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56
나는 작가다 056화
56화
목요일이 다가왔다.
출판사의 정해진 업무 종료 시간은 6시였지만, 워낙 하는 일들이 많으니 7시나 8시까지 야근하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성용 형님이 좋은 대표가 되려고 한 것처럼 나도 좋은 최대 주주가 되고 싶었다.
오전에 정해둔 만큼의 목표량을 채운 뒤 성용 형님에게 말해뒀다.
오늘은 내가 쏘기로 했으니 다들 6시에 업무 종료시키라고.
그러고 오전 11시에 부천으로 출발했다.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기 위한 노트북과 키보드를 챙기고.
피부과 일정도 없는 날이라 일찍 부천으로 가서 글 쓰는 미식가의 오늘자 점심 편은 부천에서 할 생각이었다.
풀 출판사의 사무실 위치만 받은 뒤 푸른숲 출판사 근처로 갔다.
근처에 있는 ‘순이네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여기가 엄청 맛있어서?
그건 아니다.
단지 내가 항상 바쁘게 살아온 편집자 시절 매번 점심을 챙겨먹었던 곳이라서 추억 보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맛있다’라곤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저 식비 4천 원에 맞춰서 먹기 나쁘지 않은 곳.
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수첩에는 내가 알고 지낸 작가의 단골집이라고 써놨다.
과거 회귀를 언급할 수는 없었으니까.
어느 정도 점심을 먹고 난 뒤 난 풀 출판사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괜히 미리 회사에 들러봐야 일찍 업무를 마쳐야 하는 직원들한테 방해가 될까 봐.
오후 6시까지 카페에서 원고를 집필할 뒤 풀 출판사로 갔다.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다들 일하는데 원기 보충하자고 근처 장어 가게로 갔다.
푸른숲 출판사 근처에서 아주 민물장어를 기갈나게 하는 곳이 있었다.
성용 형님 역시 작가들을 데리고 와본 적이 있었는지 영업해 본 적 없는 직원들에게 얼마나 괜찮은 곳인지 설명하면서 가게로 들어갔다.
‘응?’
가게에 들어서자 한쪽 테이블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장도철과 김두식 그리고 한 명이 더 있었다.
한 명의 얼굴도 어디서 본 적이 있던 얼굴이다.
뒤늦게 난 그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게일 작가!’
분명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게일 작가이리라.
한데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게일 작가가 넘어올 시기가 아닌데?’
게일 작가는 김두식이 장도철과 양경철에게 뒤통수를 맞고, 이어서 이진우에게까지 연속으로 당하면서 푸른숲 출판사의 힘을 기르기 위해 데려왔던 작가 중 하나였다.
근데 어째서 아직 장도철이 무한 출판사를 차리고 나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김두식과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때였다.
성용 형님은 직원들에게 가게에 대해 설명하느라 못 들은 것 같지만, 난 그들이 나눈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작가도 더 이상 푸른숲 출판사 작가가 아니라고 해서 크게 마음먹고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 작가라면 이준경 작가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뭐, 홍성용인가 하는 대리가 자기 담당으로 계약한 작가들 데리고 따로 주머니를 찼다면서요?”
이건 뭔 개소리야?
내가 푸른숲 출판사 작가가 아니라고 해서 옮겼다.
솔직히 그건 이해할 수 있었다.
연재할 무렵 독자들을 버리고 간 걸 응징했었으니까.
한데 성용 형님이 자기 담당 작가들을 데리고서 딴 주머니 찼단 소리는 이해가 안 갔다.
설마 풀 출판사가 성용 형님이 김두식의 뒤통수를 치고 만든 곳이란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기라도 하는 건가?
하지만 곧 이어진 대화를 듣곤 알아차렸다.
그 헛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덕분에 아주 곤혹스럽습니다. 출판사 매출이 확 줄었어요.”
“정말 씁쓸하시겠습니다. 저도 믿던 담당자한테 뒤통수 맞은 게 엄청 속이 쓰린데, 밑에 있던 직원한테 당하셨으니…….”
“뭐, 그래도 크게 괘념치 않고 있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마음껏 펼쳐야죠.”
“오, 사장님께선 엄청 대인배시네요.”
성용 형님이 딴마음을 품어서 뒤통수쳤단 소리를 자기들이 직접 떠든 거였다. 게다가 뒤통수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자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줬단 것처럼 말했다.
아주 기가 차다, 기가 차.
황당해서 혀를 찼다.
“쯧!”
“응?”
방금 내가 혀를 찬 소리에 쳐다보는 성용 형님.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 쳤다.
“아, 아니에요.”
방금 이야기한 것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김두식과 장도철이 게일 작가를 데려오기 위해서 풀 출판사가 아예 독립된 곳처럼 떠든다는 걸.
열심히 일하는 성용 형님한테 악영향을 미칠까 봐 최대한 그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성용 형님이 김두식을 봐버렸다.
“어? 저거 사장님이신데?”
“혀, 형님.”
성용 형님이 김두식에게 가려는걸 보고 당황하며 말리려고 했으나 늦었다.
성용 형님이 김두식을 불렀다.
“사장님?”
순간 자신을 부르자 김두식이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호, 홍 대리?”
설마 성용 형님 욕을 하는데 여기서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는지 같이 있던 장도철마저 화들짝 놀랐다.
반면 놀란 두 사람을 쳐다보던 게일 작가.
뒤이어 성용 형님을 쳐다보더니 한심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쯧! 홍 대리라고 하면 방금 이야기한 사장님 뒤통수친 그 싹수가 노란 직원 아닙니까?”
사장 뒤통수를 친 직원.
아무리 바보라도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인 게 뻔히 보였다.
심지어 게일 작가가 대놓도 ‘홍 대리’라고 언급까지 했으니까.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성용 형님이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그게 무슨…….”
이미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던 내가 중간에 끊고 들어갔다.
“아! 형님, 이럴까 봐 제가 푸른숲 출판사 근처 가게는 가지 말자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으응?”
언제 그런 소리를 했냐며 쳐다보는 성용 형님.
하지만 성용 형님과 대화할 틈이 생기지 않았다.
게일 작가가 끼어들면서.
“쟨 또 누굽니까?”
내 정체에 대해 묻자 김두식과 장도철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자 장도철이 뭐라 말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게…….”
그게 다였다.
뒷말이 나오질 않았다.
당연했다.
게일 작가를 데려오려고 나랑 성용 형님을 아주 쓰레기로 만들어서 떠들고 있었다. 때문에 그대로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될 경우 출판사 최대 수익을 내주고 있는 톱작가인 내게 밉보여야만 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망설이는 장도철을 보던 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게일 작가에게 직접 소개했다.
“저요? 방금 그쪽분이 이야기한 그 작간데요?”
“그 작가? 이, 이준경?!”
“예, 이준경이라고 합니다. 절 아시나 보네요.”
내 소개를 하자 게일 작가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허, 낯짝도 두껍군. 자신들이 뒤통수친 출판사 사장님 앞에 당당하게도 나타나네.”
계속 자신과 날 출판사 뒤통수를 친 인간으로 언급하자 성용 형님이 뭐라 하려고 했다.
“이보세요.”
근데 지금 이 상황에서 성용 형님이 끼는 것보단 내가 정리해야 깔끔해 보였다.
뭐라 하려는 걸 말렸다.
“형님, 제가 이야기할게요.”
“그래도 내가 담당인데…….”
“딱 봐도 저분도 작가 같은데, 작가한테는 작가가 이야기해야죠.”
내가 나설 이유를 합리화시키자 성용 형님도 어느 정도 납득했다.
“으음, 알았다.”
성용 형님이 뒤로 빠지자 난 김두식에게 물었다.
“사장님, 제가 뒤통수쳐서 많이 아프세요?”
내 질문에 김두식이 식은땀을 삐질거렸다.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다.
“하,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제대로 케어하지 못해서 나가셨는데, 오히려 죄송하기만 할 뿐입니다.”
호오, 이런 식으로?
매출 톱 작가인 날 푸른숲 출판사에서 재대로 케어를 해주지 못했고, 그로 인해 내가 담당 편집자인 성용 형님을 데리고 나가서 따로 차렸단 시나리오인가 보다.
그저 나랑 성용 형님이 뒤통수를 치고 나갔다고 알던 게일 작가가 이해할 수 없단 듯이 끼어들었다.
“아니, 사장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실 저기 홍 대리…… 아니, 이제 홍 사장이죠. 저희가 이준경 작가님을 제대로 케어해 주지 못하니까 홍 사장이 데리고 나갔거든요. 그치, 홍 사장?”
“예? 그게…….”
어쨌거나 자신을 뒤통수친 인간으로 만들었다곤 하나 아직까진 사장인 김두식이었다. 때문에 성용 형님은 어찌해야 하나 난처해했다.
역시 이 모든 상황을 정리가 가능한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아, 됐고요. 정말 실망입니다. 분명 나갈 땐 좋게 이야기한 걸로 아는데, 설마 이렇게 저희를 욕하고 계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설마 자신들도 여기서 나와 성용 형님을 마주칠 줄 몰랐겠지.
하필이면 우리랑 맞닥뜨려서 구라치다가 딱 걸렸으니 꽤 난처하리라.
여기서 김두식이 내게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사과뿐.
고작 게일 작가 하나 얻자고 내게 안 좋은 감정이 생기도록 만들면 곤란했을 테니까.
“미, 미안합니다.”
난처한 기색으로 말을 더듬거리며 사과하는 김두식.
아마도 머릿속이 복잡할 거다.
반면에 난 매우 기분이 좋았다.
우연찮게 마주한 자리였지만, 덕분에 김두식에게 빚을 하나 지도록 만들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나와 성용 형님에 대해 욕했으니 풀 출판사로 진짜 딴 주머니를 차도 뭐라 할 수 없을 터.
딱 여기까지만 하고 적당한 선에서 끝냈다.
“됐습니다. 이제 앞으로 볼일도 없는 분들인데 괜히 제가 끼어든 것 같기도 하네요. 형님, 저희는 그냥 다른 데 가서 회식하죠.”
“어? 그, 그래.”
내가 휙 돌아서자 성용 형님이 나와 함께 직원들을 데리고 가게에서 나갔다.
본래 다들 고생하니 장어로 몸보신이나 시켜주려고 했건만.
어쩔 수 없이 소고기로 대체했다.
봉급쟁이 입장에선 소고기도 충분히 비쌌다.
다들 배가 터지도록 먹였다. 그러니 다들 나나 성용 형님 편에 서서 한마디씩 했다.
“와, 근데 사장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죠? 홍 대리님이나 다들 풀 출판사 때문에 엄청 고생하는데, 저희가 사장님 뒤통수치고 나가서 따로 차린 거라니.”
성용 형님보다 두 살 많은 로맨스팀 곽정아 대리가 한 말이다.
곽정아가 말하니 로맨스팀 막내 최지인 역시 거들었다.
“그러니까요! 회사 세금 줄이겠다고 저희를 유배라도 보낸 것처럼 좁아터진 사무실에서 일하게 하시면서!”
두 여인의 불만에 성용 형님이 다독였다.
아까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를 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얼추 그 자리가 어떤 건지 알아차렸다.
“보니까 그 계약하려는 작가가 여기 이준경 작가님을 싫어하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따로 나갔다고 이야기하신 거겠죠.”
정확하다.
역시 눈치밥 한 번 대단한 형님이라니까.
그러한 성용 형님의 말을 들어도 여전히 곽정아는 납득하지 못했다.
“아무리 작가 계약이 중요해도 그렇죠. 회사를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한테 그런 이야기는 좀 아니지 않아요? 게다가 여기 계신 이준경 작가님은 지금 우리 출판사 매출 1위 작가님이시잖아요?”
푸른숲 출판사 매출 1위 작가.
비록 풀 출판사로 옮겨지긴 했지만, 1위란 사실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출판사가 아니라 시장에서 1위였으니까.
한데 그런 날 뒤통수친 놈으로 만들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성용 형님 역시 그건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이상하네. 준경아.”
“예?”
“너 아까 그 작가 누구인지 알아?”
알다마다.
아마 누군지 이야기하면 성용 형님도 납득하게 될 거다.
어째서 김두식과 장도철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는지.
하지만 대놓고 누구인지 알려주기보단 퀴즈를 냈다.
“잘 알죠. 형님도 잘 아는 작가일 걸요?”
“내가?”
“예.”
“내가 어떻게 알아?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여전히 감을 못 잡는 성용 형님에게 난 피식 웃어 보였다.
“저 때문에 손해 본 작가가 누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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