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40
나는 작가다 040화
40화
“세금 줄이려고 만든 회사 이름치고 너무 과한데?!”
이미 법인의 존재에 대해선 성용 형님도 알고 있었다.
법인으로 인세를 받으려면 그냥 받을 때와 다르게 다소 절차가 있었으니까.
단지 이후 푸른숲 출판사로부터 받는 인세의 경우 그쪽 경리와 내 법인을 관리해 주는 철이가 연락하며 처리하니 성용 형님에게 법인 이름이나 명함을 알릴 일이 없었을 뿐.
어쨌거나 처음 듣는 내 법인의 이름에 성용 형님이 거창하다고 이야기하니 피식 웃었다.
“뭐, 짓는 사람 마음이죠.”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형님은 준경이랑 이야기 다 하신 겁니까?”
명함을 챙긴 뒤 임형우를 쳐다보는 성용 형님.
그에게 임형우가 얼추 할 이야기는 다 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일단 오늘 나누려고 했던 대화는?”
얼추 오늘의 자?가 마련된 본론이 끝났다고 하니 성용 형님이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럼 이제 제대로 건배하고 술이나 마십시다.”
“그럴까?”
“그러시죠.”
“여기서 갑은 준경이 너니까 어디 한 번 건배사나 하나 읊어봐.”
나더러 갑이라면서 건배사를 하란다.
근데 보통 이런 건 갑이 을한테 시키는 거 아닌가.
정말 갑이라고 생각하는지 성용 형님에게 물었다.
“갑 맞긴 합니까?”
“그럼 네가 갑이고, 내가 을이지. 형님하고의 일도 결국 원작자는 너니까 갑일 테고. 그쵸, 형님?”
“그러네, 이준경 작가님이 갑이네요.”
두 사람이 척척 죽도 잘 맞는다.
누가 봐도 갑이 아닌 것 같은데, 갑이라고 몰아가는데 뭐라 하겠는가?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뿐.
“뭔가 이상한데?”
쉽사리 갑의 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게 성용 형님이 잔을 들었다.
“안 하면 내가 한다?”
좀 이상하긴 했으나 갑의 자리를 내어주겠다는데 마다하면 바보지.
잔을 들며 건배사를 외쳤다.
“아닙니다. 제가 합니다. 잘잘!”
성용 형님과 임형우를 마주보며 들이민 잔.
거기에 성용 형님이 투덜거렸다.
“짜식, 작가란 놈이 창의성 좀 발휘하지.”
그럴 만도 했다.
잘잘.
‘잘 먹고 잘삽시다’의 준말로 성용 형님이 주로 하던 건배사였다.
거기서 난 씨익 웃었다.
“제겐 최고의 건배사입니다.”
괜한 칭찬에 머쓱해하며 성용 형님이 소주잔을 부딪쳤다.
“얼씨구, 됐다. 잘잘!”
짠!
그렇게 나와 잔을 부딪친 성용 형님이 임형우를 쳐다봤다.
“형님도 하시죠.”
“오냐, 잘잘!”
짠!
***
하드 맥스 대표랑 이야기하고 연락을 준다던 임형우 작가를 보고 며칠이 흘렀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황제 로키의 원고 목표량을 채웠다.
“음, 드래곤 나이트랑 용사무적 쓰기 전에 사이월드나 확인해 볼까?”
사이월드.
표지를 공개하기 위한 거처로 만들었는데, 프리채널에게 밀려서 아직 사용자수가 적은 터라 방문자가 몇천만 되어도 1등인 그런 곳이었다.
한데 그곳에서 내 사이월드 홈피가 몇만을 기록했다.
첫날만 3만.
이후 독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폭발적인 방문자수를 지닌 홈피가 누군지 궁금해서도 몰리며 5만까지 찍었다.
그러고 더 이상 아무런 글도 없자 하루 방문자수가 2만으로 확 줄어들었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도서 갤러리만 보더라도 다들 내가 일기장처럼 뭔가 쓸 줄 알았는데, 황제 로키의 표지를 올린 다음 잠잠했으니까.
아, 잠깐 하루 정도 유입이 많은 때가 있긴 했다.
며칠 전 출간 소식을 올리면서.
하지만 그 또한 약발이 다 했다.
줄어든 방문자수를 보니 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네버 블로그 같은 것처럼 관리 좀 할까?’
네버 블로그.
자신들의 관심사가 담긴 것들이나 일상을 포스팅하는 공간이었다.
사이월드 홈피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단지 몇 번의 사고를 치면서 네버 블로그로 유저들을 모두 잃었단 게 컸다.
저작권을 지들이 갖는다던가, 나날이 발전하는 카메라 화질을 담지 못하는 규격이라던가.
뭐, 어쨌거나 지금 시기엔 네버 블로그도 없고, 곧 사고 칠 프리채널을 감안하면 지금은 사이월드가 최고였다.
어쨌거나 방문자수가 점점 줄어드는 걸 막아볼까 하는 생각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거였다.
“맛집 탐방을 좀 할까?”
포스팅의 대명사.
맛집 탐방.
누구보다도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사이월드 홈피에 맛집 탐방을 올리겠다고 생각하자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그래도 명색이 작가인데, 그냥 포스팅하는 게 아니라 소설을 써볼까?”
사실 이건 포스팅한다면 직접 가서 먹고 그런 걸 감안했을 때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수필.
현실에 있을 법한 일들을 허구로 상상해내는 소설과 달리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경험을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이다.
내가 직접 맛집을 탐방해서 적어오면 허구로 지어낸 게 아니라 실제로 있던 일이 적히니까.
하지만 그냥 맛집을 찾아가서 그냥 탐방만 하면 이게 재밌는 글이 될까 싶었다.
재밌는 글을 위해선 다소 허구를 삽입한 소설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고민하던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수필로 가자. 대신 내가 좀 더 소설처럼 재밌는 수필이 될 수 있도록 이리저리 직접 해보지, 뭐.”
생각해 보면 나중에 유행하는 먹방과 같았다.
“까짓것 먹방 한 번 해보지, 뭐.”
나중에 먹방이 유행해지면서 쉐프들이 주를 이루는 ‘냉장고를 털어줘’ 같은 쿡방들도 있었지만, 그냥 맛집을 가서 인터뷰를 하거나 맛있게 먹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맛있는 대식가나 금요미식회 같은.
이참에 사이월드 홈피에 그런 식으로 해볼까 싶었다.
그렇게 결심한 나는 수필 작가도 되어보잔 생각으로 게시판을 하나 팠다.
게시판 제목은 일본에서 유명한 작품에서 따왔다.
‘글 쓰는 미식가’.
***
글 쓰는 미식가 게시판을 만든 난 철이에게 연락했다.
이런 게시판을 하나 만들었고, 그걸 위해서 비싼 카메라 하나를 살 거라고.
거기서 철이가 투덜거렸다.
“아니, 지금 있는 게시글 댓글이랑 방명록 정리도 힘들어 죽겠는데 굳이 그런 걸 해야 하냐?”
그런 철이에게 난 이미 차단할 애들 다 해서 요새 별로 정리할 것도 없지 않느냐며 팩트로 찔렀다.
촌철살인이라 하던가.
사람 잡는데 팩트로 찌르는 것만 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덕분에 철이의 불만이 잦아들었다.
본인도 잘 생각해 보니 확실히 차단한 놈들을 얼추 다 하고 나니 광고나 악플을 다는 애들이 거의 사라져서.
그렇게 철이를 잠잠하게 만든 뒤 난 일단 원고에 집중했다.
아직 하루에 쓰려고 목표로 삼은 드래곤 나이트와 용사무적의 원고가 남았기에.
다 쓰고 나니 저녁이 찾아왔다.
카메라를 사러 나가기엔 애매한 시각.
“으음, 어쩌지?”
글 쓰는 미식가 게시판을 만들었으니 내가 좋아하던 선술집에 갈까 했지만, 사진을 찍어오지 못한다면 가봐야 헛수고였다.
나중에야 휴대폰 카메라들의 퀄리티가 올라가서 그걸로도 가능했지만, 아직 이 시기에 휴대폰 카메라의 퀄리티는 썩 좋지 못했다.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을 먹으면서 찍어봤는데, 생각보다 사진의 화질이 좋지 않아 맛깔나게 올리긴 어려워 보였다.
결국 난 계획을 잡았다.
“좋아, 그럼 밤새 내일 써야 할 황제 로키 원고 분량을 채우고 자자. 그러고 일어나서 낮에 카메라를 사오면 되겠네. 돈도 벌었겠다, 간지 나게 DSLR 같은 거 하나 마련해볼까?”
뭔가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전문가 느낌이 물씬 나게 해주던 DSLR.
현재 시기엔 가격대가 꽤 있었다.
오죽하면 들고 다닐 경우 기자로 착각할 정도로.
근데 카메라 하나 산다고 돈 걱정할 처지는 이미 한참 지났다.
내일 백화점에 가서 DSLR을 하나 장만하기로 했다.
아마 지금 시기에 백만 원 이상할 거다.
그렇게 돈 쓸 생각을 하니 원고를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일자 황제 로키 목표량을 채우고 자자.”
낮에 백화점 가서 DSLR도 사느라 쓸 돈과 시간을 생각하며 밤새 내일 써야 할 황제 로키의 원고를 써내려 갔다.
이미 완결 내용까진 다 정해둔 데다가 중간중간 추가할 스토리는 밥 먹으면서 시놉시스를 정리해 두니 막힘없이 원고가 술술 써졌다.
정말 다행인 건 내가 수정병이 없단 거였다.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될 병이 두 가지가 있었다.
그게 바로 ‘수정병’과 ‘설정병’, 이 두 개였다.
수정병은 말 그대로 끊임없이 수정을 한다.
원고를 쓰고 난 뒤 봤을 때 퇴고 한 번만 해도 될 내용인데, 굳이 퇴고를 서너 번까지 걸치고 마음에 안 든다 뒤엎는 병.
편집자로서 작가들이 제발 안 했으면 했다.
자꾸 그걸로 원고가 늦어지면 모든 일정이 틀어지는 데다가 연결된 내용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매출에도 타격이 갔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 설정병.
그나마 수정병보단 낫다.
매출에 직격타를 먹이진 않았으니까.
출판사 입장에서는 작가가 한 작품을 끝냈으면 좀 적당히 준비하고 차기작이 나왔으면 했다.
한데 그놈의 설정병이 발동하면 차기작은 주지 않고 설정만 세월아, 네월아 짜고 앉아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나마 전작이 망했던 작가면 다행이다.
다음 작품은 잘되기 위해 노력하는구나, 하고 넘어가 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전작이 잘된 작가라면 그 기세를 몰아붙여야 매출이 잘 나왔다.
왜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작가로서도, 편집자로서도.
최악의 병인 ‘수정병’과 ‘설정병’도 없는 데다가 원고도 막힘없이 술술 나오니 최고지.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글자수를 확인하고, 목표량을 채운 걸 확인한 나는 기지개를 켰다.
“으으, 다 됐다.”
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내일……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 오늘 낮을 위해서.
***
“으, 잘 잤다.”
4시에 잠들었지만, 남들 일어날 시간이 오전 8시에 일어났다.
그렇게 네 시간만 잤는데도 말짱하다.
내가 봐도 강철 체력이다.
처음에는 그냥 막 써도 원고가 나오지 않아서 회귀한 주인공치고 능력이 너무 없나 싶었는데, 생각 외로 네 시간만 자고 일어나는 이 능력이 주인공 버프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근데 잘 생각해 보면 주인공 버프라기도 애매하다.
“생각해 보면 푸른숲에서 일할 땐 서른 넘어서도 네다섯 시간만 자고 일했으니 젊어진 지금을 생각하면 네 시간만 자도 멀쩡한 게 그리 대수도 아니지.”
근데 생각해 보면 그 땐 그리 일할 수밖에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그랬다.
한 달에 반 권이나 쓰나 하는 작가들을 흔히 우린 ‘만필’이라고 불렀다.
글을 태만하게 쓴다고 해서.
그런 만필인 작가들 중에 결혼을 하자 갑자기 곧 죽는 게 아닐 정도로 걱정스럽게 쓰던 이들이 있었다.
갑자기 결혼하고 나더니 한 권 내려면 두, 세 달 걸리던 작가들이 한 달 만에 써내질 않나.
심지어 애가 생기고 나니 한 달에 두 권을 뽑더라.
결국 이건 작가고, 편집자고를 떠나서 가정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라면 누구나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잘 몰랐다.
항상 가정을 위해 아버지가 밖에서 그리 열심히 일하는지.
그저 집에 잘 안 들어오니 어려워하는 존재.
누구보다도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그런 위치가 아버지란 존재였는데 말이다.
비록 수정이가 내 진짜 자식은 아니었지만, 결혼하고 나서 열심히 키웠던 내 딸이었다.
“그러고 보니 노트북이 갖고 싶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딸 수정이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캐나다 올 때 사 달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결국 바빠서 일 년 동안 못 찾아갔다가 퇴사하고 찾아갔지만…… 내게 돌아온 건 아내의 배신뿐이었다.
아무리 딸 수정이가 보고 싶어도 더 이상 그들과 가정을 이룰 수 없는 이유.
괜히 센티멘탈해지는 아침이다.
“아, 됐고 샤워나 하자.”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렴풋이 딸 수정이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따가 나갈 준비를 위해 샤워나 하기로 했다.
샤워하면서 더 이상 딸 수정이를 기억하지 않기 위해 모든 걸 씻어내자고.
……아빠로선 그게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