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33
나는 작가다 033화
33화
좀 더 풍부해진 필력으로 연재는 순항하며 어느덧 2월달에 접어들었다.
게일 작가가 도망친 사이트에서도 내가 황제 로키와 드래곤 나이트로 1, 2위를 동시에 석권하며 3등으로 밀어냈다.
심지어 무협이 강세여서 판타지는 상위권을 먹기 힘들다던 무림북마저 집어삼켰다.
이 정도 성적이면 몸값을 올리기엔 나쁘지 않나 싶었다.
성용 형님한테 미리 언질은 해뒀다.
사장인 김두식에게 드래곤 나이트를 계약하고 싶으면 조건을 올려 달라고.
‘몸값이 높아지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요구한다.’
흔히 작가들이 하던 이야기다.
지금 시장은 이런 작가를 돈에 미쳤다고 욕했지만, 좀 더 자유분방해지는 유료연재 시장 땐 당연시했다.
원래부터 당연하다고 여겼다.
단지 계약 조건을 함부로 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을인 편집자였으니 알면서도 위에서 하란 대로 할 수 없었을 뿐.
갑의 정당한 권리로 몸값을 요구하고, 그 의무로 걸맞은 원고만 주면 됐다.
그리고 현재 내겐 걸맞은 원고가 있었다.
다들 역대급 성적이라고 부르는 원고였던 황제 로키와 견주는 드래곤 나이트가.
성용 형님은 그런 요구에 담합 건이 있어서 아마 더 조건을 올려주는 건 어렵겠지만, 일단 사장인 김두식이 내 작품을 좋아하니 잘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성용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준경아.”
“예, 형님.”
“아무리 자신이 작품을 좋게 읽었어도 기본 조건을 올려주기 어렵다고 하시더라.”
조건을 올려주기 어렵다.
그 이유야 뻔했다.
“담합 때문이죠?”
“응.”
“흐음.”
담합 때문에 조건을 올릴 수 없대서 고민하는 척하자 성용 형님이 물었다.
“설마 딴 데 더 좋은 조건으로 연락왔거나 한 건 아니지?”
“뭐, 제 조건 주어들은 게 있는지 같은 조건으로는 몇 군데서 오긴 했어요. 조건은 담합 때문인지 올리진 않았는데, 10권 이상 써준다고 약속만 하면 원고 없어도 열 권 분량 보장인세를 주겠다곤 하더라고요.”
페이퍼 출판사에서 이렇게 왔다.
그 이야기를 듣곤 성용 형님도 얼추 예상했단 어투로 말했다.
“기본 조건은 건들지 말자고 이야기하셨다더니만, 그렇게 노리는 곳이 있네. 어디야?”
“에이, 왜 이러십니까? 어딘지 말하면 곤란하죠.”
“뭐야, 설마 몸값 올리려고 막 지른 건 아니지?”
도의적인 문제로 안 밝혔을 뿐인데, 혹여나 몸값 올릴기 위한 수단으로 썼냐는 성용 형님의 물음.
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다 알았다.
장난인 걸.
나 역시 장난스럽게 물었다.
“제가 그럴 사람입니까?”
“당연히 아니지.”
장난은 이쯤에서 멈추고, 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그럼 까시죠.”
“뭐가?”
“형님 목소리만 들어도 다 압니다. 뭐 있죠?”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성용 형님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성용 형님의 표정 하나,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무슨 생각하는 지가 훤히 보였다.
기본 조건은 그대로이나 뭔가 제안할 건수가 있단 게.
내가 다 안다는 듯이 이야기하자 성용 형님은 아까워했다.
“자식, 눈치 겁나 빠르네.”
“자, 까시죠.”
“기본 조건은 그대로 하는 대신 인센티브 쪽으로 손봐주신다고 했다.”
“인센티브면 증쇄요?”
계약서상에서 인센티브라고 할 수 있는 부부은 그것밖에 없었다.
증쇄.
거기에 대해서 성용 형님이 어떤 조건을 가져왔는지 밝혔다.
“어, 증쇄 원래 천 부당 1%씩 늘리도록 되어 있잖아.”
“그랬죠?”
“2%씩 올려주자고 하시더라.”
솔직히 메리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IMF가 있기 전에야 대여점수가 2만 군데가 넘어가니 2만 부 작품도 나오고 그랬다.
비룡도라던가, 암향 같은.
하지만 IMF 이후 대여점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면서 현재 시장에는 8천 군데 정도 남았다.
즉, 대여점 판매 기준으로만 보면 현재 내가 황제 로키의 조건인 8천 부가 맥시멈이란 소리였다.
뭐, 기본 조건을 건들 수 없으니 애당초 올려줄 만한 게 그것밖에 없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여기서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받아들일 생각은 있긴 했지만, 한 번 찔러보는 것 정돈 해줘야지.
그래야 안 싸보이니까.
“그럼 딴 데 가서 3%를 받으면 됩니까?”
그냥 찔러본 소리다.
한데 여기서 성용 형님이 끝난 줄 알았냐는 듯이 한 가지 조건을 더 내밀었다.
“황제 로키도 올려줄 건데?”
“호오!”
구미는 당겼다.
이미 계약한 황제 로키도 올려주겠다니.
그런 내 반응에 성용 형님이 웃었다.
“흐흐, 이제 좀 계약할 마음이 드냐?”
이렇게 나오면 왠지 모르게 사실에 근거해서 반박하고 싶어졌다.
흔히 나중에 팩트폭력이라고 부르던.
“근데 무의미하잖아요? 8천 부 팔리면 거의 대여점 맥시멈 아닙니까?”
하지만 성용 형님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영업해서 대여점 분들이 두세 권씩 받아주시기로 했거든?”
그냥 눈도장이나 잘 찍어두면 나중에 유용하리라 여겼는데, 벌써부터 대여점 협회한테 그 정도 영업을 했단다.
이쯤되니 좋은 이야기만 하게 됐다.
“그럼 증쇄 가능성은 꽤 열려 있네요?”
“그렇지.”
“아, 아쉽네. 드래곤 나이트 증쇄 인센티브 3% 받을 수 있었는데.”
“그 말은 한다는 거지?”
“형님이 여기 계신데 제가 어떻게 딴 데 가서 하겠습니까?”
“흐흐, 그럼 하는 걸로 알고 계약서 준비해 간다?”
“예.”
“언제 볼까?”
“저야 집에만 있는 백수니 직장인인 형님이 정하시죠.”
작가란 뚜렷한 직업이 있긴 했지만, 이따금씩 몇몇 작가들은 자기들을 백수라고 이야기했다.
남들 출근할 때 집에서 한량처럼 지내며 원고를 쓰기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그걸 내 입으로 해봤다.
흔히 나랑 친했던 작가들이 했던 말을 하니 성용 형님 입에선 주로 내가 하던 반응이 흘러나왔다.
“백수가 내 연봉을 그리 쉽게 버냐?!”
“흐흐, 황금 백수라고 해두죠.”
“됐다, 인마. 그럼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내일 갈까?”
컴퓨터 시계를 봤다.
오전 11:20
02년 2월 4일(월)
오늘이 월요일이니 내일이면 화요일이었다.
편집자였던 내 경험을 빗대어 난 좀 더 좋은 날 보자고 이야기했다.
“금요일이 좋지 않겠습니까? 좀 일찍 퇴근하시고 저랑 술 한 잔 꺾으시면 주말인데?”
솔직히 편집자 입장에선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작가 미팅을 위해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고, 거기서 법인카드로 술 한 잔 달린 다음 집에 들어가서 뻗는 건.
그리고 주말을 푹 쉬면 됐다.
유료연재 시장이 호황을 이루면서 작가가 연재주기를 매일로 해놓곤 주말 당일에 원고만 주지 않는다면.
뭐, 지금은 종이책 시장이니 당연히 내가 말한 계획이 최고였다.
한데 성용 형님이 그 계획을 싫어했다.
“인마, 금요일에 쉬거든?”
금요일에 쉰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예? 왜 쉬어요? 공휴일이에요?”
“공휴일은 아니지.”
“근데 왜 쉬어요?”
“그야 휴가니까.”
“갑자기 웬 휴가요?”
내 기억이 맞다면 워낙 워커홀릭이라서 휴가도 반납하고 일하던 게 성용 형님이었다.
근데 휴가라니.
성용 형님이 어찌 된 영문인지 밝혔다.
“사장님이 자기랑 같이 그날 휴가날로 잡자더라.”
김두식이 같이 휴가날로 잡자고 했다니.
둘이 어디 좋은 데라도 가기로 했나 싶었다.
“사장님이랑 어디 가십니까?”
“어딜 가긴, 어딜 가. 시골 가야지.”
“사장님 시골요?”
“아니, 내 시골에 가지.”
“사장님이 왜 형님네 시골을 갑니까?”
도통 이해할 수 없단 목소리로 물었더니 성용 형님이 더 황당하단 蔓?반응했다.
“아니, 뭔 소리야. 다음주 무슨 날인지 모르냐?”
“다음 주가 무슨 날인데요?”
“설날이잖아. 그래서 그것도 월화수, 완전 대박으로 날짜가 잡혔지. 거기서 사장님이 너 담당이라고 배려해서 나더러 금요일에 강제로 쉬라고 하시더라. 금토일월화수, 푹 쉬라고. 대신 드래곤 나이트 원고를 꼭 계약해 오라고 시키셨지.”
성용 형님의 말에 난 달력을 봤다.
다음 주 월화수, 11일부터 13일까지 설날로 지정되어 있었다.
“아, 설날이구나.”
“뭐야, 몰랐어?”
“저야 집에서 글만 쓰니까요.”
다음 주가 설날인지도 모르는 날 성용 형님이 타박했다.
“인마, 바깥 좀 나가라. 그 돈 벌어서 어따 쓰려고?”
돈 벌어서 어따 쓰냐니.
정해진 사용처를 밝혔다.
“건물 사려고요.”
“응?”
설마 내가 건물을 사겠다고 할 줄 몰랐는지 당황하는 성용 형님.
재밌단 듯이 이야기했다.
“흐흐, 건물 사면 노후가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정말 황금 백수가 되려고 하는구만.”
백수 중에서도 돈이 마르지 않는 황금 백수.
이보다 좋은 게 또 있을까?
정말 되고 싶다며 이야기했다.
“좋지 않습니까? 건물 하나 있으면 월세 따박따박 받으면서 원하는 글 쓰는 거죠.”
“잘났다. 그래서 언제 볼래?”
“형님이 금요일에 휴가라고 하시니 내일 뵙죠, 뭐.”
“알았다. 저번처럼 당산역에서 볼까?”
“그러시죠. 제가 이번에 소고기 비싼 데 알아뒀는데, 이번엔 거기서 법인카드 신명나게 긁어봅시다.”
저번에 철이가 소개시켜 준 가게였다.
거기서 법인카드로 맘껏 먹자고 하니 성용 형님이 혀를 내둘렀다.
“아주 지 돈 아니라고 막 쓸 생각하는구만.”
“형님 돈도 아니잖습니까? 그럼 그냥 삼겹살에 소주나 대충 먹을까요?”
“아니! 나, 소 좋아한다.”
그래, 고기하면 소지.
고기를 안 먹으면 모를까, 소 싫어하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그러던 중 난 한 가지 떠오른 게 있었다.
“흐흐, 그러니까요. 아차차 형님!”
“왜?”
“저희 집 아시죠?”
“그야 계약서에 적혀 있으니 알지.”
“그럼 저희 집에서 뵙죠. 소고기집이 역보다 저희 집에서 가깝습니다.”
“그럼 너희 집 앞에서 볼까?”
“예, 한 네 시쯤 오십쇼. 제가 저녁 좀 일찍 먹는다고 하시고요. 고맙죠?”
“아주 눈물겹구만.”
일찍 퇴근할 수 있게 해줬으니 눈물이 겨울 수밖에.
“그럼 내일 봬요.”
“오냐!”
성용 형님과의 통화를 끝마쳤다. 그리고 난 다시금 달력을 쳐다봤다.
“설날이라…….”
설날.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로,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하는 날이다.
점점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명절이란 개념이 흐릿해지며 간소하게 지내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지금 시기는 그러지 않았다.
대다수 집들이 명절 문화를 잘 지켰으니까.
때문에 설날이다, 추석이다 하면 몇몇 집에서 차례를 지내곤 대부분 친척들이 큰집으로 모여들었다.
솔직히 난 이 날이 싫었다.
공장으로 돈 버는 아버지가 그다지 꿀릴 게 없으니 집안 재산 같은 걸론 다른 친척들이 말도 못 붙였다.
한데 내가 작가가 하고 싶다며 한국대 갈 성적으로 전문대를 가니 말들이 많았다.
연예계나 예술계 쪽이 매체를 통해 유망해지면서 인식이 차차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 시기에는 그걸로 깔보던 시선이 꽤 있었다.
“차라리 제 아버지 뒤나 이어도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걸, 굳이 돈도 못 버는 글쟁이나 하는 아들 때문에 고생한다고 떠들어댔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