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56
나는 작가다 156화
156화
독립영화 날파리 시사회.
설아가 제일 앞자리 석으로 티켓을 보내줬다.
영화는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
바뀐 게 있다면 여주가 설아라는 점이랄까?
괜찮았다.
신인 배우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역시 타고난 배우구나.’
시사회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나왔다.
짝짝짝!
다들 기립하고 환호성 지를 영화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박수쳐 줄 만큼 영화를 잘 만들었기에.
그렇게 시사회가 끝난 뒤 뒤풀이 자리가 있었는데, VIP 관객들은 참여할 수 있게 해줬기에 낄 수 있었다.
뒤풀이 자리에 가자 설아가 반가운 표정으로 뛰어왔다.
“사부!”
녀석, 아직 성인은 아니어도 고2면 이제 다 큰 성인과 다를 바 없는 게 여전히 애처럼 군다.
처음 만났던 초등학생처럼 아주 해맑고 귀엽게 달려왔다.
그런 설아에게 난 손만 살짝 들며 말했다.
“어, 잘 봤다.”
“어땠어요?”
“방금 이야기했잖아, 잘 봤다고.”
“아뇨, 제 연기요!”
그러니까 네 연기를 잘 봤다는 건데.
이 녀석, 내가 영화만 잘 봤다고 생각하나 보다.
여기에 대해서 정리해 줄 말은 하나뿐이지.
“그래, 계약하자.”
“오오오! 마음에 드셨어요?”
계약하잔 말은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는 대답.
그 자체다.
난 자기 연기가 마음에 들었냐는 설아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설가 말고 배우를 해야겠어, 우리 제자.”
“히히, 그래도 소설가도 할 거거든요!”
소설가도 하겠다는 강설아.
녀석에게 난 한 가지 조건을 잊지 말란 듯이 이야기했다.
“자리 잡고 나면 해.”
“그야 당연하죠!”
“그래, 그럼 우리 회사랑 계약하고 싶은 거지?”
“아무렴요!”
“그럼 내일 와. 고 대표님한테 이야기해 둘게.”
그때였다.
설아와 대화를 나누던 중 수염이 난 마른 체구의 사내가 다가와서 끼어들었다.
“오, 고진규 감독님 이야기신가요?”
“음? 아, 이신양 감독님이시군요.”
날파리의 감독이자 주인공을 연기한 이신양 감독.
내가 자신을 알아보자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가 말했다.
“예, 이준경 씨죠?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너무 다재다능하셔서.”
초면인 사람들은 항상 고민하는 것 같다.
내게 어떤 호칭을 붙여야 할지.
거기에 대해선 초지일관 답은 같았다.
“‘작가’라고 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작가니까.
호칭을 정해주자 이신양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이준경 작가님, 반갑습니다. 이신양이라고 합니다.”
“예.”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할 때였다.
갑자기 이신양 감독이 의아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음?”
“설아한테 들었어요. 작가님께서 저희 영화를 고르라고 해주셨다면서요?”
아아, 그 이야기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아닙니다. 그냥 이야기만 해준 거지, 딱 집어서 날파리에 출연하라고 한 적은 없는걸요.”
“에이, 말만 한 적 없지. 그냥 거의 반강제였잖아요.”
“누가?”
“사부가요. 그러니까 감독님 걱정 마세요.”
갑자기 나한테 자신을 반강제로 영화 날파리에 출연하도록 했단 듯 이야기하던 설아가 이신양 감독에게 걱정 말란다.
이신양 감독은 뜬금없이 자신에게 뭘 걱정 말라고 한 건지 이해를 못했다.
“음?”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신양 감독에게 설아가 날 가리켰다.
“우리 사부가 이스트라다무스거든요.”
그 이름을 또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당연히 아는 사람들은 무슨 별명인지 알았으나 초면인 이신양 감독은 몰랐다.
그게 뭐냐는 듯이 설아를 쳐다봤다.
“이스트라다무스?”
“사부가 하란 거 하면 다 성공해서 붙은 이름이에요!”
“아, 노스트라다무스에서 따온 거구나? 이야! 그럼 우리 10만이라도 노려볼 만한가?”
얼마 전에 이지안의 과속 가정사가 천만 관객을 찍으면서 10만이라는 관객수만 보면 없어 보였지만, 이신양 감독의 날파리가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10만 관객은 상업영화 천만 영화 못지않은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본래 영화 날파리는 그 영광을 누렸다.
때문에 설아가 데뷔작으로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준 것도 없잖아 있었지.
하지만 지금의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다.
나만 알 뿐.
그저 맞장구만 쳐줬다.
“잘되실 겁니다. 이신양 감독님도 감독님이시지만, 우리 설아도 연기를 잘했으니까요.”
이신양 감독을 칭찬함과 동시에 이제 우리 배우가 될 설아였으니 그녀를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설아를 칭찬하자 이신양 감독이 부럽단 눈빛으로 쳐다봤다.
“이야, 제자라고 편들어 주시는 건가요?”
“이신양 감독님께선 설아의 연기가 불만족스러우셨나요?”
“아뇨, 너무나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덕분에 재밌는 촬영이었어요. 설아 같은 나이에 받아들이기 어려울 작품이었는데, 잘 받아들이더라고요.”
설아를 보며 싱긋 웃는 이신양 감독.
그에게 설아 역시 즐거웠단 듯이 이야기했다.
“저도 재밌었어요!”
“그래.”
그렇게 이야기 나누던 중 갑자기 설아가 나 대신 이신양 감독을 영업했다.
“이참에 감독님도 저희 사부 통해서 K 엔터랑 계약하시는 건 어떠세요?”
“응?”
“어차피 감독님도 배우로서 연기 많이 하시잖아요. 딱히 소속된 기획사도 없으시면서.”
“아이고, 어떻게 내가 K 엔터랑 계약을…….”
아니, 또 그렇게 이야기하면 놓칠 수야 없지.
난 바로 이신양 감독을 낚았다.
“하실래요?”
“예?”
“전 이신양 감독님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건 감독으로서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요.”
내가 K 엔터로의 계약을 제안하자 이신양 감독은 기쁜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야, 이거 설아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큰 기회를 얻게 된 기분인데요?”
이런 반응이야 당연할지도 몰랐다.
현재 우리 회사의 K 엔터에 계약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뛰어났으며, 심지어 고진규 대표의 작품들도 전부 대박이 났다. 거기다가 제작사를 겸하니 원한다면 배우 말고 감독으로서도 활동 영역을 지원해 줄 수 있었다.
이 정도 계산만 되어도 충분히 누구나 매력적으로 느낄 회사이리라.
난 이신양 감독에게 대놓고 물었다.
“그럼 계약하시렵니까?”
“저야 이준경 작가님이나 K 엔터 고진규 대표님께서 괜찮다고 하시면 좋은 기회를 잡고 싶죠?”
만약 가능하면 하고 싶단다.
그럼 해야지.
“내일 설아랑 같이 저희 회사로 오시겠어요? 일단 제가 자리는 주선해 드리긴 해도 K 엔터의 주인은 고 대표님이시니 그분하고 대화를 나누셔야 할 겁니다.”
“저야 감사하죠. 진규 형님이 너무 잘나가셔서 같이 소주 한잔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말입니다.”
뭔가 고진규 대표와 만나서 술자리를 가져봤다는 듯한 이신양 감독.
설마 아는 사이인가 싶어서 물었다.
“고진규 대표님하고 아시는 사이세요?”
“감독들이야 오다가다 만나면서 술 한 잔 나누곤 하죠.”
“그렇군요.”
“예.”
막 친한 사이까진 아니고 그저 감독으로서 술자리 한 번 가진 사이 정도였나 보다.
이런 사이라면 내가 직접 연결해 주는 게 나아 보였다.
괜히 고진규 대표한테 말해서 직접 연락하라고 하는 것보단.
“그럼 이따가 회사에 연락해서 내일 설아랑 함께 고 대표님과 자리하실 시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혹시 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앗! 제가 찍어드리겠습니다.”
“예.”
난 내 휴대폰을 이신양 감독에게 넘겼고, 그와 번호를 나눈 뒤 뒤풀이 자리에서 헤어졌다.
설아를 집에 데려다 주고서.
* * *
날파리 시사회가 있고 일주일 뒤.
여기저기서 K 엔터에 대한 기사가 났다.
-독립영화 감독 이신양과 날파리의 히로인 강설아, K 엔터와 전속 계약 체결!
우리 K 엔터와 계약했단 사실이 일파만파 퍼졌고, 이건 나비효과처럼 새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날파리가 개봉한 후 한 달.
본래 상영관에서 내려갈 때 10만을 겨우 넘겨야만 했던 관객수가 벌써 200만에 다다랐다.
독립영화로서는 말도 안 될 정도의 기록이었다.
게다가 우리 영화들이 대박을 치면서 보통 개봉하면 성공할 경우 두 달까지도 상영하는 시스템이 구축됐는데, 독립영화로서는 처음으로 한 달 더 개봉한 채로 있도록 이야기까지 나왔다.
덕분에 이신양 감독은 날 볼 때마다 은인이라도 본 것마냥 인사했다.
“앗, 이준경 작가님! 어디 가십니까?”
“200만이 넘었습니다, 이게 다 작가님 덕분인 것 같습니다!”
“곧 250만도 넘겠는데요? 작가님 덕분에 제가 감독으로서도 좀 더 크게 활동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작가님, 300만 넘었습니다!”
딱 개봉 한 달하고도 보름이 될 무렵 독립영화 날파리는 300만 관객이란 기록을 달성했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감독 이신양에 대한 보도가 장난 아니게 나왔다.
국내 영화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기사가 날 정도로.
우리도 이득은 많이 봤다.
이렇게 이신양 감독마저 성공하니 배우가 되겠다는 신인들이나 현재 소속된 회사와의 계약이 끝나려는 배우들마저 K 엔터와 일하고 싶다며 몰려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신양 감독에게 고마운 점은 이런 게 아니다.
날파리 총 관객수 300만이 넘어가는 걸 축하하던 자리에서 새로운 소재와 일거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축하 자리에 모두 모이자 이신양 감독이 건배사를 하도록 시켰고, 이후 따로 잔을 건네며 축하 건배를 권했다.
“300만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에이, 이게 다 작가님 덕분이시죠.”
한결같이 내 덕이라는 이신양 감독.
그때 같이 앉아 있던 설아가 물었다.
“저는요, 감독님?”
“당연히 네 덕이 제일 크지. 덕분에 이런 행복도 누려보는구나. 아주 우리 설아가 복덩이야!”
“히히.”
“자자, 설아는 사이다 들고 셋이 한 번 짠하죠.”
“옙!”
“네!”
짠!
그렇게 건배를 하고 난 뒤 이신양 감독이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작가님.”
“예?”
“K 엔터 위에 있는 K E&M에서 웹툰도 한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예, 하고 있죠.”
“혹시 애니메이션은 관심이 없으신가요?”
“애니메이션요?”
“네, 저 아는 형님이 대한민국에서 애니메이션 문화를 좀 키우고 싶어 하시거든요.”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절대적으로 밀리던 문화 콘텐츠 중 하나였다.
예전에 만화가를 소재로 쓰던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알게 된 자료들이 있었다.
2002년 즈음인가?
한국 만화계를 살리기 위해서 국가적으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제작에 나선다더니 돈만 날려 먹은 뒤 잠정적으로 발전되지 못한 분야가 그쪽이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아동 쪽으론 발달이 잘돼서 아예 애니메이션 문화가 다 망한 건 아니다.
펭귄 대통령 하나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인 것만 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동 애니메이션에서만 이익을 보고, 나머지 분야에선 거의 다 망하고만 있었다.
그러니 점점 국가나 사업체들 모두 웹툰은 돈이 되나 애니메이션은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소득이 남지 않아 다들 철수하곤 했다.
그로 인해 이름 있는 만화가들 중 몇몇은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서 일본으로 아예 넘어가 버린 일들도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이신양 감독을 통해 새로운 소재가 되어줄 이야기가 만들어지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애니메이션이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