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53
나는 작가다 053화
53화
이경수 팀장과 전화를 하고 난 뒤 일주일이 흘렀다.
청담동으로 이사한 다음 날부터 일주일.
생각만 하던 헬스장과 피부과도 끊었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면 이랬다.
일어나면 닭가슴살 샐러드를 챙겨 먹고 헬스장을 가서 샤워를 하고 두 시간의 운동.
집에 돌아와서 열한 시까지 원고를 집필.
열한 시부터 한 시까지 글 쓰는 미식가를 유지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점심식사 후 휴식. 단, 피부과를 가는 시간은 여기에 포함시켰다.
열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집필.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외출하여 저녁식사 후 휴식. 단, 이때 내일 아침에 먹을 닭가슴살 샐러드를 준비했다.
일곱 시부터 아홉 시까지 운동.
아홉 시부터 새벽 한 시에서 두 시까지 집필.
처음 헬스장을 갔더니 트레이너가 체중 관리를 위해선 식단 조절이 필수라고 하기에 하루 네 시간씩 운동하겠다고 했다.
그리 말하니 트레이너 역시 더 이상 내게 식단 조절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경고했다.
자기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오라고.
네 시간의 운동 시간 동안 자신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온다면 식단은 노터치였다.
아! 약속한 게 하나 더 있었다.
최대한 술은 피하기였다.
사람과의 약속이 있지 않는 한.
덕분에 일본에서 유명했던 작품 ‘외로운 미식가’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나야 우롱차 대신 물을 마셨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루 24시간 중 네 시간은 운동으로 썼고, 식사와 휴식 그리고 피부과로 네 시간, 이후 나머지 열여섯 시간을 적절하게 집필과 수면으로 보냈다.
아직까지도 네 시간만 자도 충분하기에 하루 중 열두 시간을 집필에 투자하여 8만 자씩은 써내려 갔다.
황제 로키 2만 자, 드래곤 나이트 4만 자 그리고 신작인 은퇴한 소드마스터의 식당을 2만 자씩.
한 번을 실패하지 않고 정해진 대로 생활하면서 유명 작가들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아마추어 작가는 영감이 오길 기다리고, 프로 작가는 일어나면 바로 일을 한다’라던가, ‘글은 쓰는 게 아니라 꾹꾹 눌러 밀어내는 것’이라던가.
작품에 대한 영감을 떠오르지 않고 쓰란 말이 아니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도 끝까지 원고를 붙잡고 정해둔 목표량을 채우는 게 프로 작가란 이야기였다.
흔히 루틴을 만들라는 거다.
그날 정한 목표량을 쓰기 위한.
어쨌거나 기계적으로 쓰란 의미가 컸지만, 그래도 소설은 문학 작품이니 영감을 배제할 순 없었다.
나 역시 집필로 정한 시간에는 그리 썼지만, 이것 역시 식사를 할 때와 유산소로 사이클을 탈 때 수첩에 잊지 않고 뭘 쓸 지 정해뒀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지내던 차에 성용 형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준경아.”
“예, 형님.”
“좋은 소식이 있다.”
성용 형님이 내게 말할 좋은 소식이라고 하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증쇄라도 했어요?”
내 물음에 성용 형님이 혀를 내둘렀다.
“무당 피는 내가 흐르는데, 어째 네가 더 무당 같냐?”
“에, 진짜로 더 증쇄했어요?”
그냐 해본 말인데 반응을 보니 진짜 또 증쇄를 한 것 같았다.
“어, 또 증쇄했다.”
“얼마나요?”
“5천 부 더 찍어야 돼.”
1, 2천 부도 아니고 5천 부란다. 그렇다면 벌써 황제 로키가 추가 배본 물량까지 합해서 3만 5천 부나 찍어낸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난 추가 증쇄 분량에 관한 인세부터 챙겼다.
“그럼 800만 원씩 더 들어올 테니 인세가 추가로 1,600만 원 지급되겠네요.”
“그렇지. 원천징수가 떼이면 좀 줄어들겠지만.”
“뭐, 그거야 저만 내는 것도 아닌데요.”
원천징수 3.3%.
1600만 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원천징수 3.3%가 50만 원이 넘어갔다.
편집자 이준경 시절을 생각하면 50만 원이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지금에야 억억거리니 그리 부담되진 않았다만.
어쨌거나 증쇄 분량만큼의 인세나 원천징수의 이야기를 하던 난 3권으로 화제를 돌렸다.
“증쇄보단 3권이 빨리 나가면 좋겠네요.”
현재 3만 5천 부라면 3권도 최소 3만 부 이상 찍어내야 할 거다. 아니, 지금 추세라면 증쇄의 흐름을 완전히 탄 것 같으니 3만 5천 부를 그대로 찍어낼지도 몰랐다.
보통 한 달이 지나고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하기에 전 권수에 비해 적게 인쇄를 했는데, 지금처럼 계속 추가 주문이 생기는 경우엔 전 권수에 맞춰 찍어야만 했다.
그렇게 내가 3권 이야기를 하자 성용 형님의 못 말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그냥 돈독이 올랐구만.”
“에이, 돈독이라뇨. 그건 돈 챙기려고 아득바득 사는 인간한테 쓰는 말이죠.”
“3권 얼른 나갔으면 좋겠단 게 그 소리지.”
“전 돈보단 3권 부수가 궁금한 거라고요. 지금 8천 부 찍고 증쇄 2만 부 들어와서 추가 배본 분량까지 2천 부를 찍었는데, 거기서 5천 부를 더 찍는다고 하면 벌써 3만 5천 부잖아요?”
“그렇지?”
“그럼 3권은 얼마나 찍어요?”
가장 큰 관심사인 3권의 초판 부수를 물었다.
그러나 성용 형님은 아직 모르겠단 듯이 대답했다.
“글쎄, 아직 일주일 더 있다가 반품 추이 보고서 정해야 할 것 같은데…….”
근데 대답하는 목소리가 묘하게 농담을 할 때 그거다.
왠지 이미 사장한테 3권 몇 부를 찍을 건지 보고한 사람 같았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나도 농담 따먹기나 해야지.
꽤나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반품이 있을까요?”
“무슨 자신감이냐?”
어이가 없단 목소리.
설마 내가 이리 나올 줄은 몰랐었나 보다.
거기서 난 피식 웃었다.
“자신감이 아니라 계속 증쇄하고 있는 흐름을 타서요.”
“계속 증쇄할 거다?”
“뭐, 그러면 서로 좋지 않겠습니까?”
“좋긴 하지. 그리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오, 형님이 보시기에도 가능해 보입니까?”
“왠지 지금 네 작품을 보니 몇몇 작품이 생각나는 걸 보니?”
“몇몇 작품이라면 어떤……?”
“퇴마사 이야기, 드래곤 피아, 흑무처럼 꾸준히 증쇄되고 있는 대박 느낌이 난단 말이지.”
하나같이 대한민국 판타지 장르 역사상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이다.
성용 형님은 그 라인업에 내 황제 로키를 추가했다.
아니, 솔직히 할 만하긴 했다.
3만 5천 부다.
여기서 이미 대한민국 판타지 삼 대 작가라 불리던 진민화 작가보다도 많이 팔았다.
누가 봐도 대박일 수밖에 없었다.
내 작품이 대박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언급되니 기분이 좋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들었으니까.
난 흡족한 미소로 읊조렸다.
“대박 느낌이라…… 좋네요.”
“아무렴 좋고 말고, 게다가 넌 작가들한테 흔히 하는 걱정도 안 되고 말이야.”
작가들한테 흔히 하는 걱정이라, 그게 뭔지 물었다.
“무슨 걱정요?”
“보통 첫 작품이 잘나가면 신인 작가들은 그로 인한 부담감을 느껴서 원고 완성 시간이 늦어지거나 차기작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 넌 그런 작가들하고 다르게 무슨 공장마냥 원고를 찍어내서 보내고 있잖아?”
맞다.
아예 작품이 망해서 시장을 떠나는 이들도 많았지만, 방금 성용 형님이 이야기한 케이스로 떠난 작가들도 은근히 많았다.
첫 작품에 꽤 성공했으나 그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작가들.
성용 형님이 말한 것처럼 너무 처음부터 성공하다 보니 차기작은 절대 망하면 안 된다던가, 아니면 그보다 잘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서 다음 작품을 제대로 써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어떻게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 대충 썼다가 아예 폭삭 망해 버려서 시장을 떠난 이들도 많았다.
근데 난 그럴 걱정이 없단다.
마치 전원만 켜면 자동으로 물건이 완성되는 공장마냥 원고를 뽑아내니까.
“칭찬이죠?”
“욕이다, 너 사람 아니라는.”
“에이, 왜 그러십니까?”
“됐고, 3권은 아마도 딱 지금까지 추가 배본을 포함해서 증쇄한 만큼 찍겠다고 보고는 드렸다.”
그럼 그렇지.
이미 보고했을 것 같았다.
난 방금 전 성용 형님이 했던 농담을 되짚었다.
“아깐 반품 추이 보신다면서요?”
“그냥 너 놀리려고 한 말인데, 통하지 않으니 재미없어서 포기다.”
“그럼 3권 초판 부수는 3만 5천 부예요?”
“어.”
“그럼 3권 증쇄 비용은 언제쯤 나올까요?”
추가로 지급되어야 할 인세에 대해 묻자 성용 형님이 혀를 찼다.
“쯔쯧, 언제는 돈독이 오르지 않았다더니만.”
“에이, 열심히 일한 보상은 챙겨야죠.”
“아마 사장님께서 내가 올린 보고를 승인하시면 바로 집행될 거다.”
김두식의 승인만 떨어지면 바로 집행될 거라는 3권 증판 인세.
3만 5천 부에서 기존 8천 부를 빼면 2만 7천 부.
인세로만 치면 4천만 원이 넘어갔다.
또 한 차례 들어오게 될 꽤 큰 금액.
이걸 받으면 성용 형님 몸보신이나 시켜야겠다.
“그렇군요. 3권 들어오면 저희 술이나 한잔할까요?”
하지만 성용 형님은 요새 그럴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풀 출판사 일로 너무 바빠서 시간이 날지 모르겠다.”
하기야 바쁠 만도 했다.
직원 몇 명 붙여준 뒤 거의 혼자 알아서 다 하라고 했을 테니까.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렵다고 하니 아예 내가 그쪽으로 가볼까 싶었다.
“그럼 시간 내서 제가 부천 한 번 넘어갈까요? 새로 차린 사무실 구경도 할 겸요.”
“어? 그럴래?”
꽤나 조심스럽게 되묻는 성용 형님.
아무리 형님, 동생 하는 사이라곤 해도 내가 갑인 작가였다.
심지어 출판사 최고 매출을 짊어진 몸.
그런 내게 편집자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란 소리를 한단 게 말이 안 됐다.
세상엔 그런 말도 안 되는 편집자들이 좀 있긴 했지만, 최소한 성용 형님과 나는 그러지 않았다.
계약서상에 적힌 대로 작가에게 갑의 권리를 최대한 대우해 줬다.
대신 모든 작가에게 그런 건 아니었다.
권리에는 의무가 있다.
아무리 을이라곤 하나 편집자도 한 명의 사람이며, 자신의 작품이 진행되면서 함께하는 동반자라고 생각해 주는 의무.
그 의무를 보여주지 못하는 작가에겐 제대로 갑의 권리를 대우해 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을로 있던 나였기에 그 의무를 잘 지키는 갑이고 싶었다. 또한 성용 형님 역시 그리 생각했으니 내가 찾아간다고 하니 미안해하는 기색을 내비췄으리라.
난 괜찮단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죠, 뭐. 안 그래도 풀 출판사 잘 운영하라고 사장님이 형님 쓰실 사무실도 내줬다면서요?”
“맞아.”
“거기 혼자 쓰시는 건 아니죠?”
“응, 원래 우리 팀 막내였던 재민이랑 로맨스팀 곽정아 대리랑 막내 최지인 씨해서 총 네 명 있다.”
네 명이서 운영하는 출판사라, 업무는 부려먹고 풀 출판사로 들어오는 돈은 김두식이 경리와 함께 직접 관리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세금 폭탄 한 번 거하게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아직은 그 시기가 아닌 것 같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풀 출판사에 성용 형님을 포함한 직원이 넷이라.
만약 내가 풀 출판사를 따로 챙기게 된다면 내 사람이 될 지도 모르는 이들이다.
이참에 한 번 챙길까 싶었다.
“그럼 이참에 가서 풀 출판사 회식이나 한 번 하죠. 최대 주주로서 제가 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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