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45
나는 작가다 045화
45화
또로롱.
철이와 선술집에서 만나기 전까지 원고를 쓰려는데 다시금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성용 형님이었다.
“예, 형님.”
“오케이하셨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만약 벌써부터 풀 출판사를 아꼈으면 이진우한테 다 넘기지 않았겠지.
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의외라는 듯이 반응했다.
“그래요?”
“어, 계약서는 언제 수정할까?”
“뭐, 형님 편하실 때 하죠.”
언제나 난 시간이 많았으니까.
성용 형님 역시 이젠 그럴 줄 알았단 듯이 받아들였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하자. 지금 풀 출판사 때문에 좀 바빠져서.”
본래 이진우가 해야 할 일이 갑자기 자신에게 떨어졌으니 바쁘리라.
충분히 납득이 가기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그렇게 해요.”
“고맙다.”
“천만에요. 그나저나 고료는 어떻게 진행되죠, 그럼?”
얼추 변경된 계약서대로 들어온 돈도 슬슬 계산해 봐야 하지 않나 싶었다.
고료에 대해 묻자 성용 형님이 혀를 내둘렀다.
“그 사이에 황제 로키 20권까지랑 드래곤 나이트 10권까지 보냈더라?”
“예.”
“일단 전권 20%로 올렸으니 앞 권수 덜 나간 부분이랑 추가로 들어온 권수들은 계약에 맞춰서 보장인세가 지급될 거야.”
“증쇄한 1, 2권은요?”
“원래 주문 들어온 현황으로 계산하면 28,000분인데, 사장님께서 좋게 해결 봐줘서 고맙다고 추가 배본 2천 부까지 포함해서 3만 부로 계산해 주라고 하시더라.”
“그럼 3만 부에 20%니까…….”
얼마인지 보려고 계산기를 열었는데, 이미 성용 형님이 물어볼 걸 예상했던 건지 답을 내놨다.
“권당 4800만 원이지. 그리고 이미 지급된 금액이 896만 원이니 권당 3,904만 원씩 지급하면 돼.”
하지만 내가 받아야 할 고료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계산기를 재빠르게 두들기며 나머지 고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황제 로키 1, 2권 3904만 원씩에다가 3권부터 14권까지 384만 원씩, 그리고 나머지 15권부터 20권까진 1280만 원씩이네요. 드래곤 나이트는 6권까지 384만 원이고, 10권까지 1280만 원이고 말이죠.”
순식간에 나머지 고료를 계산하자 성용 형님의 기가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산 한 번 빠르다.”
거기서 난 방금 계산한 인세를 모두 모으면 얼마나 받아야하는지 밝혔다.
“제가 계산기 두드리는 속도 한 번 엄청나긴 하죠. 그럼 들어와야 할 총인세가 2억 7520만 원이네요.”
2억 7520만 원.
이미 받은 돈까지 합하면 벌써 4억을 번 셈이었다.
성용 형님 역시 그걸 듣곤 탄성을 자아냈다.
“이야! 아주 돈을 쓸어 담는구나, 쓸어 담아. 나도 그냥 작가나 할까?”
다시금 언급된 작가 전향설.
풀 출판사를 먹을 수 있게 된 내 입장에선 내키지 않는 이야기였다.
성용 형님의 도움이 있어야 나중에 이걸로 출판사 하나를 날로 먹을 테니까.
그럼 장도철과 양경철 두 사람으로부터 한 방 먹은 김두식에게 연타를 날릴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마지막까지 날 만년과장으로 만들었던 김두식에게 한 방을 어찌 먹일까 고민했는데, 알아서 그럴 기회를 만들어줬으니 요긴하게 써먹어야지.
어쨌거나 나는 작가로 전향할까 고민하는 성용 형님에게 한 가지 희망 고문을 건넸다.
“저처럼 팔 자신 있으면 아예 전향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죠.”
나처럼 팔 수 있다면 때려치우고 작가하는 게 낫단 희망.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고문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희망 고문을 성용 형님은 아예 거부했다.
“아니다. 이미 한 차례 망해본 경험이 있어서 난 월급쟁이로 살란다.”
그냥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봉급쟁이가 좋단다.
하지만 시간날 때 쓴 작품은 요긴하니 그마저 포기하진 않도록 독려했다.
“흐흐, 그래도 글은 쓰시죠.”
“안 그래도 용돈벌이는 필요해서 시간날 때마다 쓰는 중이다. 문제는 지금 풀 출판사 때문에 바빠져서 그럴 여유가 사라졌단 게 문제지.”
어지간히도 바쁜가 보다.
그리 열심히 워커홀릭으로 일하면서도 짬짬이 쓰던 형님인데, 자기 입으로 그럴 여유조차 없다고 하는 걸 보니.
바쁜데 저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몸보신이나 시켜줘야겠다.
“힘내십쇼. 다음 주 월요일에는 만나면 제가 쏠 테니 몸보신이나 합시다.”
“됐어, 뭘 네가 쏴. 계약서 변경하는 걸로 만나는데 법인카드 써야지.”
“그럼 법인카드 한도까지 쓰고 제가 쏘면 되죠.”
“너한테 할당된 한도가 50만 원인데, 그걸 쓰고 또 쏜다고?”
50만 원도 충분히 만나서 쓸 비용으로 충분하단다.
하기야 유흥을 즐기지 않으면 웬만한 곳들은 50만 원 선이면 다 커버가 가능했다.
그러나 어떻게 쓰기 나름.
선술집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몇백만 원도 쓸 수 있었다.
비싼 사케는 1, 200만 원도 했으니까.
날 위해 일해 주는 성용 형님인 걸 생각하면 그 정도 돈이야 푼돈이지.
벌어들인 돈이 얼마인데.
혹시나 생각이 있냐며 성용 형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봤다.
“뭐, 하루 동안 얼마까지 쓸 수 있을지 봐볼까요?”
제안만 받아들인다면 어디 선술집 매출 몇백만 원을 올려줘 볼까 싶었다.
하지만 성용 형님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됐다, 내가 간 떨려서 못하겠다.”
“뭐, 담당 잘 둔 덕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먹다간 체해. 사람이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흐흐,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뵙죠.”
“오냐!”
“끊으십쇼.”
그래도 형님이니 먼저 끊으라는데, 성용 형님이 또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에이, 어떻게 을인 제가 감히 갑인 작가님과 통화하는 데 먼저 끊습니까?”
“예, 그럼 끊습니다.”
“어, 진…….”
설마 내가 이리 끊을 거라 생각지 못한 반응이 들리긴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단호하게 끊었다.
뚝!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이 형님은 항상 전화 끊기 아쉬운지 꼭 이러더라.”
못 말린다는 듯이 반응한 뒤 시계를 확인했다.
“다섯 시 반이네. 슬슬 씻고 나가야겠구만.”
그렇게 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나갔다.
당산역에서 보기로 한 철이를 만나 선술집에 갔고, 거기서도 사장님에게 허락을 구한 뒤 안주랑 사케를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철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이야기된 인세에 대해서.
추가로 들어오게 될 인세를 들은 철이가 얼마나 놀랐으면 입에 넣었던 걸 그대로 흘렸다.
주르륵.
금가루가 올려진 오도로를 씹다가 그대로 흘려 버리는 걸 보고 나무랐다.
“야, 뭐하냐? 그게 얼마짜리 오도로인데!”
하지만 내가 뭐라 한 건 대답도 안 했다.
오직 철이의 머릿속에는 방금 전 내가 이야기한 인세만 맴돌았다.
“미, 미친! 방금 얼마라고 했냐?”
“2억 7520만 원이 더 들어올 거라고.”
“그럼 지금까지 벌어들인 거 다 합치면 4억 정도 되네? 아니, 먼저 받은 건 개인으로 지급받았으니 떼고 법인으로 번 돈만 3억이 넘네?”
“그렇지?”
“거기다가 계속 더 들어오겠지?”
“아마도?”
내가 절필을 하지 않는 이상 계속 들어올 인세.
그에 대해 언급하니 갑자기 철이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후.”
“갑자기 왜 그리 웃냐, 꼴 뵈기 싫게.”
요상한 미소 치우라며 손을 휙휙 내저었는데, 갑자기 철이가 내 손을 양손으로 잡으며 인사했다.
“고맙다, 친구야!”
“뭐가?”
“지금만큼만 벌어다오! 나도 내년엔 청담동 오피스텔로 독립 좀 하자!”
뭔 생각에 이러나 싶었다.
으휴, 한숨을 내쉬면서 딱 지금 철이의 상태를 읊었다.
“염병, 눈깔이 완전 돌아갔네.”
“내 눈깔이 뭐?”
“지금 눈깔 상태를 보니 날 친구로 보는게 아니라 제 주머니 채워줄 황금알 낳는 거위로 보는 것 같은데?”
“이런, 들켰냐?”
아주 신난 철이에게 난 방금 한 잔하고 안주를 먹다 뱉었기에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자식, 술이나 받아라. 자.”
“아무렴 대표님이 받으라면 받아야지요.”
“이럴 때만 대표님이지?”
“그러는 너도 돈 쓸 땐 정 대리잖아.”
“쌤쌤이냐?”
서로 자기가 필요할 때만 직함을 붙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거기서 철이가 약간 분한 듯한 표정으로 말하길.
“아니,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세무사 따로 구할까?”
“아닙니다, 대표님! 자, 잔 받으시죠!”
사케가 담긴 유리병을 뺏어가서 내게 따르려는 철이.
녀석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자식.”
그렇게 내 잔을 채운 철이는 일 이야기를 잠시 꺼냈다.
“그럼 이번에 들어오는 돈으로 저번에 이야기한 거 진행할까?”
“구로공단에 있는 아파트형 공장 상가?”
“어.”
“그러자. 지금 들어올 돈이면 얼마나 살 수 있냐?”
“내가 볼 땐 대출 좀 당기면 한 다섯 개 가능할 것 같은데? 아니면 아예 50평 이상 가는 거 두 채나 100평짜리 하나 사는 것도 방법이고.”
“네가 볼 땐 어느 쪽이 낫냐?”
“음, 가성비는 50평 넘는 거 두 채 사는 거지 않을까? 여러 채 사면 가격은 같아도 재산세가 좀 꼬이니까.”
“그래?”
거기서 철이는 방금 이야기한 구로공단의 아파트형 공장 상가를 사면 어찌 될 지 이야기했다.
“일단 두 채 사면 매달 떨어지는 돈이 4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 되니까. 일 년 동안 월세로만 버는 게 4, 5천이니 10년이면 메우고도 남는다. 거기다가 아버지한테 들었는데 곧 가격도 뛸 거래. 그럼 자연스레 월세도 더 뛰겠지?”
“그럼 10년도 안 걸려서 쓴 돈 메우고 따박따박 돈이 들어온단 소리네.”
“그렇지?”
“10년이라…….”
서른 즈음에 투자한 돈을 모두 회수하고도 이후 가만히 앉아서 매달 500만 원씩 벌 수 있단 소리였다.
아니, 500만 원이 뭔가?
유료연재 시장이 열리고 구로디지털단지로 옮긴 업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3, 40평대도 월세 100만 원에서 2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럼 50평이 훌쩍 넘으면 3, 400만 원도 노려봄 직했다.
두 채면 600만 원에서 800만 원이다.
지금 버는 인세에 비하면 얼마 안 됐지만, 그래도 가만히 앉아서 벌리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적지 않았다.
“그럼 돈 들어오면 그쪽으로 진행해 봐.”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렇게 철이와 선술집에서 술 한잔하며 자금을 어떻게 굴릴지 이야기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집에 돌아온 나는 DSLR로 찍었던 사진을 컴퓨터로 옮겼다.
사이월드 홈피에 두 번째 맛집을 수필로 적기 위해서.
글 쓰는 미식가 게시판을 작성한 뒤 나는 기쁜 소식이 있다며 근황 소식도 올렸다.
2만 부를 증쇄하게 됐단 소식을.
***
“젠장! 2만 부를 증쇄했다고?”
질풍의 마도사를 쓴 강정호가 이준경의 사이월드 홈피에 올라온 소식을 보고 부들부들거렸다.
북조아 사이트의 독자들까지 배신하면서 어떻게든 출간 부수로라도 이준경을 찍어 누르려고 했던 강정호.
어떻게든 시작점부터 맞추려고 사비까지 털어서 계약서보다 많은 부수까지 찍어냈다.
심지어 반품이 생겨도 자신이 다 책임질 테니 이조한에게 찍은 부수 싹 다 뿌리라고 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신에겐 증쇄 소식 따윈 들어오지 않았다.
근데 도서 갤러리에서 주시하던 이준경이 자기 소식을 올린다던 사이월드 홈피를 발견하고 매일 눈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준경 작가가 황제 로키를 증쇄했단 소식을 올리는 게 아닌가?
심지어 2만 부란다.
2천 부도 아니고.
거기에 화가 난 강정호가 이조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형님.”
“이 부장, 질풍의 마도사 증쇄 소식 없어?”
“형님, 증쇄는 무슨 증쇄입니까? 지금 8천 부 찍은 것도 다 못 팔고 있습니다.”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란 어투다.
방금 전 이준경의 증쇄 소식을 본 강정호 입장에선 그게 못마땅했다.
“도대체 너넨 일을 어떻게 하길래 저기 푸른숲 출판사는 2만 부나 증쇄하는데 있는 것도 못 파냐?”
“아니, 그게 어떻게 저희 문제입니까?”
“그럼 누구 문제인데? 내 작품 문제냐?”
“그야…….”
이조한은 굳이 그걸 입으로 말해야 아나 싶었다. 그래도 차마 자기 출판사 작가라서 대놓고 말하진 못했다.
강정호도 그걸 못 알아차릴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괜히 이 이야기해 봐야 자신만 손해인 것 같으니 협박이나 해댔다.
“됐고! 이번에 증쇄 못하면 다음 작품부터 딴 데 갈 거니 알아서 해!”
그놈의 잘못된 갑질.
후우, 이조한이 한숨을 내쉰 뒤 조용히 있다가 대놓고 물었다.
“……형님, 그게 도와드린 저한테 할 소리입니까?”
“그럼 너한테 하지, 누구한테 해?”
“마음대로 하십쇼. 대신 형님은 계약서에 약속한 조항이나 지키십쇼.”
“뭘 지켜?”
“8천 부에서 회사가 판단한 부수 이상으로 찍은 부분이랑 반품이 나올 경우 모든 책임은 형님이 지시기로 했잖습니까? 저도 이젠 못 봐드립니다. 완결까지 8천 부로 찍을 테니 마음대로 하십쇼.”
단단히 경고한 채 전화를 끊은 이조한.
뚝!
“뭐? 이, 이 새끼가 끊어?”
화가 잔뜩 난 강정호가 다시 이조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 수신자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전화를 받지 않겠단 심산으로 휴대폰을 끈 이조한.
강정호는 들고 있던 휴대폰을 바라보며 경기를 일으켰다.
“이, 이 새끼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