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59
나는 작가다 159화
159화
“저도 있죠.”
당연히 나도 그런 부담감에 대한 경험이 있다.
일단 내가 담당자일 때 담당하던 작가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도 많이 겪었다. 아니, 그때도 직접적인 부담감도 많이 있긴 했다.
담당하던 작가가 대박을 내서 차기작도 이만큼 할 수 있을지 부담스러워할 때, 그때 누구보다도 가장 부담스러운 이는 작가 다음으로 담당자였다.
담당자로서 자기 작가가 잘되면 어련히 회사에다가 더 좋은 조건을 받도록 해주는 게 맞았다.
담당한 작가를 케어하는 것.
이 또한 담당 편집자가 해야 할 의무였으니까.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편집자가 많긴 했지만, 최소한 난 작가를 담당하는 편집자라면 응당 그리 해야 한다고 배웠다.
이건 다른 이가 아니라 편집자로서의 내 롤모델이던 성용 형님에게 배운 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회귀한 뒤.
작가가 된 후에도 부담감은 있었다.
황제 로키가 생각보다 너무 잘됐기에.
하지만 ‘을’이었던 인생에 비하면 ‘갑’으로서의 성공은 지금 당장만이라도 매우 값졌다.
때문에 부담감보단 만족감이 더 컸다.
이 정도로만 살 수 있다면 이번 생은 성공했노라 여기며.
그렇게 마음을 편히 먹어서였을까?
흔히 내가 작가들에게 그리고 작가들끼리 하던 이야기가 있다.
‘여유로워야 작품도 잘된다.’
맞다.
여유롭지 못한 작가에게 작품 활동은 스트레스가 되고, 그럼 좋은 원고가 나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한데 언제나 난 여유만만이었다.
황제 로키로의 성공만으로도 ‘을’이던 편집자 이준경은 생각도 못할 거액을 만질 수 있었으면, 이젠 더 이상 망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회사까지 가지고 있다.
망할 수가 없는 여유로운 인생.
그러니 작품들도 마음 편히 쓸 수 있었으면, 독자들도 편히 읽을 수 있는 결과물이 됐다.
사실 이렇게 보면 여유롭기 그지없으니 부담감 없는 작가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이마이 사부로 대표 역시 날 그리 여겼다.
“신기하네요. 내는 작품마다 다 성공하셨다 알고 있어서 그런 부담감을 안 느끼는 분이 아닐까 싶었는데 말이죠.”
부담감을 안 느끼는 분이 아닐까.
그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어떻게 사람이 부담감을 갖지 못하겠습니까? 천 년, 만 년 대박 났다고 그 한 작품만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말이죠.”
“그렇죠. 그나저나 슬슬 출출한데 같이 점심 한 끼 어떠십니까? 근처에 스시를 기가 막히게 하는 곳이 있거든요.”
점심으로 자기가 아는 스시 가게를 가잔다.
나야 환영이다.
“현지인 추천으로 갈 수 있는 맛집이라면 저야 사양 않지요. 이래 봬도 글 쓰는 미식가랍니다.”
“하하! 안 그래도 쓸쓸한 미식가와 겹치는 것 같아 그 활동도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쓸쓸한 미식가라.
일본에서 먹방 드라마라고 하면 손에 꼽히는 인기 드라마였다.
사실 그걸 떠올리면서 글 쓰는 미식가를 시작했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거나 우린 이마이 사부로 대표의 안내를 받으며 근처 스시 가게로 가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끝나고 카페에 가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눈 뒤 난 일본으로 넘어온 목적을 챙겼다.
가이아스에서 퇴사한 뒤 새로운 애니메이션 회사 마즈라의 대표가 될 미야자키 요츠히코를 만나러.
* * *
“이준경 작가님?”
훤칠한 키에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정장 차림의 사내가 날 보고 물어왔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마즈라 대표가 살고 있는 집 근처 카페.
거기서 내 이름을 물어볼 사람이라면 아마도 마즈라의 대표인 미야자키 요츠히코가 아닐까 싶었다.
“미야자키 상?”
“맞군요. 실물을 직접 뵈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반갑습니다. 미야자키 요츠히코라고 합니다.”
날 알아본 미야자키 요츠히코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맞잡고 우리 쪽 사람들에 대해 소개했다.
“예, 이쪽은 저희 회사 대표님이신 홍성용 대표님이시고, 이쪽은 우리 회사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을 하고 계신 양상훈 감독님이십니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니, 대단하군요.”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다.
이마이 대표가 그랬던가?
난 재밌단 표정으로 쳐다봤다.
“어째 이마이 대표님하고 같은 이야기를 하시네요.”
“하하, 그런가요? 근데 당연한 이야기일 겁니다. 한국이란 나라는 우리가 볼 땐 애니메이션의 불모지 같은 곳이라서요. 그래서 대부분 한국에서 잘나가던 작가들도 애니메이션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넘어오니까요.”
애니메이션의 불모지.
맞는 소리다.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상업 만화가 성공한 건 아동 만화가 대다수였다. 아니, 대다수는 무슨.
그냥 전부 다 아동만화다.
아동에서 벗어난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는다면 일본의 것들이 대다수였다.
그나마 양상훈 감독의 경우 한국 정서에 맞는 사회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이야기 쪽을 다뤘으니 일본으로 넘어가지 않았지.
만약 그 역시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을 추구했더라면 일본으로 넘어갔으리라.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그가 거둔 상업적인 기록은 주력으로 하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그걸 위해 투자자를 설득하려고 만든 영화 ‘좀비열차’였으니까.
어쨌거나 천만 영화 좀비열차란 콘텐츠를 다룰 수 있는 양상훈 감독을 얻은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긴 했다.
천만 영화 한 작품의 의미는 매우 컸기에.
뿐만 아니라 그를 섭외한 덕분에 지금처럼 애니메이션 분야에 대한 확장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다.
어쨌거나 난 미야자키 요츠히코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습니다. 전 그런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했는데, 우리 회사가 양상훈 감독님 같은 분과 계약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이쯤이면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단순히 팬심으로 오신 건 아니리라 생각했는데, 혹시 아니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라, 내 입장에서 이래주면 고마웠다.
굳이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안 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한다면야.
팬심은 본론인 일처리를 끝낸 뒤 해도 되지.
난 미야자키 요츠히코에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닙니다. 본론이 따로 있습니다. 정확하시네요.”
“단순 팬이시라면 편지 한 장으로도 가능한 일을 이렇게 번거롭게 움직이시지 않았겠지요.”
이 아저씨가 본론으로 들어가자더니 내가 립서비스할 타이밍을 만들어줬다.
굳이 이런 호감도 쌓는 게 가능한 기회를 날려 버리면 바보지.
난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번거롭다뇨. 그건 오해입니다.”
“예?”
“개인적으로 그림투스는 매우 재밌게 본 작품이기에 팬심으로라도 뵙고 싶었습니다.”
“이거 제가 이준경 작가님의 팬심을 너무 얕잡아봤군요.”
내 팬심을 고작 편지 한 장으로 치부했단 사실에 대해 미안해하는 미야자키 요츠히코.
일본인들은 웃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성향이 좀 있었다.
반대로 그런 성향 때문인지 사과에 있어선 개인적인 견해를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인색하지 않았다.
내가 봐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사과에 인색하다고 느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본인에 비해선 그랬다.
단지 그들의 사과가 진심인지 아닌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울 뿐.
하지만 미야자키 요츠히코의 사과는 진심이 보였다.
덕분에 우위를 점하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괜찮다고 다시 한 번 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사실 본론이 있단 걸 어렴풋이 느끼셨으니 그리 느낄 만하시죠.”
“그런 본론으로 넘어갈까요?”
정정이다.
진심으로 사과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내가 괜찮다고 했으나 이렇게 빠르게 사과를 끝내고 본론부터 찾을 줄이야.
그걸 감안하면 기본적인 사과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인색할지언정 진심 어린 사과의 경우 일본보단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은 것 같았다.
하여간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하니 나 역시 그쪽으로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러시죠.”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저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어주실 생각이 있으신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이준경 작가님네 회사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본론이 무엇인지 들은 미야자키 요츠히코는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본론이 그거라면 잘못 찾아오신 것 같네요.”
잘못 찾아왔다.
그럴 만도 했다.
미야자키 요츠히코는 자신만의 애니메이션 회사를 차리려고 잘해주던 가이아스에서 나왔다.
갑자기 그들의 팀이 우리 회사로 들어온다면 가이아스 측에게 창피하리라.
근데 난 데려와야겠다.
방금 전 잘못 찾아왔단 미야자키 요츠히코의 말에 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안다는 듯이 답했다.
“압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가이아스 밑에서 제작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여기시겠죠.”
“잘 아시는군요.”
“하지만 미야자키 상이 생각하신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우리 회사로 들어오란 말을 자신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물어보는 미야자키 요츠히코.
그에게 난 조건부를 내걸었다.
“전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는다.
미야자키 요츠히코는 그 조건부가 썩 좋진 않단 표정이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 팀은…….”
그래, 무슨 말을 할지 잘 안다.
자기가 말하는데 자르면 결례를 범했다고 여길 수 있으나 난 기선제압이 필요하다 느꼈으므로 그의 말을 자르고 봤다.
“가이아스 사에 있었을 때도 터치를 받진 않았죠.”
“아시는군요.”
“예.”
가이아스 사에서도 터치를 받지 않았던 그림투스 팀.
그런 걸 알면서도 내가 터치를 하지 않는단 조건을 내세운 점에 대해 미야자키 요츠히코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이었다.
“근데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을 테니 저희더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어주길 바라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터치를 하지 않는단 건 적자에 대해 책임을 물지 않을 거란 겁니다.”
“그건 가이아스 사와 다를 게 없습니다.”
터치를 하지 않는다, 적자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 두 가지가 부담스러워서 그림투스 팀을 데리고 가이아스에서 나온 미야자키 요츠히코였다.
한데 내가 그 두 가지를 조건으로 내걸었으니 가이아스와 다른 게 없다 여겨지리라.
거기서 난 모순적인 멘트를 던졌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있도록 해드릴 생각입니다.”
순간 미야자키 요츠히코의 표정이 벙쪘다.
대관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단 표정.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책임을 지게 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미야자키 요츠히코가 물었다.
“책임을 질 수 있게 한다고요?”
“예.”
“오히려 책임을 안 묻는다고 나와야 정상 아닌가요? 아니, 방금 전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자신들을 데려가려면 가이아스보다 더 좋은 조건부를 꺼내야 하리라.
근데 정작 가이아스에선 책임을 묻지 않았는데 그걸 지게 한다고 하니 뭐하는 놈인가 싶었을 거다.
뿐만 아니라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책임을 묻지 않는다더니 지게 한다는 것도 궤변.
어디까지나 난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책임을 지는 건 다르단 이유가 뭔지 밝히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내가 미야자키 요츠히코와 그의 팀원들을 끌고 오기 위해 생각한 것에 대해서 묻기 위한 질문을.
“그게 싫어서 나온 분한테 그런 배려를 해드리면 올 이유가 없잖습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