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22
나는 작가다 022화
22화
‘7870만 원.’
현재 잔고가 6천만 원 조금 넘게 있으니 한 2천만 원은 더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솔직히 감당하는 건 그리 어렵다고 느끼진 않았다.
용사무적은 몰라도 드래곤 나이트의 경우 푸른숲 출판사에게 원고를 보여주면 비슷한 조건으로 또 계약해서 보장금을 받으면 됐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끽해야 도서 갤러리 유저가 천 명 안팎일 텐데?”
심지어 이 인원도 눈팅족을 포함한 거지, 제대로 활동하는 인원은 유동까지 추려 봐야 1, 2백 명 정도였다.
뭔가 이상했다.
도저히 도서 갤러리에서 이벤트 참여를 하겠다고 보낸 메일 수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가능성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한 명이서 여러 번 보냈다.
근데 여러 개의 개인정보와 사진을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몇천 개나 구했다고?
말도 안 됐다.
난 메일에 들어가 봤다.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메일 목록을 보고 나니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래, 그럼 그렇지.”
메일 목록을 보니 몇몇 사람들이 같은 제목으로 도배하듯 보내놓은 메일이 있었다.
흔히 폭탄메일이라고 했었나?
그걸 확인한 나는 같은 메일을 보낸 이들의 아이디를 검색했다.
싹 다 삭제했다.
그러자 3천 개가 넘던 메일이 백 개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아니, 백 개가 뭔가?
오십 개도 안 됐다.
“이 정도면 확인하는데 별거 아니지.”
남은 메일을 확인하려는데, 몇몇 폭탄 메일을 보냈던 이들이 또 쉴 새 없이 보내고 있었다.
“일단 얘네부터 스팸으로 걸러내야겠네.”
폭탄 메일을 보내는 할 일 없어 보이던 아이디를 싹 다 스팸으로 등록했다.
그러자 목록에는 더 이상 새로운 메일이 늘어나지 않았다.
“그럼 서른일곱 명인 건가?”
폭탄 메일을 걸러내고 남은 서른일곱 개의 메일.
일일이 확인해 봤다.
개중에 이벤트 참여를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피자를 바라지 않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았다.
황제 로키를 잘 보고 있다든가, 순수문학파란 애들 말에 귀담지 말라든가, 아니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쓸 수 있냐고.
이벤트 참여한 사람들의 정보는 따로 문서로 정리하면서 화요일에 전부 일괄 계좌이체해 줄 거라고 말했다. 이외에 온 메일들 역시 그 내용에 맞게 답변해 주며.
그렇게 메일 답변을 끝낸 뒤 나는 기지개를 켰다.
“으으, 피곤해.”
시계를 보니 벌써 1시다.
“슬슬 잘까?”
컴퓨터를 끈 뒤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
여느 때와 같이 네 시간 만에 일어났다.
침대 옆에 있는 서랍장 위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5시.
네 시간 잔 것치곤 말짱한 정신.
정해진 수면 패턴에 중얼거렸다.
“이젠 뭐 그냥 고정이구만. 그래도 지금 이러고도 멀쩡할 때가 좋은 거지.”
아마 서른이 넘어가면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질 거다.
이미 겪어봤으니 잘 알았다.
스물아홉과 서른.
단 하나의 차이가 이상하게도 크게 다가왔다.
어쨌거나 젊을 때 바짝 일하잔 생각으로 침대에서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침식사를 하기엔 아직 먼 시간이었으니까.
컴퓨터에 앉은 뒤 한 번 더 메일과 도서 갤러리를 확인해 봤다.
추가로 이벤트를 참여한 사람은 없나, 혹여나 월오백이 그 사이에 뭔가 또 뻘글을 쓰진 않았을까.
이벤트 참여 인원이 네 명이 늘어났고, 월오백은 여전히 잠잠했다.
마흔한 명으로 늘어난 인원을 보며 계산했다.
“백만 원도 안 되네, 이 정도쯤이야.”
인원이 두 배로 늘어나도 2백만 원도 안 됐다.
적당히 도서 갤러리 사람들에게 이준경이란 작가를 인식시켜주는 대가로 치면 나쁘지 않았다.
만약 내가 한 3, 4백만 원 정도 벌었다면 큰돈처럼 느꼈을 거다.
하지만 6천만 원 앞에서 2백만 원이면 그리 크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6천만 원이라······.”
도서 갤러리 건 때문에 인증샷을 찍느라 바빠서 그렇지, 생각해보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다.
일평생 내 잔고에 천만 원도 넘게 모인 적이 없다.
매번 들어오면 여기저기 나갈 돈투성이라 항상 월급은 통장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통로로 썼으니까.
새삼스레 내 인세를 떠올린 나는 통장을 꺼냈다.
그곳에 적힌 금액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60,651,240.
“일단 이 돈이면 세무사는 무조건 껴야겠네.”
가장 먼저 다가온 생각은 세금 걱정이었다.
거기서 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설마 작가들이나 하던 걱정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매번 작가들이 5천이 넘고, 1억이 넘어가면서 고민하던 세금 걱정.
15년 동안 옆에서 그저 TV 속 연예인들을 보는 것마냥 구경해 왔다.
한데 내가 그렇게 될 줄이야.
이에 대해선 이야기할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내 친구인 정철이었다.
아직 세무사 시험을 패스하지 못했지만, 내가 이 돈을 보여주면서 첫 고객이 되어준다고 하면 심경의 변화가 생기리라.
하지만 아직 만나기엔 시간이 너무 일렀다.
세금은 잠시 뒤로 미뤘다.
“흠, 그럼 이 돈으로 해야 할 일은 부모님한테 용돈을 드리는 건가?”
지금으로 치면 군대에서 받았던 월급을 제외할 경우 첫 월금과 같은 돈이었다.
첫 인세는.
거기서 문득 난 첫 월급을 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사대보험 떼고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해드릴 수 있는 건 빨간 내복이 전부였지.”
흔히 첫 월급을 받으면 그러지 않은가?
내복을 사드린다고.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사드릴 수 있는 내복은 시장에서 샀던 게 겨우였다.
이번엔 달랐다.
첫 인세로 무려 6천만 원이나 생겼는데, 고작 만 원짜리 빨간 내복을 사드릴 순 없었다.
심지어 그때 어머니야 주로 집에만 계시니 아들이 사준 거라고 기쁘게 입으셨지만, 아버지의 경우 밖에서 거래처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았다.
은근히 그러다 보면 밤새 마실 때도 있곤 한데, 옷 안에 빨간 내복이 드러날 순 없다고 하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내 나이 서른이 넘고 아버지와 소주를 마실 당시 들었던 이야기가.
또한 나 역시 영업을 뛰다 보니 그 이야기가 어떤 건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내가 철저한 을이라면 모르겠지만, 서로 밀고 당기기가 필요한 미팅에선 겉모습조차 꿀리면 안 됐다.
여자와 소개팅하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 보이는 모습이 반은 먹고 들어갔다.
그래도 아들이 첫 월급으로 사준 내복이라고 그걸 어디서 구한 건지 액자에 넣곤 장롱 한구석 고이 모셔두셨다.
은근히 그때 생각이 나서 눈시울이 시큰하다.
부모님 장례식에서 짐을 정리할 때 액자를 보곤 밤새 울었던 기억이 생각나서.
애써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참으며 난 통장에 적힌 돈을 검지로 툭툭 건드렸다.
“이번에는 아버지랑 어머니가 당당하게 쓰실 수 있는 것들로 선물해 드려야겠다.”
근데 이 또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 백화점을 가봐야 굳게 닫힌 철창만 보이리라.
마지막으로 난 나를 위해서 어찌 쓸지 생각했다.
“컴퓨터랑 휴대폰도 바꾸고, 백화점에 가서 부모님 선물 사면서 내 것도 좀 사야겠다.”
새로운 물건들을 구입하기로 하니 문득 하나가 더 떠올랐다.
“아, 승용차도 한 대 뽑을까?”
승용차.
내 가족보다 더 오래 나와 함께했던 걸 뽑으라면 아마 그거였을 거다.
편집자 3년차 이후로 작은 규모의 거래처와 수익이 작거나 신인 작가들 영업을 뛰기 시작했다.
5년에 접어들 무렵 성용 형님이 자기가 다 해먹던 양 과장과 다르게 내게도 어느 정도 큰 규모 거래 거래처와 잘나가는 작가들을 영업할 수 있게 해줬다.
처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었다.
하지만 전국 팔도를 돌아다녀야 할 일이 많아져서 처음에 3백만 원 주고 뽑은 중고차 한 대.
중고차로 열심히 영업을 뛰고 7년차에 열심히 모은 돈으로 신차를 한 대 뽑았다. 물론, 모았다고 아예 산 건 아니었다.
천만 원을 모아서 추가로 자동차 대출도 받았다.
그렇게 뽑은 2009년 신형 nf심포니.
녀석과 8년을 동고동락했다.
유료연재 시장이 열리면서 회사 차린 편집자들이나 작가들이 돈 좀 만져서 외제차를 끌 때도 난 노후된 우리 nf심포니가 만족스러웠다.
애칭까지 있었다.
“‘포니’가 처음으로 뽑은 신차여서 애정이 컸었지.”
자동차를 살 생각에 포니가 떠오르니 왠지 모를 씁쓸할 미소가 지어졌다.
“생각해 보니 내가 과거로 돌아오면서 잃은 게 하나 있긴 했구나.”
과거로 돌아온 이후 돌아가셨던 부모님도 다시 만나고, 여자 하나 잘못 만나 망했던 내 인생도 돌아왔다.
그래서 마냥 과거로 돌아온 지금이 부족한 것 하나 없이 행복하다고 여겼다.
근데 딱 하나 있었던 거다.
괜스레 감성에 젖어 창문을 통해 말했다.
하늘을 수놓은 별 중 하나를 쳐다보며.
“포니야, 이제 아빠 돈 잘 벌어서 자동차 좋은 놈들 타게 될 거다. 잘됐지? 그래도 평생 넌 잊지 않으마.”
내 애마 포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 녀석도 그만 내 가슴 속에 추억으로 묻어둬야만 했다.
어차피 지금은 뽑으려고 해도 못 뽑았다.
내가 샀던 포니는 2009년에나 나올 테니까.
그렇게 포니를 떠올렸던 난 생각에 잠겼다.
“얼추 이것저것 할 거 생각하면 자동차에 투자할 금액은 2, 3천만 원 정도가 가능한데······.”
이참에 나도 잘나가니 외제차를 한 대 뽑을까 싶었는데, 그렇게 차에 대해 고민하니 또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아, 근데 차보단 집을 먼저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집.
대한민국에서 일반 직장이라면 꿈도 꾸지 못한 그 단어였다.
복권이 당첨되지 않는 한 몇십 년을 고생해서 모으거나 아니면 죽을 때까지 대출 이자만 갚다가 끝날지도 모르는 집.
그나마 2002년인 지금은 가격이 높지 않았다.
10년 정도가 지나기 시작하면 현재 있는 집값들이 적게는 몇 배에서, 크게는 몇십 배까지도 마구 불어났다.
그렇게 집을 떠올리니 또 하나의 단어가 내 머리를 지배했다.
‘건물’.
“그러고 보니 지금 청담동 건물가들이 몇억에서 비싸야 십억이 좀 넘을 텐데······.”
그것들이 나중에 가면 몇십 억에서 백억을 호가했다.
거기 건물 하나만 있어도 평생 굶어죽을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내 머릿속은 건물,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내 작가 인생의 큰 목표가 하나 생겨났다.
“그래, 어차피 지금 당장 차를 끌고 다닐 일도 없잖아? 이왕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서 건물주가 되는 것도 괜찮겠는데?”
건물주.
그것도 무려 청담동 건물주를 목표로 잡았다.
이미 끝났다.
목표가 생겼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자, 돈을 벌려면 열심히 써야지.”
난 피자 이벤트 마감날까지 쉬지 않고 글을 썼다.
황제 로키, 드래곤 나이트, 용사무적 세 작품을.
그렇게 월요일이 금방 돌아왔다.
건물주가 되겠단 목표를 잡으니 하루에 20시간씩 이틀 꼬박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아니, 식사하는 시간 두 시간을 제외하면 총 18시간이었다.
평균적으로 쓰던 7천 자 페이스도 떨어지지 않은 채.
그렇게 내가 월요일까지 쓴 글자수는 무려 26만 자.
한 작품으로 치면 한 권하고도 10만 자가 나온 것이다.
“어디 보자 황제 로키가 한 권, 드래곤 나이트가 2만 자, 용사무적이 8만 자구나.”
당장 돈이 되는 글이 황제 로키였기에 한 권부터 미리 썼다. 그리고 비축분을 기준으로 삼아 드래곤 나이트와 용사무적을 적절하게 집필했다.
비축분이 18편이던 드래곤 나이트는 22편이 됐고, 6편이던 용사무적은 22편까지 쌓였다.
“뭐야, 두 작품 비축분이 같아졌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비축분 편수가 같아진 드래곤 나이트와 용사무적.
그걸 보면서 난 좀 더 체계적인 계획을 짤 수 있었다.
“그럼 내가 하루 동안 평균적으로 12만 자에서 13만 자 정도를 쓰니까 24화에서 26화네? 그럼 오늘부터 황제 로키를 8만 자씩 쓰고, 나머지 작품을 각각 2만 자씩 쓰면 되겠네.”
황제 로키를 이틀에 한 권씩 뽑고, 나머지 작품을 4편씩 쓰겠다는 계획.
당장 벌 수 있는 황제 로키 작품으로만 계산해도 이틀에 올림하면 900만 원씩 번다고 보면 됐다.
이틀에 900만 원.
청담동 건물가를 알아보긴 해야겠지만,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비싼 건물로 확인했으니 약 30억 정도 모을 생각이었다.
하루에 버는 금액을 450만 원으로 치면 30억까지 대략······.
“600일에서 700일······. 얼추 2년인가? 그래, 딱 그때까지만 쉬지 말고 달려보자. 아니, 앞으로 드래곤 나이트랑 용사무적이 벌어올 걸 생각하면 그보다 더 앞당겨지겠구나?”
이때까지 난 객관적인 계산만 해서 몰랐다.
30억을 모으는 시간이 생각보다 꽤 앞당겨진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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