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4
나는 작가다 004화
4화
“음, 집이 어디였더라?”
푸른숲 출판사에서 나온 뒤 한 말이다.
무려 15년 전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그 집 주소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던 난 주머니를 뒤졌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하지만 주머니에선 평소 내 손에 잡히던 게 없었다.
주머니에서 나온 건 지갑과 열쇠 그리고 스마트폰 시장 땐 골동품으로 취급되던 슬라이더폰뿐.
“없잖아?”
내가 찾던 건 담배였다.
뭔가 생각할 때면 습관처럼 피우던.
그때 난 생각났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담배를 피우기 전이구나.”
그랬다.
군대에서도 배우지 않았던 담배.
아마 그걸 피우기 시작한 게 아내에게서 임신 사실을 들었던 때부터였다.
결국 내 애는 아니었지만.
작가를 시작할 무렵 청천벽력과도 같던 임신 소식.
그 소식에 아버지 따라서 세무사를 준비하던 친구 놈과 술을 마시다가 배웠다.
술 마시던 중 녀석이 담배를 피우러 간다길래 그걸 피우면 좀 안정이 되나 싶어서.
생각해 보면 웃겼다.
처음 피울 땐 목만 아프고 기침을 연신하던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내 인생에선 떼려야 뗄 수 없는 녀석이 됐다.
담배란 놈은.
거기서 난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었다.
하지만 사러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입구에서 멈춰 섰다.
“생각해 보니 담배 한 번 안 피운 건강한 몸인데, 굳이 사서 내 몸을 망칠 필요가 있나?”
수정이를 갖고 어떻게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쩔어 있던 술과 담배.
피할 수가 없었다.
편집자로서 사장이나 작가들을 만날 때 좀 더 진솔한 이야기는 술자리와 담배 피우는 자리에서 나왔으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참 웃긴 나라야.”
나중에야 그런 자리가 줄어들지만, 내 경험이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딜 가도 그랬다.
열심히 커피나 마시며 회의해 봐야 결국 중요한 결정은 대기업 같은 데가 아니면 주로 술자리나 담배 피우는 자리에서 정해지거나 바뀌었으니까.
그리 생각하면서 편의점 입구 앞에 서있던 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음, 그냥 이참에 끊을까?”
끊을 수 있다면 끊는 게 좋았다.
“그래, 잡학다식에서도 썩 좋진 않다고 했지.”
잡학다식.
2017년도에 나온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각 분야 지식인들이 함께 특정 지역으로 여행을 간 뒤 잡다한 학자들이 다양한 지식을 떠드는.
거기에 뇌 과학자가 한 명이 있었는데, 다른 분야 종사자가 물었다.
‘담배를 피우면 정말 집중이 잘되는 건가?’
집중이 되는 건 맞단다.
무슨 우리 뇌에 생각하는 통로가 있는데, 담배의 성분이 그 거리를 좁혀줘서 생각을 빠르게 해줄 수 있다더라.
근데 문제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몸이 그에 적응해서 피지 않을 땐 머리가 굳어버릴 정도로 그 통로가 멀어진댔다.
결론은 안 피우는 게 좋단 소리였다.
“게다가 이번엔 억울해서 잘 살아야지.”
15년을 충성한 출판사에서 잘리고 난 뒤 갔던 캐나다.
거기서 아내가 말했다.
-설마 그때 이런 배불뚝이 아저씨가 될 줄 알았나.
배불뚝이 아저씨.
내가 누구들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어쨌거나 나중에 술과 담배로 찌든 내 자신을 무시한 아내를 떠올리면 더더욱 건강하고 멋지게 살아야지.
그리 아내를 떠올리니 문득 딸이 생각났다.
“수정이······.”
캐나다로 떠나기 전만 해도 날 따르는 게 귀여웠던 내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다.
하지만······.
“오영곤의 애라니, 씨발.”
어차피 아내와 결혼해도 딸 수정이를 볼 수 없었다.
그러려면 오영곤의 자식인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아내와 살아야만 했다.
그러고 싶진 않았다.
가짜 아빠에게 길러지는 불쌍한 딸은 더 이상 싫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내 상황을 떠올리니 담배가 땡긴다.
그러나 난 편의점 입구에서 돌아섰다.
“아니, 더더욱 엿 같아서 담배는 절대 다시 안 피운다.”
중요한 이야기가 담배 피우는 자리에서 일어날 땐 어떡할 거냐고?
내가 없는 자리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오갈 수 없게 만들면 그만이다.
누구도 날 빼곤 이야기할 수 없는 ‘갑’이 되면 됐다.
***
꽤 오래 된 당산동 아파트.
거기였다.
15년 전, 가정을 꾸리기 이전에 내가 부모님과 살던 곳이.
404호.
그 호수가 적힌 현관 앞에 선 난 쉽사리 들어가질 못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과 돌아온 이후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것들이 많았다.
때문에 깜빡하고 있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수정이가 열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공항 리무진 버스가 큰 사고가 나면서.
때문에 부모님 얼굴을 못 본 지가 5년이나 지났다.
비록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죽고서 과거로 돌아왔지만, 그런 내게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싶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다시 뵐 수 있다.’
환갑잔치도 못 해드렸던 부모님을.
그리 생각하니 떨려서 들어가질 못했다.
막상 다시 보게 되면 어쩔 줄 모르리라.
근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짝!
“윽!”
머리가 복잡했던 게 한꺼번에 날아갈 정도로 짜릿한 통증.
거기서 오래된 기억 속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안 들어가고 뭐해?”
날 아들이라고 부르는 목소리.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10년 전에 부르던 것보다 젊었지만, 분명히 방금 날 부른 목소리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언제 등이 아팠냐는 듯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옆에서 파가 삐죽 튀어나온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어머니가 서있었다.
이십 대 아들을 둔 사십 대 시절의 어머니가.
어머니를 본 난 읊조렸다.
“어, 어머니······.”
순간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비록 내가 마지막으로 입관할 때 봤던 어머니의 얼굴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젊은 모습으로 떠나고 싶다며 사십 대에 준비한 영정사진의 모습이 그대로였다.
방금 내 등짝을 후려갈기고 득의양양해하던 어머니의 표정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어어? 어머니는 무슨 어머니야, 언제 그렇게 불렀다고!”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수정이를 낳고 난 후부터였던가?
때문에 지금의 나한테 ‘어머니’라 불리는 게 어색하리라.
게다가 눈가가 촉촉한 게 느껴졌다.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있단 사실에 눈물이 절로 났다.
그런 날 보던 어머니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엄한 내 등짝을 한 번 더 후려쳤다.
짝!
“뭐야, 아들! 계약하러 간다더니 잘 안 됐어?”
아마도 내가 계약하러 간 일이 잘못돼서 이상하다고 여긴 것 같았다.
그래, 오랜만에 다시 만난 어머니 앞에서 우는 모습은 아니지.
괜히 아들 걱정만 하게 될 거다.
결혼하고 난 이후 계속 걱정만 끼쳤는데, 이번에는 걱정 없는 행복한 여생을 보내게 해드려야지.
난 어머니에게 싱긋 웃었다.
“아, 잘될 거예요.”
그제야 내 웃는 모습에 걱정이 수그러들었는지 어머니 역시 미소를 보였다.
이번에는 내 등짝을 토닥여줬다.
“그래, 누구 아들인데. 들어가자, 엄마가 된장찌개 해줄게.”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어머니.
뒤따라 들어가며 대답했다.
“네.”
***
“하, 느려.”
방으로 들어온 내가 컴퓨터를 켠 뒤 한 소리다.
2017년도에는 컴퓨터들 스펙이 엄청나게 좋아지면서 그냥 파워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몇 초도 안 돼서 바탕화면으로 넘어갔다.
한데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2000년식 컴퓨터.
군대 가기 전에 산 놈이다.
심지어 당시에도 저렴하게 맞춘 싸구려.
바탕화면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윈도우98’ 창 밑에 로딩 게이지가 열심히 뛰느라 바빴다.
그걸 보니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에혀, 돈 벌면 XP로 바꾸던가 해야지.”
2분쯤 지났을까?
그때야 비로소 소리가 났다.
비~또로롱.
바탕화면으로 들어간다는 컴퓨터의 목소리.
정말 오랜만에 보는 윈도우98의 바탕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푸른색이 아닌 붉은색 한글 워드 프로그램 아이콘들이 보였다.
“하, 이것도 추억의 아이콘이구만.”
붉은색 아이콘은 정말 너무 오랜만이었다,
새삼 내가 과거로 회귀했단 걸 깨닫게 했다.
어쨌거나 난 폴더 하나를 열었다.
원고.
폴더 안에는 파일이 하나 있었다.
‘황제 로키’.
군대에서 노트에 적었던 원고를 한글로 옮긴 파일.
파일을 열었다.
눈에 들어온 서장을 읽어내려갔다.
“제국년 128년, 수많은 유성우가 떨어지며 하늘을 수놓았다. 그 때 붉은빛과 황금빛을 번갈아 내뿜는 별이 멈춰섰다. 판타리아 제국의 황성 위에.”
짧게나마 읽어 내려간 서장.
그걸 읽은 난 할 말을 잃었다.
“······.”
침묵.
순간 내 방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럴 수밖에.
서장에서 읽던 걸 멈췄던 난 부르르 떨었다.
내 글을 보고 화가 났다.
최근에 몇몇 작가들이 감을 못 잡고 가져오던 서장과 비슷했다.
그때마다 난 작가들에게 나무랐다.
“아니, 요즘 시대에 누가 이딴 서장을 써!”
한데 뒤늦게 깨달았다.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아, 생각해보니 지금 시대엔 많이 썼구나.”
***
황제 로키.
황제와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로키의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하녀이다 보니 제대로 된 힘이 없는데, 황제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어서 황족들의 권모술수에 항상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걸 알아차린 아비가 과거 연이 닿던 용병왕에게 부탁해서 두 사람을 빼돌렸다.
하지만 이미 어미인 레나는 중독된 상태라 죽고, 그런 어미의 죽음에 로키는 막내황자였던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봉인한 뒤 용병왕 가츠 밑에서 성장한 뒤 이런 저런 사건들로 인해 다시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엔딩은 황제가 되는 것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이야기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하긴 한데 당장 내게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서장이었다.
“아무리 지금 시장에 먹히는 서장이라곤 해도, 남들 다 쓰는 이걸론 눈길을 끌기 어려울 거야.”
분명히 미팅 자리에서 박차고 나오며 당당히 말했다.
“제일 좋은 조건으로 컨택하실 준비나 하시죠.”
제일 좋은 조건으로 컨택.
평범해선 턱도 없는 소리다.
확실한 대박 작품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오랫동안 편집자로서 작품을 봐온 난 잘 알았다.
당장 필요한 게 뭔지.
“서장부터 임팩트가 있어야 해.”
서장의 임팩트.
2012년부터 망했다고 여겼던 대한민국 장르시장은 ‘유료연재’란 개념으로 다시 부흥이 일었다.
대신 종이책 시장에 비해선 독자들의 너그러움이 사라졌다.
예전 종이책 시장 독자들은 서점에서 8,000원이란 거금을 주고 사기보다 대여점을 통해 그 10분의 1인 금액으로 빌려서 보곤 했다.
대여료를 지불하고 한 권을 들고 갔기에 초반에 조금 늘어진다 싶어도 꾹 참고 최소 3분의 1에서 반 권 분량까진 읽어나갔다.
그 안에서만 임팩트를 주면 자연스레 또 한 번 이 작가에게서 뭔가 터지겠거니 하며 빌려온 1권을 끝까지 읽던 독자들. 또한 관성이 붙어서 2권도 빌려봤다.
하지만 유료연재 시장에서는 자신이 보고 있는 한 화······ 즉, 5천 자가량의 분량 내에서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대로 작품을 접었다.
유료연재는 다음 편을 보려면 또 결제를 해야만 했으니까.
때문에 작가들은 환경이 바뀐 장르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어떻게 해야 매 편마다 임팩트를 줄 수 있으며, 다음 편을 구매해서 볼 수 있도록 할지.
“결국 거기서 가장 큰 역할을 하던 게 서장이지.”
대부분 서장만 마음에 들면 독자들은 어느 정도 작가를 믿고 따라갔다.
즉, 종이책 시장 땐 반 권 내에 보여줬어야 할 게 유료연재 시장에서는 초장부터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많은 작가들을 시장에서 먹고살 수 있도록 했던 게 바로 나였다.
푸른숲 출판사 편집팀 과장 이준경.
수많은 작가들이 가져온 셀 수 없는 작품의 서장을 임팩트 있게 만들었던 마이더스의 손을 선보였다.
그리고 지금 다른 작가의 글이 아닌 내 작품을 황금알로 빚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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