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38
나는 작가다 038화
38화
“뭐야, 한 시간이나 지났어?!”
사이월드에 올라온 댓글과 방명록을 한참 정리했는데도 반도 처리 못했다. 그러고 시계를 봤는데, 벌써 한 시간이 넘었따.
한 시간이면 7천 자.
16만 자를 한 권으로 잡으면 7천 자의 값어치는 대략 40만 원가량 했다.
즉, 댓글과 방명록 정리를 하는데 어마어마한 금액을 손해 보고 있던 것이다.
뒤늦게 얼마나 큰 가치를 낭비하고 있었는지 깨달은 난 투덜거렸다.
“아, 이럴 바엔 아르바이트생을 하나 구하고 말지.”
현재 시급이 2천 원 좀 넘는데, 깔끔하게 더 얹어서 3천 원으로만 쳐도 10시간 동안 아르바이트생을 구해도 3만 원이면 됐다.
단돈 3만 원으로 400만 원을 아낄 수 있단 생각에 난 하던 걸 멈췄다.
근데 생각해 보니 그 3만 원도 아낄 방법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철이 자식, 월급만 따박따박 받아가고 하는 일은 별로 없잖아?”
갑자기 몰아서 세금을 정리하려면 할 일이 많았겠지만, 쭉 관리만 잘하면 철이가 하루 중 일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됐다.
비록 나중에 세금을 줄이고 자신에게 줄 돈에서 떼어가라고 했지만, 매달 나가는 200만 원이란 돈이 적진 않았다.
그렇게 철이를 떠올린 난 씨익 웃었다.
“자식, 월급값은 해야지.”
아직은 시간이 이르니 이따가 신림으로 나가면서 전화할까 싶었다. 그리고 방금 보던 사이월드 홈피는 닫았다.
“이왕지사 월급 주는 만큼 부려먹으려면 계속 쌓아둬야지.”
철이에게 시킬 생각으로 난 원고를 켰다.
어쨌거나 월급을 주려면 열심히 나도 벌어야지.
원고를 열심히 써나갔다.
그렇게 오후 다섯 시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원고에 집중했다.
얼마 있지 않아 알람이 울렸다.
또로롱.
“음, 다섯 시구나. 오늘을 일단 여기까지 쓰자.”
쓰고 있던 원고를 저장했다.
하던 일을 끝낸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쭉 켰다.
“으으으!”
두두둑!
깍지를 낀 채 하늘 높이 양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할 때였다.
욱신!
“억!”
갑자기 우측 날개뼈 부근을 누가 때린 것처럼 통증이 훅 들어왔다.
한창 군대에 있을 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움직였다.
말년에도 부대를 잘못 만나서 쉬질 못했으니까.
근데 전역하고 나선 거의 집에만 있고 움직일 일이 거의 없으니 안 쓰던 근육이라 아픈 것 같았다.
등을 좁혔다 폈다 하면서 살살 마사지를 하듯 움직였다.
조금하고 나니 통증이 좀 가셨다.
혹시나 다른 근육도 이럴까 봐 조심스럽게 스트레칭을 가볍게 했다.
“아으, 운동 부족인가?”
확실히 운동이 부족하긴 했다.
운동이 부족하단 걸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강소영의 말이 생각난 것이다.
“설마 그때 이런 배불뚝이 아저씨가 될 줄 알았나. 그때 당신 꽤 잘생겼잖아. 영곤이보다 나았지.”
확실히 지금 외모는 연예인만큼은 몰라도 어디가서 꿀리지 않았다.
얼굴이나, 몸매나.
근데 지금처럼 맨날 집에만 박혀서 폐인처럼 지내면 금방 망가지지 않을까 싶었다.
컴퓨터를 바꾸면서 작가들이 가장 중요시하던 키보드랑 의자도 샀지만, 어디까지나 손이나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
확실한 건강 관리를 위해선 운동이 필요했다.
“음, 신림 갔다가 오는 길에 근처 헬스장을 끊어야겠다.”
그렇게 운동으로 몸매 관리를 하려고 하니 머릿속에서 나이에 비해 잘 벌던 이십 대 작가인 강민후와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작가님, 목요일에 볼까요?”
“저 목요일에 피부과 예약 있는데, 금요일에 보면 안 될까요?”
“웬 피부과요? 어디 두드러기라도 나셨어요?”
“아뇨, 피부 관리하러 가는데요?”
“예? 갑자기 무슨 피부 관리를 받으러 피부과에 가세요?”
“자기 관리의 꽃은 피부 관리예요. 과장님도 여유 되면 한 번 가서 받아보세요. 열 살은 어려 보이실 걸요?”
그때 강민후 작가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남자가 피부 관리 받는 건 연예인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참에 나도 좀 받아볼까?”
돈도 많이 벌었겠다.
이참에 관리 한 번 제대로 받아보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대부분 연예인들이 관리받는 곳은 청담동일 터.
당산에서 청담동까지 다닐 걸 감안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일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다녀야 한다고 했었는데…… 이참에 그냥 청담동에 전세로 오피스텔 하나 구해 버릴까?”
대출을 하면 세금도 아낄 수 있다고 하니 전세로 청담동 오피스텔 하나를 구할까 싶었다.
안 그래도 신림으로 가면서 철이랑 통화하려고 했는데, 이참에 청담동 오피스텔 건도 물어보자고 생각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던가.
곧장 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 정 대리.”
전화 받은 철이에게 난 직함을 부르자 녀석은 곧장 눈치챘다.
내가 무슨 연유로 전화한 건지.
“뭐야, 또 돈 쓸 데 생겼냐?”
“청담동 오피스텔 전세로 대출 껴서 하나 구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뭐? 청담동 오피스텔을 전세로 구한다고?”
한두 푼짜리 이야기가 아니란 걸 깨달은 철이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반면 난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어.”
“뭐, 자꾸 말이 바뀌는 거야. 처음에는 아파트 구하자더니 갑자기 구로공단 쪽 아파트형 공장 상가 매입하자고 바꾸더니, 이젠 청담동 오피스텔로 바꾼 거냐?”
그랬다.
처음에 철이가 청담동 건물 사기 위한 투자금으로 아파트를 사자고 했는데, 구로공단 쪽 아파트형 공장 상가 이야기에 내가 그쪽으로 자금 흐름을 바꿨다.
한데 여기서 또 갑자기 청담동 오피스텔을 하나 구한다고 하니 그 기획이 바뀌었나 싶었다.
철이에게 그런 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아니, 그때 이야기한 거 구로공단 쪽 상가 매물 하나 빼고 청담동 오피스텔 하나 구하게. 가능할 것 같냐?”
“뭐, 지금 네가 버는 돈 토대로 하면 가능하긴 한데. 대출 끼지 말고 법인으로 구하자.”
“응? 대출 끼면 절세할 수 있다며.”
“그것보다 법인으로 구하는 쪽이 더 나아.”
대출 껴서 내가 오피스텔 전세를 구하는 것보단 법인으로 구하는 게 낫다는 철이.
그래도 되나 싶었다.
“근데 법인으로 오피스텔 전세를 구해도 되나?”
“지방이나 해외에서 오는 손님들 재워줄 공간으로 마련했다고……. 아, 여튼 자세한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네가 결정해. 그냥 개인돈으로 대출 껴서 구할지, 아니면 법인으로 구할 지.”
“후자가 세금 더 아낀다고?”
“어.”
“그럼 당연히 후자지.”
당연한 선택이었다.
세금은 아낄수록 좋은 거니까.
어쨌거나 후자를 택하자 철이가 물었다.
“알았다. 매물은 정했고?”
“아니, 나중에 가서 봐야지.”
“그럼 그때 같이 가. 아니면 구로공단 상가 매물 포기하고 나도 하나 구해주던가.”
은근슬쩍 수저를 얹으려는 철이.
녀석에게 웃기지 말라며 튕겨냈다.
“인마, 그건 내년에 내가 내야 할 세금 절세해서 당당히 번 돈으로 구해라. 월급도 주는구만.”
“쳇, 안 넘어오는군. 그럼 다 된 거야?”
“아! 그리고 너 일 하나만 해줘라.”
아직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무슨 일?”
“내가 이번에 사이월드 홈피를 하나 만들었거든?”
“그건 왜 만들었데.”
“독자들이랑 소통하려고 만들었지.”
“어이구, 소통왕 납셨네. 그래서 무슨 일?”
“내가 문자로 계정 알려줄 테니까 댓글이랑 방명록에 이상한 것들 삭제하고 차단 좀 해줘라.”
“야, 무슨 그런 사소한 일을 나한테 맡겨!”
별거 아닌 일을 맡기려고 하니 거부했다.
거기에 해줄 말이야 이미 준비가 모두 끝났다.
“네 월급이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야 네 인세에서 나오지.”
“만약 내가 방금 말한 걸 하게 되면 그 인세가 매일 몇백만 원씩 까일 텐데, 정말 안 할 거냐?”
이 질문에 철이가 백기를 들었다.
“젠장, 해야겠네.”
“흐흐, 잘 부탁하마.”
“대신 열심히 벌어라. 내년에 세금 왕창 깎아서 나도 청담동에 오피스텔 좀 구해보자.”
“오냐.”
“그래, 뭐 더 할 말은 없는 거지?”
“어, 그거 두 개 말하려고 전화한 거다.”
“그럼 끊는다.”
“그래.”
그렇게 철이와의 통화를 끝냈다.
“사이월드 정리는 철이가 알아서 잘 해줄 거고, 청담동 오피스텔은 다음 주에나 같이 가서 보면 되겠네. 어디 보자, 지금 몇 시지?”
대충 나갈 준비를 하고 철이랑 통화하고 나니 30분이 지나가 있었다.
“5시 30분……. 얼추 신림까지 가는데 30분 정도 걸리니 한 시간이 남네?”
한 시간이 여유롭단 걸 알게 된 나는 다시금 컴퓨터를 켰다.
“나가기 전에 한 편만 더 쓰고 가자.”
편집자에서 작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워커홀릭은 지울 수 없는 직업병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원고를 쓰고 난 뒤 난 약속시간 30분 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집에서 당산역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한 5분 거리?
덕분에 약속 시간 5분 전에 신림역에 도착했다.
순대타운을 가기로 했기에 3번 출구로 나갔다.
거기서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신림동 순대타운으로 향할 수 있었으니까.
입구에서 성용 형님을 기다릴 때였다.
한 아가씨가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꽤나 수줍은 표정으로 날 불렀다.
“저기요.”
“예?”
“혹시 번호 좀…….”
자기 휴대폰을 내밀면서 번호를 달란다.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번호를 따일 정도.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름 결혼하기 전까진 이렇게 잘나갔는데…….’
그리 생각만 하고, 여자한테는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딱히 지금 누굴 만나고 그럴 여유가 없어서요.”
“아, 아니에요. 수고하세요.”
“예.”
예쁜 것도, 못생긴 것도 아닌 딱 이십 대 초반의 아가씨처럼 보이는 여자가 민망해하며 사라졌다.
그때였다.
이번엔 두 명의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저기요.”
왠지 또 번호를 달라는 것 같아서 미리 선수 쳤다.
“번호 드릴 생각 없어요.”
근데 두 여성은 날 이상하게 쳐다봤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예?”
번호를 따려던 게 아닌가 싶을 무렵.
두 여성 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혹시 도를 믿으세요?”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번호를 달라는 줄 알았더니 도쟁이라니.
당황한 사이 한 사내가 나 대신 도쟁이 여자들을 처리해 줬다.
“저리 가요. 도 같은 거 안 믿습니다. 훠이, 훠이!”
성용 형님이었다.
그를 보곤 불렀다.
“아, 형님!”
내가 반갑게 부른 반면 성용 형님은 혀를 찼다.
“인마, 넌 무슨 자신감이냐?”
“예?”
“도쟁이들한테 번호 줄 생각이 없다니. 저 두 여자가 너한테 번호 딸라고 온 줄 알았냐?”
“아니, 그게…….”
“자식이 지 잘생긴 건 알아도 사람이 겸손할 줄 알아야지!”
거기서 난 방금 도쟁이들에게 왜 그리 말했는지 알려줬다.
“방금 전에 어느 여자가 저한테 번호를 달라고 해서 당연히 그런 줄 알았죠.”
“뻥치고 있네.”
“진짠데요?!”
와, 사람 말을 못 믿는다.
하지만 이미 성용 형님은 그쪽에 대해 관심을 싹 끊었다.
그저 같이 보기로 한 임형우만 기다렸다.
“됐고, 형우 형님은 언제쯤 오시려나.”
성용 형님의 말에 방금 막 지하철에서 올라온 한 남자가 말했다.
“왔다.”
“아, 형님!”
방금 올라온 남자가 하드맥스에서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는 작가 임형우인 것 같았다.
임형우는 성용 형님과 인사를 하고 난 후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임형우라고 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