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36
나는 작가다 036화
36화
아버지 덕분에 잠시간 친척들의 번잡함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차례가 끝나기 무섭게 집안 어른들이 다들 내게 관심을 보였다.
“이야, 준경이 작가 하겠다고 한국대 포기했을 땐 다들 뭐라고 했더니 3천이나 벌었다고?”
“대단하네.”
다들 한결같이 날 보고 칭찬했다.
편집자 이준경이던 당시엔 전혀 들을 수 없던 칭찬들을.
하지만 다들 그런 건 아니었다.
셋째 큰아버지는 여전히 못마땅한 건지 틱틱거렸다.
“그래 봐야 잠깐 한 번 번 거잖아. 보통 작가들은 책 하나 내고 고정 수익 없어서 그걸로 막 몇 년 먹고살고 그러지 않아?”
장르문학 쪽 작가들을 잘 모르는 어른의 관점이다.
흔히 작가들이 책 한 번 내서 벌고, 몇 년간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그걸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런 반응을 모르지 않았다.
충분히 이럴 걸 감안했다.
그래서 준비한 게 하나 더 있지.
난 방금 틱틱거렸던 셋째 큰아버지에게 반박했다.
“그건 셋째 큰아버지가 걱정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뭐?”
“안 그래도 이번에 번 돈을 투자해서 회사 하나 차렸는데, 거기로 또 한 3천만 원 들어올 겁니다.”
세금 폭탄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인 ‘K E&M’.
딱히 이 법인으로 당장 뭔가 하는 건 없었지만, 버는 돈이 있으니 대충 둘러대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친척들은 전부 경악했다.
작품 계약으로 3천만 원을 번 것도 모자라 회사를 차려서 또 벌 거라니까.
“뭐야, 그럼 준경이가 벌써 6천이나 벌었단 거야? 또래 애들 월급 생각하면 한 5년은 안 벌어도 되겠네.”
대단하다던가, 신기하다던가, 부럽다던가.
다들 날 그런 시선으로 쳐다봤다.
“명함 하나씩 드릴까요?”
“명함도 팠어?”
“예.”
“그래, 하나씩 줘봐.”
큰아버지들이 전부 명함을 달라고 했다.
클러치를 열었다.
블랑슈 명함 지갑을 꺼내기 위해서.
내가 블랑슈 명함 지갑을 꺼내자 바로 알아보는 진아.
“와, 블랑슈 명함 지갑까지 샀어? 대박이네.”
하나 같이 친척 여자들은 방금 이야기한 진아에게 물어댔다.
“뭐야, 준경이가 가진 저 명함 지갑 비싼 거야?”
“못해도 4, 50만 원 할걸?”
“정말 용났네.”
명함 지갑 하나에도 저리 반응했는데, 명함을 꺼내면 어떨까 싶었다.
가장자리에 금박을 얹은 고급지. 거기에 회사의 로고를 엠보싱 처리한 명함을 꺼냈다.
명함을 평소 챙기고 다니는 직장인들이라면 딱 봐도 단가가 높다는 걸 알아볼 정도로 고급진 걸로 맞췄다.
싸구려 종이로 명함을 쓰던 때를 떠올리며.
김두식이 자기나 자기 아들 명함은 고급지에 쓰면서 직원들에겐 싸구려 종이로 만들어서 꽤 서러웠다.
그 서러움을 풀기 위해 제작한 명함은 큰아버지들 손에 하나씩 올라갔다.
“K E&M? 엔터테인먼트랑 매니지먼트를 한다고?”
“엔터테인먼트면 연예인들 키우는 회사 아니냐?”
“이게 뭐하는 회사인데 3천을 버냐?”
다들 명함에 적인 이름을 보곤 궁금해했다.
“작가 관리해 주는 회사예요.”
“그게 한 달 만에 3천이나 벌 정도로 대단해?”
셋째 큰아버지가 도통 믿을 수 없단 듯이 쳐다봤다.
어차피 설명해 줘야 뭐하는 데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저 씨익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아직 블루오션이라서요.”
내 발언에 여섯째 큰아버지가 대견하게 여겼다.
“캬, 블루오션이란 말도 쓰네. 준경이 어른 다 됐네.”
여섯째 큰아버지와 다르게 몇 분은 한 달 만에 3천만 원이나 벌었다고 하니 꽤나 깊은 관심을 보였다.
“뭐, 직원도 구하고 그러냐?”
“이거 차리는 데 얼마나 들었냐?”
이런 큰아버지들의 관심을 뚝 끊은 건 아버지였다.
“다들 작가 한다고 욕할 땐 언제고, 왜들 이리 남의 아들 귀찮게 해.”
작가 하겠다고 한국대를 포기하고 전문대에 입학했다고 욕하던 거 기억 안 나냐는 아버지의 발언.
덕분에 찬우 아버지인 넷째 큰아버지랑 준철 형의 아버지인 여섯째 큰아버지 말곤 입이 쏙 들어갔다.
거기서 넷째 큰아버지가 갑자기 진지하게 날 불렀다.
“준경아.”
너무 진지해서 다른 큰아버지들이 잠시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정도였다.
거기에 대답했다.
“예.”
“작가 관리면 만화가도 하는 거냐?”
당연히 내가 나중에 사업을 꾸리게 된다면 소설가뿐만 아니라 만화가도 섭외할 거다.
나중에 유료연재 시장이 열리고, 대한민국 콘텐츠 사업들이 웹소설 쪽으로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웹소설을 웹툰화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만약 사업을 벌이게 된다면 작정하고 밀어붙여야 하니 웹툰 작가 계약도 필수라 여겼다.
아직 하진 않았으나 집안 어른들이 전부 내가 작품 계약으로 3천, K E&M으로 3천을 번 줄 아니 얼추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긴 해야 했다.
“일단 좀 더 사업이 안정화되긴 해야겠지만, 만화가도 관리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그래?”
“예.”
“네가 볼 땐 만화가를 해서 먹고살 수 있겠냐?”
만화가란 직업이 먹고살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은 나에게 했지만, 한편으로 만화가가 꿈인 찬우를 향했기도 했다.
집안에 작가로서 성공한 케이스가 나왔다.
그렇다 보니 넷째 큰아버지 입장에선 만화가가 꿈인 찬우를 밀어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으리라.
그에 대해 답했다.
“있다고 봅니다.”
만화책은 몰라도 웹툰이 성장가도에 오르면서 만화가도 먹고살기 충분한 직업군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만화가가 안 되더라도 그림만 잘 그리면 일러스트 외주를 받아도 충분했다.
대신 허송세월 보내듯 그리면 안 되고, 어느 정도 빠른 작업 속도와 퀄리티를 지녀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넷째 큰아버지는 내 대답을 듣더니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
“예.”
“우리 찬우도 가능할까?”
찬우도 작가로서 가능성이 있냐는 물음.
솔직히 거기에 답하긴 어려웠다.
차라리 나 때문에 찬우의 꿈이 좌절되지 않아서 만화가가 된 걸 봤더라면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알아보고 뭐라 답해줄 텐데.
나로 인해 만화가의 꿈이 좌절된 직장인 찬우만 본 입장에선 뭐라 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작가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딱 하나가 있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여쭤보시면 제가 뭐라 대답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랬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거다.
내 말에 넷째 큰아버지 역시 납득했다.
“그래, 그럼 질문을 바꾸마.”
“예.”
“찬우가 열심히 해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잘 먹고살 수 있겠냐?”
만화가로서 열심히 해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게 가능해서 내가 매니지먼트를 차려서 계약한다면 해줄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뿐.
“만약 큰아버지가 찬우의 꿈을 지원해 주시고, 녀석이 제대로 한다면 제가 평생 굶을 걱정 없도록 케어하겠습니다.”
“그래?”
“예.”
“알았다. 좋은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넷째 큰아버지의 눈치.
거기서 난 찬우를 힐끗 쳐다봤다.
바보가 아닌 이상 넷째 큰아버지의 의도가 뭔지 알 터.
찬우의 표정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두 부자를 본 나는 은은한 미소로 화답했다.
“천만에요. 저야 큰아버지께서 제 회사에 작가를 계약시켜 주려고 하시니 더욱 감사할 따름이죠.”
그때 다섯째 큰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찬식이도 작가나 시킬까?”
넷째 큰아버지와 다섯째 큰아버지는 돌아가신 둘째 할머니의 자식이었기에 아들들 이름을 ‘찬’ 자 돌림으로 돌렸다.
보통 손자들을 ‘준’ 자 돌림으로 돌려야 하는데, 돌아가신 둘째 할머니가 첫째 할머니랑 다르게 키우겠다며 아들들 이름이나 손자들 이름 돌림자를 달리 쓰라고 유언했기에.
어쨌거나 나보다 한 살 어린 찬식이를 작가나 시키겠단 다섯째 큰아버지의 말에 우리 아버지가 말했다.
“작가해서 아무나 그리 버는 줄 알아? 우리 아들이니까 그리 벌지.”
평소 셋째 큰아버지 다음으로 나 가지고 뭐라 하던 다섯째 큰아버지였기에 저런 거다.
우리 아버지의 말에 다섯째 큰아버지가 버럭 화를 냈다.
“뭐, 이 자식아! 우리 찬식이가 어때서!”
평소라면 저 화내는 입장이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 역시 내가 전문대를 간 이후 쌓아둔 게 있었는지 큰아버지들을 쏘아붙였다.
“툭 까놓고 말해볼까? 형들이 우리 준경이 작가 한다고 한국대갈 성적으로 전문대 간대서 욕한 건 기억 안 나나?”
정곡을 찌르는 말.
덕분에 큰아버지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
이 정도면 그간 당했던 건 다 갚아준 것도 같았다.
아버지 기도 살려줬겠다.
그만 슬슬 정리하자.
“아버지.”
“왜?”
“할머니랑 애들 세뱃돈만 주고 슬슬 돌아가죠. 저 오늘도 원고 좀 써야 해서요.”
“그러자.”
세뱃돈으로 주려고 찾아온 돈들을 할머니와 동생들에게 나눠줬다. 그러고 나니 진아가 다가왔다.
“오빠, 나는?”
“징그럽게 무슨 오빠야? 그리고 맨날 지가 생일 빠르다고 누나라 할 땐 언제고.”
“돈 잘 벌면 오빠지.”
“됐네요.”
돈 좀 번다는 걸 아니 용돈 달라고 들러붙는 동갑인 진아.
콩고물 하나도 안 떨어질 것 같자 갑자기 한 가지 수를 뒀다.
“내가 큰맘 먹고 소개팅해 준다!”
자기 일하는 데에 예쁜 애들 많다고 항상 자랑했던가?
항상 준후 형이 맨날 소개시켜 달라고 들러붙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진아가 내게 자기 직장 동료들을 소개시켜 준다고 하니 준후 형이 끼어들었다.
“야, 난 안 해준다며!”
진아는 못마땅한 눈초리로 준후 형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오빠는 넷째 큰아빠한테 용돈이나 타 쓰면서 무슨 소개팅이야. 그리고 솔직히 나랑 같이 일하는 애들 다 수준이 있는데, 최소한 외모나 키가 준경이 정돈 돼야 만나거든?”
“야!”
자신과 나를 비교해서 모자라다고 하니 빽 소리 지르는 준후 형.
그런 두 사람을 말리고 진아에게 말했다.
“됐고, 그냥 나중에 우리 동네나 한 번 와라. 맛있는 거 사줄게.”
“흐응, 고작 맛있는 걸로 소개팅을 퉁 치자고?”
소개팅 시켜주면 밥을 사준다고 생각했나 보다.
내겐 아직 그럴 시간 따위 없었다.
한참 글을 써도 모자랄 판국이니까.
됐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됐다.”
“너도 잘나가니 예쁜 여자 친구랑 연애도 하고 그래야지?”
계속 연애 타령 하는 진아에게 난 손을 휙휙 내저었다.
“그런 거 할 정신 없다. 그럼 이만 간다. 나 갈게.”
간다고 인사하자 다들 내게 인사해 줬다.
“잘 가, 준경아.”
“잘 가, 형!”
“잘 가, 오빠!”
평소 조용히 가던 때와 다르게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깔보던 준후 형은 부들부들 떨어댔다.
“으으.”
큰집에 있는 친척들을 뒤로한 채 난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내 인생 처음으로 통쾌한 명절이 아닐 수 없었다.
***
설날이 끝나고 쳇바퀴가 돌듯 평소대로 원고를 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에게 연락이 왔다.
지이잉.
“누구지? 성용 형님이네.”
성용 형님이 전화한 걸 보고 받았다.
“야, 준경아.”
“예, 형님.”
“황제 로키 표지 나왔는데, 죽여준다.”
종이책 출간을 위한 표지가 드디어 나왔단다.
소개글인 카피 문구는 이미 보내놨으니 이제 찍기만 하면 될 터.
“그래요?”
“어, 메일로 보냈으니 봐봐.”
“어련히 형님이 알아서 잘 뽑으셨겠죠.”
“일단 봐봐.”
정말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잘 나왔나 보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원고를 쓰던 걸 저장한 뒤 메일로 들어갔다.
메일에는 성용 형님이 보내준 황제 로키의 표지가 있었다.
고풍스러운 황제의 옥좌에 앉은 백발 사내인 로키. 그리고 왕좌 양옆에는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관능적인 몸매가 드러나는 검은색 타이즈에 검은 장발이 휘날리며 까마귀 모양의 가면을 살짝 벗는 여인과 베이지색으로 착각할 법한 금발을 단아하게 묶은 채 거대한 양손검 한 자루를 땅에 박은 채 써 있는 은빛 갑옷의 여인이.
가운데 앉아 있는 로키에게선 미소년과 같은 외모였으나 황제의 위엄과 풍채가 느껴졌고, 양옆에 있는 두 여인에게선 남자라면 반할 법한 아름다운이 드러났다.
황제 로키의 표지를 본 난 전화로 성용 형님에게 감탄했다.
“오! 뭐야, 이게. 엄청 잘 나왔네요?”
“그치? 심지어 외주 받던 분이 네 글 재밌다고 캐릭터 하나 추가될 때마다 100만 원씩 더 받는데, 서비스로 양옆에 클로우랑 잔느도 그려주셨다.”
내 작품을 보고 재밌어서 서비스로 여자 캐릭터를 둘이나 더 그려줬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한데 표지를 자세히 보니 눈에 익다.
“그래요?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그림체인데…….”
내 말에 성용 형님이 질문을 하나 던졌다.
“혹시 창세기록해 봤냐?”
창세기록이라고 하니 한 가지가 떠올랐다.
정확한 발매일은 기억 안 나나 꽤 재밌게 즐긴 게임이.
성용 형님이 그 게임의 이름을 언급하자 ‘역시!’ 하면서 박수를 쳤다.
짝!
“맞죠? 하드맥스에서 나온 창세기록3 파트2 일러스트 그린 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