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52
나는 작가다 052화
52화
만선 작가님. 안녕하세요?
연재 중이신 소설 즐겁게 감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원 출판사 라이트노벨 신규 브랜드 LT노벨 팀장 이경수라고 합니다.
만선 작가님의 작품 ‘용사무적’을 감상하고 이 작품이라면 대한민국 작가가 쓴 라이트노벨도 일본 못지않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쪽지를 보내게 됐습니다.
저희 ‘LT노벨’은 ‘블레이어즈’와 ‘마법사 이안’을 출간했던 ‘라이트북스’에서 이름이 바뀌었는데요, 현재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의 복간과 새로운 라이트노벨 ‘로보패닉’으로 출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계획이 없던 거였지만, 만선 작가님의 용사무적을 재밌게 읽고 국내 라이트노벨 작가의 작품을 선보여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만선 작가님께서 저희와 계약을 하신다면 라이트노벨 전문 출판사에서 출간한 정식 작가로선 아마 최초가 되지 않으실까 합니다.
혹시나 작가님께서 계약에 대한 생각이 있으시다면 저희 회사 연락처인 ’02-xxx-xxxx’나 제 연락처인 ‘011-xxx-xxxx’로 전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계약이 아니더라도 라이트노벨에 관한 궁금점 같은 게 있으시더라도 물어봐 주시면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언제든 작가님께서 편하신 시간에 전화 주시고, 아직 쌀쌀한 날씨이니 부디 감기 조심하시고 언제나 좋은 작품 활동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LT노벨의 팀장 이경수란 사람이 보낸 장문의 컨택 쪽지.
그걸 보곤 읊조렸다.
“라이트노벨 전문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최초의 국내 작가라…….”
사실 최초의 한국 라이트노벨이라고 한다면 반박할 독자들이 꽤 있었을 거다.
만화책 스토리 작가로도 유명한 ‘임하룡’ 작가가 쓴 ‘아이언 전기’나 ‘박지나’ 작가의 ‘용사 키우는 마왕님’ 같은 게 국내 작가가 쓴 최초의 라이트노벨로 꼽곤 했다.
하지만 이경수가 말했다시피 앞에 조건부가 붙었다.
‘라이트노벨 전문 출판사’라는.
나쁘지 않은 타이틀 같았다.
일단 ‘최초’란 타이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이 날 법한 이름이었으니까.
그 타이틀을 내 작품인 용사무적이 지니게 되고, 사실 그 작품의 주인이 나란 게 밝혀진다면?
아마 ‘작가 이준경’의 이름값을 더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판타지 소설뿐만 아니라 라이트노벨 장르까지 섭렵했다며.
하지만 이 모든 걸 하기 위해선 한 가지 조건부가 붙었다.
“일단 LT노벨 담당자랑 만나서 이야기부터 해봐야겠네.”
이경수가 쪽지에 남긴 번호를 저장한 뒤 문자 한 통을 보내뒀다.
-안녕하세요. 용사무적을 집필한 만선 작가입니다. 쪽지를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그렇게 문자 한 통을 보냈더니 곧장 휴대폰에 전화가 왔다.
발신자 이름은 ‘LT노벨 이경수 팀장’.
내 문자를 보기 무섭게 전화한 것이다.
곧장 전화를 받았다.
“예,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LT노벨 팀장 이경수라고 합니다.”
“예, 만선 작가입니다.”
“혹시 계약을 생각하시고 전화를 주신 건가요?”
“일단 계약은 이야기를 더 해본 뒤 정할 생각입니다.”
대뜸 맞다고 답하면 반은 넘어왔다고 생각할 터.
그래서 아직 고민 중인 기색을 내비췄다.
아직 잡은 물고기가 아니란 걸 깨달았는지 이경수는 내게 만나길 권햇다.
“그럼 혹시 뵐 수 있을까요?”
일단 직접 얼굴을 맞대고 계약서를 들이밀면 십중팔구는 넘어왔다.
어쨌거나 계약서를 들고 다니는 영업자들이 능력 발휘가 거기서 이루어졌으니까.
나야 뭐 만나도 마음에 안 들면 도장 찍지 않을 자신이야 있었지만, 굳이 아직까진 만나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 전화로도 확인할 요소는 많았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이경수에게 난 반격을 시도했다.
“뵙기 전에 계약 조건을 듣는 게 가능할까요?”
일단 전화로 계약 조건부터 듣겠다.
순간 이렇게 나올 지 예상치 못했던 건지 이경수가 당황한 목소리로 계약 조건을 읊었다.
“에, 일단 저희가 생각하는 건 8%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8%요?”
“예.”
일단 퍼센티지는 내가 신인 작가라 생각한다면 평이했다.
아직까지 용사무적은 라이트노벨 장르로서 독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못해서 각 연재 사이트에서 10~30위권에서 놀고 있었다.
황제 로키 때처럼 조작을 한다면 당장 최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로서 활로를 열기 위한 수단을로 조작은 처음이면 됐다.
어느 정도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으니 순수하게 작품으로만 승부를 보고 싶었다.
하물며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이다.
도전은 정당하게 해야지.
어쨌거나 등수를 감안하면 평이한 퍼센티지.
거기서 난 계약 조건의 부수도 물었다.
“부수는요?”
“부수는 일단 블레이어즈랑 마법사 이안을 복간하고 어느 정도 팔리는지 본 다음 정할까 합니다.”
이미 한 번 냈었던 블레이어즈와 마법사 이안을 복간해서 판매한 뒤 초판 부수를 정하겠다.
이건 뭔가 말이 이상하다.
당장 계약서를 작성하려면 보장금액을 위한 부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야 할 텐데, 이경수의 대답에선 왠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찍을 부수만 이야기한 것 같달까?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좀 더 정확하게 물어봤다.
“아니, 보장 부수요.”
“예?”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반응.
“보장 부수 없어요?”
“일정 부수를 보장한 금액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그런 건 없습니다. 복간하기로 한 블레이어즈와 마법사 이안이 얼마나 팔린 지 보고 초판을 찍은 뒤 판매된 부수에서 8%를 드립니다.”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보장부수도 없는 계약이라니.
만약 말아먹어서 1, 200부라도 팔면 먹고살 돈조차 못 받는단 소리였다.
안 그래도 라이트노벨은 6천 원인가 할 텐데, 쫄딱 망해서 200부 정도 판다면 작가에게 돌아가는 돈은 10만 원도 채 안 됐다.
문득 라이트노벨을 쓰던 작가들이 하던 소리가 떠올랐다.
‘솔직히 라이트노벨 작가들은 자기 작품 일러스트 보고 싶어서 쓰는 거죠.’
일반 판타지나 무협을 쓰는 작가들이 버는 수익에 비하면 정말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라이트노벨 작가들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왔다.
그저 자기 작품이 책으로 나오고, 캐릭터 일러스트를 얻을 수 있단 만족감.
그마저 없으면 라이트노벨을 쓸 수가 없으니 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라이트노벨로 돈이 안 되니 판타지를 쓰던 작가가.
그래도 판타지로는 꽤 돈 좀 쏠쏠하게 만졌다.
때문에 한 번 라이트노벨 접고 그냥 판타지만 집중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그 작가가 나한테 이리 말했다.
“형님, 어떻게든 라이트노벨을 쓰고 싶어서 판타지를 쓰는 겁니다.”
그만큼 라이트노벨 작가들은 꽤나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아니, 작품도 작품인데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랄까?
덕분에 난 라이트노벨도 쓰는 작가들을 만나서 듣곤 정말 판타지와 다르게 많은 착취가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유료연재 시장에서 7:3 비율이 정석인 것처럼 떠들 때도 5:5나 6:4를 받는 게 부지기수였다. 뭐, 종이책을 찍는 걸 감안하면 6:4 정도는 괜찮다고 여겼다. 그래도 5:5는 아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계약을 들으니 판타지 출판사인 페이퍼가 만든 트리 노벨이 양반이란 걸 깨달았다.
최소한 그쪽은 최소한 권당 보장금이라도 줬으니까.
유료연재로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으니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지금 LT노벨 담당자인 이경수에게 들은 보장부수 없는 조건에 비하면 낫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새삼 우리나라에서 라이트노벨을 쓰는 작가들이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이런 힘든 시장 속에서도 다섯 자리 부수를 찍는 작품들도 꽤 나왔으니까.
‘던전오펜스’나 ‘호랑이신령님’ 같은.
어쨌거나 방금 전 조건을 듣곤 라이트노벨 장르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조용히 있자 이경수가 날 불렀다.
“작가님?”
무보장 판매부수 8%의 조건.
심지어 내 기억이 맞다면 가격도 일반 판타지보다 저렴했다.
“그럼 권당 6천 원인가요?”
유명하다고 해서 봤던 키노의 우울이 6천 원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기의 라이트노벨은 가격이 그것보다도 낮았다.
“아뇨, 4,500원으로 책정하고 있습니다.”
4,500원이라니.
아, 생각해 보니 책자가 판타지에 비해 작았다.
혹시나 현재 판타지가 한 권에 16만 자인 걸 감안하면 그 작은 사이즈라면 한 8만 자 정도 하지 않을까?
나중에 한국형 라이트노벨이라면서 국내작가들을 통해 출간하는 곳들은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점점 판타지 장르의 종이책처럼 판형을 맞췄지만, 그 시기가 오기 전 라이트노벨은 책자가 매우 작았다.
만약 권당 반 권 분량인 8만 자 정도라고 한다면 얼추 판타지와 비슷한 인세가 지급될 터.
나중에 대여점 시장의 판매 부수가 점점 떨어지면서 구형 조판이라 불리던 큰 책자에서 신형 조판인 작은 책자로 책 사이즈를 줄였다. 그로 인해 권당 16만 자가 기본이던 분량이 12만 자 정도로 확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몇몇 출판사는 잘 나간다 싶으면 조판 양식을 손 봐서 8만 자에서 10만 자로도 한 권을 뽑곤 했다.
한데 그보다 작은 사이즈였던 라이트노벨을 감안한다면?
한 8만 자 정도가 아닐까.
난 방금 들은 권당 4,500원의 가격을 언급하며 덤으로 글자수를 확인했다.
“천 부를 팔아도 사십만 원이 안 되네요. 아! 혹시 권당 글자 수는 얼마나 잡고 있죠?”
이경수의 대답에서 나온 분량은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12만 자에서 15만 자가량 합니다.”
“예? 뭐라고요?”
“권당 12만 자에서 15만 자 정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작은 사이즈에 12만 자 이상이 들어간다고요?”
“예, 충분히 들어갑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무렵, 예전에 봤던 키노의 우울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조판 형식이 판타지 소설과 다르게 매우 빽빽하게 글자가 채워져 있었다.
그걸 감안하면 충분히 12만 자를 넘기고 남으리라.
권당 8만 자 정도라면 판타지 소설이랑 비슷할 줄 알았더니 3분의 1 정도의 수익은 포기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여기서 난 두 가지 기로에 섰다.
수익이냐, 명성이냐.
수익을 택한다면 차라리 여기서 계약하지 말고 푸른숲에 신작 원고라며 던져줘도 몇 배는 벌 수 있었다.
반면 그 수익을 포기하면 ‘최초’라는 매력적인 타이틀이 생겼다.
고민하는 사이 이경수가 방금 전 내가 물은 글자수가 아닌 인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긴 합니다만, 이번에 저희가 블레이어즈와 마법사 이안을 복간해서 파이를 넓혀둘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 팔 자신이 있으신다는 건가요?”
“예.”
블레이어즈와 마법사 이안을 복간해서 LT노벨의 판매 파이를 넓혀놓겠다.
그럼 용사무적은 천 부 이상 팔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을 다르다.
왠지 그의 자신감을 이용한다면 가능할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수익과 명성.
그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일단 나는 이경수에게 이상적인 자신감보다 현실적인 결과를 요구했다.
“자신 있게 몇 부나 파실 수 있으신데요?”
“그건…….”
아직 결과를 내보질 않았으니 섣불리 대답 못하는 이경수.
그에게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복간하기로 한 작품들이 팔려야 아실 수 있겠네요.”
“그렇겠죠, 아마도?”
“그럼 팔아보시고 나중에 다시 어느 정도 팔 자신이 있는지 알아보고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단 의사.
이경수는 그 의미를 잘 알아들었다.
“흠, 알겠습니다. 다음 달에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두 달 뒤에 결과물을 가지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요?”
“작가님께서 돈이 급하신 게 아니라면 제가 결과를 들고 올 때까지 다른 곳과 계약하지 않고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돈이야 급하지 않았다.
황제 로키와 드래곤 나이트의 인세만으로도 충분했다.
대신 내가 그걸 기다려 주는 대신 조건부를 하나 내걸었다.
“만약 이경수 팀장님께서 제 작품이 LT노벨에서 최초의 국내 작가 작품으로 출간하고 싶으시다면 그 정돈 기다려 드릴 수 있죠.”
“약속하셨습니다.”
“예.”
내걸었던 조건을 받아들이겠단 소리.
이 정도로 내 작품을 생각해 주는데, 두 달 정도야 못 기다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약속한 뒤 이경수와의 통화를 끝마쳤다.
들고 있던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리며 난 읊조렸다.
“블레이어즈와 마법사 이안…… 얼마나 팔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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