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6
나는 작가다 016화
16화
“으아아! 빌어먹을 새끼!”
양경철이 흡연실로 쓰는 베란다에 나와 난간을 마구 주먹으로 쳐댔다.
방금 전 이준경 작가와의 통화에서 된통 한 방 먹어서 화가 났다.
그 사이 누군가가 베란다로 나왔다.
부장 장도철이었다.
담배를 꺼내면서 난리치고 있던 양경철에게 물었다.
“자식아, 왜 지랄이야?”
“젠장, 그놈한테 한 방 먹었습니다.”
장도철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무슨 한 방? 후우.”
내뿜은 담배 연기 사이에서 양경철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줬다.
“저번 미팅 때 자기 깔본 걸 사과하길 바라더라고요.”
“그래서?”
“젠장,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끌, 한 방 제대로 먹긴 했네.”
이준경 작가한테 한 방 먹어서 화가 난 양경철과 다르게 장도철은 꽤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형님, 무슨 좋은 일 있으십니까?”
“이준경 덕분에 독립하기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
“예? 녀석 덕분에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오르셨단 겁니까?”
양경철의 질문에 장도철은 담배 한 모금을 들이마신 뒤 내뱉으며 말했다.
“후우, 초판 부수.”
“초판 부수가 왜요?”
“일부러 2천 부씩 줄일 생각이다.”
“예?”
“이준경은 이미 사장이 관심을 두고 있으니 안 되고, 잘나가는 작가들 신작들 전부 2천 부씩 줄여서 찍을 거다.”
순간 양경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인도 아니고 잘나가는 작가들 초판 부수를 2천씩이나 줄여서 찍겠다니.
“그랬다가 잘못되면 큰일나는 거 아닙니까? 잘나가는 작가들 초판 부수 적으면 총판이나 대여점에서도 난리칠 텐데요”
“큰일은 우리가 나냐? 출판사가 나지.”
“아! 설마······.”
뒤늦게 장도철이 말한 바가 뭘 의미하는지 깨달은 양경철.
장도철이 씨익 웃었다.
“새끼, 눈치는 겁나 빨라요. 그 설마다.”
그처럼 양경철 역시 언제 이준경 작가 때문에 화가 났냐는 듯이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흐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그럼 슬슬 사무실도 알아보고 해야겠군요.”
“그래야지. 너도 적당히 홍성용한테 업무 ‘대충’ 알려줘라. 그래야 나갈 때 인수인계했다며 할 말이라도 있지.”
“저희가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대충’ 알려주겠습니다.”
“자식아, 그런 건 굳이 입 밖으로 이야기 안 해도 돼.”
한 번 이야기한 걸 굳이 강조하며 재차 되풀이하는 양경철의 어깨를 장도철이 손바닥으로 한 번 툭 건드렸다.
양경철은 담배 하나를 꺼내 붙을 붙였다.
칙!
맛있게 한 모금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말했다.
“후우, 이제 곧 빌어먹을 사장 밑에서 벗어날 수 있겠군요.”
“나보다 빌어먹겠냐? 하여간 준비나 잘해둬.”
“옙, ‘무한’ 충성입니다!”
두 사람이 푸른숲 출판사를 나가서 만들 새 회사의 이름이 ‘무한’이었다.
원래대로라면 2년 뒤에 만들어져야 할 무한 출판사.
그곳의 개업이 이준경 작가로 인해 좀 더 앞당겨지고 있었다.
* * *
또로롱.
알람이 울렸다.
“으, 벌써 6시 30분인가?”
아침 6시 30분이 아니라 오후 6시 30분.
이 시간에 알람을 맞춘 이유는 곧 있을 저녁 약속 때문이었다.
양경철과 통화를 하고 난 뒤 계약 건으로 성용 형님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 우리 집 근처에서 7시에 보기로 했다.
아무리 남자끼리 만나도 씻고 나가긴 해야 하니 알람을 맞춰둔 거다.
괜히 또 원고에 집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까 봐.
키보드 옆에서 알람이 울리던 휴대폰의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음, 지금 몇 자지?”
오전 9시에 전화를 이래저래 하고서 30분부터 쓰기 시작한 드래곤 나이트의 원고.
점심도 거르고 9시간 동안 썼다.
그동안 무려 12편을 완성하고 한 편 더 쓰고 있었다.
“3800자······. 그냥 나머지는 다녀와서 써야겠다.”
써둔 원고를 저장했다.
벌써 20편 가까이 쌓인 드래곤 나이트 원고.
왠지 모르게 원고가 쌓이니 연재 욕구가 다소 불타올랐다.
“이대로 연재해 버릴까?”
하지만 본능을 짓누르는 이성.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좀 더 모으자. 안정적으로 가야지.”
이제 18편이다.
이틀 연속 10편씩 폭참하려면 한참 부족했다.
아무리 내가 하루 각 잡고 쓰면 원고를 채울 수 있다곤 하지만, 간간히 황제 로키 원고도 겸하는 중인 데다가 추가로 이준경 월드를 펼칠 소설도 두 작품 더 쓸 계획이었다.
“어떻게 꼬일 지 모르니 한 40편은 쌓아두고 시작하자.”
연재 시작을 미룬 나는 드래곤 나이트 원고를 저장한 뒤 컴퓨터 전원을 껐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한껏 쭉 켰다.
“으으! 그럼 씻어볼까?”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겨울옷을 챙겨 입었다.
비교적 1월 치고 따뜻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었으니 따뜻하게 입어야만 했다.
스웨터에 겨울 청바지 그리고 겉에는 그리 더운 날씨가 아니니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거울 앞에 서서 전신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이야, 오랜만에 입어보네.”
군대에서 호걸본색이라는 영화를 보고 뽕이라도 맞은 것마냥 휴가 나와서 샀던 트렌치코트.
그걸 보니 나도 모르게 영화노래를 읊조렸다.
“헹, 헹씨우쎈, 쪼이와이오 쏭 완, 뉜······.”
이거 부르겠다고 중국어도 모르면서 한글로 옮겨다가 적어서 그런지 몸이 기억했다.
그렇게 부르면서 도장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
약속 장소인 당산역으로.
* * *
“아, 홍 대리님!”
출입구에서 커다란 PMP를 들고 뭔가 보고 있는 성용 형님이 보여서 손을 흔들며 불렀다.
그러자 한쪽에만 끼고 있던 이어폰을 뽑곤 두리번거리는 성용 형님.
“아, 작가님!”
날 발견하곤 이어폰을 PMP에다가 두르며 다가왔다.
아직 6시 55분인데 도착해 있는 걸 보곤 말했다.
“일찍 오셨네요.”
“흐흐, 작가님보다 일찍 와 있어야죠.”
“하하, 그럼 어디 좀 들어갈까요?”
계속 지하철역 입구 앞에 서 있을 순 없는 노릇.
성용 형님이 내게 물었다.
“저녁 드셨습니까, 작가님?”
안 그래도 물어봐 주길 바랐다.
푸른숲 출판사 돈으로 공짜밥을 먹으려고 별렀으니까.
“아뇨, 법인카드 들고 오실 거라 생각해서 하루 종일 굶고 있었어요.”
종일 굶었다고 하자 성용 형님이 화들짝 놀랐다.
“헉! 그러시군요. 그럼 식사부터 하러 갈까요?”
“그래도 좋고요. 돼지고기 어떠세요?”
내가 돼지고기를 말하자 성용 형님이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이준경 작가님 맛있는 거 사드리라고 최대 50만 원까지 써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오, 그래요?”
“예!”
이 시기에 작가 만나는 데 50만 원이면 S급 작가들 미팅값이었다.
신인인데 아예 S급 작가로 대우해 줘서라도 잡아두려는 것 같았다.
일단 나도 푸른숲 출판사에서 데뷔할 생각이긴 하니 나쁘지 않았다.
몸담는 만큼 뜯어먹어야지.
“그래도 돼지고기 먹죠.”
“에? 소고기 드셔도 되는데······.”
50만 원을 써도 되는데 굳이 소고기도 아니고 돼지고기를 먹잔 말에 당혹스러워하는 성용 형님.
그에게 난 씨익 웃어 보였다.
“1차로 돼지고기 간단하게 먹고, 2차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2차는 회에다가 사케 마시죠. 그럼 50만 원 다 쓸 것 같네요.”
무슨 의도로 저녁을 돼지고기로 먹자고 한지 깨달은 성용 형님이 박수까지 크게 짝! 치며 반겼다.
“오! 그것도 좋겠군요!”
“가시죠. 근처에 새로 생긴 돼지고기집이 있는데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죠!”
근처에 새로 오픈한 돼지고기집을 갔다.
고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가 소주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
하지만 고기만 먹자니 물렸다.
난 손을 들며 소리쳤다.
“이모!”
내가 직원을 부르자 성용형님이 물었다.
“뭐 더 시키시게요?”
“아무래도 돼지고기 먹으면서 소주 하면 껍데기도 있어야죠.”
돼지껍데기를 추가한다는 내 말에 성용 형님이 감탄했다.
“크으, 이준경 작가님께서 뭔가 아시네요!”
“후후!”
꽤나 기분 좋게 웃는 사이 직원이 다가왔다.
“뭐 드릴까요?”
“껍데기 1인분만 갖다 주세요.”
“네.”
주문을 받은 직원이 자리를 떠난 뒤 난 성용 형님에게 말했다.
“간단하게 껍데기로 마무리 짓고 2차로 회나 먹으러 가죠?”
“좋습니다.”
그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직원이 다가왔다.
주문했던 돼지껍데기를 가지고.
“여기 있습니다.”
돼지껍데기만 딸랑 내려놓는 직원.
내려놓아야 할 게 더 있을 텐데, 그냥 돌아가는 걸 보고 성용 형님이 손을 들었다.
“저기······.”
딱 봐도 뭘 필요로 하는지 훤히 보였다.
나도 필요했기에 직원에게 물었다.
“아니, 이모. 콩가루 없어요?”
“갖다드릴게요.”
그렇게 직원이 콩가루를 가지러 가자 성용 형님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이준경 작가님이 저랑 취향이 딱 맞으시네요?”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지닌 사람.
그보다 반가운 이가 또 있을까?
뻔히 성용 형님이 말한 취향이 뭔지 알면서 난 일부러 모르쇠로 일관했다.
“뭐가요?”
“돼지껍데기에는 콩가루가 있어야죠!”
“그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한잔하시죠.”
“옙!”
성용 형님에게 소주를 건넸다.
나 역시 그에게 소주를 한 잔 받았다.
서로 채운 잔을 보곤 건배를 했다.
짠!
1차로 돼지고기로 배를 채운 뒤 우리는 내가 편집자 생활을 하면서 자주 다녔던 단골 선술집으로 옮겼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혼자서 술을 마시다가 잔뜩 취하면 부르던 곳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도 단골이 됐다.
가게 앞에 도착한 나는 간판을 쳐다봤다.
‘선술집’.
나중에는 이자카야가 많아지면서 일본어로 된 간판들이 많았지만, 이곳은 겉에서 보면 허름한 동네 술집처럼 보였다.
허름한 건 안도 마찬가지긴 했다.
그건 2017년에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긴 2017년까지 20년을 안 망하고 장사하네.’
선술집을 본 성용 형님은 탄성을 자아냈다.
“오, 이런 곳도 좋아하시나 봐요?”
“한 번 맛보시죠. 제가 장담합니다. 앞으로 20년은 안 망하고 장사할 맛입니다.”
“크,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 이준경 작가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기대되는데요?”
성용 형님을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리를 잡은 뒤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주문했다.
“여기 모듬 사시미하고 해물나베 그리고 사케는 이놈으로 한 병 주세요.”
“네.”
숙성회를 모듬 사시미로 내어줬는데, 양에 비해서는 비쌌다. 하지만 그 맛은 실로 감탄스럽기에 비싼 값을 했다.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실 땐 국물은 필수.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해물나베가 제격이다.
거기다가 아직 돼지고기집에서 10만 원도 채 안 썼으니 50만 원에서 남은 돈을 쓰기 위해 20만 원짜리 사케도 한 병 시켰다.
주문을 마치고 추가로 한 가지 직원에게 한마디 더했다.
“아, 그리고 사케랑 스끼다시는 사시미랑 같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직원은 사장에게 주문을 전달하려고 떠났다.
성용 형님과 둘만 남은 자리.
거기서 난 이 자리의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그럼 저희는 술이랑 안주 나오기 전에 계약서 도장부터 찍을까요?”
“아! 옙! 여기 있습니다.”
가방에서 계약을 꺼내서 건네는 성용 형님.
그걸 받아들고 내용을 쭉 훑어봤다.
내가 원하던 대로 수정이 되어 있었다.
흡족한 미소로 답했다.
“말한 대로 다 수정됐네요.”
“사장님께서 이준경 작가님의 글이 정말 좋으셨는지 팍팍 밀어주시더라고요.”
“그렇군요. 양 과장님이 속 좀 쓰리겠네요. 그렇게 절 무시하셨었는데······. 아! 양주는 얻어먹으셨어요?”
내 연재 성적을 가지고 내기를 했다던가?
그것도 양주를 걸고서.
자신의 내기를 기억해 주자 성용 형님은 그것도 감동이란 표정으로 어찌 됐는지 알려줬다.
“크, 그걸 또 기억하시네요. 양주 말고 소맥이나 타주시더군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예? 양주 내기였다면서요?”
“자기가 타주는 소맥이 더 귀하다면서 그걸로 주시더군요.”
자신이 지니 양주를 소맥으로 바꿨다니.
정말 양 과장은 언제나 한결 같은 쓰레기였다.
양 과장의 행동에 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후, 군대나 밖이나 계급이 깡패네요.”
“저야 뭐 공익이라 군대는 모르겠지만, 정말 계급이 깡패긴 합니다.”
“하하, 그나저나 계약서는 제가 원한 대로 됐으니 도장이나 찍어야겠네요.”
옆에 의자에 걸쳐둔 코트에서 도장을 꺼냈다. 그리고 계약서를 반으로 접으며 물었다.
“이거 이렇게 접어서도 찍죠?”
“어? 알고 계시나요?”
“예, 아는 작가님이 술마시면서 알려주셨어요.”
“그렇군요. 그리 찍으시면 됩니다. 제가 접어드릴까요?”
“아뇨, 제가 혼자 하겠습니다. 그게 거추장스럽지도 않아보이니.”
“옙!”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땐 이름 옆에 ‘(인)’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찍는 곳이 많았다.
이게 진짜 계약서라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갑과 을이 가질 총 두 부의 계약서.
그걸 겹쳐서 중앙에 한 번 찍고, 각 계약서마다 한 장씩 반으로 접으며 도장을 찍으면 됐다.
그렇게 모두 찍고 난 뒤 한 장은 성용 형님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내게서 계약서 한 장을 받은 성용 형님이 가방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왕이면 들고 가시기 편하게 여기 넣으시죠, 작가님.”
“오, 센스쟁이시네. 집 앞이라 그냥 들고 가게 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에이, 제가 양 과장님도 아니고. 헙! 제가 술이 좀 들어갔나 봅니다.”
순간 양 과장 이야기를 하다가 입을 틀어막는 성용 형님.
그에게 난 씨익 웃으며 악마의 속삭임을 흘렸다.
“하하! 괜찮아요. 저도 별로 안 좋아하니 아예 우리끼리 있을 땐 경철이나 양 과장이라고 부르죠, 어때요?”
“이것 참, 작가님이 하라고 하시면 할 수밖에······.”
일단 상사라서일까?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 과장을 편히 부르려고 했다.
거기서 난 장난기가 발동했다.
“싫으시면 홍 대리님은 안 하셔도······.”
평소대로 양 과장을 편하게 부르지 말라고 하기 무섭게 성용 형님이 다급하게 답했다.
“하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