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29
나는 작가다 029화
29화
주변인을 떠올려서 이입시켜라.
말 그대로였다.
소설 속에서 캐릭터를 만들 때, 그 성격과 말투를 알고 지내는 사람을 생각하란 소리였다.
한 캐릭터의 성격이 밝고 경쾌하면, 자신의 주변 사람 중 성격이 밝고 경쾌한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현재 캐릭터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렇게 성격에 맞는 주변인을 겹치지 않게 이입하면 쉽게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의외로 이건 잘나가는 소설을 써낸 작가들만 봐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강철 형님처럼 의도적으로 넣는 건 아니었지만, 나이 많은 작가 형님들을 보면 캐릭터를 짤 때 연륜이 드러났지.”
연륜.
본뜻은 나무의 나이테를 의미했다.
하지만 흔히 세월을 지내면서 쌓인 경험에 대해 언급할 때 쓰는 단어였다.
나무가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나듯, 오랜 살수록 늘어난 경험을.
이건 정론이었다.
소설을 쓰기에 있어서 경험이 중요하단 정론.
강철 작가의 경우 작정하고 캐릭터를 구성할 때 쓰는 기법이었지만, 나이가 많아 경험이 다양한 작가들은 반사적으로 캐릭터에 만났던 사람 중 하나를 넣곤 했다.
그에 대한 증거로 대부분 봤을 때 대여점 시장에서 첫 작품부터 잘 파는 신인 작가들을 보면 꽤 나이들이 있었다.
당연히 성공을 위해서 가장 색이 도드라져야 하는 주인공에게 주로 적용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난 라이트노벨로서의 용사무적이란 작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강철 작가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사용한 기법을 썼다.
“주인공은 이미 됐고, 가장 먼저 빗대어 만들 캐릭터는 토리려나?”
나 역시 주인공의 캐릭터에 대한 구축은 이미 할 줄 알았다.
그랬으니 황제 로키나 드래곤 나이트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거다.
어쨌거나 내가 살았던 37세의 세월 역시 연륜이었으니까.
그렇게 용사무적의 주인공인 차민수란 캐릭터는 뒤로하고, 난 가장 먼저 내가 알던 사람들을 빗댈 캐릭터로 ‘토리’를 정했다.
토리.
용사무적에서 튜토리얼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도우미의 애칭이었다.
주인공 차민수가 이세계로 넘어가 용사의 임무를 맡았을 때, 처음에는 요정 모습으로 도와준 뒤 나중에 발키리가 돼서 함께하는.
“토리를 누구랑 빗대서 다시 재구성하면 좋을까?”
도입부에서 주인공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토리.
도움을 주기 위한 존재이기에 약간 어른스러운 점도 있지만, 예쁘면서 귀엽게 생긴 외모처럼 삐지거나 놀라면 이따금씩 순수한 아이 같은 성격을 지녔다.
일단 여성체였으니 내가 알고 지냈던 여자들을 떠올렸다.
‘과연 토리와 어울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가장 내 인생에 연결고리가 짙었던 여자라고 하면 세 명이 있었다.
어머니와 아내였던 강소영 그리고 내 딸이라고 여겼던 수정이.
셋 다 부적합했다.
어른스러운 점은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외의 것들이 어울리지 않았다.
아내인 강소영?
턱도 없다.
그 여자를 토리 캐릭터에 썼다간 주인공이 칼침을 놓는 장면이 나올지도 몰랐다.
당연히 패스.
그럼 내 딸 수정이?
어른스러운 면이 없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여자를 제외하고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 끝에 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내 인생에 여자가 없긴 없었구나. 어째 떠오르는 게 편집자나 거래처 여사장이나 여 직원들뿐이네. 끽해야 제외하면 바나 업소 아가씨들인가…….”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오직 가정만 봐왔던 가장이기에 개인적인 친분으로 여자를 만날 일이 없었다.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언제나 일에만 집중했으니까.
덕분에 가족이란 연결고리를 떼어내면 업무와 관련된 여자들뿐이었다.
편집자, 거래처, 술집, 업소 등.
편집자 중에서 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여직원들은 많았지만, 딱히 토리에 빗댈 만큼 예쁘거나 귀엽다 느낀 여자는 없었다.
거래처는?
턱도 없는 소리.
아줌마가 주를 이뤘다.
“그럼 결국 남는 건 유흥 쪽에서 봤던 아가씨들인가……. 효인이?”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눴던 여자 중 외모가 출중한 게 죄 업소 아가씨들밖에 없었다.
개중에 난 방금 한 명을 떠올렸다.
효인이.
본명은 윤효인이었고,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바텐더였다.
나이는 열 살이나 어렸으나 스무 살 때부터 모던바에서 일을 시작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대하며 경험이 많았다.
때문에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데도 꽤나 어른스러워 말이 잘 통했다.
문득 효인이를 떠올리니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맺혔다.
“덕분에 ‘마마’를 자주 갔었지.”
마마.
푸른숲 출판사 근처에 있던 모던바였다.
좀 알고 지냈거나 이 시장에 오래 있는 기성작가들 중에는 유흥을 좋아해서 좀 지저분하게 놀던 곳으로 가곤 했지만, 그런 게 아닌 이상 좋은 분위기로 영업할 땐 모던바를 주로 다녔다.
여러 군데가 있었는데 개중에 마마로 가서 효인을 본 이후 주로 그곳으로 갔었다.
왠지 효인이랑 대화를 나누고 나면 가족의 빈자리가 조금은 채워지는 것 같았기에.
솔직히 주책일 수도 있긴 했다.
열 살이나 어린 아가씨한테 무언가 공허함을 채운다는 게.
하지만 수정이의 유학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기러기 아빠에겐 그 채움이 따뜻했다.
간간히 아저씨들이 비상금으로 꿍쳐두고서 착석바나 유흥업소를 다닐 때, 난 영업 자리가 아닌 외로운 손님 한 명으로 마마를 갔다.
양주 한 병 마시면서 효인이랑 이야기를 나누면 왠지 일에 찌든 삶이 잠시나마 평온해지는 것 같아서.
“녀석, 어린 주제에 생각이 깊었지.”
보통 열 살이나 차이나면 대화가 안 됐어야 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도 하고 많은 손님도 만나서인지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심지어 그 또래가 알기엔 어려운 가수를 좋아하는 취향도 같았다.
가객이라 불리던 이강석이란 가수가 있었다.
1996년도에 자살이라는 거짓된 죽음으로 세상을 떠난.
한데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아가씨가 그 가수를 알았다.
“생각해 보니 노래도 참 잘 불렀지.”
가게 문 닫는 시간까지 나만 있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가끔씩 난 바텐더 윤효인이 아닌 가수 윤효인을 만났다.
집안 형편이 어렵지만 않았으면 가수를 했을 거라던 효인이.
가게 구석에 있는 기타를 들고 와 이따금씩 이강석의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그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성숙한 아가씨가 아니라 순수한 여가수와 같았다.
아무리 성숙한 아이라곤 해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내가 마마를 단골로 다니기 시작한 게 아내 강소영과 딸 수정이가 캐나다 유학을 가고 얼마 있지 않아서였으니 서른두 살 때였다.
당시 효인이의 나이는 스물두 살.
평소 성숙한 모습과 달리 이따금씩 삐지거나 하면 귀엽고도 순수한 모습을 보면 깨물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마마의 바텐더 윤효인을 떠올린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효인이가 딱이네.”
용사무적의 토리는 효인이를 베이스로 다시 빚었다. 그리고 이외의 캐릭터들도 비슷한 기법을 썼다.
그러고 나니 아예 갈아엎어야만 했다.
“일단 라이트노벨다운 원고로 재조정하기 전까진 연재를 중단하고, 수정이 완성되면 재연재하겠다고 공지부터 올려야겠다.”
난 용사무적에다가 연중 및 재연재 예정 공지를 올렸고, 도서 갤러리에 들어가서 라이트노벨 독자들의 조언으로 좀 더 공부하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글을 남겼다.
의외로 다들 응원해 주는 메시지가 많았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뭐랄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던가?
왠지 모르게 라이트노벨이란 장르에 대한 의욕이 불타올랐다.
“일단 캐릭터 설정도 짜고, 이따가 서점 가서 잘나가는 라이트노벨들 좀 봐야겠다.”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법이야 강철 작가의 노하우를 통해 배웠다고 하나 아직 부족한 게 있었다.
라이트노벨 독자들이 이야기했던 캐릭터 사이에서의 만담.
이건 라이트노벨이란 장르 특유의 코드가 있었다.
당연히 15년 동안 대한민국의 장르소설만 봐온 내가 알 수 없는 코드였다.
그걸 익히기 위해선 지금 시기에 잘나가는 라이트노벨들이 어떻게 썼는지 봐야지.
언제나 좋은 작가가 될려면 세 가지는 필수였다.
첫째, 다독.
많이 읽어라.
둘째, 다작,
많이 써라.
셋째, 다상량.
많이 상상하라.
그중 나는 다작과 다상을 위한 다독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라이트노벨 장르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게 작가 이준경의 성장을 위한 양분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하며.
***
이준경 작가가 새로이 연재를 시작한 두 작품.
드래곤 나이트와 용사무적.
현재 이준경 작가는 용사무적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생소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일 수 있는 라이트노벨을 위해서.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용사무적보다 드래곤 나이트를 중요시했다.
도서 갤러리만 봐도 그랬다.
-와, 대박. 황제 로키로 북조아 휩쓴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신작으로 1위를 먹냐?
-야, 너네 드래곤 나이트 봤냐? 졸라 재밌다.
-저렇게 두 작품 동시에 하다가 과부하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ㅉㅉ.
-뭐, 과부하는 모르겠고 둘 다 재밌음.
-그나저나 이준경 신작이니 저것도 한 6천 버는 거 아니야?
-만약 드래곤 나이트로도 6천 벌면 뭐, 한 달도 안 돼서 1억을 넘게 버는 거야?
-그럼 뭐야, 월급으로 1억이라고 쳐야 하나? 미쳤다!
-미친! 월 1억, 갑부잖아?
-형님!
다들 이준경의 신작 드래곤 나이트로 자기들끼리 떠들어댔다.
황제 로키 못지않게 이번 신작인 드래곤 나이트도 재밌다거나, 이미 한 번 황제 로키로 밝힌 인세를 보곤 한 달에 1억 버는 거 아니냐면서.
개중에는 드래곤 나이트로 인해 이준경이 아닌 다른 작가를 언급하는 도서 갤러리 유저들도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헛바람, 개불쌍!
-진짜 불쌍하다. 황제 로키가 이제 선작 오를 것도 거의 없고 연재 편수도 적어져서 1등 겨우 하기 시작했는데.
-헛바람, 1등 헛물 켰네.
-2일 천하, 진짜 불쌍하네.
-헛바람 작가는 1등하려면 이준경 작가한테 가서 무릎 꿇어야 하는 거 아니냐? 제발 1등 자리 좀 양보해 주세요.
다들 겨우 북조아 1위를 탈환했다가 이틀 만에 뺏긴 헛바람을 언급했다.
놀린다고 해야 할지, 위로한다고 해야 할지.
애매한 노선상에 언급된 질풍의 마도사 작가 헛바람.
당연히 본인인 게일 작가 강정호도 그 글을 봤다.
오늘도 황제 로키를 이겼을 거란 생각으로 흡족한 미소와 함께 북조아에 들어갔다가 이준경 작가의 신작 드래곤 나이트에게 밀린 걸 확인하기 무섭게 도서 갤러리부터 들어갔으니까.
강정호의 마우스를 쥔 손과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망할!”
쥐고 있던 마우스를 옆으로 내팽개쳤다.
타탕!
“빌어먹을! 드래곤 나이트는 또 뭐야?”
안 그래도 썬더버드 이조한 부장한테 이제 북조아 1등 자리는 무조건 자기 거니 연재분을 좀 더 푼다고 말해뒀다.
한 편으로는 황제 로키를 꺾기 힘들어서 세 편씩 더 푸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딱 그렇게 해서 3권 분량까지 싹 풀고 나면 출간 공지 후 삭제할 생각이었다.
근데 또 초를 친 것이다.
이준경 작가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