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35
나는 작가다 035화
35화
“뭐?”
셋째 큰아버지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큰아버지들도 그리 못 버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이 시기에 이백만 원이란 돈이 적은 게 아니었으니까.
현재 기준으로 치면 엔간한 사회초년생 월급 두 배인 이백만 원.
아버지가 무덤덤하게 할아버지 묘지 앞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러면서 방금 언급한 금액이 어떤 건지 밝혔다.
“준경이가 돈 벌었다고 나랑 지 엄마 백만 원씩 용돈으로 주더라고.”
“그, 그래?”
여전히 자존심을 건드리려던 셋째 큰아버지는 당혹감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평소 나 가지고 뭐라 하던 큰아버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분위기 속에서 셋째 큰아버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아무래도 처음 번 돈은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야 하니까요.”
그나마 나은 건 찬우네 부모님이나 아버지랑 가장 친한 여섯째 아버지만 날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이야, 준경이 대단하네.”
여섯째 큰아버지가 자기 첫째 아들을 타박했다.
“인마, 들었냐. 동생 좀 보고 배워라.”
“아니, 내 월급이 140만 원인데 아빠랑 엄마 10만 원씩 용돈으로 줬음 됐지.”
나보다 두 살 많은 준철 형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여섯째 큰아버지에게 툴툴거렸다.
솔직히 월급이 140만 원인데 용돈을 10만 원씩 드린 것도 적은 건 아니었다.
나중에나 애들이 세뱃돈을 10만 원 밑이면 우습게보지, 지금은 5만 원도 크게 느꼈으니 그 가치가 꽤 컸다.
여섯째 큰아버지 입장에선 동생이 아들한테 100만 원이나 용돈을 받았으니 적게 느껴졌겠지만 말이다.
“이야, 준경이가 군대도 갔다 오더니 철들었네. 월급을 다 털어서 부모님 용돈을 주고.”
그런 큰아버지들의 반응을 아버지가 정리했다.
“됐고, 아버지한테 절들이나 하자고.”
“그, 그래야지.”
마지못해 한방 맞은 정신을 챙기며 대답하는 셋째 큰아버지.
그렇게 집안 남자들은 산소에 있는 어른들 묘에다가 차례를 모두 올렸다.
끝나자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아들, 돗자리 챙겨.”
“예.”
돗자리를 챙기려는데 한 녀석이 뛰쳐나오며 먼저 채갔다.
찬우였다.
아주 싱글벙글 웃으면서 돗자리를 챙긴 찬우가 내게 말했다.
“형! 내가 들고 갈게!”
명절에 내 앞에서 이렇게 웃는 찬우 모습은 처음이었다.
비록 소설가는 아니라곤 하나 만화가 역시 작가.
그런 자신의 꿈이 나 때문에 항상 반대를 당하니 좋은 표정이 나올 리가.
심지어 나이를 먹고도 만나면 항상 그랬다.
‘형 보면 그냥 이게 나은 것 같기도 해.’
나중에 웹툰이 활성화되기 전까지도 만화가란 직업은 정말 소수의 인기 작가가 아니면 먹고살기 힘들었다.
찬우는 평범한 직장인이 된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지.’
약주를 할 땐 애써 내 덕분에 굳이 힘든 길을 안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술이 한창 들어가면 그래도 한때 자신의 꿈이었던 만화가가 되지 못해 슬프다고 했다.
서로 이루지 못한 꿈과 힘든 현실 앞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한데 만화가를 꿈꾸던 학창 시절 찬우 앞에 편집자 이준경이 아닌 작가인 내가 나타났다.
게다가 집안 어른들이 무시하던 그때와 다르게 꽤나 자랑스러워지는 작가로서.
안 그래도 작가를 하겠다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 아닌 전문대나 간 못난 형 때문에 집안 어른들에게 꿈을 포기하는 지경까지 강요당했던 찬우였다.
아마 내가 자랑스럽지 않을까?
싱글벙글 미소를 보이며 나타난 찬우에게 말했다.
“그럴래?”
“응!”
내가 잡으려던 돗자리를 곱게 개면서 찬우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나 준경 형네 차 타고 가도 돼?”
“그래.”
찬우네 아버지인 다섯째 큰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졌다.
내가 속도 위반까지 한 이후론 찬우랑 최대한 붙어 있지 못하도록 하던 분이.
그렇게 찬우는 우리 아버지와 함께 차를 찼다.
큰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거기서 찬우가 날 불렀다.
“형.”
“응?”
“혹시 황제 로키랑 드래곤 나이트가 형 거야?”
애당초 작정하고 원고를 준비한 건 군대에 있을 때였으니 찬우가 내 작품이 뭔지 알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 두 작품의 작가가 나인지 물었다.
“어떻게 알았냐?”
“어떻게 알긴, 떡하니 이준경이라고 본명을 써서 혹시나 했지.”
“동명이인일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긴 하지. 근데 형이 맞다며? 완전 뿌듯하네.”
제 일마냥 기뻐하는 찬우.
대충 어떤 이유인지 알면서도 난 뿌듯함의 이유를 물었다.
“뭐가 뿌듯해?”
“나나 판타지 소설 보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유명한 게 형이거든!”
“그래?”
“응! 와, 그나저나 형이 황제 로키 작가라니. 친구들한테 자랑해도 돼?”
“그래도 돼.”
친구들한테 자랑해도 된다고 하니 ‘아싸!’ 하며 쾌재를 부르는 찬우.
그러더니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금 날 쳐다봤다.
“형, 책은 언제 나와?”
“아마 황제 로키는 곧 나올걸.”
“드래곤 나이트는?”
“같은 달에 동시 출간하면 내 작품이 서로 경쟁해야 하니 두 달 뒤에 나갈 거야.”
그랬다.
보통 종이책 시장에서는 한 달을 주기로 작품의 경쟁 구도가 묶였다.
대개 신간이 1, 2권씩 해서 동시에 나왔을 때 잘나가는 작품이 있으면 비교적 못 나가는 작품도 있었다.
대여점에서 8, 900원의 돈으로 여러 작품을 빌려서 읽는 사람들과 달리 하루에 한 작품씩 빌리던 사람들도 많았다.
때문에 한 작품을 빌려가면 다른 작품에 손이 안 닿게 되니 경쟁 구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흔히 작가들끼리 유료연재 시장이 열리면서 이런 말들을 하곤 했다.
“종이책 땐 그냥 같이나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품 몇 개랑만 경쟁하면 됐는데, 이젠 모든 작가와 작품을 상대로 성공해야 하니 정말 어려운 시장이다.”
하지만 대여점 때보다 더욱 나아진 시장이다 보니 종이책 시장보다 경쟁에서 밀려나도 먹고살 만했다.
단지 꼭대기를 찍는 게 쉽지 않을 뿐이지.
어쨌거나 지금 시장을 감안해서 나나 출판사는 황제 로키와 드래곤 나이트를 동시에 출간하지 않도록 했다.
잘나갈 거라고 생각은 해도 굳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건 피하면 좋았으니까.
어쨌거나 두 작품의 출간 일정이 왜 따로인지 이야기해 주자 찬우가 신기해했다.
“와, 대박이네. 자기 작품으로 경쟁한다니. 완전 짱이다.”
“짱은 무슨. 아! 야, 이거나 받아라.”
난 백화점에서 산 클러치에 넣어뒀던 봉투 중 하나를 꺼냈다.
끄트머리에 ‘찬우’라고 적어둔.
찬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야?”
“이따가 형한테 절해라.”
그렇게 말하니 무슨 봉투인지 바로 알아챘다.
“응? 세뱃돈이야?”
“그래.”
세뱃돈이라고 하자 찬우가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자 바로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만 원짜리가 들어간 걸 보곤 화들짝 놀랐다.
“힉! 이렇게 많이?”
“너니까 주는 거다. 그걸로 만화 열심히 그려.”
만화가가 꿈인 걸 알아서 줬다고 하자 찬우는 감동에 찬 표정으로 날 껴안으려고 했다.
“혀엉.”
껴안으려는 찬우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사내새끼가 왜 이래, 징그럽게?”
“너무 고마워서 그렇지!”
“저리 가! 어디 사내놈이 껴안으려고 해.”
그만하라며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딱!
“아고.”
딱밤 한 방 세게 막은 찬우가 이마를 양손으로 비볐다.
그러는 사이 운전하던 아버지가 말했다.
“이놈들아, 다 도착했다. 애정행각 그만하고 내려.”
“옙!”
“네!”
주차가 끝나자 내려서 큰집으로 들어갔다.
집안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첫째 큰어머니가 손을 휘저었다.
“아이고, 왜 이리들 빨리 왔어. 일단 다들 기다려 봐요. 아직 더 준비해야 하니까.”
어머니들과 딸들은 차례상과 식사상을 준비하고, 아버지들은 거실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아들들은 다들 안방 다음으로 큰 방에서 자리를 가졌다.
그곳에는 찬우를 제외한 남동생 다섯과 나보다 나이 많은 형 넷이 있었다.
아까 나 때문에 한 방 먹었던 준철 형이 내 목을 졸랐다.
머리를 주먹으로 마구 지지며.
“으, 준경이 이 자식아! 너 때문에 내가 못 산다!”
“왜 이래, 놔줘.”
놔달라고 하니 준철 형이 놓곤 못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식이 돈을 탔으면 자기 쓸 것도 좀 남겨야지, 그걸 다 드리냐?”
나 때문에 아버지한테 한 방 먹은 것보다 내가 계약해서 번 돈을 다 줬다고 생각해서 걱정을 해줬다.
“에이, 당연히 남겼지.”
“뭐? 도대체 얼마를 번 거야?”
내 말에 다른 형들도 호기심을 보였다.
부모님한테 이백만 원이나 용돈으로 줘놓곤 남겨놨다고 하니 형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서 난 볼을 긁적거렸다.
“말하면 기절할 텐데.”
“뭐야, 얼마나 벌었는데 그래?”
있는 그대로 말하면 좀 거시기해서 얼마를 벌었다고 해야 할는지.
그때였다.
“못해도 천만 원 이상 벌었겠지. 대출한 게 아니면.”
갑자기 방문 쪽에서 이십 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에 있던 우리의 시선이 전부 그쪽으로 쏠렸다.
“응?”
문가에 한 여자애가 기댄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배우 뺨치는 외모와 몸매를 지닌 여자애.
나랑 동갑인 친척 이진아였다.
진아는 날 위아래로 훑으면서 기가 차단 듯이 쳐다봤다.
“아주 명품으로 도배를 했네, 복권 맞았냐?”
내가 큰집을 안 나가기 전까지 동갑으로 이성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구처럼 지낸 녀석이었다. 아니, 친척이니 이성이라고 느끼면 오히려 큰일이긴 하지.
근데 이렇게라도 생각해야 하는 게 맞았다.
워낙 미녀상이었으니까.
시계랑 클러치 말고는 심플한 디자인이라 크게 티가 안 나는 명품 옷들인데, 그걸 알아보고 툴툴거리는 진아에게 말했다.
“인마, 글 써서 번 거야.”
우리 두 사람의 대화에 형들은 다시금 날 쳐다봤다. 그러고 진아처럼 위아래로 둘러보더니 시계랑 클러치에 관심을 보였다.
개중 스물아홉 살로 제일 나이 맞은 준호 형이 시계와 클러치에 박힌 로고를 발견했다.
“명품으로 도배라니? 그러고 보니 이 자식 시계랑 가방이랑 어디서 많이 본 브랜드인데?”
“어디서 많이 보긴, TV에서 봤겠지. 못해도 시계랑 클러치만 합쳐서 4백만 원은 하겠는데? 게다가 옷들도 몇십만 원은 기본으로 할 테니, 아주 몸에 천만 원을 달고 나타났구만. 어쩐지 작은 아빠가 작년 추석 때 몇십만 원짜리 시계 쓰던 분이 갑자기 몇백만 원짜리를 어디서 구하신 건가 했네.”
아직은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적당한 걸로 구매했던 건데, 개당 200만 원짜리 명품이란 건 일반인 기준으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아의 말에 다들 날 쳐다봤다.
“뭐? 진짜?!”
다들 눈에서 날 친척 이준경이 아니라 천만 원 수표로 보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진짜인가 싶었다.
“에이, 그냥 짝퉁 아니야?”
셋째 큰아버지 첫째 아들인 준후 형이 그리 말했다.
내가 그런 명품을 찼단 걸 인정하기 싫은 말투다.
어째 제 아버지랑 별반 다르지가 않다.
남이 잘된 걸 축하하기보단 까내리는 게.
거기서 진아가 반박했다.
“오빠, 내가 어디서 일하는지 잊었어?”
여섯째 큰아버지 딸인 진아 동생 철진이가 말했다.
“백화점 명품관에서 일하잖아.”
“그런 내가 짝퉁도 못 알아볼 것 같아? 게다가 짝퉁이라고 해도 저 정도 급이면 몇십만 원 넘거든? 도대체 너 어떻게 된 거야? 이제 전역한 거 아니었어?”
이에 대한 답변은 준철 형이 대신 해줬다.
“최근에 뭐 작품 계약해서 부모님한테 백만 원씩 용돈을 드렸다더라.”
명품을 산 것도 모자라 부모님 용돈까지 드렸다고 하니 진아가 믿기 어렵단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너 도대체 얼마나 번 거야?”
“이번에 계약해서 좀 받았어.”
“그니까 좀이 얼만데?”
고민 끝에 난 적당한 액수를 불렀다.
“3천 정도?”
번 돈을 한참 깎아서 말한 건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경악했다.
“3, 3천?!”
하나같이 진아를 포함한 집안 아들들이 전부 소리치자 셋째 큰아버지가 방으로 쫓아왔다.
“이 녀석들아, 왜 이리 시끄러워.”
거기서 방금 나더러 짝퉁 찬 게 아니냐고 했던 준후 형이 소리쳤다.
“아빠! 준경이가 3천만 원 벌었대!”
준후 형의 외침에 집안 어른들이 하나같이 우리가 있는 방으로 몰려들었다.
“뭐?”
“준경이 뭐 얼마를 벌었다고?”
“3천만 원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집안 어른들이 하던 걸 멈추고 다들 내게 관심을 보이자 아버지가 말렸다.
“아니, 애가 글을 잘 써서 3천도 벌 수 있지. 그게 무슨 대수라고. 얼른 차례 준비들이나 합시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난 봤다.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하느라 입가가 떨리는 아버지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