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42
나는 작가다 142화
142화
고진규 감독과 그의 사단을 K필름으로 영입하고 3개월.
그 기간 동안 고진규 감독은 각종 영상매체 관련된 곳들과의 관계를 만드느라 바빴다.
모든 과정이 끝난 뒤 내게 보고했다.
‘이제 영화 제작만 하면 됩니다.’
준비가 끝났다고 하기 무섭게 난 내가 쓴 대본들이 쓸 만한지 확인을 부탁했다.
대본을 받은 고진규 감독이 일주일 뒤 연락해 왔다.
“작가님, 대본 잘 봤습니다.”
“어때요?”
“좋습니다.”
좋다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 기분이 좋긴 했다.
하지만 내 위치가 있다 보니 조심스러웠다.
정말 대본만 보고 이야기하는 건지 확인했다.
“그거 정말 대본만 보신 거죠?”
“설마 제가 돈을 작가님께서 쓰시니 감언이설로 속이리라 여기시는 겁니까? 이 감독 고진규, 절대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고 작품만 봅니다.”
절대 자신은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단다.
마음에 든다.
이래야 믿고 맡기지.
“좋네요. 그럼 투자금만 유치되면 바로 진행이 가능한 건가요?”
“예, 맡겨만 주시죠.”
“업무와 관련된 건 홍 대표님과 정 실장님한테 이야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돈을 번 건 나지만, 그 대부분 자금은 회사에 묶여 있었다.
회사 영업에 최대한 활용하도록 하며.
그러니 K E&M 대표인 성용 형님과 회계실장인 철이를 통해야 자금을 굴릴 수 있었다.
그렇게 고진규 감독과의 대화를 마친 뒤 난 평소대로 생활했다.
히터 촬영 날에는 연기를 하고, 그 외에는 작품에 몰두하는 일상적인 생활.
‘나도 참.’
회사에서 상사한테 까이고 소주 한잔하고, 작가들 만나서 아쉬운 소리를 들으면서 맥주 한잔하고, 그중엔 또 유흥 좋아하는 사람들을 영업해야 하면 양주도 한잔하고.
이렇게 피폐하게 살던 삶을 떠올리면 지금 같은 생활이 절대 정상적이진 않았다.
단지 이 삶에 적응해서 이제 평범하게 여길 뿐.
그렇게 지내면서 고진규 감독이 첫 작품으로 쓰려는 작품이 정해졌다.
“작가님, 안전하게 판타지스타부터 가시죠.”
“판타지스타요?”
“예, 일단 안지훈 선수의 인지도도 있는 데다가 2006년 월드컵이 영 시원찮았으니 2002년 월드컵의 신화로 국민들 가슴을 건드리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네요. 일단 첫 작품부터 물꼬만 트면 인지도도 오를 테니까요.”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촬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K 필름의 첫 작품으로 정해진 판타지스타를 잘 부탁하다고 한 뒤 연락을 마치려고 했다.
한데 갑자기 고진규 감독이 날 불렀다.
“아! 작가님!”
“예?”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딱히 나한테 부탁할 게 있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촬영에 필요한 건 다 돈이다.
돈이라면 성용 형님하고 철이랑 상의하면 될 문제다.
나한테 더 이상 할 부탁이 없어 보였다.
근데 갑자기 부탁할 게 있다고 하니 의아하다.
“어떤 거죠?”
“주인공 배역에 관해서입니다.”
“누굴 쓰시기로 정하셨나요?”
도대체 누굴 주인공으로 쓰고 싶어서 나한테 부탁하나 싶었다.
엄연히 나도 배우니까 혹시 내 인맥을 타고 부탁할 배우가 있는 건가 싶었다.
선아 누님이 나한테 촬영하라고 해서 하게 된 것처럼.
그러나 다른 배우를 연결해 달란 소리가 아니었다.
이어지는 고진규 감독의 부탁에 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작가님요.”
“예?”
“작가님이 해주시죠.”
내가 쓴 작품을 영화화해서 주인공으로 내가 촬영한다니.
상상하기 무섭게 소름이 돋았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일 같은 느낌이랄까?
난처한 기색을 내비췄다.
“아니, 그건 조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최근 배우들 중에서 작가님만 한 분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아니, 내가 부담된다고.
난 차라리 다른 배우는 어떠냐고 물었다.
최근에 친해진 배우 강서윤을 언급하며,
“아니, 서윤이는 어떠세요?”
“강서윤 배우, 좋은 배우죠. 연기도 능글맞게 잘하고, 키도 크고, 잘생겼으니까요.”
평이 좋네, 서윤이.
그럼 서윤이한테 부탁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죠? 그럼 서윤이한테 한 번 물어볼까요?”
하지만 고진규 감독의 태도는 강경했다.
“아뇨, 작가님이 더 좋습니다.”
무조건 내가 했으면 좋겠단다.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나 싶었다.
최근에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저한테 왜 그러세요?”
싫다는 티를 팍팍 냈음에도 불구하고 고진규 감독은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뭔가 강서윤 씨는 병약한 미소년 느낌이지 않습니까?”
판타지스타의 주인공은 축구 선수다.
그것도 아주 엄청난 노력 끝에 결실을 맺는 호남형.
때문에 병약한 미소년 같은 이미지의 강서윤은 안 어울린단다.
거기에 대해서 나도 주인공 후보에서 빠지기 위해 발악했다.
“저도 병약해요.”
“아닙니다. 작가님처럼 건강하고 연기 잘하는 미남 배우가 또 어디 있다고요?”
허허, 이 아저씨 보소.
어떻게든 날 쓰려고 아부가 장난 아니구만.
그냥 본심을 드러내야겠다.
“좀 그렇지 않나요?”
“어떤 게 말씀이십니까?”
“제가 쓴 작품으로 만든 영화에 작가가 주인공이라니. 뭔가 낯간지럽잖아요.”
이렇게 말했으면 포기할 법도 한데.
고진규 감독은 절대 날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해야만 한다는 이유까지 갖다 붙이며.
“그러니까 좋은 겁니다. 특히 우리 K 필름의 위용을 떨쳐줄 마케팅도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대형 엔터테인먼트로까지 키우려면 수많은 연예인들을 배출해내야 하는데, 영화를 보고 많은 이들이 작가님께서 계신 회사에 소속되려고 오겠죠.”
“영화만 잘되어도 그 정돈…….”
우리가 영화를 잘 만들어서 팔면 어련히 배우들이 붙을 거라 여겼다.
그에 대해서 고진규 감독은 부정적인 측면을 보였다.
“아뇨, 다릅니다. 영화가 잘되면 다들 돈을 줄 테니 제작해 달라고만 할 뿐이지, 결국 자기들이 원하는 배우랑 PPL로 귀찮게 할 겁니다.”
“해주면 되죠, 돈을 준다잖아요.”
아니, 좋은 거 아닌가?
돈 많은 애들이 돈 준다는데.
그럼 K 필름을 차릴 때 든 자금도 금방 회수하고 말이다.
내가 그리 말하자 갑자기 고진규 감독이 엄청 진지해진 목소리로 날 불렀다.
“작가님.”
“예?”
왜 이래, 무섭게?
무서울 정도로 진지한 목소리가 된 고진규 감독이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제가 앞서 말한 사업이 뭐였죠?”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겠다.
의중을 파악하니 잠시나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물어봤으니 대답은 해줘야지.
“……엔터테인먼트요.”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뭐가요?”
사실 무슨 소리인지 알았다.
그러나 단순히 혼자 상상하는 것과 경험자의 현실적인 조언은 달랐다.
나 자신도 바뀌기 위해 일부러 고진규 감독에게 예상이 가는 말을 듣기로 했다.
“작가님처럼 생각하고 잘나가는 영화로 배우 하나씩 꽂아 넣고 적당히 굴려서 대형 엔터테인먼트를 차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예…….”
자기가 망한 걸로 저리 이야기하니 할 말이 없다.
심지어 나한테 쐐기를 박았다.
“이번엔 성공하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성공하고 싶단 고진규 감독.
이건 협박이다.
나한테 무조건 판타지스타의 주연으로 출연하라는.
차마 거부할 수 없는 협박에 앓는 소리를 냈다.
“끄응.”
“작가님도 성공시키고 싶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전 작가님과 함께 성공하기 위해 왔습니다.”
나만 보고 왔으니 그만큼 원하는 걸 해달란다.
근데 정말 부끄러울 것 같단 말이다.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난 적당한 핑계거리를 댔다.
“근데 제가 지금 히터 촬영 중이라…….”
“왜 이러십니까, 작가님? 제가 작가님을 모릅니까?”
방금 전까지 진지하던 고진규 감독의 목소리가 다소 밝아졌다.
그런 이유라면 전혀 자신에게 소용이 없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도대체 이 아저씨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나 싶었다.
“예?”
“비록 잠깐이긴 했어도 ‘말죽거리 쌍절곤’하고 ‘애국가를 부르며’, 두 작품을 동시에 소화한 분인 걸 아는데 설마 불가능하시려고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그랬지.
시간이 좀 지나서 깜빡하고 있었다.
선아 누님을 제외하면 초창기 내 배우 활동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두 감독 중 하나가 그였단 걸.
이렇게 말하니 더 이상 핑계도 댈 수 없었다.
결국 백기를 들었다.
“……할게요.”
* * *
결국 고진규 감독이 촬영하기로 한 판타지스타에 주연으로 발탁되어 버렸다.
덕분에 한동안 얼추 작가와 배우의 비중이 반반이던 일상적인 삶이 배우 위주로 돌아갔다.
막상 이렇게 되니 성용 형님이 날 보며 재밌어했다.
“이야, 요새 바빠?”
“형님은 왜케 신수가 훤해졌습니까?”
“뭐, 우리 돈 벌어다 주시는 작가님 덕분에 직원도 많아지고 그래서 여유롭지.”
“여유롭다고요?!”
배알이 꼴린다.
난 바빠 죽겠는데 대표가 여유롭다니.
이러면 안 됐다.
그런 내 표정을 본 건지 성용 형님이 움찔거렸다. 이내 갖은 변명거리를 대기 시작했다.
“야, 나도 원래 바빴어! 너 때문에 연재 사이트 준비하랴, 공모전 준비하랴, 거기다가 갑자기 작가들은 미친 듯이 투고했지.”
왠지 내가 일을 던져줄 것 같아서 변명하는 것 같은데.
이미 늦었어.
난 바빴다는 성용 형님의 말에 반박했다.
“그거 다 직원들이 처리했잖아요. 형님은 도장으로 결재밖에 안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일은 밑에 사람들이 다 열심히 하는 거지.
다른 업체에서 영업사원들도 싹 데려와서 영업부까지 차려줘서 이젠 대표실에서 결재밖에 안 하면서 배가 불렀다!
성용 형님 역시 이렇게 내가 찌를 줄 몰랐는지 당황하며 자신도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그 올라오는 결재 서류들 일일이 체크하고 처리하는 것도 어렵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알 바 아니다.
난 사악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참에 하나 더 벌려야겠다.”
“뭐, 뭘 벌려?”
“우리 이제 영화도 하잖아요.”
“그, 근데?”
성용 형님은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예상할 수 없으니 더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자기 잘못을 들킨 황보순처럼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 모습이 재밌다.
하지만 재미와 별개로 지금 내뱉으려는 사업은 원래부터 생각해 뒀던 거다.
요새 바쁠까봐 좀 천천히 진행할까 싶었는데, 성용 형님이 여유롭다고 하니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상황이리라.
“왠지 웹툰도 하고 싶어졌어요.”
“뭐?”
“웹툰 몰라요? 네버에서 하고 있는 거 있잖아요. 웹으로 만화 연재하는 거.”
“그, 그걸 왜 해?”
갑자기 일을 벌리기 시작하자 당황하는 성용 형님.
그에게 난 아주 나긋하게 이야기했다.
“얼마나 좋아요. 우리 좋은 작가들 많이 데리고 있으니 소설이 만화로도 된다면? 이야, 우리 작가들 신나겠네. 거기다가 아직 잘나가는데 못 데려온 작가들도 다 오겠다고 하겠네.”
“조, 조금 더 생각해 보고 하면 안 될까?”
“에이, 안 돼요. 일단 판타지스타 그릴 웹툰 작가부터 공수해 주세요. 그리고 사이트 개발자 업체한테 연락해서 돈은 달란 대로 줄 테니까 네버 웹툰 페이지처럼 보기 편한 카테고리도 만들어 달라고 해주시고요.”
그랬다.
방금 이야기하면서 번뜩인 생각이긴 했으나 영화 개봉에 앞서 웹툰으로 홍보하면 상부상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새롭게 시작하게 된 영화 사업과 웹툰 사업이.
갑자기 일이 왕창 벌리자 성용 형님이 그러지 말라며 날 막으려고 했다.
“야! 그게 무슨 말로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아?”
말로만 해서 될 일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런 성용 형님에게 난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며 짓궂게 이야기했다.
“에이, 말로만이라뇨. 방금 형님이 이야기하셨잖아요. 열심히 벌어다 주는 작가 덕분에 되는 거죠. 돈만 있으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