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65
나는 작가다 165화
165화
“우리 손자, 손녀들이 이 작가님의 사인을 받아 달라고 부탁했소. 게다가 손녀 중 하나는 자기도 강설아란 배우처럼 키워줬으면 한다는군.”
눈빛만 보면 광고보다 내 사인이 더 필요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손녀 중 하나가 설아처럼 키워줬으면 한단다.
이게 본 목적이었나.
아무리 대기업 회장님이라도 손자들 앞에선 한 명의 할아버지란 건가.
그나저나 손녀 중 한 명은 누군지 모르겠군.
“설아처럼 키워 달라고요?”
“맞소, 어차피 가업은 사내들이 이어받으니 개인적으로 욕심이 없다면 손녀들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고 싶네만. 내 손녀 중 하나가 강설아란 배우처럼 자네 회사에서 글도 배우고, 연기도 배우고 싶다고 했더이다.”
가끔 이런 요청이 있긴 했다.
설아가 배우로서 성공한 뒤 매화신검의 작가인 걸 말하면서 자신이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으로 날 지목하니 몇몇 부모들이 회사까지 쫓아와서 부탁하더라.
자기 자식들도 설아처럼 키워 달라고.
설마 이런 부탁을 그냥 대기업도 아니고 우성 그룹 회장님한테 들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난 겸손을 떨었다.
“어, 그건 좀 설아가 절 과대하게 포장한 겁니다.”
“과대하게 포장했다?”
“예. 물론, 제가 설아의 원고를 봐준 건 사실이나 원래 자기가 흥미를 가져서 노력해 온 아이고. 연기의 경우에는 그 아이가 직접 노력해서 거머쥔 결과물입니다.”
“즉, 우리 손녀딸도 이 작가님네 회사에 들어가고 싶으면 노력하란 것이로군.”
일단 재능은 둘째 치더라도 노력은 있어야 뭐라도 시켜주지, 노력조차 없다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키울 수 없었다.
노력하지 않으면 성실한 연재가 안 되고, 그렇다면 결국 재능이 있어 봐야 썩어버린 재목일 뿐이다.
난 노력이 없으면 어떻게 될지 이야기했다.
“굳이 계약을 하게 해달라고 하신다면야 못 할 건 없지만, 저희 회사 기준을 넘기지 못하면 평생 백조로 살지도 모릅니다.”
대기업 회장의 손녀딸이 백조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하지만 우성 그룹 회장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평생 백조라……. 어차피 돈이야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평생 놀고 먹어도 될 정도로 있는 아이이거늘.”
그저 작가고, 배우고 취미로만 해도 되다는 소리였다.
“그건 부럽군요.”
“허허, 우리 이 작가님이 애들 코 묻은 돈을 부러워해서야 쓰나? 돈도 더 많은 분이.”
“애들 코 묻은 돈이라뇨, 그 돈 역시 회장님께서 열심히 살아오신 결실이지 않습니까? 그걸 핏줄이란 이유로 처음부터 쥐고 태어나니 부럽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자수성가한 사람이 그런 걸 부러워해서야 쓰겠소?”
“하긴 자수성가의 대명사님 회장님 앞이니 서로 금수저 쥐고 태어나기보단 자수성가한 걸 높이 이야기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겠군요.”
“금수저를 쥐고 태어났다? 표현 한 번 재밌구려.”
우성 그룹 회장은 너털웃음과 함께 즐거워했다.
어차피 나중 가면 다들 쓰게 될 표현인데, 아직 인터넷 용어로 퍼지기 직전이다 보니 내가 생각해낸 표현법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지.
어쨌거나 난 회장의 추가적인 부탁을 들어줬다.
손자, 손녀들에게 줄 사인을.
그렇게 사인까지 받고 나자 우성 그룹 회장이 말했다.
“어쨌거나 노력하지도 않는 걸 하게 내버려두고 싶지도 않으니 만약 이 작가님이 봤을 때 아니다 싶으면 쳐내버리시오. 그래도 노력할 기회 정돈 줄 거라 믿소.”
“아무렴요.”
“내 손녀딸을 봐준다니 고마워서 이 작가님에게 명함 한 장을 드리외다.”
“명함요? 아까 주시지 않으셨나요?”
분명 난 아까 우성 그룹 회장의 비서를 통해 명함 한 장을 받았다.
아무런 주소가 없이 오직 우성과 회장의 이름만 박힌 명함 한 장을.
하지만 지금 우성 그룹 회장이 준다는 명함은 그것과 다른 것이었다.
“그건 번호가 없는 명함이고, 여긴 이 작가님께서 내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는 번호가 있는 명함이외다. 뭐든 좋으니 내 도움이 필요하면 거기로 전화하시오. 단, 한 번 하면 끝이니 정말 필요할 때 거셔야 할 거요.”
“한 번 전화하고 나면 이 번호로는 더 이상 안 받으시나 보네요.”
“허어, 똑똑하시구려.”
“작가 하려면 이 정도 상상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손녀딸도 그런 상상력을 지녔으면 좋겠구려.”
끝까지 손녀딸이 원하는 걸 했으면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는 우성 그룹 회장.
이런 캐릭터도 소설에 담으면 좋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냉혈한일지 모르는 기업가이나 가족에게만은 따뜻한.
어쨌거나 비서를 통해 번호가 적힌 명함을 받곤 마지막 당부만 건넸다.
“일단 보내주시면 최대한 키워보긴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드렸다시피 안 되겠다 싶으면…….”
“치워 버리시게.”
노력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선 손녀딸이래도 매우 가차없는 우성그룹 회장이었다.
* * *
우성 그룹 회장과의 미팅을 끝낸 다음 날.
오늘은 청와대로 향했다.
대관절 나랏님께선 무슨 연유로 날 찾는 건지.
그래, 만나보면 알겠지.
청와대에 도착한 나는 신분증과 소지품 검사를 맡은 뒤 대통령 집무실에 입장했다.
“오,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이준경 작가님. 박지광이라 하오.”
대통령의 품위보단 왠지 모를 사업가 이미지가 강렬한 첫인상.
그럴 만도 하다.
국가를 나라가 아닌 기업처럼 여기던 대통령이 그였으니까.
어쨌거나 나중에 진실이 파헤치기 전까진 그는 성공적인 정치를 했던 서울시장에서 대통령까지 오른 인물.
안 좋은 점을 알고 있다곤 하나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일단 점잖게 악수를 받아들였다.
“예, 반갑습니다. 작가 이준경이라고 합니다.”
“자자, 앉으시죠.”
“알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날 박지광 대통령은 편히 대했다.
“너무 딱딱하게 계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저도 이준경 작가님의 팬 중 하나이자 그저 대한민국 국민일 뿐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님이시라는 사실이 바뀌진 않잖습니까?”
“껄껄, 그렇기야 하죠.”
“부르신 연유에 대해 여쭤도 되겠습니까?”
본론만 듣고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자 박지광 대통령은 자신의 출간 이력에 대해 밝혔다.
“사실 제가 에세이를 하나 쓴 게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우리 이준경 작가님 작품들에 의해서 완전히 묻혔죠.”
“제 탓이라 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설마 내 탓이라 생각하고 복수라도 할 생각으로 부른 건 아니겠지?
아무리 뒷공작이 많은 양반이라도 고작 그런 사소한 복수심을 펼치진 않으리라.
예상대로 박지광 대통령이 날 부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아닙니다. 설마요. 제 실력이 모자라서 묻힌 거지, 어찌 제 에세이가 묻힌 게 이준경 작가님 때문이겠습니까? 단지…….”
“단지?”
“에세이를 출간했을 때 베스트셀러에 계셨던 이준경 작가님의 실력을 좀 빌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제 자서전을 써주시지 않겠습니까?”
자기 자서전을 써 달라니.
내가 왜?
이런 인간의 자서전을?
거절한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많이 남으셨을 텐데, 자서전을 써 달라고 부탁하시는 건가요?”
“임기가 많이 남긴 했으나 그간 이준경 작가님께서 제 행보를 지켜봐 주시면서 써주시면 더 생동감 넘치는 자서전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전 제 글을 쓰는 작가지, 남의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가 아니라서 힘들 것 같습니다.”
좋게 거절한다고 한 건데, 나도 모르게 말에 가시가 돋쳐 있다.
박지광 대통령은 이런 수도 생각해 두고 있었는지 곧장 해결책을 내세웠다.
“남의 글이라뇨, 제 자서전이나 저자명은 이준경 작가님으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자명을 나로 한다.
오히려 자신이 저자인 것보다 내가 했을 때 더욱 인기몰이를 할 것이고, 이게 된다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나란 작가가 자길 지지한다고 하리라.
별로 난 그를 지지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더 거절했다.
“그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비록 이것저것 시도하긴 했으나 전 소설가입니다. 소설가는 픽션을 다뤄야지, 논픽션을 다루는 글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차라리 실력 좋은 수필 작가를 찾으심이 나을 것 같습니다.”
내가 곧 죽어도 댁 자서전은 안 쓴다.
“그럼 이준경 작가님께선 자기 자서전도 안 쓰실 겁니까? 그건 자기 이야기를 픽션으로 다룬 수필일 텐데요?”
자기 자서전을 써줄 게 아니면 나더러 자서전도 쓰지 말라고?
말 같잖은 소리다.
“그건 제 인생이지, 남의 인생이 아니잖습니까?”
“허어, 이렇게 제 부탁을 거절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거 뉘앙스가 묘하다.
거절하면 뒷감당할 수 있겠냐는 듯한 어투.
난 표정을 싹 굳혔다.
“거절해도 괜찮겠냐니, 협박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에이, 설마 대통령이 국민을 협박할 수 있겠습니까?”
말이야 저렇게 하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란 걸 잘 알았다.
대국민 여론조작, 블랙리스트, 민간인 사찰, 보수단체 관제 데모 조직, 선거 개입 그리고 대통령이란 작자가 뒤도 아니고 앞으로 제 돈을 챙기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나 같은 사람 조용히 묻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리라.
그렇다고 이 모든 걸 하고 있단 사실을 기사로 쓰거나 그럴 수도 없는 노릇.
그때 문득 난 방금 전 박지광 대통령과의 이야기 도중 나온 단어가 떠올랐다.
‘자서전……내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면?’
회귀를 한 나다.
이것부터 쓴다면 일반인들에겐 그저 내 이야기는 자서전이 아닌 판타지 소설로 받아들여지리라.
그렇다면 실제로 사건을 다뤄서 누군가들의 운명이 강제로 바뀌는 게 아니라 내 독자들이 스스로 개척해 나가지 않을까 싶었다.
앞으로 있을 나라에 소설보다도, 영화보다도 더 말이 안 되는 현실 속 일들에 대한 대처를 준비하며.
문득 이렇게 생각하니 아주 유명한 명언이 떠올랐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낸 명언.
그 명언을 듣고 난 박지광 대통령은 황당하단 듯이 쳐다봤다.
“예?”
당황하는 박지광 대통령을 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절 부르신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이만 전 가보겠습니다.”
“허어, 정말 제 부탁을 거절하시는 겁니까?”
“예, 거절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 내게 박지광 대통령이 인사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작품 활동 꼭 잘하시길 바랍니다.”
말로는 잘하라는데, 저런 말이 내 귀엔 다르게 들렸다.
작품 활동을 잘 못할 거라고 협박하는 걸로.
협박한다면 싸울 수밖에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상대해 주마.’
그렇게 박지광 대통령과의 만남이 끝난 뒤 난 청와대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설마 이걸 하루 만에 쓰게 될 줄이야.”
지갑을 꺼냈다. 거기서 명함 한 장을 끄집어냈다.
내 손에는 어제 만난 우성 그룹 회장의 명함이 들려 있었다.
단 한 번 어떤 소원이든 들어줄 수 있다는 명함.
사실 이걸 쓸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세상만사가 대부분 돈으로 다 해결됐다.
돈이라면 이미 충분했으니 이 명함을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난 그 명함을 꺼내 든 뒤 우성 그룹 회장에게 부탁했다.
“허어, 우리 이준경 작가님께서 하루 만에 내게 부탁할 일이 생기셨소?”
“예, 생겼습니다.”
“무슨 부탁이오? 그나저나 지금은 청와대에 있을 시간이 아니시던가?”
오늘 청와대를 간단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다니.
역시 우성 그룹 회장이다.
어쨌거나 난 청와대라고 생각하는 우성 그룹 회장에게 이야기했다.
“방금 청와대에서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만남이 일찍 끝났구려.”
“그분이 부탁하신 걸 거절하고 나왔기 때문이죠.”
“허어, 그분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했소?”
“예.”
“무슨 부탁이었기에?”
“그것이…….”
난 우성 그룹 회장에게 청와대에서 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부탁할 게 뭔지 알려줬다.
“대통령께서 부탁하신 걸 거절했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니 제 안전을 책임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히 해드려야지. 우리 손녀딸의 스승이 되실 분인데. 걱정 마시게, 절대 대통령 할아비가 와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보호해 드리겠소.”
“감사합니다.”
“근데 평생 내 보호만 사실 요량은 아니겠지요?”
“싸워보려고 합니다.”
“뭐라고?”
순간 내 말을 듣곤 우성 그룹 회장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일개 작가놈이 대통령과 싸우겠다고 할 줄은 몰랐단 반응이다.
그런 우성 그룹 회장에게 난 다시 한 번 더 말해줬다.
“제 무기인 펜으로 세상과 싸워보려고 합니다.”
* * *
우성 그룹의 보호 아래 난 신작 집필에 들어갔다.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회귀한 주인공인 날 다루는 작가물을 썼다. 그리고 작가물에서 난 내가 아는 모든 걸 녹여냈다.
그간 내가 회귀한 이후 지내온 모든 일들과 앞으로 있을 국가적인 문제들을 전부.
세상에 이 글은 픽션인 소설로 알려질 것이다.
그럼 모든 독자들은 내 상상력으로 비롯된 것들이라 여기리라.
하지만 독자들 중 정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개중에 청렴하여 국가를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 스스로 국가의 운명과 미래를 개척해 줄 거라 믿었다.
내가 직접 나서는 건 안 됐다.
타임 패러독스를 우려했기에.
사실 이것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난 내 글을 쓸 뿐이다.’
쉬지 않고 난 내가 살아온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정리했고, 나머지는 진짜로 소설처럼 써버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 이후의 미래는 몰랐기에.
그렇게 나의 자서전과도 같은 소설 신작.
내용만 가득 채운 그 원고 상단에 제목을 새겼다.
‘나는 작가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