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2
나는 작가다 002화
2화
캐나다.
제대 후 소개팅에서 만난 여인과 하룻밤을 보냈더니 애가 생겼단다.
결국 속도위반 결혼을 택했고, 작가로서 망한 입장에서 성용 형님이 딱히 할 일 없으면 편집자는 어떠냐고 물어봤다.
뭔가 소재라던가, 설정은 잘 잡는 것 같으니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그리고 편집자로서는 능력은 꽤 있다고 자부심을 느끼긴 했다.
어쨌거나 내가 담당했던 작가들은 다 잘 됐으니까.
덕분에 우리 딸 수정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열심히 번 돈으로 캐나다 유학을 보냈다.
아내와 함께.
그렇게 캐나다로 모녀를 보낸 뒤 난 기러기 아빠로 살았다.
워낙 편집자란 직업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 했기에 마지막으로 본 게 3년 전인 것 같다.
그때가 초등학생이었고, 지금은 중학생이 됐으니 꽤 컸으리라.
“얼른 보고 싶네.”
스마트폰에 적어둔 주소를 확인하면서 어리숙한 영어로 딸과 아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처갓집에서 집을 구해준 이후로 어떤 것도 지원해주지 않을 거라고 해서 아내 명의로 산 신혼 아파트를 판 돈으로 구한 전세 주택.
그 앞에 도착했다.
일부러 오는 것도 비밀로 부쳤다.
오랜만에 보는 아빠이자 남편인 내 얼굴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다.
당연히 내 딸 수정이는 반가움에 찬 얼굴로 달려들지 않을까 싶었다.
아빠를 안아주기 위해서.
수정이가 어릴 때 날밤을 새고 일한 뒤 들어간 날 안아줄 때면 모든 피로가 싹 씻겼던 그 때처럼.
그때였다.
주택에서 문이 열렸다.
여중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나왔다.
분명 저 얼굴은 수정이었다.
수정이는 아주 밝은 미소와 함께 제 엄마와 함께 나왔다.
‘제 엄마랑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볼 딸애가 날 보면 어찌 반응할지 궁금해서 다가가는 찰나.
수덩이가 뒤돌아서서 천천히 밖으로 나오며 환하게 인사했다.
“학교 다녀올게요, 엄마, 아빠!”
“다녀와, 크리스탈.”
우뚝!
순간 내 걸음이 멈췄다.
방금 수정이가 뭐라 한 거지?
분명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아빠’라고 했다.
일순간 모든 사고가 정지된 것과 같았다.
아빠가 여기 있는데, 도대체 넌 누구에게 아빠라고 한 거니?
그 사이 수정이가 등교하러 가는 건지 반대편으로 떠났다.
잠시간 등교하는 수정이의 뒷모습을 보던 내 시야가 좌측으로 움직였다.
거기서 내 아내와 웬 큰 덩치를 한 양키놈이 서로 애틋하게 쳐다봤다.
마치 신혼부부처럼.
“우린 이제 그만 들어가서 아침 운동이나 할까?”
“그래요, 미카엘.”
덩치 큰 양키놈이 내 아내를 그대로 공주님마냥 안고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 애써 외면했다.
잘못됐다.
그걸 깨달았으면 당장 가서 잘못을 바로 고쳤어야 했는데, 난 당장 닥친 말도 안 되는 현실에서 도피해버렸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소주를 찾았다.
맨정신으로 버티기엔 너무나도 충격이 컸기에.
근데 이놈의 소주는 편의점에서 팔지도 않는다.
가서 소주가 어디 있냐고 했더니 뭐 주류가게를 따로 가야 살 수 있단다.
편의점 직원이 알려준 대로 갔다.
거기서 소주를 사는데, 가격이 5불이나 했다.
한국이면 이천 원도 안 하는 걸 이리 비싸게 주고 사야 한다니.
그러나 가격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 정신을 안정시켜 줄 무언가가 필요할 뿐.
10불로 소주 두 병을 결제하고 나온 뒤 난 아내와 내 딸이 머무는 주택가 근처에서 술을 마셨다.
소주 두 병을 빠르게 비웠다.
“크.”
손등으로 입가에 미세하게 흘러내리던 소주를 훔쳤다.
취기에 몸을 맡기니 뭐든 겁날 게 없었다.
그대로 아내와 그 양키놈이 들어갔던 집으로 향했다.
문으로 가기 전 창문을 통해 안이 어떤지 봤다.
거기선 아내와 양키놈이 속옷만 입은 채 담배 연기가 집 안을 잠식할 정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 여편네가 언제 담배를?!”
단 한 번도 나와 지낼 때 담배란 걸 손도 댄 적 없는 그녀였다.
근데 담배를 피면서 두 연놈의 표정이 묘하다.
설마 저거 마약인가?
아무리 봐도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내 딸 수정이를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
하나뿐인 딸이 마약쟁이들 밑에서 자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난 문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영어로 누구냐고 묻는 게 들렸다.
무시한 채 난 초인종만 한 번 더 눌렀다.
띵동-!
두 번째 벨소리에도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띵동-!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뭐라도 걸치는 중이겠거니.
하지만 난 그런 걸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다른 놈과 뒹굴던 속옷 차림이 쪽팔려서 뭘 걸치겠다니.
염치도 없는 여편네다.
초인종을 세 번이나 눌렀는 데도 나오지 않기에 그 때부터 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쾅쾅쾅!
“아, 나간다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문은 열리지 않았기에 다시 쾅쾅 쳤다.
쾅쾅쾅!
그제야 문이 열렸다.
철컥.
아내는 문을 열면서 짜증난 목소리로 대응했다. 물론, 완전히 나와서 날 보곤 짜증이란 감정은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아이씨, 도대체 누구······ 헉! 여보?!”
날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내.
그녀를 보며 난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술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화가 난 게 웃음으로 표출된 걸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에게 난 검지로 집 안을 가리켰다.
“여보? 웃기고 있네. 네 여보는 저 안에 있잖아?”
안 그래도 아까 본 덩치 큰 양키가 목욕 가운을 걸친 채 뒤따라왔다.
아내가 뒤를 살짝 돌아본 뒤 다시 날 쳐다봤다.
“여보, 그게······.”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사실 바람피운 것까진 변명한다면 넘어갈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약은 아니다.
사랑스러운 내 하나뿐인 딸 수정이를 이런 마약쟁이들 밑에서 자라도록 할 순 없었다.
단호하게 그녀의 변명을 끊었다.
“됐고, 이혼해. 그리고 수정이는 내가 데려간다.”
수정이를 데려간다고 하자 갑자기 아내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아니, 수정이를 왜 당신이 데려가?”
아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지금 어이가 없어야 할 사람이 누군데,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뭐? 내가 뼈 빠지게 벌어서 캐나다 유학도 보내주고, 이렇게 생활도 하게 해줬는데 내가 안 데려가면 누가 데려가? 당신이 수정이를 키울 능력은 돼?”
갑작스레 아내는 이런 내 말에 반문했다.
“그러는 당신은 돼?”
“뭐?”
“이 집도 우리 아빠가 사준 집 팔아서 구한 거잖아? 심지어 월세 보증금도 겨우 메우고선 다달이 월세 빼면 얼마 남지도 않는 쥐꼬리만 돈 가지고 생색내긴.”
쥐꼬리.
난 그 쥐꼬리를 벌기 위해 십 년이 넘도록 야근과 음주를 일삼았다.
아내 자신과 딸 수정이를 위했던 내 노력을 고작 쥐꼬리에다가 비유하다니.
정말 거지같다.
내 돈이 적다고 한 아내에게 난 다시금 마약쟁이 양키 새끼를 가리켰다.
“아, 그러셔? 그럼 그간 먹고, 싸고, 넣고 한 돈은 다 저 안에 마약쟁이한테서 받았나 보지?”
“미카엘은 마약쟁이가 아니야!”
지금 이런 상황이면 내게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국에 미카엘이란 더 덩치 양키의 편을 드는 아내.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닥쳐! 방금 창문으로 다 봤거든? 애 공부시키라고 유학 보냈더니 마약이나 하고. 당신은 애 엄마 자격 없어.”
“그러는 당신은 무슨 자격이 있는데? 어차피 당신 딸도 아니거든?”
자신에게 자격이 없다고 했더니 정말 신선한 충격을 주는 개소리나 짖어댄다.
어차피 수정이가 내 딸이 아니라니?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 그게 무슨 개소리야?”
“잘 생각해 봐. 당신 피임 제대로 했었는데, 어째서 저 아이가 당신 아이겠어?”
이상하긴 했다.
분명 아내와 소개팅을 한 날 치렀던 거사에 난 분명히 제대로 피임했었다.
어쩌겠는가?
내 애가 생겼다고 하니 피임기구에 문제가 있었으리라.
근데 이제 와서 내 애가 아니라니?
무슨 말 같잖은 소리냐며 따졌다.
“그럼 그땐 왜 내 아이라고 했는데?”
“설마 그때 이런 배불뚝이 아저씨가 될 줄 알았나. 그때 당신 꽤 잘생겼잖아. 영곤이보다 나았지.”
영곤이.
아마도 오영곤인가 하는 그놈을 이야기하는 걸 거다.
소개팅 이후 나랑 사귀었던 아내가 자신을 쫓아다니는 스토커가 있다고 해서 처리했던 양아치 같은 놈이었다.
설마 그놈이 맞는지 확인했다.
“영곤이? 네 뒤 쫓아다닌다던 스토커 오영곤이?”
“어머, 그걸 기억해?”
거기서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 왔다.
“서, 설마 수정이 애가 그 자식 애라고?”
“맞아, 그러니 당신도 저 애 아빠 자격 없다고. 그러니 이만 가.”
사실 수정이가 오영곤의 애였다니.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실성한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바뀌며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 하하하!”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던 내 눈가엔 눈물이 났다.
그렇게 새하얘졌던 머릿속에는 질문이 마구 쏟아졌다.
내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들.
‘도대체 난 무얼 위해 내 꿈이었던 작가를 포기했던 거지? 도대체 난 무얼 위해 15년간 갑들 아래서 을로 지내온 거지?’
수정이가 생겨서 모든 걸 포기했던 내 15년의 세월이 무상해졌다.
무상함은 곧 허탈함이요, 허탈함의 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실성한 듯 웃으며 감았던 내 눈이 번뜩거렸다.
거기서 난 오른손에 힘을 빡 준 뒤 아내에게 휘둘렀다.
“이 미친년!”
짜악!
“꺄악!”
싸다귀 한 방에 옆으로 풀썩 쓰러지는 아내.
그녀를 보고 미카엘이란 놈이 내게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이 새끼야, 뭐하는 새끼야!”
퍽!
큰 덩치를 이용해서 어깨로 팍 밀쳐냈다.
덕분에 난 뒤로 나뒹굴었다.
거기서 일어난 나는 통증을 호소했지만, 그것보다 당장 저 연놈들을 용서할 수 없단 생각에 다시 달려들었다.
“크윽! 이 양키 새끼가!”
거기서부터 양키와 나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주먹을 마구 휘두르면서 싸웠다.
그때였다.
퍽!
“커헉!”
뒤통수를 무언가 둔탁한 걸로 가격 당했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난 그대로 앞으로 널브러졌다.
쓰러지기 무섭게 뒤통수에서 불이 난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아마도 피였을 거다.
뒤통수에서 흘러나온 핏줄기가 내 시야를 가렸다.
붉게 변한 시야가 천천히 좁혀지고, 주변의 소리가 점점 조그맣게 들려왔다.
두 연놈이 쓰러진 날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리가.
“어, 어떻게 하지?”
“묻어버려!”
그렇게 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을 때 난 생각했다.
‘내가 이러려고 작가를 포기한 건가? 15년을 쉬지 않고 을로 지내온 이유가 무엇인가?’
그때 문득 마지막으로 만났던 장백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전 이준경 작가님 팬이라서 형님 작품이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이준경 작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을인 편집자가 아닌 갑인 작가가 되고 싶다.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생이나 정말 후회된다고 느낄 때였다.
내 귓가에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들리던 두 연놈의 목소리가 아닌 웬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제12조 저작자 인격권의 존중, ‘을’은 ‘갑’의 저작인격권을 존중하여 저작자의 성명을 올바로 표시하여야 하며, ‘을’ 본 저작물에 대하여 필요한 바가 있을 경우 무조건적으로 ‘갑’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하다.”
분명 이건 작가가 출판사와 계약할 때 듣는 조항의 내용이었다. 그것도 푸른숲 출판사의 계약서에 적혀있는.
그걸 들은 난 직업병처럼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누가 계약 내용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는 거야?!”
그러고 눈을 떴다.
그때 난 발견했다.
내 앞에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15년 전 젊었던 성용 형님과 쓰레기 양 과장의 표정을.
그랬다.
눈을 뜨고 나니 난 15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갑’이었던 그 시절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