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52
나는 작가다 152화
152화
“과일은 곧 나올 거예요.”
부엌에서 효인이한테 과일을 깎으라고 시켰던 마담이 다가와서 한 말이다.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마담은 내 앞에 거꾸로 세워져 있던 온더락잔 두 잔과 스트레이트잔 한 잔을 돌렸다. 그리고 두 개의 온더락잔에 얼음을 채우고, 하나는 차가운 둥글레차를 따라줬다.
이후 내가 시킨 세트에 있던 싱글몰트 위스키를 들곤 물어봤다.
“오픈할게요?”
이번에도 역시나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마담이 뚜껑을 땄다.
뽕!
코르크가 따지는 소리를 들은 난 스트레이트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마담이 한 잔을 따라줬다.
일정양이 차자 술을 따르던 걸 마담이 멈췄고, 난 그걸 얼음만 들어있는 온더락잔에 부었다.
그런 내게 마담이 스트레이트잔을 들어 올리며 물어봤다.
“저도 한 잔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
마담에게 한 잔을 따라주는데, 그녀가 날 유심히 보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근데 혹시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다.
“맞습니다.”
“어머, 진짜 이준경 씨예요?”
역시 그걸 물어보고 싶었던 거구나.
마담의 반응에 다른 테이블을 맡고 있던 바텐더들이 모두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엣? 진짜요?”
TV에서나 보던 날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됐으니 신기하리라.
사실 이건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나 마담이 있는 내게 실례였다.
비록 우리나라 바 문화가 잘못 정착하면서 일본의 캬바쿠라처럼 아가씨가 응대해 주는 느낌으로 되긴 했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종류의 바라도 바텐더는 자기가 맡은 손님에게 집중하는 게 맞았다.
그게 바텐더의 기본 소양이었다.
마담 역시 그 정돈 기본 소양으로 여겼는지 날 쳐다본 다른 바텐더들을 나무랐다.
“이것들아, 손님들 앞에 두고 어딜 보는 거야?”
하지만 아직 이십 대로 보이던 다른 바텐더들에겐 연예인을 봤단 기쁨이 더 컸는지 아쉬워했다.
“히잉, 너무해요.”
“사장님, 너무해!”
다들 자신을 너무하다고 하자 마담이 윽박질렀다.
“이것들이 진짜?”
그제야 다들 자기 앞에 있는 손님에게 집중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상황에서 난 마담을 불렀다.
“사장님.”
바텐더들이 사장님이라고 부른 걸 보니 마담이랑 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장은 내가 부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저 사실 여기 보고 싶은 친구가 있어서 왔거든요.”
“응? 저 출근 안 하는 날 오셨었나? 누구 손님이세요?”
아무리 봐도 자신이 봤을 때 난 처음 온 손님이리라.
근데 내가 찾는 친구가 있다고 하니 의아해했다.
일단 사장에게 난 초행인 걸 밝혔다.
“처음 왔습니다.”
“근데 누굴 보려고 오신 거예요? 저 친구인가요? 얼마 전에 다니던 바가 망해서 저희 가게 막 들어오긴 했는데.”
검지로 한 바텐더를 가리켰으나 그쪽으론 시선도 안 줬다.
고개만 가로저을 뿐.
“아닙니다.”
“그런 것 같네요. 그럼 누굴 보러 오신 걸까?”
아마 자신이 가리킨 바텐더가 자기 손님 아니라고 고개라도 가로저었는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사장에게 난 검지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 친구요.”
“네? 저긴 부엌인데……. 효인이를 보러 오셨다고요?”
내가 가리킨 부엌을 보다가 사장은 뒤늦게 보러 온 친구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예.”
보러온 친구가 효인이란 걸 깨달은 사장은 갑자기 날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 친구, 바텐더 아닌데요?”
아직 미성년자인 효인이다. 그래서 사장도 바텐더가 아니라 부엌에서 소일거리를 시킨 거고.
근데 내가 효인이를 보고 싶다 하니 경계심을 드러냈다.
“바텐더로서 보려고 온 거 아닙니다.”
“그럼요?”
“스카웃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스카웃요? 요샌 부엌일도 스카웃해 가나요?”
미성년자라 그런가?
정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장에게 난 예전 생각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은 표정으로 답했다.
“저 친구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그제야 날 경계하던 사장의 표정이 풀렸다. 아니, 오히려 깜짝 놀란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효인이 노래를 들어보신 적이 있다고요? 남 앞에서 노래 잘 안 하는 애인데?”
그래, 잘 안 했다.
나도 한참 다니고 나서 우연찮게 효인이가 혼자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데, 손님이 나뿐이라서 자기 기타를 들고 나와서 노래를 해줬다.
그때도 내가 담당하던 작가가 다른 작가들은 다른 출판사에서 보장인세로 엄청 돈 받는데, 왜 자기는 안 주냐고 쌍욕을 했었다.
그래 놓고 지금 쓰는 원고 대충 끝내 버리고 다른 데로 간다면서 협박 전화와 문자를 시도 때도 없이 보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넘쳐났는데.
근데 그날 효인이가 내게 노래를 불러줬다.
이강석의 ‘잊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실 노래의 내용 자체는 지나간 사랑을 잊으란 의미였지만, 가사 자체는 지나간 일을 잊고 다음 날을 보낸다는 이야기여서 그걸 불러줬다.
어차피 지난 일 모두 잊고 내일을 위하자는.
덕분에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문득 그때 생각하니 효인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졌다.
왠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치유가 될 수 있는 노래가.
어쨌거나 그런 효인이의 노래를 어떻게 들었냐는 듯이 쳐다본 사장에게 난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연찮게요. 근데 다시 보게 됐는데 여기로 출근하더라고요.”
“근데 작가님? 아니면 배우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작가님으로 해주시죠.”
“아니, 작가님이든 배우님이든. 효인이가 노래를 부르는 거랑 스카웃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개인적으로 노래 불러 달라고 고용하시게요?”
아, 하긴 대외적으로 난 그냥 작가이자 배우로만 알려져 있지.
내가 실질적으로 소속 회사인 K E&M의 주인이라는 걸 일반인들 기준으로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나저나 개인으로 계약해서 노래를 듣는다라, 효인이 노래라면 그렇게라도 계약할 의미가 있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뭐요?”
“후후, 농담이에요. 그게 아니라 제가 소속된 회사에서 이번에 연예 엔터테인먼트를 시작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문득 그 아이가 떠올라서 찾아온 거예요. 효인이라고 했나요?”
이름을 알고 있었으나 지금의 내가 효인이의 이름이 뭔지 알고 있으면 괜한 의심 살 수도 있으니 모르쇠로 일관했다.
“맞아요, 효인이. 근데요.”
“예?”
“뭐, 좋아요. 작가님이 효인이 노래를 듣고 연예인으로 만들었으면 해서 스카웃하러 왔다고 쳐요. 근데 가수하려면 연습생 한다고 몇 년은 넘게 고생해야 하잖아요?”
“그렇긴 하겠죠?”
당장 K 엔터가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니 일단 이지안을 데려오고, 고맙게도 와준다는 선아 누님과 서윤이로 기틀을 어느 정도 잡으면서 가수 쪽 영역도 넓힐 걸 생각하면 꽤 걸리긴 할 거다.
결국 연습생 준비 기간이나 그거나 비슷하리라.
거기에 대해서 사장이 물었다.
“근데 효인이네 집안 사정이 그리 좋지가 않아요. 저 어린 녀석이 혼자 할머니를 모시고 있거든요. 근데 연예인 준비하려면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게 알려져서도 좋을 게 없을 거고, 그렇다고 제대로 못 되면 저 아이 인생하고 가정 모두를 망치는 거 아닌가요?”
“지원하겠습니다.”
“네?”
“효인 씨부터 해서 그녀의 할머니까지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그럼 됐나요?”
“……정말인가요?”
“예.”
지원하겠다는데도 불구하고 사장은 몇 번 일이 있었는지 여전히 불신하며 내게 다시 물었다.
“방금 제가 효인이 사정 이야기했더니 불쌍하게 여겨서 대충 도와주려는 건 아니고요? 꽤 있었어요. 저 아이 어렵다고 도와줬던 사람들. 근데 다들 끝까지 책임질 수도 없고, 아니면 다른 걸 노린 인간들뿐이었죠.”
평생 책임져 줄 수 있는 아이도 아니거니와 다른 걸 노린 인간들이 있었단다.
전자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후자는 인간도 아니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아이에게 다른 걸 노리다니.
그런 말을 해준 사장에게 난 약속했다.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제 목적은 오로지 효인이의 노래뿐입니다.”
만약 잘 안 되면 우리 회사에서 일자리라도 만들어주면 됐다. 물론, 그것보단 효인이가 가수로서 성공해 주는 게 베스트지만 말이다.
사장은 내 결의를 신뢰해 준 건지 효인이랑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다.
“알겠어요. 그럼 천천히 드세요. 그리고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어차피 한 시간이면 끝나니까요.”
“이거나 비우고 있죠, 뭐.”
앞에 따른 온더락잔을 들고 흔들었다.
그렇게 난 사장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영업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
새벽 4시.
바 마마의 영업 종료 시간이었다.
하지만 영업이 끝나질 않았다.
바텐더 대부분이 이제 문 닫는다고 대부분 손님을 보냈는데, 한 사내가 안 가고 버텼기 때문이다.
“아이씨, 저 새끼도 안 가는데 왜 자꾸 난 가라는 건데? 저 새끼, 배우라고 나랑 차별하냐?”
“아니, 오빠. 그게 아니라 저분은 사장님 손님이라니까?”
“씨발, 난 손님 아니야?”
“그 손님이 그 손님이 아니잖아.”
쾅!
“에이씨, 뭐가 아니야! 난 손님 아니냐고!”
진상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내가 나서서 치워줘야 하나?
근데 굳이 피곤하게 엮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난 사장에게 말했다.
“제가 가야 저분이 갈 것 같으니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보내면 다시 올게요.”
“그래 주실래요?”
“예, 그러시죠.”
“감사해요.”
“천만에요.”
난 가게에서 나왔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나오질 않는 진상 손님.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바 마마로 들어갔다.
입구 앞에서 진상 손님이 여직원 하나의 손목을 잡은 채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아이씨, 돈 준다고. 어차피 너네 다 돈 벌려고 술집에서 일하는 주제에 왜 안 간다는 건데?”
“아, 진짜! 여기 그런 데 아니라고!”
“근데 이년이!”
진상 손님이 자기가 잡고 있던 바텐더에게 손을 휘둘렀다.
그걸 본 나는 진상 손님의 손을 붙잡았다.
휙!
탁!
나한테 손이 잡히자 진상 손님이 인상을 썼다.
“어우씨, 넌 또 뭐야? 이 새끼 갔다더니 아직 여기 있네? 이년이 구라를 쳐? 윽!”
잡힌 손을 빼내려고 했으나 힘은 내가 우위였다.
꿈쩍도 못하는 진상 손님에게 말했다.
“저기요. 술 잔뜩 취하셨으면 곱게 돌아가시던가요. 아니면 여자가 그리우면 딴 데를 가시던가요. 왜 곱게 일하는 분들한테 시비입니까?”
“이 새끼가 미쳤나! 안 놔?”
계속 손을 뿌리치기 위해 용썼지만,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갈 때까지 안 놓을 겁니다.”
“씨발, 뒈질래?”
갑자기 바텐더의 손목을 잡고 있던 걸 놓는 진상 손님.
그걸 나한테 휘두를 생각인 것처럼 보이길래 정의구현 한 번 제대로 해줬다.
“때리게요? 때리시죠. 참고로 저기 CCTV 보이시죠? 때리면 전 맞을 겁니다. 그리고 변호사 부를 거고, 전 당신 같은 진상 돈 필요 없으니 아주 최대한 형량 많이 때려서 감방에 처넣을 겁니다. 자, 때릴 겁니까?”
이리 말하자 갑자기 진상 손님이 쥐었던 주먹을 풀곤 딸꾹질을 연신 해댔다.
“딸꾹!”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