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48
나는 작가다 148화
148화
이지안.
국민 여자친구라 불릴 정도로 사랑스러운 배우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어려 보이다 보니 소녀 역할을 많이 했고, 초반엔 아역을 자주 했었는데 2008년에 ‘과속한 가정’이란 영화로 빵 터뜨렸다.
‘그때 관객수가 800만이었나?’
덕분에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영화들 성적은 미비하기 했으나 드라마에서 꽤나 사랑스러운 연기로 인기몰이를 했다.
‘그러고 보니 중간에 소속사 문제로 연기를 한동안 못했던 때도 있었구나.’
이왕 갑질해서 데려오는 거 챙겨볼까 싶었다.
“이 친구, 그 친구네요? 꽤 유명한 친구들 아역배우로 출연했던?”
“오, 감독님도 아시는군요. 그럼 연기력은 제가 말할 필요가 없겠죠?”
“작가님께서 보신 적 있는 친구입니까?”
“그냥 이래저래 공부하면서 본 작품들 통해 본 게 전부예요.”
“그렇군요. 그래도 아역 연기 빼면 뭐가 없는 친구인데 역할이 좀 큰 것 같은데요?”
“아역을 했으니까 더더욱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흠, 작가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또 그렇긴 한데……. 설마 작가님.”
“예?”
“이번에 같이 작품하면서 어떻게 해볼 생각이거나 그런 건 아니시죠? 누가 봐도 주인공하고 이 친구 역할은 정말 애틋해질 관계인데 말입니다.”
“어허, 아직 고2인 미성년자를 두고 무슨 말씀을.”
“하하, 농담입니다. 확실히 고등학생이니 식당 딸내미로 나쁘지 않겠네요. 역시 작가님이십니다.”
“잘할 것 같아요.”
“그럼 더더욱 기대되네요. 이스트라다무스의 말씀이시니까요.”
“이스트라다무스요?”
“저희 사이에서 유명한 별명인데 모르십니까? 작가님이 말하면 다 그대로 된다고 해서 이스트라다무스라고 부릅니다.”
“하하, 그런가요.”
“그럼 이 친구 말곤…….”
“한 명이면 제 할 일은 다 한 것 같습니다. 이제 일하시죠, 감독님.”
“흠흠, 그럼 나머진 제가 잘 뽑아보겠습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난 고진규 감독과의 이야기를 마친 뒤 자리에서 벗어났다.
회의실에서 나온 날 보고 우연히 지나가던 철이가 물었다.
“야.”
“야라니, 자식아. 여기 회사니까 작가님이라고 불러.”
“아이고, 작가님.”
“됐다, 너한테 뭘 바라겠냐. 근데 뭐?”
“너, 무슨 좋은 일 있냐?”
“무슨 좋은 일?”
“표정이 왜 그리 활짝 펴져 있냐? 누가 보면 꽃이라도 핀 줄 알겠네.”
“내 표정이 그랬냐?”
“어.”
“뭐, 그럴 수도 있지.”
“뭔데?”
“몰라도 돼.”
“뭐야, 그렇게 말하니 궁금하잖아.”
“일이나 하셔. 나도 일하러 집 갈란다.”
“뭐야, 온김에 직원들 점심이나 맛있는 거 사줘.”
“네가 사.”
“아니, 왜 돈 많은 작가님 두고 돈 없는 일개 직원이……?”
“웃기고 있네, 일개 직원처럼 월급으로 바꿔줄까? 인센티브 떼고?”
“너무하는구만.”
“누가 네 돈으로 사라냐? 법인 들고 가서 긁어. 성용 형님한텐 내가 오늘 직원들 맛있는 거 사주라고 했다 말씀드리고.”
“왜? 같이 가지.”
“요새 할 일이 태산이다. 이따가 또 작가님들이 내 수정안 받고 최종 시안으로 뽑은 대본 보내준다고 해서 그것도 읽어봐야 돼.”
“하여간 세상 지 혼자 바빠요.”
“금요일에 성용 형님하고 셋이 술 한잔하자, 됐냐?”
“오케이, 콜!”
“좋냐, 자식아.”
“좋지, 그럼 금요일에 먹기로 약속했다?”
“알았다. 거하게 쏴주마.”
“에헤이, 됐다. 누가 거하게 얻어먹고 싶어서 그러냐? 친구랑 술 한잔한 지 오래된 것 같아서 그렇지. 난 소주에 삼겹살이면 된다. 물론, 소고기면 더 좋구요.”
“알았다, 저번에 추천 받은 소고기집 있으니 거기서 먹자.”
“추천 받은 소고기집, 어디?”
“가보면 안다.”
“흠, 알았다. 고생해라.”
“오냐, 너도.”
그렇게 철이와의 이야기도 마친 뒤 난 집으로 떠났다.
* * *
한수, 높은 곳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바라보며.
“연주, 어디 있냐?”
한수는 탐정의 주인공 이름이었고, 연주는 이지안이 맡을 옆집 식당 딸내미 이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극작가들이 최종으로 정리한 대본을 리딩하고 있었는데, 상대역을 해줄 사람이 없어서 난 방금 전 주인공 한수의 대사를 읊곤 돌아섰다.
표정과 목소리를 무심하게 바꾸며.
교주, 자신을 고개를 든 채 노려보는 한수에게.
“그깟 식당 꼬맹이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 난리인지 모르겠군요.”
식당 꼬맹이인 연주를 두고 막 말하는 교주에게 한수가 말했다.
“식당 꼬맹이기 때문에 중요한 거다.”
“음?”
교주는 이해할 순 없단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런 모습을 보며 한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밥집 꼬맹이도 우리 사무실 단골손님이거든.”
“끽해야 길고양이나 찾아달란 게 단골손님이라니, 그쪽도 우리의 신께 구원받아야 할 불쌍한 중생이군요.”
“이야, 이 새끼 봐라? 나 한 방 먹이려고 꽤 오래 준비했나 보다? 그것도 알고? 그리고 새끼야, 하나만 해라? 기독교처럼 신이라 할 거면 영혼이라고 하던가, 중생? 네가 스님이냐, 이 새끼야? 스님은 살생하는 거 아니야, 자식아!”
여기서 한수의 속마음이 나왔다.
“아니, 완수 자식은 왜 안 오는 거야?”
한수가 최종보스인 사이비 종교의 보스를 만나러 오면서 조수인 유명한 추리소설 주인공인 탐정의 조수 이름에서 따온 ‘완수’란 친구를 기다렸다.
머리가 비상한 친구인 완수는 잡동사니로 각종 발명품도 잘 만들고, 해킹과 컴퓨터 장비에도 매우 능했다.
영화 탐정 막바지에 들어서 옆집 식당 딸내미인 연주를 구하기 위해 혼자 사이비 종교 본거지에 자진해서 들어가기 전 자신에게 GPS도 달게 하고 이들을 소탕할 장비도 가져오라고 시켰다.
때문에 한수는 완수가 오기 전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질질 끌며 했는데, 도저히 녀석이 오지 않자 답답한 상황에서 결국 주변에 있는 장식품을 들고 위에서 자길 내려다보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에게 던지려고 했다.
교주는 장식품을 던지려는 한수를 말렸다.
“잠깐!”
“뭐, 새끼야?”
“저길 보시지요.”
한수의 뒤를 가리키는 교주.
그곳을 바라보니 옆집 식당 딸내미 연주가 눈이 그려진 십자가에 묶여 있었고, 그곳을 천장에서 지켜보던 신도 하나가 석궁을 든 채 겨누고 있었다.
그걸 본 한수의 입장에선 당연히 당혹스러우리라.
“여, 연주야!”
여기서부터 교주는 한수에게 자신이 우위에 있단 걸 드러내듯 은은한 미소를 보이며 협박에 나섰다.
“자, 정하시지요. 본인이 우리의 신께 제물이 될지, 저 소녀를 제물로 바칠 건지.”
“무슨 거지 같은 소리야!”
“요새 중생께서 우리 신도들을 싹 잡아가 주신 덕분에 우리의 신께 바칠 제물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중생이나 저 소녀가 제물이 되어야겠습니다. 만약 중생께서 제물이 되실 생각이 없다면 저 소녀는 저 신의 화살이 심장에 꽂혀 더럽혀진 피로 우리의 신께서 강림하실 제물이 될 것입니다.”
정말 내가 쓴 이야기이긴 하지만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없는 것 같았다.
이런 헛소리나 해대는 사이비 종교이기 때문에 탐정인 주인공이 일망타진해야 하는 악역인 거지만 말이다.
당연히 주인공 한수는 이러 헛소리를 하는 주교에게 한 소리해야만 했다.
그래야 헛소리에 인상을 찌푸릴 관객들이 사이다를 마실 테니까.
“정체도 못 밝히는 찐따여서 복면이나 쓰고 다니는 살인자 새끼가 헛소리하고 있네.”
“살인자라뇨? 위대하신 우리의 신께 구원 받기 위한 자들이었을 뿐. 그들의 피와 살은 우리의 신께서 강림하시기 위한 제물이 되고, 그들은 우리의 신이 만드신 낙원에서 영원히 행복할지어다. 중생께선 아직 낙원에 가고 싶으시지 아니한 것 같으니 저 소녀부터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구원해 주겠습니다. 신의 화살을 쏘거라.”
주교의 말에 석궁을 겨누던 이가 장전에 나섰다.
그때였다.
천장에 달린 유리를 깨부수며 한 사내가 뛰어내려왔다.
한수가 그토록 기다리던 조수이자 친구인 완수였다.
완수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본거지 천장에 달린 유리를 깨부수며 들어와 석궁을 든 신도를 날려 버렸다.
뒤늦게 등장한 완수를 보며 한수가 기쁨 반, 짜증 반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완수! 왜 이제 와!”
이후 완수가 변명을 대면서 투덜거리고 한수에게 쇠구슬을 쏠 수 있도록 개조한 비비탄 총 두 자루를 던져주고, 자신 주변을 둘러싼 신도들에게 전기가 흐르는 몽둥이를 양손으로 든 채 견제했다.
이후 손에 땀을 쥐게 할 액션과 은근히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이며 한수가 연주를 구했다.
마지막엔 경찰들에게 그간 있던 자살 사이트의 신상 정보를 토대로 연쇄살인을 벌인 범죄집단인 사이비 종교까지 넘기며 대단한 활약으로 대한민국에서 탐정으로 인정받으며 끝났다.
얼추 쭉 집에서 혼자 여러 역할을 하며 대사를 치던 난 흡족스러웠다.
“입에 착착 붙게 잘도 짜셨네. 단지 교주 역할 하는 분이 좀 빡세겠구만.”
정말 오글거리면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대사가 태반인 주교였다.
난 대본을 쭉 리딩한 다음 이 최종 시안을 만들어준 두 작가 중 한 명인 조영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전화를 걸기 무섭게 조영훈이 받았다.
“예, 작가님.”
“아, 조 작가님. 대본 방금 리딩 살짝 해보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떠세요?”
“좋네요. 제가 한 번 날 잡고 곽 작가님하고 같이 밥 한 번 사겠습니다.”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내가 쓴 걸 리딩했을 때보다 머릿속에서 영상이 잘 재생됐다.
확실히 다들 내가 쓴 대본을 보고 칭찬해 주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기간에 비해 잘 나온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영훈 작가는 괜찮다고 했다.
“어휴! 밥은 무슨요. 저희가 도움 받았으니 당연히 약속한 걸 지키기 위해 하는 일인데요.”
“제가 마음에 들어서 그렇습니다. 잘됐네요. 이참에 금요일에 소고기나 먹으러 갈까 했는데, 같이 가시죠? 그때 고진규 감독님하고 선아 누님 그리고 서윤이까지 해서요.”
안 그래도 철이랑 성용 형님과 가려던 소고기집이 하루에 한 테이블 예약밖에 안 받아서 가격은 한 명이 가나 열 명이 가나 그대로이니 이왕지사 갈 거면 많이 채워서 가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한 테이블 식사 비용으로 180만 원이나 받는 곳이었으니까.
내가 계속 산다고 하자 조영훈 작가 역시 거절을 포기했다.
“또 작가님께서 사주신다는 데 거절하면 예의가 아니겠죠?”
“어휴, 예의는 제가 차려야죠.”
“하하, 무슨요. 그럼 금요일 저녁에 시간을 빼면 되겠습니까?”
“예, 금요일 8시에 마장동에서 보시죠.”
“이야, 역시 소고기하면 마장동이긴 하죠?”
소고기하면 마장동.
보통 한우를 떠올리면 횡성이지만, 서울에선 누가 뭐래도 마장동이지.
난 아직 예약한 게 없으니 제대로 잡히면 어디인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정확한 주소는 제가 예약이 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최근에 블로그 이웃이 된 분께서 추천해 주신 곳인데 예약해야만 가능하다고 해서요.”
“알겠습니다.”
“예, 그럼 그때 뵙죠.”
“옙!”
그렇게 조영훈 작가와의 통화를 마친 뒤 난 네버 블로그 이웃이 알려준 가게로 예약을 했다.
“예, 거기 본 앤 비프죠? 미식마녀님 소개로 전화 드렸는데요. 혹시 예약될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