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50
나는 작가다 150화
150화
자꾸 이지안과 엮으려고 하는 고진규 감독을 무시한 채 나머지 배우들의 면접도 마쳤다.
괜히 이야기 나올까 봐 내가 선수 쳤다.
배우들마다 내가 원하는 장면을 연기해 주길 요구하며.
다 끝나고 나자 고진규 감독이 이야기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가님.”
“에이, 저만 했나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어디 가시나요?”
고진규 감독은 면접도 끝났으니 곧 있을 내 스케줄이 어떤지에 대해 물었다.
“집 가서 일해야죠. 탐정도 잘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판타지스타도 지금 꽤 흥행 속도가 나쁘지 않다던 것 같던데요.”
소설, 웹툰, 연기 모두 다 하나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이 또한 판타지스타처럼 잘됐으면 했다.
그런 내게 고진규 감독이 실눈을 뜨며 쳐다봤다.
“나쁘지 않다뇨, 작가님께서 너무 관심이 없으신 거 아닙니까?”
“음?”
“지금 속도면 일주일 만에 700만 찍고, 천만 관객 가뿐히 넘길 건데요?”
“그렇게 잘되고 있어요?”
잘되고 있단 이야기는 들었는데, 자세히 신경 쓰진 않았다.
어차피 영화는 고진규 감독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들이었으니까.
근데 생각보다 너무 잘나갔다.
아니, 생각보다 너무 잘나간 수준이 아니다.
저 정도면 내가 배우물을 썼던 작가의 작품 때문에 개연성 문제로 찾아본 자료에서 역대 1위였다.
설마 그 정도로 잘될 줄이야.
꽤나 놀란 내게 고진규 감독은 영화 ‘판타지스타’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려줬다.
“일단 작가님 덕분도 있지만, 2006년 월드컵 말아먹은 것도 꽤 어드밴티지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요?”
하기야 2002년 월드컵 때문에 2006년도 엄청나게 우승을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지.
생각과 다르게 너무 미비한 성적으로 끝나 버렸지만 말이다.
설마 그 상실감을 영화 판타지스타에서 찾을 줄이야.
고진규 감독은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예, 다들 2002년 월드컵 때문에 2006년에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16강에서 떨어지고 아주 아쉬워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있어서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2002년 월드컵의 주역인 안지훈 선수를 모델로 한 판타지스타가 영화로 개봉되니 꽤나 다들 이거나 봐야겠단 생각으로 보더라고요.”
“좋네요.”
“좋아야죠. 이제 당당히 주인공으로 천만 배우 되셔야죠?”
주인공으로 천만 배우.
난 이미 고진규 감독의 영화 ‘애국가를 부르며’로 ‘천만 배우’가 되긴 했다.
그땐 투톱 주인공 사이에 있는 주연급 조연으로 끼었을 뿐.
하지만 판타지스타는 내가 단독 주인공으로 출연했으니 이게 천만 관객이 넘는다면 고진규 감독의 말처럼 됐다.
주인공으로도 천만 배우.
그 이야기에 난 피식 웃었다.
“전 천만 배우, 별론데요.”
“예?”
내 말에 당황한 고진규 감독.
천만 배우, 대한민국 배우들에게 있어선 꿈과도 같은 타이틀이었다.
그런 자리를 별로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하지만 이어진 말에 고진규 감독 역시 납득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뭔지 밝혔기에.
“천만 작가가 될 겁니다.”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네요. 축하드립니다, 천만 작가님.”
아직 판타지스타가 천만 관객을 넘은 건 아니었으나 이미 확정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 정도 스코어면.
그래서 나한테 천만 작가라고 한 고진규 감독에게도 인사하며 그에게도 덕담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보증수표 감독님.”
“어? 아, 그러네요! 이게 천만이 넘으면 난 보증수표 감독이 되겠네요? 하하하, 좋군요!”
보증수표 감독이라.
고진규 감독은 몰랐을 거다.
날 만나지 않았다면 애국가를 부르며 이후 줄줄이 죽 쑤며 망했을 테니까.
어쨌거나 천만 영화를 2연타로 홈런 친 고진규 감독.
그에게 세 번째 홈런도 부탁했다.
“그러려면 탐정도 성공시키셔야죠.”
“아무렴요. 근데 보증수표 감독과 천만 작가이자 배우가 함께하는데 안 되겠습니까?”
아주 자신감이 넘쳤다.
하기야 나랑 같이 영화한 게 둘 다 2연타 천만 관객이니, 탐정 역시 같으리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항상 경각심을 일깨우는 건 나쁘지 않았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세상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까요.”
“암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예, 내일 뵙도록 하죠. 성용 형님이랑 철이랑 선아 누님 그리고 서윤이랑 같이요. 축하주 올립시다.”
“축하주, 좋지요! 그럼 내일 기대하겠습니다.”
“기대하시죠.”
씨익 웃으며 회의실에서 나왔다.
그때였다.
“작가님!”
한 소녀가 날 부르며 다가왔다.
이지안이었다.
“에, 지안 씨?”
“네! 기억해 주시네요! 영광이에요!”
영광은 무슨, 이렇게 보게 돼서 내가 더 영광이지.
어쨌거나 이지안에게 왜 여기 있는지 물었다.
“안 가고 여기서 뭐하세요?”
이지안은 면접자들 중에서 면접을 제일 먼저 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다렸다면 꽤 기다렸을 텐데, 내 앞에 서 있는 걸 보고선 꽤나 당혹스러웠다.
당황하는 내게 이지안은 쇼핑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른 책들도 사인해 주신다고 해서요!”
“아아.”
나중에 연락 주면 해줄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면서까지 사인을 받고 싶어 할 줄이야.
그런 날 보며 이지안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설마 까먹으신 건 아니죠?”
“설마요. 그럼 저희 1층 카페로 갈까요? 아니면 여기서 해드릴까요?”
“앗! 그럼 1층 카페로 가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이렇게 기다려 줬는데 제가 사야죠.”
아직 어린 친구에게 얻어먹기엔 좀 그렇지.
“앗, 감사합니다!”
“그럼 내려가요.”
“네!”
난 이지안과 함께 1층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거기서 이지안이 꺼내는 책들에 사인을 해줬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인한 책을 주고, 인사를 받은 뒤 커피 한 모금하고 나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생각해 보니 오늘 처음 본 사이에 이거 빼면 할 말이 없었긴 했다.
내가 먼저 리드해야겠단 생각으로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제 책들은 어떻게 보시게 된 거예요?”
“TV에 나와서요! 그리고 팬이 됐어요! 근데 작가님이 선배셨던 거예요!”
“선배요?”
나랑 학교가 같나 싶었는데, 이어진 이지안의 말에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배우로서 선배시잖아요!”
“아아, 그렇죠.”
그래, 배우로서도 내가 선배긴 하겠구나.
그렇게 따지면 설아보다도 선배네.
어쨌거나 이지안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타던 것과 비슷하게 내 팬이 되었다.
방송에서 소개된 판타지스타로 시작해서 다른 내 작품들을 찾아서 보는 독자들처럼.
“이후 하나도 빠짐없이 챙기고 있어요! 작가님 배우나 출연하신 작품들이나!”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이런 재밌는 글과 연기를 보여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재밌는 글과 연기.
그래도 태생은 배우다.
연기를 놓지 않는 걸 보면.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아이다.
영화 ‘과속한 가정’ 이후로 충분히 승승장구할 수 있었는데, 회사들의 법적 공방 속에서 몇 년을 허비해 버렸으니까.
이후 대박 난 영화가 없었다.
그래도 드라마는 승승장구하긴 했지.
어쨌거나 안타깝단 생각에 난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아!”
내가 뭔가를 떠올리자 이지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에요.”
이지안과 관련된 걸 떠올리긴 했으나 아직 그녀에게 말해줄 건은 아니었다.
내일 고진규 감독에게 말할 건수였지.
이후 난 이지안과 대화를 좀 더 나눈 뒤 헤어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진규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작가님.”
“감독님, 혹시 오늘 면접 본 배우들 결과 소속사에 통보하셨어요?”
“아직 안 했습니다.”
“이지안 씨는요?”
“이지안 씨도요.”
“그럼 내일 소고기 먹으면서 이야기 좀 하고, 아직 결과 통보하지 말아주세요.”
“예? 왜요?”
“그건 내일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작가님께서 그래 달라고 하시면 그래야죠.”
“예, 수고하세요.”
“고생하십시오, 작가님.”
그렇게 고진규 감독에게 배우들 선정 결과 통보를 미룬 뒤 난 집으로 돌아가서 딴일 제쳐두고 사업 노트란 걸 꺼냈다.
작품 노트와 다르게 사업 노트는 우리 K E&M을 가지고 뭘 할지 정리한 거였다.
거기서 난 고진규 감독을 통해서 차릴 연예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해 적어놓은 페이지를 펼쳤다.
이곳에는 한 명의 이름이 있었다.
윤효인.
편집자 시절 내가 바 마마에 가서 힐링하게 해주던 아이였다.
“얘가 지금쯤이면……. 이지안이랑 같은 나이겠네. 슬슬 찾아볼까?”
고진규 감독은 만약 연예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하면 배우 위주로 받으려고 했지만, 가수도 키웠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효인이를 찾아볼 생각을 한 다음 거기다가 이름을 하나 더 추가했다.
‘이지안’.
“내가 활동 무리 없이 잘할 수 있도록 해줄게요, 지안 씨.”
그렇게 적은 뒤 ‘과속한 가정’도 추가했다.
대기업 중 하나인 ‘라떼’가 배급사로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던 작품이기도 한 영화 ‘과속한 가정’.
누가 뭐래도 이지안과 시너지가 맞던 작품이다.
고진규 감독을 통해서 이것 또한 챙길 심산이었다.
탐정에 이어서 과속한 가정까지.
이지안을 스타덤에 올리기엔 충분했다.
사업 노트에 이지안과 과속한 가정을 적은 뒤 덮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소고기 모임을 나갔다.
마장동 ‘본 앤 비프’로 사람들을 모아서.
미식마녀란 블로거의 추천으로 왔다고 했더니 여자 사장님이 그러더라.
“제가 미식마녀예요.”
설마 사장 본인이 미식마녀였을 줄이야.
난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물론, 농담식으로.
“아니, 자기 가게 홍보하신 겁니까?!”
“드셔보시고 홍보인지 아닌지 보시면 되지 않을까요?”
“농담입니다.”
“아뇨, 글 쓰는 미식가의 혀를 만족시켜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팬인데 글쓰는 미식가님께서 와주셔서 감사하죠. 별로면 거침없이 비평해 주세요.”
“이거 얼굴 아는 입장에서 비평하는 게 쉬운 건 아닌데 말이죠.”
“그러니 더더욱 별로면 비평해 주세요. 이래 봬도 제가 올린 맛집들에 대해선 자부심이 넘치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행분들에게 음식 내드릴게요.”
“옙.”
그렇게 미식마녀였던 본 앤 비프의 여 사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 일행들과 합석했다.
다들 앉아서 미식마녀가 내어준 음식들을 먹으며 호평일색이었다.
나중에 자기들도 와야겠다면서.
게다가 술도 귀한 걸 들고 가야 한다고 해서 얼마 전 김래원 회장을 통해서 알게 된 주류점에서 귀한 양주도 서너 병 챙겨왔다.
좋은 가게를 소개해 준 미식마녀에게도 몇 잔씩 나누며 좋은 분위기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살짝 취기가 있을 무렵.
고진규 감독이 내게 먼저 물어왔다.
“그나저나 작가님.”
“예?”
“어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탐정에 출연할 배우들 결과 통보를 미루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거 지금 이야기할까요?”
“아, 나중에 하실 생각이셨나요? 그럼 나중에 하셔도 되는데.”
“아뇨, 지금 하죠. 선아 누님하고 서윤이한테도 묻고 싶어서 오늘 하려고 했으니까요.”
그런 내 말에 선아 누님과 서윤이가 반응을 보였다.
“나한테 뭘?”
“예?”
두 사람뿐만 아니라 나랑 고진규 감독의 이야기이다 보니 함께 있던 성용 형님과 철이 역시 쳐다봤다.
그들에게 난 말했다.
“K 필름을 K 엔터로 바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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