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49
나는 작가다 049화
49화
“그게 무슨······?”
재밌게 봤다고 하더니 갑자기 의문점이 두 가지가 있단다.
진민화 작가가 의문점이라고 말한 건 두 가지뿐인데, 내 머릿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통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인지 모를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군더더기가 없어도 너무 없어요. 왜 이렇게 쓰신 거죠? 좀 더 풍부한 표현력을 쓸 수도 있어 보였는데 말이죠. 그리고 이게 두 번째 의문과 직결되는 내용이기도 해요.”
첫 번째 의문.
군더더기가 없다.
이게 무슨 의문이 들 정도의 문제인가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문과 이어졌다고 한다.
과연 그녀가 생각하는 두 번째 의문을 무엇일까?
“두 번째 의문은 어떤 거죠?”
“문단을 왜 그리 짧게 써요?”
문단을 짧게 쓴다.
그제야 난 진민화 작가의 의문이 뭔지 깨달았다.
두 가지 의문이 뭔지 알게 된 내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묻었다.
정말 밋밋하고 사건 전개가 느린 데다가 쓸데없는 묘사가 많았던 황제 로키의 초고.
15년간 수없이 많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어떤 게 성공하고, 어떤 게 실패하는지 봐왔던 나다.
비록 그걸 봐왔다고 해서 작품을 어떻게 써야 대박 혹 쪽박이 나는지 알 순 없었다.
어쨌거나 모든 대박에는 작품성도 있지만, 운과 타이밍이 존재했기에.
하지만 난 망할 작품도 살려내던 마이더스였다.
대박은 몰라도 최소한 쪽박은 피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쪽박을 피하게 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했다.
독자가 싫어할 만한 요소들을 빼버리면 됐다.
그럼 절대 실패는 하지 않았다.
거기서 이제 운과 타이밍이 맞으면 실패를 피해간 작품이 대박으로 이어졌다.
황제 로키가 그랬다.
과거로 돌아와서 썼던 내 원고를 보기 무섭게 쪽박부터 피하고 보자며 고쳤다.
근데 이게 운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네?
대박이 났다.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박.
그런 작품에 진민화 작가가 의문을 품었다.
‘왜 이리 군더더기가 없는가?’와 ‘어째서 문단을 이리 짧게 쓰는가?’라는 두 가지 의문.
둘 다 편집자 이준경의 스킬이었다.
괜히 지문을 늘리면 분량 확보야 좋겠지만, 내용이 없거나 늘어지게 느끼기 쉽다. 그리고 문단을 짧게 쳐줘야 읽는 독자의 호흡이 빨라졌다.
호흡이 빨라지면 금방 한 쪽을 읽고 다음 쪽으로 넘어갔다.
이게 술술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독자는 얼른 다음 내용을 보기 위해 후루룩 쪽수를 넘기다가 끝에 다다르게 됐다.
이걸 작가나 편집자들은 ‘관성’이라고 불렀다.
독자들이 하차를 할까 말까 고민하지 않고 끝까지 보게 만드는 행위를.
이 모든 걸 합쳐서 또 다르게 이리 부르기도 했다.
‘가독성이 좋은 작품’이라고.
그게 곧 진민화가 지닌 두 가지 의문의 답이었다.
“가독성을 위해서입니다.”
진민화 역시 가독성이란 단어를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지닌 두 가지 의문의 해답을 듣고 난 후 반응했다.
“독자들이 더 편히 읽을 수 있게 할려고 의도적으로 문단을 쳤단 건가요?”
“맞습니다.”
“왜 굳이 그렇게 했죠?”
굳이 가독성을 살린 이유야 뻔했다.
“얼른 한 권의 내용을 보고 다음 권도 보고 싶게 만들기 위해서죠.”
“굳이 그런 편법을 쓰지 않아도 재밌어 보이던데요?”
“편법이라······.”
순간 진민화의 이야기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방금 그녀가 한 말에서 난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편법이나 쓰는 작가라고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흔히 선배 작가들이 후배 작가들에게 조언을 주려던 분위기를 풍겼다.
아마도 진민화 작가가 조언하고픈 내용은 그거일 거다.
‘그런 편법을 쓰지 않고 더 나은 글로 성공할 수 있다.’
섬세하고 미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휘어잡는 능력자니까 가능한 이야기였다.
내 기술이 그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편법으로 보이기엔.
15년간 경험 속에 녹아든 내 노하우가.
하지만 내겐 노하우건, 편법이건 그게 필요했다.
난 진지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진민화 작가님.”
“예?”
“제가 처음 제안 받았던 출간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8천 부 아닌가요?”
아마도 형우 형님을 통해서 푸른숲이 제안했던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며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거 말고 처음요.”
“어땠는데요?”
“3천에 8% 그리고 2권 보장이었습니다.”
지금의 내게선 생각할 수조차 없는 낮은 조건.
2권까지 권당 200만 원이 약간 안 되는 보장인세.
이후 3권부터 주르륵 판매부수가 내려앉다 못해 폭삭 망했다.
그렇게 황제 로키란 작품은 완결까지 수익이 천만 원도 뽑지 못한 망작이었다.
진민화 작가 역시 그런 내 첫 계약 조건을 듣곤 다소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어머, 그게 정말이에요?”
“예.”
“하지만 임 팀장님한테 듣기론 8천 부로 계약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게 지금의 황제 로키입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진민화는 내가 뭘 이야기하려는지 눈치챘다.
“지금처럼 수정을 해서 조건부를 올렸다?”
“맞습니다.”
지금의 황제 로키를 썼기에 조건이 올랐단 사실을 알게 된 진민화가 사과했다.
“이야, 그럼 제가 의문을 품은 게 미안해지네요. 작가 본인이 스스로의 작품을 높게 평가받도록 노력한 결과물인데, 제가 거기에 의문점을 가졌으니 말이죠.”
“아닙니다. 먼저 쓰신 데다가 제게 하고픈 조언의 글쓰기로 성공하신 선배 작가님이시니 충분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죠.”
어쨌거나 난 느꼈다.
진민화가 날 위해 조언하려고 했단 걸.
그녀 역시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단 듯이 반응하자 꽤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제가 조언을 하기 위해 이야기를 꺼냈단 걸 알고 있었네요?”
“조언이 맞다곤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가 진민화 작가님처럼 매력적인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면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짧은 단문으로 일부러 독자의 가독성까지 건들면 쓰지 않았어도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겠죠.”
“어머, 칭찬이죠?”
“당연하죠.”
칭찬이 맞다.
대한민국 판타지 소설 3대 작가 중 한 명인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진민화는 왜곡된 사실을 읊었다.
“순간 놀랐잖아요. ‘난 너처럼 못 쓰니 쓸데없는 조언은 하지 말라’는 것처럼.”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긴 하구나.
난 아니라며 손을 휙휙 내저었다.
“설마 제가 어찌 선배님께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전혀 그런 뜻이 없다고 하는 내게 진민화가 말했다.
“그래도 아쉬운 걸요.”
“뭐가요?”
“솔직히 전 좀 더 문학적인 느낌이 나도록 황제 로키를 수정했으면 2만 부까진 팔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진민화가 거기까지 말하자 백광훈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지, 진 작가님?”
“음? 백 대표님, 왜요?”
“이미 3만 부 가까이 찍으셨던데요?”
“네?”
순간 이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인 진민화.
그녀에게 백광훈이 더욱 자세히 이야기했다.
“황제 로키요. 임 팀장한테 들어서 저나 작가님이나 8천 부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2만 부나 증쇄하셨데요.”
“뭐라구요?”
“2만 부 추가로 더 찍으셨다고요.”
백광훈을 통해서 황제 로키의 2만 부 증쇄를 알게 된 진민화가 갑자기 혼자 S음이 터졌다.
“후, 후후훗!”
나나 백광훈 그리고 형우형님, 세 사람은 갑자기 왜 저러는 건가 싶었다.
우리 세 사람이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자 진민화가 검지로 눈가를 닦아냈다.
“아, 미안해요. 순간 내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져서요.”
“예?”
“정말 2만 부 증쇄했어요?”
“예, 아마 더 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와, 이제 보니 이준경 작가님 완전 능구렁이셨네요?”
“예?”
갑자기 이건 뭔 상황인가 싶었다.
이어지는 진민화의 말에 그녀가 날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게 됐다.
“가만히 선배라고 조언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니 나보다 잘 팔아버리면 할 말이 없잖아요. 내가 나보다 잘 파는 작가님한테 조언을 하려고 했으니 순간 바보된 기분이네요.”
바보가 된 기분이다.
확실히 그럴 수도.
괜히 악감정이 쌓여 봐야 좋을 건 없기에 사과했다.
후배 작가로서.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주제넘었죠.”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진민화 작가님은 충분히 누군가에게 조언할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니까요.”
“뭘 믿고요?”
“독자를 끌어들이는 마성을 가지셨잖습니까?”
“매력이라고 해주면 안 될까요?”
“예, 매력이죠.”
내가 너무 쉽게 자신이 바라는 정정을 받아들이자 또 진민화가 싱긋 웃더니 너스레를 떨었다.
“아, 뭐야! 이것도 뭔가 내가 바보 같네요?”
“아닙니다. 전 정말 진민화 작가님께서 충분히 조언을 해줘도 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진민화가 내게 팩트폭력을 가했다.
“제 작품 본 적 없다면서요?”
아차, 그러고 보니 난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
작품을 본 적도 없으면서 자신에 대해 칭찬하니 이상하리라.
적당히 둘러대며 상황을 모면했다.
“제가 본 적은 없지만, 진민화 작가님의 작품과 제 작품을 본 친구가 그러더군요.”
“뭐라고요?”
“네 작품은 확실히 재미가 있지만, 소장하고픈 매력은 진민화 작가님의 글 쪽이 더 있다고 말이죠.”
“친구한테 제 작품이랑 황제 로키를 비교해서 누가 이길지 봐본 거예요?”
“아뇨, 그냥 친구가 그리 이야기해 줬을 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친구 분 덕분에 제가 그나마 덜 바보처럼 보이겠네요.”
“지금도 바보처럼 보진 않고 있습니다.”
그리 말하자 잠시 진민화가 날 가만히 주시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처럼.
얼마 있지 않아 그녀가 말하길.
“흐응, 좋아요. 그럼 정말 나중에 한 번 더 둘이 따로 보죠.”
이번엔 먼저 따로 자리를 갖자는 진민화였는데, 거기서 백광훈이 치고 들어왔다.
“오, 이번엔 진 작가님이 이준경 작가님에게 작업을······.”
백광훈이 아저씨 농담을 던지려고 하자 진민화가 끊었다.
“또, 또!”
“크, 죄송합니다.”
“자꾸 그러시면 백 대표님 앞으로 안 볼 거예요?”
“어이쿠야, 그건 루나의 아이들 팬으로서 곤란하지요.”
“흥, 루나의 아이들 팬은 무슨요. 클로버가 잘됐으면 하시는 거겠죠.”
“들켰습니까?”
거기서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진민화가 다시 날 쳐다봤다.
“됐어요. 그리고 이준경 작가님.”
“예.”
“번호 찍어주세요.”
진민화가 휴대폰을 건넸다.
그녀의 휴대폰에 번호를 찍은 뒤 돌려줬다.
“여기 있습니다.”
내게서 휴대폰을 돌려받기 무섭게 진화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 갔죠?”
“예, 왔습니다.”
“지금 제 번호 저장해서 집 주소 문자로 보내주세요. 제 책 보내 드릴 테니, 읽고 나중에 서로의 작품을 이야기해 보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민화 작가와의 대화가 끝날 무렵 드디어 메인 요리가 나왔다.
모듬 사시미와 고베규 스테이크가.
백광훈이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젓가락을 들곤 말했다.
“자, 그럼 이야기도 어느 정도 끝나신 것 같은 때에 적절하게 음식이 나왔으니 먹어볼까요?”
그 때 난 백광훈을 다급하게 말렸다.
“잠시만요. 백 대표님!”
“예?”
갑자기 자신은 왜 부르냐고 쳐다보는 백광훈.
그에게 난 챙겨왔던 DSLR을 들며 말했다.
“사진 좀 찍을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나를 제외한 세 사람 모두 황당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방금 나온 음식을 찍었다.
찰칵!
오늘 저녁에 올라갈 글 쓰는 미식가의 메뉴는 청담동 고급일식집의 모듬 사시미와 고베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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