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51
나는 작가다 051화
51화
“자극적인 소재에는 어울리지 않아.”
자극적인 소재는 사이다패스인 독자들을 위한 글들이다.
비록 진민화 작가의 문체가 매력적이어서 어느 정도 고구마를 버틴다곤 하더라도 자극적인 요소를 보려는 독자 입장에선 조금 거슬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다소 잔잔하게 흘러가도 글만 괜찮으면 용납이 되는 소재로 갈 때 쓰면 좋을 텐데…….”
잔잔한 글.
딱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장르를 판타지, 무협 같은 대분류가 아니라 세분화된 소분류로 나누자면.
“아예 정통 판타지나 일상물이면 괜찮겠는데?”
나중에 유료연재 시장이 오면서 작품의 수가 어마어마해지면서 정말 별의별 혼합물들이 다 나왔다.
판타지 안에서도 회귀물, 생존물, 현대물, 레이드물, 스포츠물 등등이 있었다.
처음에는 여기서 한 가지 요소만 쓰다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두 종류, 세 종류를 합치는 경우도 나왔으며 게임판타지처럼 능력치나 스킬 등을 옵션으로 달기도 했다.
점점 자극적이고 보여줄 요소를 늘리기 위한 글들이었다.
하지만 이 자극적인 장르들 속에서 이따금씩 감성을 자극하며 따뜻한 작품도 간간히 나왔다.
그게 바로 방금 언급한 ‘일상물’이었다.
뭔가 주인공이 성장하기 위한 목표가 아니라 정말 일상을 살아가듯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주변 상황과 인물들로 꾸려 나가는.
거기서 대다수 일상물들은 요리 쪽을 택했다.
나중에 일본에서 유명해지고,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지는 작품이 하나 있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주인공이 푸드트럭을 끌고 다니며 야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손님들을 받아주는데, 손님들의 추억과 사정이 담긴 음식들을 내어주던.
제목은 ‘심야트럭’이었다.
일본 지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나 항상 오픈하는 포인트를 정해놓곤 열었다.
언제 열지는 날짜를 아무도 몰랐다.
마스터가 이동하고 싶을 때 이동하니까.
오죽하면 가끔씩 기대하고 왔는데 실망하고 돌아가거나, 없어서 실망했다가 마스터의 심야트럭이 오는 걸 보고 기뻐하는 장면들도 나왔다.
어쨌거나 일상물 중 요리하는 작품들을 보면 이 심야트럭에 영향 받았단 게 느껴지곤 했다.
난 그 일상물로 진민화 작가의 기술을 배워볼까 싶었다.
“어차피 용사무적은 곧 10권으로 완결까지 원고 준비가 끝나니까 신작 하나 구상해 볼까?”
진민화 작가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특색적인 문체.
그걸 익히기 위한 신작을 간단히 생각해 봤다.
“나도 심야트럭에서 따와 보자면 한국적인 특색을 살린 포장마차 형태로 가볼까?”
사실 대한민국에서 심야에 열리는 식당으로는 포장마차만 한 데가 없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길거리에 천막을 친 포장마차의 수가 줄어들었지만, 아직 지금 시기에는 밤에 지나가다 보면 하나씩 보이는 게 포장마차였다.
하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아직 현대판타지가 팔릴 시기는 멀었지.”
현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장르는 2010년도 즈음부터 팔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진 내는 족족 다들 망하기 일쑤였다.
결국 쓰고 나면 나중에 유료연재 시장에서 팔릴 장르이긴 했다.
게다가 내 필명을 걸고 쓴다면 망해 버리던 현대판타지 작품 중 가장 잘 팔지 않으려나?
그러긴 할 거다.
보통 한 작품이 어느 정도 성공해도 차기작까지 잘될 거란 보장 없는 장르시장.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성공한 작품의 기준일 뿐.
판타지 삼 대 작가 중 한 명이라는 진민화보다도 많은 부수를 팔아치운 내 네임 밸류라면 충분히 현대판타지로도 엔간한 중박 작품 부수 정돈 팔아치우리라.
“근데 굳이 도박을 할 필욘 없지.”
만약 일상물 장르가 한계적이었다면 그냥 황제 로키와 드래곤 나이트로 연재에 성공한 내 필명으로 밀고 나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꼭 요리하는 일상물이 현대 배경으로 쓰란 법이 없었다.
나중에 무림북에서 북피아로 바뀐 ‘고독한’ 작가의 ‘식사하세요’라는 작품이 그랬다.
현대이긴 했으나 현실에선 볼 수 없는 레이드물의 배경으로 일상물을 집필했다.
즉, 배경이 꼭 현실에 있을 법한 현대가 아니어도 먹힌단 소리였다.
판타지였으니까.
거기서 난 공책에다가 새로이 써볼 작품에 대해 고민의 흔적을 남겼다.
처음에 ‘일상물’, ‘요리’를 적었다.
‘현대’를 썼다가 ‘X’ 표 쳤다. 그리고 새롭게 쓴 단어는 ‘판타지’였다.
흔히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일반적인 판타지 장르.
배경과 소재를 정한 나는 주인공을 골랐다.
“일단 강해야 하니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 수준이면 좋을 것 같은데.”
최강이라 일컫는 존재가 요리를 하면서 간간히 자신의 절대적인 무력으로 주변 일들도 처리하는 게 잘 먹혔다.
거기서 난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 중 전자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왕이면 소드마스터 쪽이 낫겠지.”
그렇게 공책에는 ‘소드마스터’와 ‘식당’이 적혀 있었다.
난 그 사이에 한 글자를 넣었다.
소드마스터’의’ 식당.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근데 아직 뭔가 좀 밋밋한 느낌.
뭔가 추가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나는 주인공의 개연성에 대해 떠올렸다.
“소드마스터가 식당을 차리는 타당한 개연성이 필요한데…….”
잘나가는 소드마스터가 굳이 검술로 돈을 벌지 않고 식당이나 한다.
이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면 분명 독자들은 이질감을 느끼리라.
고민 끝에 난 신작 일상물의 제목을 완성시켰다.
“그래, 이러면 되겠네!”
방금 적어낸 ‘소드마스터의 식당’ 앞에 세 글자를 추가했다.
그렇게 공책에는 새로운 작품의 제목이 완성됐다.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
***
철이와 약속을 잡았던 토요일이 다가왔다.
진민화 작가의 작품도 읽고, 라이트노벨 장르에 도전해서 썼던 용사무적도 10권으로 마무리 지은 다음 신작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을 쓰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가며.
오후 3시에 우리 집 앞에서 보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서 나가자 철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왔네.”
집 앞으로 나갔다.
그때 요란한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빠아앙!
아파트 입구 앞에 서 있는 스포츠카 한 대. 거기서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
“야, 준경아!”
스포츠카에는 철이가 타고 있었다.
“엥? 쟤네 아버지 스포츠카도 한 대 뽑으셨었나?”
생각보다 철이네 아버지는 세무사로서 꽤나 이름 좀 날렸다.
당산동 정세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정세무는 이름이 아니었다.
철이네 아버지 이름은 정훈이다.
그저 세무사로 유명하다 보니 그리 불릴 뿐.
때문에 돈도 많이 버는 만큼 차도 세 대나 있었다.
근데 내 기억 중 철이네 아버지 차량 중 스포츠카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아빠 차를 끌고 온다더니 렌트카로 말을 바꿨던가?
가까이 가니 렌트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번호판에 박힌 ‘허’를 보고.
나중에 ‘하’와 ‘호’도 있었지만, 아마 지금 시기엔 ‘허’밖에 없었을 거다.
철이가 타고 있는 스포츠카 쪽으로 다가갔다.
“넌 무슨 스포츠카를 렌트했냐?”
“우리 대표님께서 월급도 주시고, 내년에 나도 한몫 단단히 챙길 텐데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얼른 타십쇼, 대표님.”
직원으로서 보이는 성의.
그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오냐.”
2인승인 스포츠카여서 철이 옆에 앉았다. 그렇게 앉으면서 스포츠카 내부를 보곤 감탄했다.
“예쁘네.”
편집자 이준경은 그저 군부대에서 잡지를 보거나 인터넷으로 봐야 확인할 수 있던 스포츠카였다.
군대에 가면 이십 대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은 꿈을 꿨다.
‘제발 전역만 하자.’
딱 현역에서 벗어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군대란 곳이 거지같았으니까.
개중에 한 가지가 바로 차였다.
돈 열심히 벌어서 차를 한 대 뽑아야지.
여기서 한술 더 뜨는 애들이 바로 스포츠카를 관심 갖던 애들이었다. 물론, 전역하고 정말 성공해서 사는 애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전역하고 언제 자신이 관심을 가졌냐는 듯이 국산차도 겨우 마련하는 게 대다수였다.
어쨌거나 전역하기 전까진 모르는 혈기왕성한 청년들은 차량 정보가 담긴 잡지를 사와서 보곤 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편집자 생활을 하면서 차 마니아인 작가들도 많았다.
덕분에 나도 꽤나 자동차 종류 좀 알게 됐다.
현재 철이가 렌트한 차량은 유명한 스포츠카 브랜드 중 한 곳인 오르세에서 나온 박스터였다.
아마 지금 가격으로 5천만 원가량 했나?
고가의 스포츠카인 오르세 박스터를 보고 감탄한 나한테 철이가 말했다.
“이왕지사 돈 열심히 벌고 있는데, 너도 스포츠카 맛 좀 보고 한 대 뽑는 건 어때?”
“맛은 개뿔.”
“이래도?”
철이가 한 번 맛 좀 보란 듯이 시동을 걸었다.
부우우웅!
확실히 일반 차들과 다르게 시동만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엔진소리나 진동이 장난 아니다.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차량 울리는 거 보소.”
“뭔가 이 느낌 좋지 않냐? 이래서 내가 가끔씩 스포츠카를 렌트해서 탄다니까. 이참에 법인으로 리스해서 하나 뽑는 건 어때? 한 2년에서 3년 끊고 매달 2백만 원 정도만 쓰면 되는데.”
은근히 나더러 스포츠카 한 대 뽑으란 듯이 이야기하는 철이.
이거 왠지 노림수가 있어 보였다.
“왜? 네가 타고 다니려고?”
“에이, 어떻게 네 돈인데 내가 마음대로 타고 다녀? 물론, 법인으로 리스할 거니 회사 보험 들고 네가 허락만 해주면 가끔 타겠지만 말이야.”
“이놈아, 속 보인다.”
“흐흐, 들켰냐?”
“됐고, 출발이나 하셔.”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렇게 난 세무 업무를 봐주는 운전기사 덕분에 스포츠카로 드라이브했다.
서울 올림픽대로를.
***
청담동에 도착했다.
오피스텔 계약을 중계해 줄 부동산 앞으로.
이미 필요한 서류는 철이가 모두 준비해 둔 상태였고, 부동산 업자를 통해 매물만 확인하면 됐다.
처음부터 전세금을 질러놓은 게 있어서인지 첫 매물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대놓고 괜찮단 티를 내지 않고 다른 매물도 보길 요구했다.
예전에 봤던 예능 프로그램 중 ‘TV in TV’라고 BJ처럼 방송하는 게 있었는데, 거기서 집 계약 전에 해야 할 몇 가지 팁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마음에 들어도 티를 내지 말기’였다.
이후 두 번째로 싱크대, 세면대, 배수관 확인이었다.
물을 가득 받아놓고 내려 보겠다고 한 뒤 확인했다.
세 번째로 보일러 작동, 누구, 곰팡이 체크였는데 질러놓은 돈이 있어서 신축들만 보여주니 큰 문제가 되어 보이는 매물은 없었다.
이후 집이 나온 이유, 일조량, 관리비 등 체크할 것도 있었지만 매물 모두 괜찮았다.
한 여섯 군데를 도니 부동산 업자가 일곱 번째는 투룸으로 된 오피스텔을 보여줬다.
거실에는 휴식 공간을 만들고, 각 방을 침실과 작업실로 쓰면 될 것 같은.
신축 풀옵션인 터라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전자레인지, 오븐, 가스레인지, 책상, 장롱 등등 모두 깔끔한 상태로 구비되어 있었다.
끽해야 챙길 건 컴퓨터, 의자, 의류 그리고 침구 정도.
왠지 일곱 번째로 봐서일까?
‘럭키 세븐’이란 말을 떠올리며 왠지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 뭐든 운이 따를 것만 같았다.
철이와 부동산 업자에게 마지막으로 본 매물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 뒤 속전속결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을 끝내고 철이와 저번에 백광훈 덕분에 가봤던 고급 일식집에서 약주를 하곤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님에게 따로 작업실을 구했다고 이야기하고 바로 다음 날 계약했던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그렇게 난 개인적인 작업 공간을 마련하며 새로 연재를 하나 시작했다.
왠지 새로운 작업 공간에서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았기에.
연재를 한 필명은 ‘이준경’이 아니라 ‘만선’이었다.
그랬다.
라이트노벨을 써보겠다며 10권 완결로 연재를 내리고 준비했던 ‘용사무적’의 원고였다.
모든 연재 사이트에 용사무적을 업로드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정말 내 생각대로 됐다.
용사무적의 성적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컨택이 왔기 때문이었다.
‘LT노벨’.
그곳이 바로 용사무적을 계약하고 싶다던 출판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