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23
나는 작가다 023화
23화
어느덧 정오가 다가왔다.
이것저것 생각 좀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간이 오전 5시 30분.
현재 시각 12시 정각.
중간에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하라고 해서 까먹은 게 한 시간이니 총 5시간 30분 동안 글을 썼다.
황제 로키만 쭉.
이걸 8만 자 정도 쓰기 전까지는 다른 두 작품을 손도 안 댈 생각이었기에.
어쨌거나 당장 내게 돈이 되어주는 건 황제 로키였으니까.
5시간 30분 동안 4만 자를 더 써서 어느덧 황제 로키의 8권 원고가 12만 자를 넘겼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4만 자를 더 써야만 했지만, 쓰고 있던 원고를 저장한 뒤 시스템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철이 녀석, 도착했으려나?”
오전에 글을 쓰던 중 철이에게 문자를 하나 보내뒀다.
점심 사줄 테니 보자고.
그러자 녀석은 배 굶주리며 쓰는 작가가 무슨 밥을 사주냐고 했었다.
거기서 난 원하는 거 다 사줄 테니 말만 하라고 했다.
“아무리 다 사준다 그랬어도 그렇지. 농담이라도 무슨 대낮부터 한우를 먹자고 하는지, 원.”
내가 너무 당당하게 사준다고 하니 그랬다.
당산역 근처에 투 플러스 한우 비싼 데가 있는데, 아버지랑 한 달에서 두 달에 한 번 갈 정도로 비싸다고.
“그래놓곤 뭐? 사죄하면 물려준다고? 웃기지 말라지.”
철이는 날 놀려먹기 위해 내뱉은 곳이었는데, 내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알겠다고 하니 짐짓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12시 30분까지 당산역으로 튀어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늦으면 투 플러스 한우는 없을 줄 알라면서.
대충 씻고서 밖으로 나갔다.
“응?”
아파트 1층에서 나오기 무섭게 철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 나왔냐.”
분명 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언제 온 건지 철이가 우리 아파트 입구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철이에게 다가갔다.
“뭐야, 왜 여기 있냐?”
“물주님 마중 나왔지. 그나저나 정말 쏘는 거 맞지?”
자신이 막 질러본 곳을 사준다고 하니 여전히 불신으로 가득 차 있는 철이.
녀석에게 난 못 믿냐며 물었다.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냐?”
“하기사 네가 거짓말 안 하는 게 유일한 장점이지.”
유일한 장점이라니.
지금은 배불뚝이 아저씨가 아니라서 누구나 다 미남이라고 칭찬할 시기였다.
심지어 아직 철이는 몰랐지만 돈도 또래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벌었다.
후자는 나중에 밝힐 생각이었으니 전자의 장점부터 밝혔다.
“잘생기고, 키 큰 건?”
내 물음에 철이가 가운데손가락을 쭉 뻗었다.
“꺼져, 남자한테 그딴 게 장점으로 보일 것 같냐?”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그래, 남자한테 남자가 잘생긴 게 중요하진 않지.
어쨌거나 이제 그만 철이에게 먹기로 한 가게나 안내하라고 시켰다.
“흐흐, 알았다. 그나저나 소고기집은 어딘데?”
“여기서 가깝다. 그래서 당산역 말고 여기로 온 거고.”
“물주 마중 나왔다더니 그냥 가까운 데서 가려고 온 거였구만?”
“인마, 다 겸사겸사하며 사는 거지.”
“잘났다, 안내나 하셔.”
“오냐!”
그렇게 우리는 근처 정육식당으로 갔다.
벽면에 대문짝만 하게 영등포구에서 가장 비싸고 맛있는 한우를 판다고 적힌.
안에 들어가자 자리를 잡았다.
철이는 꽤나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보이며 말했다.
“이것 봐라, 여기 최소 20만 원 이상 주문시켜야 사장님의 추가 서비스가 된다는 거 보이지?”
20만 원 이상 쓸 자신 있냐는 질문을 빙빙 돌려 말한다.
‘그건 무리지?’ 하는 참 얄미운 표정으로.
근데 안타깝게도 그리 부담되지 않았다.
이미 집에서 나오기 전 피자 이벤트를 확인했을 때 참여 인원이 88명이었다.
즉, 모르는 사람들에게 쓴 돈만 200만 원이 넘었다.
근데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한테 고작 20만 원이 아까울까?
게다가 앞으로 내 세금을 관리해줄 걸 감안하면 이 정돈 크게 부담도 안 됐다.
오히려 그 배도 쓸 각오로 나왔으니까.
맛있는 거 먹여놓고 열심히 굴리기 위해서.
그 사이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왔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철이가 들고 있던 메뉴판을 쳐다봤다.
각 부위가 100g당 2만 원씩 되어 있는 게 보였다.
한데 그 밑에 900g짜리 모듬 메뉴도 있었다.
이건 ‘시가’였다.
모듬에서 나가는 고기들은 고정 메뉴 다섯 개와 나머지 네 개를 사장이 임의대로 내준단 설명이 적혀있었다.
난 그 ‘시가’인 모듬 메뉴를 가리켰다.
“시가면 얼마 정도 하는 거죠?”
“오늘은 21만 원 정도 합니다.”
900g에 21만 원.
편집자 이준경이라면 정말 큰맘먹어야 부릴 수 있는 사치였다.
하지만 이젠 난 잔고에 천만 원도 힘겹게 모으는 편집자 이준경이 아닌 6천만 원 넘게 있는 작가 이준경이었다.
900g이면 둘이서 먹기에 부족한 양은 아니었지만, 난 분명히 철이에게 소고기로 배가 터지도록 만들어준다고 했다.
고개를 가로저은 뒤 두 손가락을 펼쳤다.
검지와 중지를 펼치고 주문했다.
“아뇨, 두 판 주세요.”
이 주문에 당황한 건 다른 살람도 아닌 철이였다.
“야, 너 미쳤어?”
설마 소고기를 40만 원어치를 넘게 살 줄은 생각지도 못했나 보다.
그런 철이에게 나 씨익 웃었다.
“됐고, 오늘은 한우로 포식할 생각만 해라.”
“허, 미친놈.”
하기사 내가 철이였어도 미친놈처럼 보긴 했을 것 같다.
제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이 50만 원치가 넘는 소고기를 쏜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미친놈은 너무하잖아?
철이를 협박했다.
“물주가 미쳐서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됐다, 인마. 사준다는 데 마다하면 그게 병신이지.”
우리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아르바이트생이 물었다.
“그럼 주문하신 대로 갖다드릴까요.”
“그러세요.”
“네!”
그렇게 아르바이트생이 사장에게 주문을 전달하러 갔다. 그러자 철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야, 너 정말 괜찮겠냐?”
“뭐가?
“40만 원이 넘는데?”
“됐고, 부족하면 더 먹을 걱정이나 해라. 이왕이면 술도 전통주로 마셔볼까? 여기 전통주도 파네.”
전통주 중에는 사케나 양주 못지 않게 단가가 나가는 것들도 있었다.
그걸 마시자고 하니 갑자기 철이가 제 손을 내게 들이댔다.
“야, 너 이마 대봐.”
오히려 난 뒤로 물러나며 인상을 찌푸렸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 손에 이마를 대다니.
생각만 해도 별로다.
“뭐하냐?”
“열나냐? 아니면 곧 죽냐?”
이게 못하는 소리가 없다.
하기사 이상하게 보이긴 할 터.
그래도 계속 이러면 맛있게 소고기를 먹는 분위기가 망쳐지리라.
난 마지막으로 철이에게 경고했다.
“헛소리 더하면 진짜 집에 간다? 아니면 먹다가 화장실 간다 하고 사라지는 수가 있다?”
계산 안 한다고 하니 철이가 들이댔던 손을 치웠다. 그러곤 내게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니, 갑자기 이리 거하게 쏘니까 이상해서 하는 말이지. 설마 진짜로 작가로 돈을 많이 벌기라도 한 거냐?”
“그건 고기부터 먹고 이야기하자.”
“어차피 숯불 나오려면 좀 걸릴 건데. 그냥 지금 하지?”
숯불이 준비되려면 시간이 있으니 미리 내 인세에 관한 이야기를 하라는 정철.
하지만 녀석의 말과 다르게 사장이 금방 숯불이 담긴 화로를 가져왔다.
“저기 오는구만.”
“뭐? 사장님, 숯불이 왜 이리 빨리 나와요?”
우리 테이블로 예상한 시간보다 빠르게 숯불이 담긴 화로를 가져오자 철이가 물었다.
그에 대한 답변은 내가 해줬다.
“인마, 우리 둘이 시킨 게 얼마인데 빨리 주셔야지.”
“친구가 잘 아네. 소고기도 바로 갖다주마.”
사장은 그렇게 소고기를 가지러 갔다.
추가로 아르바이트생한테 술은 앉은뱅이술이라 불리는 한산 미곡주로 갖다 달라고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소고기와 한산 미곡주가 나왔다.
내가 여태 맛본 소고기는 소고기가 아닌 것처럼 맛있었고, 주위 술집에선 맛볼 수 없는 전통주도 달달하니 잘 들어갔다.
철이는 이런 가게를 어떻게 아는지 물었다.
“우리 동네에 이런 데가 다 있었냐?”
“아버지랑 동네 잘나가는 분들만 자주 오는 맛집이지.”
“잘나가는 분들만 자주 오는 맛집이라…….”
이제 나도 잘나간단 생각으로 소고기 한 점을 집어먹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때 철이가 말했다.
“그럼 이제 슬슬 말해라.”
“뭘?”
“얼마나 벌었는데?”
계속 내가 얼마나 벌었길래 이리 사는 건지 궁금했나 보다.
그런 철이에게 난 챙겨온 통장을 앞에 던졌다.
툭!
갑자기 내가 자신의 앞에 통장을 던지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궁금하다메. 직접 네 두 눈으로 봐라.”
통장 한 번 보라며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권했다.
그러자 철이가 내가 건넨 통장을 열어봤다.
이내 녀석의 입에선 육두문자가 절로 튀어나왔다.
“미, 미친?!”
통장 내역을 보고 깜짝 놀란 철이.
얼마나 놀랐으면 방금까지 알딸딸해 보이던 표정에서 술이 다 깬 것 같았다.
철이는 내게 통장 내역을 들이밀었다.
“이렇게 벌었다고?”
“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철이는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미친, 작가가 이렇게 잘 벌어? 나도 작가할까?”
내가 번 돈을 보니 작가를 하겠단 생각이 들었나 보다.
피식 웃으며 질문을 하나 던졌다.
“맞춤법이나 잘 아냐?”
“인마, 내가 언어영역 만점자거든?”
언어영역은 공부를 잘한 거지, 맞춤법을 잘 아는 게 아니었다.
명문대 학생들한테 한국어 능력 검정 시험지를 공부하지 않고 건네면 십중팔구는 절반도 맞추지 못 할 테니까.
난 언어영역 만점에 자부심을 느끼던 철이에게 말했다.
“그거 만점해서 작가했으면 잘나가는 작가들은 전부 국문과가 배출했게?”
“으, 말 한 번 얄밉게 하는군.”
“그리고 작가가 다 그리 버는 거 아니야. 200만 원도 못 버는 작가들도 많다. 연예인도 그렇잖아? 잘나가는 사람들이나 잘 벌지, 못 버는 사람은 굶어가며 일하는 것처럼.”
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있다고 하자 철이가 물었다.
“근데 넌 왜 이만큼 벌었는데?”
이만큼 번 이유가 별거 있겠는가?
내 작품이 잘나가서지.
그리고 작품이 잘나간다는 건?
“내가 잘났으니까?”
“허, 염병. 그래서 지금 이게 한 달 만에 번 거냐?”
“뭐, 한 달 만에 번 거라면 번 거겠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됐고. 지금 1월 달이잖아. 너 앞으로 얼마나 버냐? 매달 이렇게 벌면 7억이 넘는 건가?”
“7억까진 아직 잘 모르겠고, 몇억은 벌 거라 확신한다.”
“몇억?”
“그래.”
내 입에서 억 소리가 자연스레 튀어나오자 철이가 어이없단 목소리로 말했다.
“하, 내 친구 중에 부자가 생겼구만. 그럼 일단 법인부터 만들어라.”
갑자기 법인을 제안하는 철이에게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필요한 서류만 주면 내가 처리해 줄 테니 법인 만들라고.”
“아직 세무사 시험도 붙지 못한 놈이 무슨.”
“야, 세무사 공부 다 끝났고 아버지 옆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거든?”
세무사가 아니니 맡기지 않겠단 듯이 반응하자 발끈하는 철이.
사실에 근거해서 철이를 깠다.
“근데 왜 2년째 놀고 있냐?”
“자식아, 생각을 해봐. 내가 세무사 시험에 턱 붙어봐. 그럼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하겠냐?”
“세무사가 됐으니 밑에서 일하라고 하시겠지? 아, 이 자식! 그래서 일부러 안 붙고 있었던 거였냐?”
어쩐지 대가리도 좋은 놈이 세무사 시험을 그리 늦게 붙었나 했더니 다 잔머리를 굴린 거다.
징그럽다는 듯이 쳐다보자 철이가 항상 하던 소리를 해댔다.
“그래, 아직 이십 대 청춘인데 인생을 즐겨야지?”
이십 대 청춘을 즐겨라.
좋은 말이다.
난 즐기지 못했던 이십 대 청춘.
물론, 이젠 즐길 생각이었다.
막 노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로.
어쨌거나 난 철이에게 저번에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2년 즐겼으면 됐다. 올해는 붙어라.”
올해는 붙어서 세무사가 돼라.
그 말에 내포된 의미를 철이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래야 내 첫 고객님이 되어주시겠다?”
맞다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세무사가 될 녀석에게 구미가 당기는 조건을 제시했다.
“짜잘하게 몇십만 원 수고비가 아니라 세금 절약하면 그중 5% 떼어준다.”
꽤나 파격적인 조건이라 여겼는지 철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면서 재차 자신에게 제안한 조건에 대해 확인했다.
“너 앞으로 몇억은 벌 거라며?”
“그래.”
“근데 절세한 금액의 5%나 주겠다고?”
“왜? 싫어?”
“싫을 리가. 네가 4, 5억 이상 벌어서 법인세로 절세하면 5%만 해도 몇 백인데, 그거면 우리 아버지가 고객들 여러 명을 봐줘야 버실 수 있는 돈이거든?”
“그래서 좋단 거냐?”
“필요한 서류들 문자로 보내줄 테니 가져와. 바로 법인 만들어준다.”
“알았다.”
“법인에 관해서 궁금한 건 없고?”
“딱히?”
이미 법인이라면 김두식이 부장 자리에 아들내미를 앉히려고 할 때부터 준비하던 거였다.
그런 내 표정을 오랫동안 봐온 친구인 철이여서였을까?
내 표정을 읽었다.
“뭐야, 애당초 법인을 만들 생각이었냐?”
“당연하지. 그리고 네가 이번에 시험을 붙지 못하면 너희 아버지 고객이 될 생각이었고 말이야.”
“어쨌거나 내가 세무사될 거라고 확신하니 내 첫 고객이 되시겠다?”
“그래.”
“그래서 법인 하실 생각이시면 업체명하고 업종은 이미 정해두셨겠죠, 사장님?”
세무사가 될 자신의 첫 번째 고객으로 여겨 정중하게 나오는 철이.
녀석에게 난 생각해뒀던 법인의 이름을 밝혔다.
“K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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