다르다니.
“어떻게 다른데요?”
“한 명은 정말 신인답게 참신한 소재랑 분위기를 잘 끌어내더라. 반면에 다른 한 명은 좀 스타일이 구식이긴 해. 분명 나이는 십 대인데 글은 삼사십 대처럼 쓰더라. 신인 작가에게 힘을 실어줄 명목이라면 난 전자인 작가가 대상이면 해.”
시장의 미래가 밝길 원하는 입장에선 다른 작가들에게 자극될 만한 이에게 대상을 주는 게 맞았다.
근데 난 이상하게 후자가 궁금했다.
구식이라고 불릴 만한 스타일의 작가에게 대상을 주고 싶어서?
아니다.
전혀 다른 이유다.
제발 아니었으면 하는 이유.
방금 전 성용 형님이 후자의 작가에게 내린 평을 읊조렸다.
“나이는 십 대인데 글은 삼사십 대처럼 쓴다라…….”
“그 나이에 쓴 글이라고 보면 천재지.”
천재라, 인정한다.
십 대의 나이에 삼사십 대의 연륜이 느껴지는 글을 쓴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천재다.
성용 형님에게도 그런 내 생각을 밝혔다.
“네, 천재겠네요. 본인 글이 맞으면.”
하지만 성용 형님은 내 말에 내포된 뜻을 정확히 잡아냈다.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성용 형님.
“뭐? 본인 글이 아닐 수도 있단 거야?”
본인 글이 아닐 수도 있다.
맞다.
내가 우려한 바가 그거다.
“개인적으로 그러지 않길 빕니다만, 제가 생각한 것보다 다른 빈틈으로 치고 들어온 기성 작가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드는군요.”
“네 말은 남의 계정으로 기성 작가가 연재했을 수도 있단 거지?”
“예, 아니면 좋겠네요.”
“그래, 나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서로 아니면 좋겠다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촉이 말했다.
아무리 봐도 계정을 빌려서 연재한 것 같다고.
그걸 확인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일단 만나봐야겠네요.”
* * *
쓰바라마 공모전이 끝나고 찾아온 심사기간.
이미 등수 집계는 끝났다.
직접 만나서 제대로 가능한 이들인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대상을 제외한 인원들은 다 만나보니 본인이 쓴 글들이 맞는 것처럼 보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내준 뒤 신작을 쓴다고 생각해서 두 시간 동안 직접 쓰도록 만든 것이었다.
사실 작가들마다 한 편을 쓰는 시간은 달랐다.
어느 괴물 같은 작가는 30분 만에 쓸 때도 있었고, 어떤 작가들은 여덟 시간에 걸쳐 쓸 때도 있었다.
때문에 두 시간 안에 한 편을 쓰란 무리한 요구까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우리가 정해둔 기간 동안 끊이지 않고 써온 경험이라면 두 시간 동안 최소한 2천 자 이상 쓰긴 마련이다.
심지어 인터넷도 끊은 뒤 오직 글만 쓰도록 했다.
대상 후보 둘을 제외하고 만난 공모전 참가자들은 예상대로 두 시간이란 정해진 시간 안에 2천 자 이상 원고를 적어냈다.
솔직히 공모전 참가작이 본인 글인지 아닌지는 이 2천 자면 충분했다.
기본적으로 쓰는 문장의 구조나 표현력, 그리고 스토리 구상력을 보면 얼추 같은 작가란 게 보였다.
은근히 꾸준히 쓰는 작가들에겐 흔히 버릇이 생기기 때문이다.
작심하고 바꾸거나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필명 바꾸고 연재해도 편집자들이나 독자들이 ‘이거 그 작가 아닌가?’ 하고 알아볼 수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대망의 후보 둘만 남았다.
대상 후보자 두 명.
성용 형님이 말했던 참신한 작가는 열일곱 살의 유시민이었고, 관록이 든 작가처럼 쓴 이는 열다섯 살의 황보순이었다.
일단 두 사람에게도 원고를 써보라고 하기 전에 미팅부터 했다.
유시민 작가와 황보순 작가 모두 사무실에 찾아왔고, 회의실에 기다리라고 하며 직원들이 음료를 내준 상태였다.
그곳에 성용 형님과 함께 들어갔다.
거기서 날 본 두 작가가 정말 기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준경 작가님이시라니!”
“아, 앗! 이준경 작가님!”
날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두 작가.
내 팬인가 보다.
괜히 코를 쓱 훑게 만드네.
두 작가에게 난 착석하라고 했다.
“하하, 다들 앉으세요.”
“옙!”
그렇게 대상 후보인 두 작가를 앉힌 뒤 나랑 성용 형님도 반대편에 앉았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성용 형님은 자기 명함부터 꺼내서 두 자가에게 건넸다.
“K E&M 대표 홍성용입니다.”
나도 명함이 있긴 했으나 먼저 왔었던 작가들처럼 원고까지 끝나고 저녁을 먹으면서 나눠줄 생각이었다.
일단 간단하게 인사만 했다.
“반갑습니다. 전 이준경 작가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유시민이라고 합니다!”
“저, 전 황보순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시작으로 난 유시민과 황보순을 상대로 대화에 나섰다.
젊은 나이에 대상 후보에 오른 두 사람이 너무 대단하다고 칭찬부터 했다.
일단 나한테 칭찬을 들으면 다들 기분좋아했기에 긴장감 풀기에도 효과적이었다.
긴장감을 풀어주는 건 이따가 원고를 써야 하는 것도 있지만, 좀 더 그들이 나와의 대화에서 진실을 토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왕이면 두 작가 모두 자기 글을 썼다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만약’이란 게 있었으니까.
‘만약’이란 게.
두 사람의 소설을 읽은 걸 토대로 대화도 나눴다.
특히 두 사람은 대상 후보이다 보니 그들의 작품을 더욱 정독했다.
정말 본인들이 쓴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유시민 작가는 괜찮았다.
내가 물어보면 즉각즉각 대답도 나오고, 이어서 뭘 쓸 지도 다 정해놨는지 아주 깔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 나와 유시민을 보던 황보순이 꽤 불안증세를 보였다.
거기서 느낌이 왔다.
‘아무리 봐도…….’
하지만 단순히 대인기피증이라던가, 아니면 부끄럼을 많이 타는 걸 수도 있으니 확신할 순 없었다.
그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알겠지.
“아, 많이 기다리셨죠? 저도 작가다 보니 작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좀 길어졌네요. 황보순 작가님께서도 기다리고 계셨는데.”
“아, 아뇨, 더하셔도 돼요.”
“아뇨, 이제 황보순 작가님하고도 대화를 나눠봐야죠.”
“예…….”
“작품 제목이 ‘카리스마’ 맞죠?”
주인공이 카리스마 넘쳐서 카리스마라고 제목을 지녔던 황보순의 작품.
그 제목을 언급하자 황본순이 잠시 멈칫거리더니 당황하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마, 맞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칼슨’ 맞죠?”
“네, 넵!”
“칼슨은 이제 뭘 하죠?”
“예, 옙?”
“공모전 기간 동안 연재하신 카리스마에서 이제 칼슨이 뭘 할지 궁금하더라고요. 이제 뭘 하죠?”
자기 작품이라면 뭘 쓸 지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한 질문이다.
“그, 그건…… 아!”
고민하는 것 같더니 뭔가를 떠올린 황보순 작가.
‘설마 내가 착각한 건가?’
뭘 쓸지 알고 있다면 일단 확정지을 순 없지만, 황보순 본인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아지리라.
사실 그랬으면 좋겠다.
차라리 내 기우면 좋은 작가 두 명을 계약할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황보순이 답했다.
“새, 생각 안 했는데요?”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말이야, 당나귀야?
“새, 생각 안 했어요. 마, 맞아! 소, 손 가는 대로 썼었거든요.”
“손 가는 대로 썼다고요?”
“네, 네.”
“그래요?”
“네, 네.”
손 가는 대로 썼다.
그런 작가들이 꽤 있긴 했다.
미리 스토리를 정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떠올려서 바로 쓰던 이들이 있었다.
주로 오래 쓴 작가들이나 하던 건데, 가끔씩 신인들 중에서도 그런 이들이 있긴 했으니 이걸로 본인이 안 썼다곤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황보순이 말한 게 진짜라면 오히려 이어서 두 시간 동안 원고를 쓰라고 할 때 더더욱 확인하기가 쉬웠으니까.
“그렇군요.”
“예, 예.”
심지어 난 황보순을 보면서 바랐다.
‘제발 본인 원고가 맞았으면 좋겠네.’
본인 원고가 아니라고 확신해서 한 말이 아니다.
문득 이러다 보니 종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쓰이던 소재가 떠올라서였다.
‘서번트 증후군이었나?’
약간 모자란 것처럼 보이나 한 분야에선 천재성을 띈다던 소재로 자주 쓰였다.
뭔가 말도 더듬으면서 하는 스타일이 딱 황보순 같았다.
거기다가 원고를 생각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뽑아낼 능력이 된다면?
천재다.
정말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천재!
이제 황보순이 천재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면 됐다.
난 유시민과 황보순에게 이제부터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찾아왔던 수상 후보자들에게 시켰던 것처럼 인터넷을 끊은 컴퓨터에서 두 시간 동안 원고를 쓰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에 대한 대가로는 저녁을 거하게 쏠 테니 부탁한다고 했다.
거기서 유시민은 안 그래도 생각했던 신작이 있다며 신나 했고, 황보순은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을 보이더니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이 원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나나 성용 형님 그리고 직원들도 근처에 못 가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원고 작성이 시작되고,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났기에 난 성용 형님과 함께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난 두 사람의 모니터를 쳐다봤다.
유시민의 경우 A4 조판을 가득 채운 한글 파일이 보였고, 반대로 황보순의 경우 몇 글자 깨작이다가 만 한글 파일이 보였다.
이것만 보면 솔직히 카리스마의 원고를 황보순이 안 쓴 거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지 부끄럼을 많이 타서 유시민과 함께 있다 보니 못 쓴 걸 수도 있단 예외도 무시하면 안 됐다.
난 대놓고 황보순에게 물었다.
“왜 안 쓰셨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