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34
나는 작가다 034화
34화
몇 번 그걸로 아버지가 싸우기도 했다.
남의 자식이 뭘 하건, 말건 신경 쓰지 말라며.
자식 걱정도 있었겠지만, 사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게 아버지였다.
때문에 본인의 자존심이 긁힌 상처도 있었을 거다.
어쨌거나 친척들은 그렇게 싸우고도 우리 집안에게 우월감을 느낄 만한 점이 나밖에 없기에 다음 명절이 오면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군대를 빨리 갔던 것도 없잖아 있었다.
군인으로 있으면 큰집에 가지 않아도 충분한 이유가 됐으니까.
명절날 휴가를 나왔음에도 부대 있는 것처럼 하면서 가질 않았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더 심해졌지.”
철이의 소개로 만난 강소영과 속도위반을 했기에.
다들 명문대인 한국대를 갈 수 있는 성적으로 배 굶주릴 글쟁이나 하러 갔다가 잘못 물들어서 인생을 망쳤다고 했다.
그로 인해 친척들은 자기들 집안이 더 우월하다고 여겼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자신은 상관없는데, 넌 기분 나쁘면 큰집을 안 가도 된다고 했었다.
외동인데.
“그러고 보니 찬우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 했었는데, 이 못난 형 때문에 집안 반대가 심해서 접었지.”
이찬우.
나보다 네 살 어린 친척 동생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이로 치면 열여덟 살이겠다.
친척들 중 유일하게 나와 함께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던 친척 동생이었다.
하지만 꿈은 달랐다.
우린 판타지 소설도 좋아했지만, 만화책도 매우 즐겁게 봤었다.
같은 취미에서 같은 꿈을 꿨다.
‘작가’라는 꿈을.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난 소설을 쓰고 싶어 했고, 찬우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 했달까?
문득 그 생각이 드니 미안했다.
“나만 아니었어도 찬우가 만화가의 꿈을 접지 않았겠지.”
안 그래도 집안 어른들 자체가 작가에 대한 인식도 안 좋았는데, 나도 인해 그 인식이 더욱 바닥을 쳤으니 찬우 부모님도 좋게 보지 않았다.
장남이 작가를 하겠다는 걸.
결국 나로 인해 찬우는 꿈을 반대당하고,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게 됐다.
만화가가 꿈이었던 사촌동생 찬우.
“이번엔 형이 도와주마.”
다음 날 나는 성용 형님을 만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황제 로키의 수정된 계약서와 드래곤 나이트의 신규 계약서를.
증쇄를 할 경우 늘어난 부수만큼 기존 지급받은 보장인세도 추가로 받도록 확실히 추가 조항을 작성했다.
수정 사항도 있었다.
인세가 입금될 통장을 바꿨다.
철이의 도움으로 세운 ‘K E&M’의 법인 통장으로.
거기까지 계약서 작성을 끝낸 뒤 설날 때문에 받아야 할 보장 인세 지급 좀 당겨줄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사장인 김두식이 현재 출판사 작품 중 가장 기대하고 있기에 처리해 주고 휴가를 갈 것 같단다.
소고기를 먹으면서 얼추 받게 될 돈이 얼마인지 확인해 봤다.
황제 로키를 12권까지 쓴 이후로 이틀에 한 권씩 뽑던 걸 나흘로 늘려서 14권 정도를 완성했다.
반면 황제 로키의 작업량을 줄인 대신 드래곤 나이트 원고에 조금 더 투자하는 쪽으로 계획을 바꿨었다.
그러자 2권도 안 됐던 드래곤 나이트의 원고가 벌써 6권까지 쌓였다.
라이트노벨인 용사무적은 4권이긴 했지만, 이에 대해선 아직 계약한 바가 없었다.
수정하고 도서 갤러리에 올려서 평가만 받고, 아직까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라 연재를 하지 않았기에.
애당초 첫 연재 때 순위가 그리 높지 않아서였는지 컨택도 안 왔고 말이다.
어쨌거나 현재 내가 푸른숲 출판사로부터 받은 인세는 황제 로키 7권까지였다.
원천징수 포함 권당 896만 원씩.
즉, 내가 받아야 할 인세는 황제 로키 7권 분량과 드래곤 나이트의 6권 분량.
총 13권 분량을 권당 896만 원씩 받으면 됐다.
그 자리에서 성용 형님하고 둘이 휴대폰으로 계산을 때려봤다.
결과를 보고 둘 다 이거 김두식이 제때 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휴대폰 계산기에 적힌 금액.
‘116,480,000’.
원천징수를 제외해도 1억하고 천만 원이 훨씬 넘었다.
아마 그대로 받았으면 세금 폭탄 엄청나게 맞을 비용.
하지만 이미 철이를 통해서 ‘K E&M’을 세워놨기에 세금 걱정은 덜 수 있었다.
대출을 껴서 구하기로 했던 아파트는 잠시 미뤘다.
작은 규모의 사무실을 임대해서 법인으로 세우며.
철이가 당산에서 그리 멀지 않다며 구로공단을 언급하니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나중에 구로디지털단지로 이름이 바뀌는 구로공단.
내 기억이 맞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아파트형 공장 상가 건물들이 우르르 지어지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니 철이가 아버지 정보통으로 알아왔다.
이미 들어서기 시작한 건 몇 년 됐고, 올해 새로 분양하려는 건물이 있다고.
거기서 난 원래 아파트였던 목표를 바꿨다.
구로공단 아파트형 공장 상가들을 매입하는 쪽으로.
종이책 시장 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구로공단이었는데, 유료연재 시장이 열리면서 지리적 이점으로 많은 업체들이 구로디지털단지로 몰렸다.
어차피 자금 관리나 운영은 철이에게 전적으로 맡길 생각이었고, 난 글만 열심히 쓸 생각이었으니 장기간 투자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어쨌거나 추가된 인세를 깨닫고선 생각했다.
‘이거 철이한테 말해서 좀 알아봐야겠네.’
자금이 불어나니 뭔가 할 게 더 많아질 터.
은근히 철이와 돈이 있어서 투자하는 걸 이야기하다 보니 묘한 재미가 있었다.
다소 과거로 회귀한 상황에서 아쉬운 점도 느꼈다.
‘안 그래도 주인공들이 회귀하면 주식이나 로또를 외우면 쉽게 돈 버는데, 왜 고생하는지 모른다던 독자들에게 할 말이 생기는구만.’
흔히 작가들이 회귀물을 쓰면 나오던 일관적인 독자들 반응.
과거로 돌아왔으면 주식이나 로또 번호만 알아도 쉽게 돈 버는데, 왜 굳이 주인공이 이렇게 저렇게 구르며 돈을 버는지 모르겠단다.
거기에 대해서 난 말할 권리가 생겼다.
회귀할 줄을 미리 알았다면 나 역시 투자할 만한 주식이나 로또 번호를 외워왔겠지만, 그럴 줄 모른 채 회귀해 버리니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미래에 있을 일들이 어떤지와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 살았던 경험으로 이렇게까지 잘되고 있으니 다행이랄까?
어쨌거나 성용 형님하고 계약을 끝낸 뒤 소고기를 먹곤 헤어졌다.
그렇게 난 다음 날을 기다렸다.
다음 날 철이를 통해서 처리한 인세가 통장에 들어왔다.
20020206 도서출판 푸른숲 ₩112,636,160 ₩112,636,160 부천점
법인통장으로 들어온 돈.
여기에다가 개인 통장에 있는 돈과 사무실을 구하면서 썼던 보증금 천만 원까지 더하면 보유하고 있는 돈이 1억 5천에 가까웠다.
먼저 개인으로 들어왔던 인세 중 2천만 원은 부모님 용돈이랑 선물도 사드리고, 내 물건들도 바꿀 것들 좀 바꾸느라 썼다.
버는 만큼 씀씀이가 커진다는 걸 몸소 체험하며.
어쨌거나 편집자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절대 불가능한 액수의 잔고.
“그땐 통장에 1억만 꽂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다.
통장에 1억만 있어도 정말 여유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란 게 참 무섭다.
잔고를 보고 나니 왠지 더 집필 의욕이 불타올랐다.
“철이랑 이야기한 걸 벌려도 잘만 하면 원래 목표였던 청담동 건물도 하나 금방 사겠는데?”
첫 인세를 받고 세웠던 꿈과 같은 목표.
청담동 건물.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을 보더라도 목표가 또렷해야 진행이 확실하게 된 것처럼 이왕지사 조금 늦어지더라도 그 목표만큼은 꼭 이루겠다며 다짐했다.
하지만 청담동 건물은 어디까지나 큰 목표였고, 지금 내겐 바로 해결해야 할 목표가 하나 있었다.
“이번엔 큰집에 모여서 뭐라고 하나 보자.”
***
나머지 인세를 지급받았던 나는 개인통장에 있던 잔고에서 일부 현찰을 찾았다.
어쨌거나 친척들끼리 서로 자기 잘난 맛에 떠드는 자리가 있긴 했어도 어른들이 세뱃돈을 주곤 했다.
내가 어렸을 적에.
가장 많이 챙겨줬던 게 할머니였다.
아버지가 막내다 보니 그 외아들인 날 가장 좋아했었다.
큰집에 모일 때를 대비해서 찾아온 현찰을 보며 말했다.
“다른 애들은 만 원씩 주면서도 어디 숨겨둔 만 원 한 장을 더 찾아와서 2만 원씩 주셨었지.”
그리고 난 현금으로 찾은 5백만 원 중 백만 원을 한 봉투에 넣었다.
할머니에게 드릴 용돈이었다.
그리고 남은 4백만 원.
이 중 백만 원 뭉치 두 개를 집었다.
이 또한 봉투 하나에 하나씩 넣어뒀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드릴 용돈이었다.
이미 첫 월급에서 용돈으로 백만 원을 드렸지만, 돈이 또 들어왔으니 드릴 생각이었다.
1억을 넘게 벌었는데, 여태껏 키워준 부모님에게 그 정도를 못해드릴까.
그렇게 할머니에 이어 부모님께 드릴 용돈 봉투를 따로 뺀 난 자화자찬했다.
“정말 용됐다, 이준경. 예전엔 용돈 30만 원 드리기도 힘들었으면서.”
성공한 내 자신을 칭찬한 뒤 이제 남은 현찰 2백만 원을 쳐다봤다.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에 잠겼다.
“나보다 동생이 몇 명이었더라?”
찬우 말고도 친척 동생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명절에 큰집을 안 찾아간 지가 하도 오래돼서 몇 명인지가 가물가물했다.
“몇 명이었지? 열 명은 넘었는데······.”
아버지 형제가 무려 구 남매였다.
큰아버지가 여섯에 고모가 둘이나 있었다.
첫째 큰아버지 자식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둘째 큰아버지부턴 애들이 나보다 많기도, 적기도 했다.
게다가 외동아들을 둔 우리 집과 다르게 다들 자식이 둘 이상 있었으니 동생인 애들도 많았다.
아버지가 막내이긴 했으나 결혼을 일찍 하셨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동생이 몇 명인지 고민하던 난 생각을 집어치웠다.
“그냥 5만 원씩 챙겨주면 되겠지. 찬우만 만화 재료 사라고 20만 원 정도 주고.”
부모님 선물을 사면서 샀던 명품 지갑에 남아 있는 백만 원을 현찰째로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만 원 권이 없는 지금 백만 원이란 금액을 넣긴 역부족이었다.
구겨 넣으려다가 포기하고 빼면서 말했다.
“이거 뭐, 지갑에 만 원짜리 백 장을 넣어봤어야 알지.”
그냥 챙겨왔던 봉투 중 두 개에다가 백만 원을 나눠서 넣었다.
찬우를 주기로 한 20만 원만 따로 빼고, 나머지 80만 원은 한 봉투에 넣었다.
그렇게 설날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
***
2002년 2월 12일.
드디어 고대하던 설날이 다가왔다.
들릴 곳 다 들리고서 부모님과 함께 큰집에 갔다.
일단 가자마자 어머니만 내려드리고, 아버지와 나는 산소로 향했다.
큰집에서 어머니들이 준비하는 동안 집안 남자들은 산소부터 들려서 차례를 지냈기에.
가장 말 많은 셋째 큰아버지가 산소에 도착하기 무섭게 자기 아들들과 다가오며 내게 인사했다.
“이야, 준경이 이제 전역한 거냐?”
“예, 전역했습니다.”
“그럼 이제 다시 또 전문대 가야겠네? 복학해야지?”
뻔히 우리 아버지가 내 대학교 이야기를 언급하는 걸 싫어하는지 알면서 복학 앞에 굳이 전문대라고 언급한다.
하긴 막내인 우리 아버지보다 돈을 못 버니 까내릴 만한 게 그것밖에 없겠지.
그나저나 셋째 큰아버지 덕분에 작가를 하느라 깜빡한 사실이 떠올랐다.
슬슬 군 휴학도 끝났으니 복학을 결정하긴 해야 했다.
하지만 굳이 복학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가봐야 배웠던 걸 배우는 거고, 괜한 학비만 날리는 격이니.
느낀 바를 그대로 밝혔다.
“복학하긴 해야죠. 근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왜? 아무리 봐도 작가는 아닌 것 같아서 편입하게?”
“아뇨.”
“그럼?”
“막상 군대 가기 전에는 문창과에서 뭣 좀 배우고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굳이 안 가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편입도 안 하고, 거기도 안 다니면 뭐하게?”
어른들은 아무리 전문대라도 대학교는 나와야 한다는 마인드가 좀 있었다.
근데 사실 대학교란 게 그렇지 않은가?
말끔한 직장 자리 구하려는 스펙을 올리기 위한 곳이란 느낌이.
한데 이미 돈을 버니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최근에 작품 계약해서 돈 벌고 있습니다.”
“오! 그래?”
“예.”
“그걸로 먹고살 수 있겠냐?”
작가를 하고 있단 사실에 다시 시비 거는 셋째 큰아버지.
거기서 우리 아버지가 퉁명스레 받아쳤다.
다른 큰아버지들도 들으란 듯이 다소 큰 목소리로.
“먹고살 수 있으니 이백만 원을 턱하니 내놨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