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39
나는 작가다 039화
39화
“예, 이준경이라고 합니다.”
악수를 맞잡으며 나 역시 소개했다.
그렇게 임형우와 내가 소개를 마치자 성용 형님이 끼어들었다.
“자자, 인사들은 나눴으니 일단 저녁밥부터 먹으러 가죠.”
“그러자.”
“예.”
신림역 3번 출구에서 미로처럼 얽힌 골목을 타고 들어갔다. 그렇게 꽤 높이가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앞에는 자랑스럽게 간판이 박혀 있었다.
신림 순대 타운.
나도 이십 대까진 자주 다녔지만, 어째서인지 이후론 발길을 끊었던 곳이다.
이상하게 점점 맛과 양도 줄어들고, 차라리 다른 순대집들 가는 게 더 낫다고 여겨서.
하지만 아직까진 괜찮은 시기.
백순대를 주문했다.
성용 형님이 편집자인 자기가 볶을 테니 나와 임형우에겐 해야 할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
“일단 이준경 작가님께서 쓰신 황제 로키를 너무나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아, 들었습니다. 덕분에 서비스로 여캐도 두 명이나 더 그려주셨죠.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임형우가 손사래를 쳤다.
“감사는 무슨요. 어차피 표지 외주를 받으면 내용은 인지해야 좀 더 독자들이 좋아할 캐릭터가 나오니 무조건 봐야 하는데, 오히려 제가 재밌게 읽을 수 있어서 고마웠죠.”
“그리 말씀하니 제가 더 감사하네요.”
그렇게 나와 임형우가 서로 고맙다고 인사만 계속하니 성용 형님이 중간에 끊었다.
“아니, 서로 감사의 인사만 하다가 순대 다 태워 먹을라고 합니까? 얼른 본론이나 꺼내세요, 형님. 딱 이야기 나누고 깔끔하게 순대 먹으면 되겠구만.”
본론이나 이야기해라.
나도 바라던 바다.
초면에다가 나이도 많고, 게다가 성용 형님이 형님이라 부르는 사람에게 내가 하기 애매했던 이야기.
어쨌거나 성용 형님 덕분에 본론으로 좀 더 빠르게 들어갈 수 있었다.
임형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본론으로 들어갔다.
“알았다. 일단 용이가 저리 말하니 본론부터 들어가겠습니다.”
“예.”
“사실 제가 회사에서 너무 재밌게 읽다 보니 하드 맥스 쪽 직원들이나 대표가 이준경 작가님의 황제 로키를 읽게 됐습니다.”
“그렇군요.”
“예.”
“한데 하드 맥스 대표가 제게 부탁을 하나 하더군요.”
부탁.
이게 본론일 터.
무엇인지 물었다.
“무슨 부탁요?”
“혹시 이 작가님 소설 원작으로 게임 하나 만들면 안 되겠냐고요.”
“예?”
“하드 맥스 대표가 작가님 소설 스토리가 재밌어서 그걸로 게임 하나 만들고 싶답니다.”
황제 로키를 원작으로 게임을 만들고 싶다.
그것도 현 시기에 가장 잘나가는 게임 제작사인 하드 맥스에서.
좋은 기회이긴 했다.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2차 창작이 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으리라.
하지만 시기가 안 좋다.
임형우를 만나게 된다고 해서 하드 맥스에 대해 확인해 봤다.
차라리 창세기록3 파트2가 나온 직후에 이런 이야기를 받았다면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했겠지만, 현재 시기에 하드 맥스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새로 출시한 게임으로 인해서.
게이머들 사이에서 창세기록 시리즈로 한창 높은 주가를 달렸으며, 대한민국 CD 게임의 마지막 보루라고까지 불리던 하드 맥스.
그들이 2.5D인 창세기록 이후 Full 3D 게임 하나를 잘못 내어서 와장창 깨진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임의 기술도, 스토리도 별로에다가 프로젝트 디렉터란 이의 반성문까지.
프로젝트 디렉터가 한동안 CD 타이틀 쪽은 손도 안 댄다고 반성문을 올렸고, 게이머들 역시 그걸 끝으로 더 이상 대한민국의 CD 게임 시장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고 이야기했다.
이걸 생각하면 그들에게 소설을 맡겨서 게임이 제대로 나올 지 의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앞선 발언에 있었다.
하드 맥스를 끝으로 더 이상 대한민국 CD 게임 시장의 미래를 없다.
결국 이 말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 미래를 열어줄 만한 곳도 하드맥스뿐이란 말과 같았다.
물론, 정작 대한민국 CD 게임의 새로운 역사는 다른 회사가 찍었다.
100명의 유저들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무기를 구하고 마지막 생존자가 되는 게임을 들고 나오면서.
근데 그 게임이 나오기 전까진 정말로 15년 동안 대한민국의 CD 게임들을 하나같이 다 말아먹었다.
스페이스씨디나 데빌이란 프로그램을 이용한 불법 이용자들로 돈은 안 되고, 다른 시장의 게임을 만들면 돈이 되니 다 그 쪽으로 쏠렸다.
2000년대 중, 후반에는 온라인 게임의 시장이,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나오면서는 모바일 게임의 시장이 득세하며.
이런 생각을 하던 내게 임형우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압니다. 현재 하드맥스 이미지가 좋지 않단 거.”
“형님은 또 왜 그리 자책하십니까? 게임 제작자들 문제였지, 형님 일러스트가 문제는 아니었잖습니까?”
“이건 대표를 대신해서 이준경 작가님에게 게임 제작을 제안하는 입장이라 한 소리지, 당연히. 그래도 게임 제작에 한 부분을 맡았으니 나도 없잖아 책임져야지.”
꽤나 인간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만 했다.
“그럼 제 소설을 게임으로 한다면 어떻게 하는 거죠? 창세기록 형태인가요? 아니면 매그넘 카르텔?”
소프트 맥스의 역작인 2.5D 게임인 창세기록과 망작인 Full 3D 게임인 매그넘 카르텔.
그나마 전자라면 할 가치가 있었지만, 후자라면 조금 우려가 앞섰다.
매그넘 카르텔.
흔히 유저들 사이에선 이렇게 불렀다.
‘버그나 깔았다.’
한창 창세기록으로 주가를 올리던 하드맥스의 인지도가 추락하게 된 대재앙과도 같던 게임.
많은 유저들이 창세기록을 즐겼기에 하드맥스란 이름을 믿고 따랐다.
비록 중간에 한 번 제작시기를 맞춰야 한다는 명목으로 시스템을 빼먹은 게임이 하나 나와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그래도 창세기록3로 그 안 좋은 이미지를 지웠는데, 이후 발매한 Full 3D 게임으로 최악의 명성을 떨치게 됐다.
게임 진행도 안 되고, 버그투성이라 클리어가 불가능한 게임.
그래서 게이머들이 ‘버그나 깔았다’라고 불렀다.
하드맥스에게 있어서 뼈저린 아픔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더 아픈 건 대한민국 게이머들이긴 했다.
게임의 기술도, 스토리도 별로에다가 프로젝트 디렉터란 이의 반성문까지.
하지만 임형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둘 다 아닙니다.”
“예?”
“아, 2.5D이긴 합니다. 하지만 CD 게임이 아닙니다.”
“CD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며 임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하드맥스에서 문제 발언을 게시했던 프로젝트 디렉터를 바꾸긴 했으나 이미 CD 게임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한동안 이쪽은 좌중해야죠.”
“그럼……?”
“온라인 게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아!”
그제야 난 떠올렸다.
너무 지금 시기의 하드맥스만 검색했단 걸.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구나!’
하드맥스가 CD 게임을 접고 이후 새로 공개한 온라인 게임이 있었다.
루나테일즈.
진민화 작가가 쓴 루나의 아이들이란 소설을 배경으로 삼았던 것으로 2017년에도 죽지 않은 몇 안 되던 장수 온라인 게임이다.
정확히 언제 오픈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알아본 바로 지금은 아니었다.
근데 루나테일즈가 나오기 전에 하드맥스에서 준비 중인 온라인 게임의 이야기가 나왔다.
방금 임형우가 말하길 기획하고 있단다.
거기에 대해서 좀 더 정확히 알아봤다.
“기획하고 계시면 이미 준비할 건 다 된 거 아닌가요?”
“온라인 게임을 돌릴 서버와 큰 틀만 준비했고, 몬스터들은 창세기록에 썼던 걸 응용할 생각입니다. 근데 현재 유저들이 사용한 캐릭터와 게임 세계관에 써먹을 스토리를 못 구한 상태죠.”
“거기에 제 황제 로키를 쓰고 싶단 건가요?”
“예, 스토리와 캐릭터가 모두 살아 있는 작품이니 충분하지 않나 싶더군요. 아시다시피 스토리는 더 이상 하드맥스 내에서 만들어봐야 좋은 소리가 나오진 않을 테니까요.”
“그렇군요.”
“너무 부담은 갖지 마세요. 일단 생각이 있으신지만 알아보고 제가 다시 하드맥스 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진행할 생각이니까요.”
“그럼 오늘은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만 물어보려고 오신 거군요?”
“그렇죠. 만약 생각이 있으시다면 미리 캐릭터에 대한 권리도 어떻게 할지 이야기할 생각이었습니다.”
“캐릭터에 대한 권리요?”
“만약 이준경 작가님께서 준비 중인 온라인 게임에다가 황제 로키의 스토리를 쓰실 수 있게 해주신다면 다른 건 몰라도 현재 로키, 크로우, 잔느의 경우 표지에 박힐 캐릭터를 써야 하니까요.”
“아! 표지에 박힌 일러스트 이미지 자체의 저작권은 임형우 작가님에게 있지만, 그에 대한 상품화는 전적으로 푸른숲 출판사 쪽에 있겠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허가는 원작자인 이준경 작가님에게 있고 말이죠.”
맞다.
보통 업체에서 표지를 외주로 구해오면 정당한 가격을 치른 뒤 가져왔다. 그래야 나중에 표지의 이미지로 이런, 저런 문제가 생겨도 처리하기 수월하기에.
대부분 계약해서 가져온 표지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캐릭터 자체의 저작권을 가졌다.
그 원작을 변형하거나 약간 바꿔서 다른 표지로 쓴다던가 하는 일이 없도록.
반면에 표지로 쓴 일러스트에 대한 판매권은 없었다.
다른 데서 일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로 쓴다던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무료로 공개하는 건 상관이 없으나 그걸로 돈을 벌게 된다면 법적으로 걸렸다.
만약 두 조항에 관해서 변경이 필요할 땐 협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협의의 중심에는 원작자인 작가가 허락해야만 가능했다.
어쨌거나 표지나 캐릭터 모두 원작자인 작가로부터 나온 2차 창작이라고 볼 수 있었으니까.
때문에 황제 로키의 표지 일러스트를 게임에다가 쓰려면 1차적으로 내 허락이 필요했고, 2차적으로 출판사와의 협의가 이루어져야만 했다.
처음에 하드맥스의 CD 게임만 떠올렸던 나는 황제 로키를 게임으로 2차 창작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고민했는데, 황제 로키를 원작으로 만드는 게 CD 게임이 아니라 온라인 게임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오랫동안 장수할 게임이란 걸 아니까.
단, 내가 아는 루나테일즈의 시스템이 적용된 게임인지만 확인해보고 말이다.
“혹시 한 가지 확인만 하고 답변 드려도 될까요?”
“어떤 확인요?”
“어쨌거나 큰 틀은 준비가 다 됐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죠.”
“그럼 혹시 하드맥스에 가서 준비된 게 얼마나 게임성이 있는지 봐도 괜찮을까요?”
게임성에 대한 여부를 언급하자 임형우가 반문했다.
“게임 좋아하세요?”
“나름 좋아하는 편이죠.”
“음, 그럼 오늘은 가볍게 먹고 주말에 하드맥스 대표랑 이야기 좀 나눈 뒤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그러려면 번호를 나눠야겠군요.”
임형우가 명함을 건넸다.
나 역시 그걸 받으면서 만들었던 명함을 건넸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
꽤나 고급진 명함을 임형우에게 넘기자 그가 번호를 저장했다.
그 사이 가만히 우리를 구경하던 성용 형님이 물었다.
“어? 너 명함도 만들었었냐?”
“하나 팠죠.”
“근데 난 왜 안 줘?”
꽤나 불만 어린 표정의 성용 형님.
굳이 줄 필요가 있냐고 말했다.
“저희는 서로 번호 알잖아요.”
“인마, 그래도 팠으면 줘야지!”
섭섭해하는 것 같아서 명함 한 장을 더 꺼내서 성용 형님에게도 줬다.
“알았어요. 여기요.”
“K E&M? 이준경의 ‘경’이냐?”
성용 형님의 물음에 임형우 작가 역시 궁금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사실 그 뜻도 되긴 했다.
이준’경’의 ‘K’.
하지만 난 K에 더 큰 뜻을 담아뒀다.
그 뜻이 무엇인지 밝혔다.
“대한민국, ‘KOREA’의 ‘K’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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