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3
나는 작가다 003화
3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작가님?”
갑작스러운 외침에 젊은 시절 성용 형님은 합석 중인 쓰레기 양 과장과 날 번갈아보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더욱 당황한 건 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어째서 이 때로?’
분명 내 기억이 맞다면 난 빌어먹을 마누라한테 뒤통수를 맞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것까진 기억나는데, 거기서 깨어나니 지금 이 때로 돌아온 것이다.
마치 장르판에서 가장 좋은 소재로 쓰이던 ‘회귀’를 한 것처럼.
어디 회귀 트럭에 치이거나 마포대교에서 떨어져서 회귀의 구멍에 빨려 들어가야 가능한 일이 죽으니 생겨난 것이다.
혹여나 정신을 잃고 꾸는 꿈인가 싶었다.
뭐, 꿈이든 아니든을 떠나서 일단 지금 상황은 대강 파악이 끝났다.
현재 난 군대를 제대한 해인 2002년, 처음이자 마지막인 ‘계약’을 하는 자리에 있었다.
‘작가’로서.
상황 파악이 끝난 나는 깜짝 놀란 성용 형님에게 가벼이 묵례했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졸았나 보네요.”
“그러시군요. 이해합니다. 계약서 내용이 워낙 지루하니까요. 그래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게 정석적인 절차라서요.”
“아, 압니다.”
그래, 정석대로라면 계약서 조항을 작가에게 모두 읊어주는 게 맞았다.
내가 숱하게 해봤던 일인데 모를 리가.
성용 형님은 그런 내 반응에 의아해했다.
“네?”
“예?”
“분명 작가님 계약은 처음이시라고…….”
이리되면 내가 아는 척을 해선 안 됐다.
하지만 연륜이란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거기서 난 빠르게 대응했다.
“아아, 친하게 지내는 분들이 계셔서 이야기를 좀 들었습니다.”
내가 아는 작가들이 있다고 하자 성용 형님이 박수를 짝! 치면서 반가워했다.
영업적인 마인드로도 작가들을 만나는 걸 좋아했지만, 본인 역시 작가를 하려다가 편집자가 됐던 터라 동경하는 사람들이라 친해지고 싶어 했다.
“오! 친하게 지내는 작가님들이 계세요?”
“예.”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누구신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알려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냥 대충 둘러대기 위해서 한 말이니까.
뭐, 여기서도 대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분들이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으셔서요.”
이렇게 말해도 꼬치꼬치 캐묻는 종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성용 형님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
상대가 말하지 않으면 굳이 캐묻지 않는 성격.
그것이 지인들에게 믿음을 줬다.
“그런 분들이 계시죠. 그럼 마저 계약서를 설명하도록 할까요?”
그때였다.
이때 당시 푸른숲 출판사에서 나와 성용 형님을 마구 부려먹었던 쓰레기 양 과장이 끼어들었다.
“아니, 계약서보다 전 방금 작가님께서 이야기하신 분들이 좀 더 궁금한데 혹시 알려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양경철 과장.
성용 형님과는 정반대의 스타일로 작가와 부하직원들을 막 부려도 된다고 여겼으며, 허풍과 뒷담화를 일삼고 다니던 인간이었다.
아마 지금도 내가 원고를 투고한 데다가 이제 갓 제대한 스물둘밖에 안 보였으니 자기가 좀 더 위에 있단 것처럼 언행을 보였다.
아마 회귀한 내가 아니었더라면 양 과장이 나이도 있는 데다가 오래 구르면서 쌓인 포스 같은 게 있어서 먼저 알아서 기어 들어갔을 거다.
물론, 지금의 난 양 과장에게 전혀 굽힐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겉은 이십대 초반일지 몰라도 속껍질은 이미 양 과장보다 더 오래 업계를 구르고 나이도 먹었던 이준경이었으니까.
난 상당히 기분 나쁘단 표정으로 쳐다봤다.
“방금 제 말을 뭘로 들으신 거죠?”
설마 내가 이리 반응할지는 꿈에도 몰랐는지 양 과장이 짐짓 당황했다.
“예?”
“제가 아는 작가님들이 나서는 걸 싫어해서 비밀로 하고 싶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아, 그러셨죠. 죄송합니다.”
쏘아붙이듯 나무라자 양 과장이 일단 굽혔다.
어쨌거나 현재 계약 자리에서의 갑은 작가인 나였으니까.
정작 양 과장은 속으로 투고 아니면 계약도 못할 애송이라고 생각 중이겠지만 말이다.
그게 표정에서도 다 드러났다.
멋쩍게 사과는 했으나 어이가 없단 표정으로 쳐다봤다.
거기서 난 2차적으로 양 과장을 깠다.
“제가 투고로 계약하러 왔다고 무시하시는 건가요?”
순간 속내를 들킨 양 과장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작가님을 무시합니까? 저희에겐 작가님께서 갑이신데요.”
어느 정도 내가 자신의 생각을 읽어내니 만만찮다고 여긴 건지 양 과장은 이때부터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죄송하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내게서 뭔가 하나 꼬투리라도 잡히면 물어뜯기 위해 조용히 준비하는 모습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양 과장은 다시금 계약 건을 성용 형님에게 넘겼다.
“성용아.”
“네, 과장님.”
“작가님한테 계약서나 마저 설명해드려라.”
“예, 작가님마저 설명해 드려도 될까요?”
“그러시죠.”
규정상 계약 자리에서 업체는 작가에게 계약 조항을 모두 읊어줘야만 했다.
그게 정석이었다.
차기작부터야 같은 내용이니 대충 넘어가지만, 지금의 나는 푸른숲 출판사와 첫 계약이니 다 듣는 게 맞았다.
양 과장이 했다면 칼같이 끊었을 텐데, 성용 형님이 읊는 거니 일단 듣는 쪽으로 움직였다.
만약 내가 계약서 설명을 끊어버리고 이 계약이 무산된다면 쓰레기 양 과장이 모든 잘못이 성용 형님에게 있다며 떠들어댈 게 불 보듯 뻔했으니까.
결국 성용 형님이 계약서에 있는 모든 조항을 읽어내려 갔다.
다 읽고 난 성용 형님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어렵죠?”
약간 살집이 있는 공룡상에 안경을 쓴 외모를 지녔지만, 미소가 꽤나 청년 이장 같아 인간미가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그런 모습이 편집자가 됐을 당시 내 롤모델이기도 했다.
인간미 넘치는 편집자.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현실이라면?
내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기회나 다름없었다.
이런 기회를 난 공과 사도 구분 못해서 날리고 싶지 않았다.
“별로 어려운 건 없네요.”
“어? 그런가요? 보통 첫 계약하시는 작가님들은 대부분 어려워하시는데…….”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갑과 을의 이야기를 쭉 읊으면서 이런저런 법적인 조항들이 즐비한 계약서였다.
신인 작가가 다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따랐다.
한참 기성이 된 작가들도 대개 확인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자질구레하게 복잡하고 어려웠으니까.
결국 작가들은 대다수 계약서에서 두 가지 조항밖에 확인하지 않았다.
첫째, 계약 조건.
둘째, 계약 기간.
사실상 둘째도 거의 안 본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부분 양아치인 회사들 빼곤 보통 완결 후 3년에다가 해지 통보가 없을 시 자동 연장이 업계 관례였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세가 얼마나 떨어지는가 하는 조건이었다.
현재 2002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유료연재 시장에선 조건의 경우 몇 대 몇으로 해서 정산금을 나눠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유료연재가 열리지 않은 종이책 시장이다.
보통 이땐 몇천 부에 몇 퍼센트로 해서 조건을 받았다.
눈앞에 있는 계약서.
거기 적힌 내 조건은 이랬다.
“3천 부에 8%, 그리고 2권 보장이라…… 여기서 더 조건을 올릴 순 없나요?”
보통 이 시기에 등단하는 작가에게 ‘3천 부, 8퍼센트, 2권 보장’이란 엄청 낮은 조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 자리는 내가 군대에서 썼던 원고를 투고해서 왔던 자리였으니까.
기본적으로 받던 ‘3천 부, 8퍼센트, 전권 보장’은 연재사이트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낸 신인 작가에게 허용된 조건이었다.
거기서 정말 성적이 뛰어나면 부수나 퍼센티지가 늘어났다.
때문에 대다수 작가들은 신인들이 연재를 하지 않고 투고로 계약하겠다면 극구 말렸다.
일단 투고 자체가 출판사에게 제발 내달라고 원고를 보냈다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연재로 성적을 거둔다면 오히려 출판사에서 제발 책 내게 해달라고 다가온 거니 조건이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성용 형님은 투고를 해서 이 자리에 온 내가 조건을 올려 달라고 하자 난처해했다.
그때 양 과장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작가 하나 싸게 계약했다고 여겼던 표정이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난 호구였을 테니 당연한 반응.
한데 거기서 양 과장은 방금 전 내가 한 말을 가지고 기회라도 잡은 사람처럼 끼어들었다.
“저희 푸른숲 출판사의 내규가 있어서 아마 여기서 좀 더 조건은 올려드리긴 어렵습니다.”
이리 나올 줄 알았다.
난 이 당시 연재로 성적을 내서 계약하는 작가들 기준의 조건에 대해 언급했다.
“그래요? 제가 듣기로 푸른숲 출판사는 신인한테 3천에 8퍼센트 그리고 전권 보장 정돈 해주는 걸로 아는데요?”
내 물음에 양 과장이 피식 웃었다.
아주 잘 걸렸다는 듯이.
“그건 어디까지나 연재로 확인된 성적을 거둔 분들 이야기고요. 이준경 작가님께서는 저희에게 계약해 달라고 투고를 하셨지 않습니까?”
“그럼 연재 성적을 낸다면요?”
“글쎄요? 제가 읽어본 바로는 저희 도움 없인 작가님께서 보내주신 원고가 연재로 성적을 낼진…… 음, 잘 모르겠는데요?”
방금 양 과장이 한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랬다.
‘네 원고론 택도 없다.’
은근히 돌려서 깐 건데, 난 그걸 물고 늘어졌다.
매우 기분이 나쁜 표정으로.
“결론적으로 양 과장님 말씀은 제 원고가 연재를 해봐야 성적이 좋지 않을 거란 이야기시네요?”
“에이, 설마 제가 작가님의 글을 그리 낮게 보겠습니까?”
투고한 내 글을 낮게 보고 있단 소리였다.
그렇다면 성용 형님 때문에 좋게 끝내려던 자리였으나 좀 더 강하게 나가도 될 것 같았다.
“그럼 오늘 계약은 없던 걸로 하고, 연재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만약 제대로 된 성적이 나지 않는다면 이 계약도 무산이 될지도 모릅니다?”
밑밥을 깔고 들어왔다.
지금 하면 계약이라도 가능하지만, 괜히 연재했다가 망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걸.
초짜라면 이 밑밥에 덜컥 겁이 나고도 남았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15년간 장르시장을 봐오며 일했던 나다.
이런 걸로는 꿈쩍도 안 했다.
테이블 위에 내 쪽으로 놓인 계약서를 성용 형님 쪽으로 쭉 밀어냈다.
“그럼 제가 당당히 성적을 내고 오겠습니다.”
본래 계약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작가와 편집자 앞에 한 부씩 있어야 할 두 장의 계약서가 모두 자신 앞으로 오니 성용 형님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예? 그럼 지금 계약은?”
저리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지금은 내 새로운 기회를 잡는 게 우선이었다.
일단 양 과장은 몰라도 성용 형님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홍성용 대리님께는 죄송하지만, 오늘 계약은 미루는 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신 제가 연재 사이트에서 성적을 낼 경우 동일한 조건으로 컨택이 온다면 제 작품이 좋다고 해주신 홍성용 대리님께서 계신 푸른숲과 계약하겠습니다.”
그나마 좋게 이야기하니 성용 형님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이 정도 이야기면 나중에 나란 작가가 자신 때문에 오기로 했으니 쓰레기 양 과장에겐 덜 까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양 과장은 끝까지 내 심기를 건드렸다.
성용 형님 앞에 놓였던 계약서를 가져가더니 북북 찢으면서 말했다.
“뭐, 어디 한 번 해보시죠. 대신 분명 전 말씀드렸습니다. 연재 성적이 좋지 않으면 이 기회조차 잃어버리실 거라고 말이죠.”
끝까지 협박 멘트를 날리는 양 과장.
그에게 한마디와 인사를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일 좋은 조건으로 컨택하실 준비나 하시죠.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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