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5
나는 작가다 005화
5화
‘흠, 이걸 어쩌지? 가장 확실한 요소인 회귀로 바꿔서 써봐?’
정말 옛날 향수에 젖은 서장을 본 난 고민에 잠겼다.
임팩트 있는 서장을 쓰기 위해서.
그 중 가장 먼저 생각해낸 코드가 ‘회귀’였다.
회귀.
이건 지금 시기에는 쫄딱 망했으나 2010년도 이후 갑작스레 붐이 되어버린 현대판타지를 쓰던 작가들이 좀 더 새로움을 주기 위해 쓰던 만능열쇠였다.
사람은 언제나 후회를 했다.
그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만약 내가 그때 이랬더라면 어땠을까?’
누구나 한 번쯤 해볼 상상과 질문이다.
그걸 가장 잘 빚은 요소가 바로 ‘회귀’였다.
하지만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너무 시대를 앞서가는 걸지도 몰라.”
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작품의 대박.
그걸 하려면 뭐가 중요할까?
단순히 ‘필력’만 좋으면 될까?
물론, 필력이 좋다면 기본적으로 독자를 이끌고 가는 힘이 존재한다.
하지만 단순 필력만으로는 대박을 노릴 수 없었다.
인간사 모든 일에는 ‘타이밍’과 ‘운’이 필요했다.
비록 나중에 가면 회귀란 요소가 대박 작품들을 우후죽순 만들어내긴 했지만, 지금 시기에는 그렇다고 보기 매우 어려웠다.
오죽하면 독자들이 회귀란 요소를 처음 쓴 작품을 2008년도에 푸른숲 출판사에서 나온 ‘리턴라이프’라고 착각할까?
사실 회귀란 요소를 쓴 작품은 2008년 이전에도 꽤나 많았다.
단지 현대판타지가 강세가 아니고, 또한 판타지에서의 회귀도 그리 매력적으로 독자가 느끼지 못할 시기에 나왔기에 묻혔을 뿐.
때문에 지금 내가 회귀 요소를 쓴다는 건 썩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괜히 타이밍이 맞지 않은 시기에 잘못된 선택으로 망해 버리리라.
안 그래도 쓰레기 같던 양 과장한테 단단히 벼르고 왔는데, 막상 연재를 했다가 말아먹으면 쪽팔려서 고개도 못 들고 다닐 거다.
게다가 회귀로 바꾸기 시작하면 스토리 중 대부분 많은 것들을 들어낸 뒤 다시 끼워 맞추듯 써야 했으니 썩 좋지 않은 선택지였다.
결국 난 회귀 요소는 포기했다.
“으음.”
회귀 요소를 포기한 뒤 서장을 어떤 식으로 할지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난 색다른 방법이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하자!”
결정을 내리기 무섭게 마우스를 지었다.
대략 5천 자 가까이 하던 서장.
그걸 마우스 왼쪽 버튼을 누른 뒤 싹 다 드래그했다.
새하얗던 한글 배경이 까맣게 변하고, 검던 글자가 하얗게 바뀌었다.
거기서 난 과감하게 백스페이스 버튼을 눌렀다.
탁!
그러자 한글이 언제 자기 몸에 문신을 했었냐며 새하얀 피부를 드러냈다.
한글의 새하얀 피부 위에 난 새로운 문신을 새겨 넣었다.
서장
황제가 되어주마.
서장이란 이름 아래 단 한 줄의 문신.
깔끔하다.
그걸 본 난 흡족한 미소로 말했다.
“좋아, 이걸로 하자.”
솔직히 이걸 본 독자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었다.
한 줄.
성의 없어 보일 수도, 단 한 줄로 요약했다고도 할 수 있는 서장.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린 서장 중 가장 임팩트가 강렬했다.
사실 한 줄 서장도 나중에 한 차례 유행을 탔다.
독자들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제목에 이어서 서장 한 줄로 작가가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임팩트 있게 전달하면서.
뭐, 한때에 지나지 않긴 했다.
한 작가가 그 서장으로 대박을 치자 너도, 나도 한 줄짜리 서장을 무기로 들고 나왔으나 이미 누군가가 신박하게 쓰고 나면 그 임팩트가 줄어들 수밖에.
현재 난 그 무기를 가장 처음 독자들에게 선보일 생각이었다.
이건 시대를 타지 않았다.
임팩트 있는 한 줄의 서장.
유료연재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지만, 서장의 위력은 현재 종이책 시장에서도 무시 못했으니까.
그렇게 서장을 갈아치운 난 이제 1장부터 쭉 수정하려고 했다.
많은 작가들을 중박 이상으로 끌어올린 내 마이더스의 손으로.
그때였다.
띠로리롱!
스피커에서 실로폰을 친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아, 이거 완전 추억의 소린데?”
추억의 소리.
그건 다름 아닌 ‘바니바니’란 메신저에서 친구가 대화를 걸 때 나는 소리였다.
언제부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채팅방이 우수수 생겨나면서 결국 망해 버린 메신저 ‘바니바니’.
거기서 추억의 아바타가 속옷 차림으로 쪽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낸 이의 닉네임은 ‘최강정철’.
세무사를 준비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정철’의 아이디였다.
지금 봐도 정말 유치하다.
근데 내가 철이를 뭐라 할 입장은 아니었다.
내 바니바니 닉네임은 ‘준경블릭’.
군대 가기 전 나랑 친구들이 즐겼던 게임 ‘디아블릭2’에다가 내 이름을 붙인 닉네임이다.
철이나 나나 유치뽕짝인 아이디를 보곤 경악스러웠다.
‘으, 빨리 네이비온이나 MFN로 갈아타던가 해야지.’
대다수 사람들이 바니바니에서 갈아탔던 메신저들이었다.
초반에는 MFN에서, 나중에 네이비온으로 은근히 출판업계 종사자들끼리 업무용으로도 많이 썼다.
어쨌거나 바니바니를 통해서 철이가 내게 물었다.
-야, 안 잊었지?
-뭐가?
-내일 소개팅하기로 한 거.
“소개팅? 아!”
처음에 철이가 안 잊었냐고 할 땐 뭔가 했는데, ‘소개팅’이란 세 글자를 듣고 나니 떠올랐다.
내 인생을 망쳐 버린 잘못된 첫 단추가.
-강소영인가 하는 애?
강소영.
아내의 이름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푸른숲 출판사랑 계약한 다음 날 아내인 강소영과 소개팅을 했었다.
-어, 내일 신촌역 버거맥에서 열두 시에 간단하게 햄버거로 점심 때우자고 했다. 그러고 카페 가서 커피 좀 마시다가 난 조용히 빠져줄 테니, 알아서 잘해봐.
그래, 철이가 같이 햄버거를 먹고 카페에 간 뒤 일이 생겼다며 떠났다.
그리고 볼링을 치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간단하게 술 좀 곁들였다.
이어서 노래방에서 맥주를 마신 다음 사랑 노래로 감정을 나눴다.
“그래, 거기서 서로 좋다며 물고 뜯은 다음 소개팅 첫날 모텔을 간 게 문제였지. 그냥 집에 보냈어야 했는데 말이야.”
모텔에 있는 콘돔을 써서 피임은 분명 제대로 했었다.
근데 열심히 글을 쓰던 내게 사귀기 시작한 강소영이 3개월 정도 지나고 말했다.
임신을 했다고.
정말 내겐 엄청난 폭탄과도 같은 발언이었다.
“결국 내 애가 아니었지. 후, 생각하니 또 짜증나네.”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손을 갖다 댔다.
이제 끊기로 해서 있지도 않은 담배를 습관적으로 찾으며.
뒤늦게 담배를 끊기로 한 걸 떠올렸다.
“아, 이제 안 피우기로 했지.”
주머니에서 길 잃은 채 떠돌던 손을 꺼내며 말했다.
“그나저나 내일 어쩌지?”
강소영과의 소개팅.
그냥 아예 안 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냥 안 보기엔 섭섭하지.
비록 지금의 강소영은 아닐지 몰라도 날 죽였던 년이다.
마음 같아선 똑같이 죽여도 모자랐다.
살심으로 가득 찬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기껏 과거로 돌아온 황금 같은 기회를 고작 그런 년 때문에 날릴 수야 없지.”
애써 피어오르던 살심을 지운 채 난 내일 어쩔지 고민했다.
“물이나 확 끼얹어?”
흔히 드라마에서 바람피운 남자친구에게 여자들이 하던 행위.
그러나 물 가지곤 성이 안 찰 것 같았다.
“그냥 김치 한 포기 들고 가?”
유명한 짤방으로 돌아다니던 김치 싸대기.
그 정돈 갈겨야 속이 시원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 시간 아까워. 어차피 과거로 돌아온 지금 나랑 상관도 없는 여잔데.”
그래도 엿은 먹여야겠다.
“바람이나 맞히자.”
강소영을 어찌할지 정한 난 철이를 불렀다.
-야, 철아.
-왜?
-그냥 버거맥에서 둘이 볼게.
-뭐? 그래도 되겠어?
-어차피 너도 귀찮을 거 아냐?
-나야 둘이 알아서 하겠다면야 편하긴 하지. 그럼 나 내일 딴 약속 잡는다?
-그래.
-오냐, 잘되길 빌어주마.
내일 소개팅이 잘됐으면 하는 철이의 말에 난 이죽거렸다.
“잘되긴 개뿔.”
아예 안 나갈 생각이었다.
애당초 과거로 돌아온 황금 같은 기회의 시간을 그런 여자 만나는데 아깝게 쓰고 싶지 않았다.
바람맞히면 철이한테 난리야 치겠지만, 이미 계획은 머릿속에 모두 세워졌다.
사실 지금도 아까웠다.
강소영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썼다는 게.
난 다시 원고를 만졌다.
강소영도 강소영이지만, 지금 내 목표가 그녀보다 더 중요했다.
양 과장을 짓밟기 위한 목표가.
***
“으, 죽겠네.”
밤샌 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힘없는 목소리.
얼추 써놓은 분량을 전부 수정했다.
어차피 오늘은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마음껏 잤다.
스토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단지, 문장과 문단이 너무 길어서 술술 읽히지가 않았다.
밤새 그걸 다 고쳤다.
어느 정도 원고를 마무리 지은 난 모니터 우측 하단을 쳐다봤다.
11시 50분.
시계를 본 난 피식 웃었다.
“이제부터 기다리겠네.”
아내 강소영은 생각보다 영리했다.
교활한 거야 죽기 직전에 알게 됐지만, 평상시 그녀가 보이는 것들을 보면 꽤 비상한 머리를 지녔단 걸 알 수 있었다.
당산인 집에서 신촌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때문에 난 약속 시간 5분 전인 11시 55분에 도착했다.
한데 그때 이미 강소영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늦었다고 사과부터 해서 지고 들어갔다. 그리고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 날 아침식사를 함께하며 물었다.
몇 시부터 날 기다리고 있었는지.
딱 약속시간 10분 전인 11시 50분부터 도착했었단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이리 답하더라.
“만약 준경 씨가 먼저 나와 있었으면 전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온 성실한 여자가 됐을 거고, 어제처럼 저보다 늦게 나오면 미안해서라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겠죠?”
그랬다.
단순히 일찍 나왔거나 약속시간에 늦는 걸 싫어서가 아니었다.
다 노림수가 있었던 것이다.
“큭, 덕분에 날 10분이나 더 기다렸으니 바람 맞은 걸 깨닫고 나면 속 좀 쓰리겠지?”
바람 맞은 채 계속 기다릴 강소영을 떠올리니 즐거웠다.
게다가 써뒀던 원고 수정도 다 끝났다.
난 자리에서 일어난 뒤 침대로 향하며 말했다.
12시에 약속이 있건, 말건 신경 쓰지 않으며.
“자, 그럼 한숨 자고 일어나 보실까?”
“으, 잘 잤다.”
12시쯤에 잠을 청했던 난 3시쯤에 일어났다.
육체는 바뀌었어도 정신은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인가?
편집자로 살면서 쪼개 잤던 습관이 보통 잠을 청해도 서너 시간 만에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근데 생각보다 얼마 안 자고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맑았다.
“젊은 몸이란 거냐?”
어쨌거나 정신이 이리 맑으니 도로 잘 필요는 없어 보였다.
결국 컴퓨터를 켰다.
바탕화면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난 밤새 만졌던 원고 파일을 다시 열었다.
원고 마지막은 이렇게 끝났다.
(3권에서 계속)
군대에서 2권 분량까지 쓴 원고를 수정을 끝냈으니 3권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난 3권으로 들어가기 전에 연재 준비를 할까 싶었다.
“분절부터 해두는 게 낫겠지?”
분절.
연재했던 원고를 하나로 모아서 단행본으로 펼치기 쉽게 나누거나 혹 연재하기 쉽게 나누는 걸 의미했다.
현재 내 경우 후자였다.
통짜로 된 원고를 연재하기 수월하게.
보통 이렇게 분절하면 두 가지 방식이 생겼다.
처음에는 대부분 유료연재의 기본이 5천 자였다.
적게 써도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으면 4천 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유료연재 작가들이 5천 자 이상 쓰기 시작하면서 4천 자는 짧단 독자들의 언성이 잦아들었다.
그렇게 관례가 되어 버린 최소 기준인 5천 자.
여기서 조금 편법을 쓴 글자수가 3천 자였다.
어차피 5천 자는 유료연재일 때의 기준.
무료연재일 때는 글자수가 적다고 뭐라 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작가가 공짜로 원고를 선보였으니까.
그 무료연재에서 좀 더 많은 편을 보여서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나온 글자수라고 보면 됐다.
“하지만 지금 시장에선 유료연재를 할 것도 아니고, 원고 자체가 종이책 흐름을 지녔으니 5천 자가 낫겠지.”
흐름이 긴 원고를 3천 자로 자르면 한 편에서 독자에게 다음 편을 보게 만들이 힘이 없었다.
때문에 난 분절을 위한 글자수를 5천 자로 정했다.
현재 시장을 기준으로 한 권의 분량은 16만 자가량.
5천 자로 자른다면 권당 32편이 나왔다.
그렇게 난 60편이 넘는 분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마지막 연재 편수를 체크하며 글을 추가했다.
“65화에 계속.”
타다다닥.
재빠르게 키보드를 치며 64화까지의 분절 작업을 끝냈다.
연재할 원고도 준비됐으니 이제 다음으로 정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연재처는…… 내 글을 믿는 것도 좋지만, 좀 더 확실한 대박을 위해서 조아북부터 시작한다. 아니, 지금은 북조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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