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28
나는 작가다 028화
28화
“이거 왜 이리 성적이 낮지?”
사람이 원래 좋은 걸 보다가 그보다 급이 떨어지는 걸 보면 아쉽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신작인 드래곤 나이트마저도 첫날부터 1위를 찍었는데, 필명 좀 바꿔서 연재했다고 하나 19위라니.
“글이 별로인가?”
행여나 별로여서 독자들이 다들 하차해서 성적이 이런가 싶었다.
19위에 있는 용사무적을 눌렀다. 그러자 10편이 올라간 용사무적의 목록이 나왔다.
연재를 하면 성적으로 작품의 상태가 진단이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진단 부위는 조회수의 상태였다.
흔히 그걸 ‘연독률’이라고 불렀다.
연독률.
연속으로 독자들이 읽어나간 조회수의 퍼센티지를 가리켰다.
그렇게 난 용사무적이란 작품에 대한 진단을 내렸다.
“글이 문제가 아니네. 초반에 호불호가 좀 갈렸구나.”
글이 문제가 아니다.
서장부터 1화까지의 두 편은 조회수가 500대에서 300대로 팍 줄어들였다. 그리고 1화에서 2화로 넘어갈 때도 200대 중후반으로 떨어졌다.
만약 여기서 3화부터 9화까지의 조회수가 계속 냐금냐금 갉아 먹힌 것처럼 줄어들었다면 작품의 문제라고 진단했을 거다.
하지만 2화부터 9화까지 조회수가 유지됐다.
2화까지 본 독자들은 대부분 마지막 편인 9화까지 따라왔다는 소리.
때문에 방금처럼 진단을 내린 거다.
초반에 호불호가 갈려서 독자 중 절반이 떨어져 나갔을 뿐, 이후 조회수가 유지된 걸로 보아 내용이 문제인 건 아니었다.
여기서 난 고민에 잠겼다.
“초반에 호불호가 갈렸다는 건 둘 중 하나인데.”
도입부가 별로이거나 아니면 소재 자체가 익숙하지 않거나.
소재의 익숙함은 매우 중요했다.
신선한 내용을 보여줬는데 재미를 주지 못하면 독자는 바로 외면했으니까.
하지만 2화부터 9화까지 유지된 연독률을 보면 재미가 없던 건 아니다.
즉, 도입부가 별로란 소리.
“근데 뭐 여기나 북피아 독자들은 대여점에 뿌려지는 판타지나 무협을 좋아하다 보니 호불호가 갈리는 건 당연한 건가?”
애당초 용사무적은 라이트노벨이란 장르를 노리고 도전한 글이었다.
그걸로 위안 삼았다.
어쨌거나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쓴 드래곤 나이트는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찝찝하다.
작가의 입장에서 독자 반응은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반응이 좋다면 승리감을 쟁취할 수 있는 검이지만, 반응이 나쁘다면 작가 스스로를 깎아먹는 검.
애써 내 자신을 스스로 깎아먹는 검인 걸 알면서 그렇지 않은 척했다.
라이트노벨 장르에 도전하기 위해 쓴 글이라며.
근데 이게 위안이 되려면 한 가지 근거가 필요했다.
“도서 갤러리의 라이트노벨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만약 라이트노벨 독자들이 보고서 내 글을 만족해한다면 승리의 검이 되겠지만, 막상 반응을 볼 때 그게 아니라면 패배의 검이 될 것이다.
과연 내가 쥔 양날의 검과 같은 용사무적이란 작품은 그 검끝을 어디로 겨눌까?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자기 전에 작가 이준경이 아닌 작가 만선으로 올렸던 도서 갤러리의 홍보글 반응을 보면 됐다.
“어디 보자.”
도서 갤러리에 접속한 뒤 만선으로 올린 게시글을 봤다.
게시글의 반응을 본 난 난감해했다.
“이런…….”
용사무적의 검끝이 겨눈 곳.
그건 내 가슴을 노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라이트노벨임? 그냥 게임 아님? 판타지퀘스트나 드래곤택틱스 같은 거 글로 쓴 느낌인데?
-오츠카의 아이들? 꼭 그 게임 나오는 판타지 소설 같은데?
오츠카의 아이들.
대한민국 게임판타지의 시초라고 불릴 작품이었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었다.
그건 게임 판타지라는 장르보단 스릴러나 미스테리 쪽으로 보는 게 맞다며.
하지만 그 오츠카의 아이들을 한 사람이 언급하자 라이트노벨 독자로 보이는 유저가 댓글로 말하길.
-에이, 그건 그래도 라이트노벨 같다고 하면 라이트노벨스럽기라도 하지. 인물들이 다 살아 있는 캐릭터 같으면서 자기들끼리 만담도 이루잖아? 사건도 흥미진진하고.
스릴러나 미스테리라고 불릴 법한 오츠카의 아이들도 라이트노벨처럼 생각하면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내가 평가를 부탁한 용사무적은 그렇지 않단다.
그래도 아주 비관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다.
-글은 솔직히 재밌다. 그래도 이걸 라이트노벨이라고 부르긴 좀 그렇네.
작품의 재미 자체는 있다고 이야기해 줬다.
막상 생각해 보면 그리 낙관적이다고 보기 어려웠다.
애당초 내가 용사무적을 쓸 때 노린 건 라이트노벨이란 장르에 대한 도전이었다.
근데 전혀 라이트노벨스럽지 않단다.
이후 전부 라이트노벨을 처음으로 써본다는 만선 작가에게 혹평만 남겼다.
-봤더니 주인공만 살아 있고, 도와주는 요정이나 다른 인물들은 거의 감정이 없더만.
-라이트노벨이 쓰고 싶으면 일단 뭔지부터 알아보시는 게 나을 듯.
-맞아. 라이트노벨 좀 봐라, 만선아.
-그래도 재밌으니 난 일단 따라간다.
-보니까 용사 넣었다고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글은 그냥 평범한 대여점 판타지랑 다를 바가 없던데?
-정말 라이트노벨이 쓰고 싶으면 글도 글이지만, 주인공이 아닌 캐릭터들도 좀 신경 써라.
-뭐, 주인공이 다 해처먹고 주변인물들은 호구구만. 이건 라이트노벨 아님.
-인정한다, 라이트노벨인 척하고 싶은 판타지로밖에 안 보임.
하나 같이 라이트노벨이고 싶어 하는 판타지라고 이야기했다.
양날의 검으로 난도질당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러나 양날의 검이 남긴 건 단순 상처가 아니었다.
‘경험’이란 귀한 상처였다.
도서 갤러리에 있는 라이트노벨 독자들의 이야기를 확인한 뒤 난 문제점들을 정리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을 제외한 캐릭터들이 살아 있지 않단 거지?”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편집자로 지냈던 15년 동안 작가와 작품을 성공시키기 위해 쌓인 노하우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주인공에게 집중하라!’였다.
일단 주변의 모든 게 별로여도 독자들을 주인공에게만 집중시킬 수 있어도 망할 일이 없었다.
주인공 말고 다른 캐릭터를 생동감 넘치게 하는 일.
작품적으로는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대다수 작가들이 그렇게 하려다가 주인공의 존재감을 점점 낮춰 버리는 실수를 자주 했다.
“때문에 나도 능력이 부족한 작가들에겐 글써서 먹고 싶으면 주인공 위주로 집중하도록 시켰지.”
일단 글을 써서 성공해야 작가로도 쭉 지낼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렇게 조언해서 성공하면 작가들은 대부분 그 틀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쓰고자 했던 걸 버렸는데 성공하면서 본능적으로 깨닫게 됐다.
이렇게 글을 쓰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걸.
대다수 작가들이 성공하고 나면 작품에 대한 욕심보다 물욕이 증가하며 상업의 괴물로 변해 버렸다.
그 생각을 한 내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생각해보면 내가 남말할 처지는 아닌데 말이야.”
솔직히 나 또한 정말 중요한 인물로 취급되는 캐릭터들에게만 집중하지,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그저 들러리로밖에 세우지 않았다.
황제 로키에서도, 드래곤 나이트에서도.
하지만 성공했다.
주인공과 소수의 캐릭터에만 집중한 뒤 독자들이 재밌을 법한 이야기를 썼기에.
“솔직히 주인공만 잘 키워도 독자들이 원하는 대리만족은 충분히 줄 수 있으니까.”
대리만족.
판타지, 무협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현실에서 자신이 할 수 없는 걸 해내고, 또한 대단해지는 주인공을 보며 희열하며 작품을 읽었으니까.
그럼 라이트노벨 독자들은 대리만족이 아닌 다른 걸로 볼까?
곧장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라이트노벨 역시 상업소설이며, 장르소설의 한 장르였다.
상업소설이자 장르소설.
문학적 가치보다 독자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로 돈을 버는 소설이다.
결국 독자에게 대리만족을 채워줄 수 있어야 그 가치가 인정됐다.
“결론은 우리나라 대여점 시장의 독자들과 라이트노벨의 독자들이 추구하는 대리만족에서 차이점이 있단 건데…….”
난 다시금 도서 갤러리 홍보글에 달린 라이트노벨 독자들의 댓글을 훑어봤다.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랬다.
‘살아있는 캐릭터가 주인공뿐이다’ 혹 ‘각 캐릭터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나 만담이 약하거나 없다’고 했다.
다시 한 번 읽고 나니 알 것 같았다.
라이트노벨 독자들이 느끼는 대리만족이 어디서 나오는지.
“작품 내에 있는 모든 캐릭터가 살아 숨쉬면서 재미를 주길 원하는 거구나.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말이지.”
내가 15년 동안 편집자 생활을 하면서 봤던 판타지나 무협 작품 중 이런 건 정말 드물었다.
있어도 대다수 망했고.
물론, 다 망한 건 아니었다.
판타지 소설 중에서 이런 구도로 성공한 작품이 있긴 했다.
문득 난 그런 작품을 썼던 두 작가를 떠올렸다.
“김성곤 작가님의 ‘호스트 기사단’이나 강철 작가님의 ‘이세계 기마대’가 그랬지.”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없어도 독자들에게 희로애락을 건네줬던 작품들이었다.
주인공을 제외한 인물들로 사건이 생겨도 독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만들면서.
어찌 보면 대여점 장르소설 작가가 라이트노벨을 쓰겠다면 본받아야 할 두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난 문득 각기 두 작가와 후배 작가들이 함께하던 자리가 떠올랐다.
대부분 판타지소설 작가나 독자라면 재밌게 봤을 대박 작품을 낸 김성곤이나 강철이다 보니 후배 작가들이 물어보곤 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다양한 캐릭터들을 다스리며 쓸 수 있는지.
잘 생각해보면 두 작가의 답변에서 대여점 시장에 맞으면서 라이트노벨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교집합적인 조언을 얻어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난 한 명은 베재했다.
“성곤 형님은 아니야.”
호스트 기사단의 김성곤 작가.
그에게 후배 작가들이 어떻게 하면 그리 많은 캐릭터들을 생동감 넘치게 쓸 수 있냐고 물어보면 이리 답했다.
“그냥 내가 이 캐릭터를 쓸 때 독자가 좋아하도록 쓰면 돼.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그저 성공하기 위해서 쓰려고 노력한 거였으니까. 덕분에 너희도 잘 알지? 10권 정도 팔고 여유롭다 싶어서 내가 쓰고 싶었던 글 쓰니 독자들이 아주 크게 실망했던 거?”
그냥 독자가 좋아하도록 쓰면 된다.
이 형님은 그냥 타고난 거다.
팔기 위한 글을 쓰려다 보니 알아서 독자가 좋아할 수밖에 캐릭터를 만들어낼 정도로.
때문에 후배들에게 해주던 김성곤 작가의 이야기는 도움이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독자가 좋아하도록 쓰는 건 작가로서 당연한 거지만, 그게 쉬웠으면 다들 고민도 안 하지.”
말이야 쉬웠다.
독자가 좋아하도록 쓴다.
하지만 이건 정말 하늘이 주신 재능이었다.
결국 난 도움이 안 된 성곤 형님과의 술자리는 기억에서 지웠다.
그럼 남은 건 강철 형님.
술자리에서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이세계 기마대처럼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무심한 주인공과 다양한 성격의 부하들이 연결고기로 독자들을 웃게도 만들고, 주인공도 아닌 부하가 하나 죽었다고 독자들을 울게 만드는지.
“거기서 강철 형님이 그러셨지.”
당연히 주인공이 아닌 캐릭터들로 독자들에게 희로애락을 느끼도록 만들려면 조연이건, 엑스트라건 실제 사람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거기서 그냥 독자가 좋아하도록 썼다는 김성곤 작가와 다르게 강철 작가는 어떻게 하면 쉬운지 알려줬다.
“캐릭터들을 짤 때, 네 주변인을 떠올리면서 이입시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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