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21
나는 작가다 021화
21화
“뭐?”
강정호가 황당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조한은 철벽을 쳤다.
“막 조건을 올려드리기 어렵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시금 되풀이된 거절 의사에 강정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저희도 먹고살아야죠, 형님.”
자기 조건 좀 올려준다고 돈 잘 버는 출판사가 망하진 않을 터.
무엇 때문에 자신을 이리 대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숨겨둔 패를 까면 어떨까?
이조한의 칼 같은 반응이 생각보다 예상 밖이었지만, 부수랑 퍼센티지 두 조건을 동시에 올려주지 않는 건 예상 범위 내였다.
“좋아, 그럼 내가 조건을 올려줘도 될 만한 사실 한 가지를 이야기해 주마.”
꽤나 자신감에 찬 목소리.
어렴풋이 뭔가 있으니 자신에게 이리 조건을 올려서 차기작 계약서를 쓰자고 한 걸 예상했던 이조한.
이미 한 가지 짐작 가는 바도 있었다.
그래도 본인 입으로 직접 듣는 게 맞을 터.
“뭡니까?”
거기서 강정호가 한 작품의 이름을 언급했다.
“질풍의 마도사.”
현재 북조아에서 황제 로키가 나타나기 전까지 투데이 베스트 1위를 하고 있던 작품의 제목이다.
누구나 이 상황이라면 강정호가 차명으로 판 계정으로 연재했단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황제 로키의 등장으로 인해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뺏겨서 그렇지, 현재 질풍의 마도사란 작품은 강정호 작가가 얼마나 팔리는 글을 쓰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그러나 이조한은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듯이 다 알고 있었단 투로 반응했다.
“그거 역시 형님 맞죠?”
“어, 맞다.”
“저번에 술 드실 땐 끝끝내 아니라고 하시더니.”
그랬다.
이미 한 차례 이조한은 강정호에게 질풍의 마도사가 따로 연재하는 작품 아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시장에서 팔리는 글을 쓸 땐 다 이유가 있었다.
독자들에게 잘 먹히는 자기만의 필체라던가, 구성 등을 쓰면서.
이조한은 질풍의 마도사에서 제이크가 보였다.
그럼 결론은 둘 중 하나였다.
질풍의 마도사 작가가 제이크를 감명 깊게 보고 필사하며 노력한 신인이거나, 아니면 강정호 작가 본인이거나.
자신에게 섭섭해하는 말투로 이조한이 말하자 강정호는 다소 당혹스러웠다.
원래대로라면 ‘와, 정말 형님 작품입니까?’나 ‘재밌게 보던 작품인데, 그게 형님 작품이었군요?’ 등의 감탄하는 반응이 나올 거라 예상했다.
근데 오히려 자신에게 작품을 밝히지 않았다고 섭섭해하기만 하니 이건 기분이 약간 묘했다.
왠지 모르게 잘나가는 작품을 썼단 것보다 이조한을 속였다는 데에 대화의 흐름이 잡힌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계약 조건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정호도 그리 녹록한 인간은 아니다.
곧장 언성을 높이면서 계약 조건이 높여지기 위한 상황으로 만들어 나갔다.
“인마, 그게 다 큰 그림을 위한 작업이었어. 이렇게라도 안 해주면 네가 몸값을 안 올려주지 않냐? 이 정도 노력해서 좋은 작품 만들었으면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아이, 저희야 당연히 작가가 연재사이트 투데이 베스트 상위권에 진입한 작품 가져온다면 대환영이죠.”
화를 내니 다소 좋은 분위기로 환기시키는 이조한.
거기서 강정호가 다시 훅 치고 들어왔다.
“그럼 6천, 14% 가는 거다?”
정말 기가 막히게 들어왔지만, 이조한의 철벽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6천이나 14%, 둘 중 하나만 골라잡으세요.”
“뭐?”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받아주지 않자 기분 나빠하는 강정호.
그에게 이조한은 정론을 들이밀었다.
“솔직히 형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기성 작가가 투데이 베스트 1등 장기집권해서 높여준다고 해도 5천에 14% 아니면 6천에 12%인걸요.”
“그래서 나더러 신인 작가보다 적게 받으라고?”
또 이준경 작가 이야기다.
그 이야기에 처음으로 이조한이 화를 냈다.
“아, 형님 그 작가 이야기 좀 그만하십쇼.”
“뭐야, 너 지금 형님한테 짜증내냐?”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다섯 살도 나지 않았으면 형님이란 점을 꽤나 강조했다.
평상시라면 능청스레 대응하는 이조한이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강정호가 이준경 작가와 비교하며 조건을 올려 달라고 하니 짜증났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지 밝혔다.
강정호가 원하는 조건을 해줄 수 없고, 자신이 방금 짜증을 낸 모든 이유를.
“안 그래도 걔 때문에 형님 조건을 못 올려드리는 겁니다.”
“그건 무슨 소리야?”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의아해하는 강정호에게 이조한이 이준경 작가로 인해 생긴 일들을 알려줬다.
“이준경 작가가 전 출판사 컨택 쪽지에다가 답장으로 푸른숲 출판사 조건을 까발려서 우리끼리 눈치 보며 조건 올리던 거 형님처럼 다른 작가들이 다 알게 돼서 기성 작가 중 형님급 작가들이 죄 조건 올려 달라고 난리쳤다고요.”
“뭐? 그 말은 뭐야? 이준경이란 놈 계약 조건이 더 올랐단 거야?”
안 그래도 자신이 봤던 조건부도 신인 주제에 높았는데, 그보다도 더 좋은 조건을 받았단 사실에 강정호가 살짝 부들거렸다.
“아마 푸른숲에서 그 작가 데려가려고 내건 조건이 어떤 지 들으면 형님 기겁하실 걸요?”
이준경 작가의 조건이 어떤 지 들으면 기겁할 거라니.
뉘앙스를 들어보니 이미 자신이 봤던 조건보다 높은 걸로 보였다.
강정호는 이조한이 받아주지 않은 조건을 이준경 작가가 받았나 싶었다.
“뭔데? 6천에 14%냐, 설마?”
“아뇨.”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젓는 이조한.
“그, 그럼 7천에 12%?”
“아뇨. 퍼센티지는 14%입니다.”
이번에도 이조한의 고개는 좌우로 움직였다.
추가로 이준경 작가의 계약 조건에 대한 정보까지 주며.
퍼센티지는 14%다.
그리고 왠지 7천보다 높아 보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강정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꿈의 조건’이.
강정호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서, 설마 그 새끼가 8천에 14%라고?!”
“네.”
“뭐, 그런……!”
황당무계.
현재 강정호가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이었다.
신인에게 꿈의 조건이라니.
소문으로 들었다면 정말 허황되고 근거 없는 소리라고 뭐라 했을 거다.
한데 근거가 있다.
자신의 앞에 ‘이조한’이라는 근거가.
이조한은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최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혔다.
“그게 출판사들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형님급 작가들이 어디서 들었는지 주워듣곤 신인도 8천 부를 찍어주는데, 왜 우린 5천 부냐면서 생난리를 쳤다고요.”
거기까지 알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왠지 모르게 강정호는 뜨끔했다.
“그거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거기서 이조한은 차기작 계약 조건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형님 들으시라고 하는 소리 맞기도 합니다. 저희 사정도 좀 봐주십쇼. 덕분에 출판사 사장님들이 단체로 모임까지 가지셨습니다.”
보통 출판사끼리의 일은 부장들이 만나지, 엔간해서는 사장들이 만날 일이 없었다.
정말 출판사들 사이에서 큰 결정을 내릴 때 빼곤.
예를 들어 ‘담합’ 같은 거 말이다.
“사장들이?”
“예.”
“어째서?”
“1차적으로 푸른숲 출판사 김두식 사장님한테 돈 밝히는 작가 간수 잘하라고 이야기하셨고, 앞으로 잘 파는 작가들 조건 5천, 12%로 동결하자고 합의 보셨답니다. 그래도 양심이 있으니 6천 부나 14% 정도까진 출판사 재량으로 맡기기로 했고요.”
출판사들 사장들 사이에서 오간 담합 내용에 강정호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아니, 그럼 그 이상 조건 받던 작가들이나 1, 2천 부씩 증쇄한 작가들은?”
“안 그래도 내일 작가님들한테 공지 갈 겁니다. 이미 그렇게 팔던 분들이야 조건 낮추는 게 말이 안 되고, 기본 조건인 5천 부에서 12%로 시작했는데 증쇄하면 그 이상의 대우를 해주겠다고요.”
능력 있으면 어련히 대우해 줄 테니, 일단 자신들에게 맞추란 소리였다.
“그래서 지금 6천에 14%가 어렵다는 거야?”
“어려운 게 아니라 그냥 불가능한 겁니다. 그나마 정호 형님이신 데다가 질풍의 마도사 성적도 있으니 저희 재량으로 6천이나 14% 정도 해드려는 겁니다. 결국 저희 버리고 어느 출판사 가셔도 그 이상은 못 받으실 겁니다. 증쇄를 하지 않는 이상.”
“끄응.”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강정호도 더 이상 뭐라 하기가 애매해서 앓는 소리만 냈다.
거기서 이조한이 마지막 수를 뒀다.
“어쩌실래요? 만약 형님이 딴 데 가시겠다고 하면 안 붙잡겠습니다. 근데 굳이 같은 조건으로 철새 딱지까지 붙이며 옮기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건…….”
만약 이조한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리하면서까지 타 출판사로 옮기는 건 제 살 깎아먹기였다.
거기서 이조한이 양자택일을 권했다.
“고르십쇼. 6천 부입니까, 14%입니까?”
정말로 둘 중 하나만 고르는 것 말곤 답이 없어 보였다.
결국 강정호는 어느 정도 타협을 보기로 했다.
“젠장, 기다려 봐.”
“예.”
기다리라고 한 강정호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어느 쪽이 더 받아낼 수 있는지.
계산 끝에 결정을 내렸다.
“6천 부로 하자.”
결국 차기작 질풍의 마도사를 ‘6천 부, 12%’로 정한 강정호.
그 선택에 이조한이 사람 좋은 미소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계약서 만들어두겠습니다. 내일 제가 찾아뵐까요?”
“법인카드 들고 와라. 기분 잡쳐서 고량주나 마셔야겠다.”
“알겠습니다. 형님께서 한발 물러서 주셨는데, 저희가 그 정돈 사드려야죠.”
“알겠다.”
그렇게 차기작 계약을 위한 통화가 끝났다.
강정호는 그저 휴대폰을 꽉 쥐면서 육두문자를 내뱉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자식!”
***
“아, 귀 간지러. 누가 내 욕하나?”
괜한 글을 올려서 욕먹는 건 월오백이었는데, 왜 내가 귀가 간지러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발끈하는 걸로 봐서 성정이 꽤 불같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월오백은 방금 전 나한테 사기를 친다고 올린 이후로 잠잠했다.
“뭔가 좀 더 난리치면 적당히 쪼아볼까 했더니 재미없군. 그 사이 신청한 사람이 있나 좀 봐볼까?”
내가 올렸던 게시글에는 죄 피자를 달라고 난리였다.
댓글로만 확인한 인원수만 해도 50명이 넘어갔다.
어쨌거나 제대로 된 신청은 요구한 양식에 맞춰 메일로 보내라고 했으니 무의미한 숫자긴 했다.
진짜는 메일이었으니까.
난 게시글에 올렸던 메일로 들어갔다.
“컥, 뭔 놈의 메일이 벌써 이렇게……?!”
메일이 수천 개가 와 있었다.
새로 온 메일을 나타내는 빨간 숫자 ‘3203’.
정확하게 3,203개의 메일이 온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계속 하나씩 늘어났다.
쉬지 않고 늘어난 숫자는 벌써 3,300개에 육박했다.
“내가 보내기로 한 피자 값이 개당 23,900원이었으니…….”
대충 계산해도 파산각이 느껴지긴 했는데, 3,300명에게 다 보낼 경우 얼마인지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계산기가 뱉어낸 결과를 조용히 보던 난 화들짝 놀랐다.
“……7870만 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